제149권, 생물학적 화학 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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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49권, 생물학적 화학 변환

  1. #1

    Default 제149권, 생물학적 화학 변환

    [프랑스 과학자 루이 C. 케브랑[Louis C. Kervran](1901-1983)이 1962년에 쓴 책(1965년 제 3판까지 발행), ‘생물학적 형질 변환[Biological Transmutations]’에서 인용된 내용으로, 케브랑의 이론은 물리, 화학, 생물학의 기존 법칙들에 위배되어, 오늘날 주류 학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phoenix]


    서문, 기록 #1 하톤
    1995년 9월 6일 수요일, 7:06 A.M. 9년 021일

    ......

    생물학적 형질 변환[Biological Transmutations], Part 16
    by 루이 C. 케브랑[Louis C. Kervran]

    영어 번역 : 미셸 아베세라[Michel Abehsera]

    [Part 16의 인용]

    에필로그

    “누군가 일반화된 이론에 반대되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그 자는 이론을 버리고 사실을 취해야만 할 것이다. 비록 그 이론이 위대한 인물들에 의해 주장되어 온 것이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끌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1813-1878, 프랑스 생리학자--역주)

    이 책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부인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한 실체를 설명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실험들을 정리한 자료집이다. 여기서 다루는 주제의 범위를 한정지음에 있어서, 이처럼 새롭게 발견된 현상들을 다른 방식으로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열린 사고를 갖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인용된 사례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이 제각각 특수성을 지닌 자신들의 전문 분야에서 그러한 메커니즘을 실제로 적용시켜 보도록 독려해 줄 수도 있기를 희망한다.

    앞선 설명들은 물질의 생물학적 형질 변환이 결코 화학 법칙들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화학[Chemistry]은 원자[atoms] 주변의 층들 속에 있는 전자[electrons]의 위치 이동에 관한 학문이다. 화학은 분자[molecules]에 관한 학문이지, 원자 핵[nucleus of the atoms]에 관한 학문은 아닌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발견한 법칙들이 생물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그 법칙들이 오직 자신의 특수한 연구 분야에만 관계된다고 주장했다. [하톤: 그런데 그의 법칙들은 자신의 연구 분야에 있어서도 틀린 이론들이었습니다!!]

    열린 사고를 가진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의 모든 법칙들이 살아있는 생명체에도 고스란히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루이 드 브로글리[Louis de Broglie]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 바 있다. : “19세기에, 심지어 20세기에 물리학, 화학 분야에서 정립된 개념들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너무나 불충분한 수준이라서, 이러한 개념들을 핵심적인 법칙들로 받아들이기에는 이른 시점이라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R. H. 디케[R. H. Dicke]는 ‘실험을 통해 본 상대성 원리의 이론적 의미[The Theoretical Significance of Experimental Relativity]’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오늘날 일반 상대성 이론과 관련된 증거들을 대함에 있어서, 처음 그 이론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가졌던 심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물리학자들이 몇몇 전문가들이 내놓은 고착화된 이론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물리학자 중 한 사람으로 과학 학부 교수인 H. 프라[H. Prat]는 다음과 같이 썼다. : “사실상 물리학과 생물학의 법칙들 전부는 다소간, 특정 개념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법칙들 모두는 재검토 대상이며, 또한 보다 유연해져야만 한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저명한 물리학자인 브리우엥[Brillouin]은 조직 치유 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바로 이것이 그렇게 많은 학자들이, 오늘날의 물리학과 화학 법칙들이 그처럼 이상한 현상들을 설명해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생명, 물질 그리고 관찰[Vie, Matière et Observation]’, 알벵 미셸 출판사[A Michel Pub.], 파리, 1959년)

    원자 분야에 있어서 모든 것들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견주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혼동스러운 일반화의 시도는 보편적으로 성립되지는 않는다. 어떤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 “아인슈타인의 방정식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지만, 오늘날 이 방정식들은 불완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사이언스[The Sciences]지 1964년 7월호) [하톤: 이러한 언급은 그 방정식들에 대해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표현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정식들은 실상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오류투성이입니다. 이제 다음과 같이 말해 봅시다. : 이 방정식들은 완전히 틀렸고, ‘신 세계 질서[the New World Order]’ 아래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거짓 정보[DISINFORMATION]의 일부로서만 유효하다! 당신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그와 같은 ‘신 세계 질서’에 맞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될 것입니다!] 또한, 다음과 같이도 말하고 있다. “새로운 검토, 우리가 가진 개념들에 대한 완전한 수정을 통해, 우리는 상대성 이론에는 조정해야 할 많은 부분들이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인슈타인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나는 단지 아인슈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자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다. 이들은 아인슈타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 자신도 그 적용에 있어서 한계를 인정했던 다른 모든 분야에 걸쳐 그의 이론을 적용하려 하고 있기도 한데, 바로 이러한 자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책은 누가 읽는 것인가? 상대성 이론에 관한 많은 인기있는 책들은 이 법칙들을 잘못 이해한 교수들이 썼으며, 이들은 자신들보다 앞서 그러한 책들을 썼던 저자들이 사용한 잘못된 계산 방식들을 기계적으로 고스란히 다시 받아 쓰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 “ 상대성 이론이 유효하게 인정되는 것은 오직 이와 같은 참조 대상(원 운동을 제외하고, 한 가지 방식의 직선 운동만을 하는 물체들)에 한해서만 그렇다.”(상대성 이론[La Relativité], 파이요 출판사[Payot Pub.], 파리, 1956년) 그리고, “유클리드 시공 연속체[the space and time Euclidean continuum]에 대한 물리학적 해석은,,,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을 전제로 가능해지며,,, 이러한 조건에서 일반 상대성 이론은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도 썼다. [하톤: 모든 것은 빛이며, 전기적 흐름[electric flow]이 갖는 전기적 이원성[electrical duality]은 시간과 공간이 마치 흐르는 듯한 환상을 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펄스-파동[pulse-wave]을 통해 이 전기적으로 현현된 존재입니다. 당신들의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당신들은 에테르적 존재들과는 유효한 인간 관계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인식상 “바깥 어딘가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은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죽기 전에 가졌던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 몇 가지의 유효한 이론들이 있으며, 각각의 이론들은 저마다의 분야에서만 완전히 식별 가능하고, 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많은 학자들이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이 이에 완전히 반대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양분되어 있는데, 나는 여기서 그들의 논쟁에 참여할 뜻은 없다.

    [하톤: 나는 당신들에게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물이 남긴 연구물을 판단하는 방법 한 가지를 상기시켜 주려 합니다. 그는 엘리트주의자였으며, 몽롱한 심적 상태에서 어딘가를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나이가 들었을 때, 문자 그대로 “늙었을 때”, 그는 당신들의 모나크 프로그램[Monarch Program](지속적인 마인드 컨트롤로 한 인간을 성적 도구나 전문적인 킬러로 만드는 프로그램, 피닉스 저널 101권 2장, 124권 7장 참조--역주)에 의해 만들어진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와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관계를 갖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과학자나 스승은 그러한 욕망이나 정치적 음모에 빠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의사들, 생물학자들, 그리고 농학자들은 이미 ‘생물학적 형질 변환[biological transmutations]’을 실제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사들은 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 채, 경험적으로 이를 적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농학자들은 고갈된 경작지를 몇 년간 휴한지로 내버려 두면, 땅은 부족한 물질들을 회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많은 정형외과 전문의들은 뼈는 칼슘 없이도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형질 변환[transmutation]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행성 전체의 기원과 진화에 관해서도 새롭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으며, 이는 지질학자에게도, 철학자에게도, 형이상학자에게도 전혀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핵심적인 생명 현상이 ‘화학의 원리’ 한 가지에만 기초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마 형이상학자들에게도 숙고해 볼 만한 근거를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 본다.

    ‘생물학적 형질 변환’을 인정하는 것이 생명을 이해하는 다음 단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와 반대로, 나는 이것이, 생명은 생-화학자들이 그럴 것이라고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계라고만 말하고 싶다.

    끌로드 베르나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군가가 하나의 일반적인 이론을 만들었다고 할 때, 우리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절대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이론들은 모두 다 틀린 이론들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이론들은 과학의 성장과 함께 반드시 수정되어야만 하는 것들로, 당대의 과학의 발달 수준이 뒤쳐지면 뒤쳐질수록, 그만큼 더 수정의 여지가 많은 것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학자가 해야 할 일은 ‘우연’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발견들을 양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관장하는 법칙들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모든 과학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느 한 과학자가 다른 모든 분야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별도의 영역을 주장하며, 다른 과학자들을 비난한다면, 이는 ‘과장된 전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대다수 과학자들에게 있어, 과학은 단지 또 한 가지 직업 영역에 불과하며, 여기 고용된 사람들로서, 자신만의 모험심을 잃어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면, 저-에너지상의 형질 변환[transmutations at low energy]은 핵 물리학 분야에서 오늘날 연구되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현상이다. 여기서 관찰되었던 형질 변환은 모두 생물학적 특성만을 지녔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생물학적 의미의) 자연 상의 원자의 구조는 핵 물리학 연구에서 쓰이는 기술로부터 도출되는 원자의 구조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만들어 준다. 한 덩어리의 핵[the nuclear set]은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에너지로도 분리될 수 있는 하위-세트들[sub-sets]로 구성되어 있다. 보다 특징적으로, 연구된 모든 반응들은 수소 원자 또는 산소 원자의 이동과 함께 발생할 수 있었다. 즉, +/-H 또는 +/-O로 표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일반 이론에 부합되려면, 산소의 양성자 그룹이 하나의 원자핵에서 떨어져 나온다거나, 또는 이것이 다른 원자핵에 합류될 수는 없다고 언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수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케브랑의 효과[Kervran’s Effect]”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몇 가지 반응들에만 국한되는 것이며, 생물학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고전 핵 물리학에 있어서 계산되곤 하는 핵 융합이나 핵 분열의 에너지와 비교될만한 근거는 없지만, 바위는 압력과 온도의 변화에 따라 변형을 일으킨다. 말하자면, 11Na, 12Mg 또는 13Al, 14Si 사이에는 양성자 교환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원자의 하위-세트로부터 하나의 양성자가 빠져나가거나 이것이 어딘가에 합류할 수도 있다는, 앞선 양성자의 움직임에 관한 보완적인 가설로 귀결된다.

    따라서 지구물리학 분야에 있어서, 고압을 사용하여 광물을 합성하는 실험 과정에서 때때로 아주 우연찮게 일어나는 것이긴 하지만, 동일한 형태의 형질 변환이 발견되기도 하기에, 누군가가 형질 변환을 일으키는 일종의 “케브랑의 효과”를 실제로 관찰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발견은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확인되지만, 결국 한 가지 결과로 수렴되는 것으로서, 즉 (원자의) 핵이 “쪼개질 수 있는 부분들[cleavable parts]”로 구성되어 있다는 개념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주의깊게 읽은 독자들이 생물학적 형질 변환에 대한 지식을 통해 도움을 받게 되길 희망한다. 앞으로 이 분야에 있어서 더 많은 책들이 불어에서 영어로 번역될 것이다. 이러한 책들은 물론 오늘날 저마다의 연구 분야에서 생물학적 형질 변환을 적용해 보고 있는 학자들의 새로운 실험들을 포함하는 내용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의 이 책은 이론적 측면을 다소 소홀히 한 부분도 있다고 하겠다.

    미셸 아베세라[Michel Abehsera]

    [Part 16 인용의 끝]

    하톤 : 나는 이 “에필로그”를 생물학적 형질 변환을 다루는 마지막 장 다음에 한 번 더 추가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어쩌면 당신들은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는 동안 “빛을 발견하기”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은 지금껏 잘못된 음식만을 섭취해 온 것이라 아니라, 잘못된 정보들을 받아들여 왔습니다. 당신들은 지금껏 무지로 인해 당신들의 놀라운 육체에 스스로 해를 끼쳐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의 세상에 있어서, 틀린 것 두 가지가 “옳은 것” 한 가지에 결코 근접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다른 모든 사안들보다, 지금만큼 더 심각한 진실이었던 적은 없습니다.--당신들의 통제자들에 의해 의도되어 온 일입니다. 어쩌면 최고의 사람들만이 이 고난을 이겨낼 것이며, 부디 당신이 그 최고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길 희망합니다.

    당신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하늘의 새들과 들판의 병아리들을 관찰합니다. 그런데 어떤 시기에는 이 새들이 먹을 먹이가 충분치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그들이 무엇을 먹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흙을 먹습니다! 그들은 본능적인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다량의 “어머니 지구”를 집어 먹는 것입니다.--당신이 아이였을 때, 당신도 진흙이나 모래를 얼마간 주워 먹은 적이 있었다면, 이는 꽤나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살과 뼈를 가진 동물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당신도 ‘전기적 기계[electric machine]’인 것입니다! Salu.


    1995년 9월 6일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Gyeorgos Ceres Hatonn]



    제 1장, 기록 #2 하톤
    1995년 8월 20일 일요일, 12:57 P.M. 9년 004일

    1995년 8월 20일 일요일

    사람들은 생명의 근본적인 정수가 살아 있는 것 안에 있지, 무생물 안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의 정수는 ‘변화하는 것’ 안에 있지, ‘완료된 것’ 안에 있지는 않은 것이다.” 괴테[Goethe]

    [Part 1은 미셸 아베세라의 서문]

    [Part 2의 인용]

    생물학적 형질 변환[Biological Transmutations], Part 2
    by 루이 C. 케브랑[Louis C. Kervran]

    영어 번역 : 미셸 아베세라[Michel Abehsera]

    서론[Introduction]

    “19세기에, 심지어 20세기에 물리, 화학 분야에서 정립된 개념들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너무나 불충분한 수준이라서, 이러한 개념들을 핵심적인 법칙들로 받아들이기에는 이른 시점이라 할 수 있다.” L. 드 브로글리[L. de Broglie]

    라부아지에[Lavoisier]는 18세기의 위대한 학자였다. 그는 현대 화학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그는 ‘일반 원칙[the general principle]’에 대해 연구했으며, 이로부터 새로운 과학 분야를 도출해 내기도 했는데, 그 내용은 “아무것도 소실되지 않고, 아무것도 창조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변형된다”는 것이었다. 원자[atom]는 물질의 가장 작은 입자로 간주되었으며 자연 속에서 불변하는 것으로서, 어떠한 원소[element]도 창조될 수는 없다고 여겨졌다. 원자는 사라질 수 없는 것이었다. 비록 원자가 둘 또는 그 이상의 원자들로 구성된 분자[molecule]로부터 분리되더라도, 다른 분자 안에서 그 원자는 여전히 불변인 상태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칙은 결코 반박될 수 없었으며, 논쟁의 여지도 없는 것이었다. 이 원칙은 19세기 공식적인 과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를 연구한 학자들은 그 적용을 확장시키고, 모든 폐쇄적인 과학 분야에도 연계시켰으며, 화학이라는 학문을 형성했다. 또 이를 입증할만한 충분한 실험들도 행해졌다. 이 원칙은 백 년도 넘게 논쟁의 대상 조차 되지 않았지만, 20세기에 접어 들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모순이 인정되었다. 자연 방사성 물질의 발견 때문이었는데, 이는 어떤 물질들이 전혀 다른 물질들로 변환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개념은 사실 중세 연금술사들이 가졌던 생각으로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는 동안에는 엄청난 조롱거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라듐[Radium]의 원자는 궁극적으로 방사성을 띠지 않고 안정적인 납[lead]의 원자로 변형되었는데, 이에 관해서는 마리 퀴리[Marie Curie]가 쓴 라듐의 발견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화학에 있어서 “원소[element]”라는 명칭은 일반적인 언어로는 “물체((덩어리)[body]”라는 표현에 견주어 볼 수 있다. “원소”는 사실상 과학 용어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산소, 황, 칼슘, 구리 등을 원소라고 부른다. 원자는 몇 개의 양성자들[protons](양 전기로 충전된 무거운 입자들로 중성자들과 함께 원자의 핵을 구성한다.--저자)을 갖는데, 그 수는 전자들[electrons](음 전기로 충전된 가벼운 입자들로 원자 핵 주변의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저자)의 수와 동일한 것이다. 원자는 양성자와 전자의 수가 동일하기에 전기적으로 중성을 띠는 것이다.

    원소[elements]는 예전부터 “단순 체[simple bodies]”로 불렸는데, 왜냐하면 원소들은 물질의 가장 간단한 단위를 대표했기 때문이었다. 원소들은 우리 행성의 창조 이래로 늘 존재해 왔으며, 인간에 의해 더 많이 창조될 수도 없고, 파괴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원소들은 오직 하나의 분자에서 다른 분자(또는 복합 체[composed body])로 “옮겨 갈” 수 있을 뿐인 것이다. 라부아지에의 법칙은 이러한 단순 체들[simple bodies]을 기반으로 성립된 것이었다.

    자연 상태에는 92가지의 원소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물질의 특성과 관련한 유사한 사례들로부터 추론하고 조합한 것으로서, 19세기 중반 멘델레예프[Medeleev]가 만든 원소 주기율표의 분류에 따른 것이었다. 이 표에는 빈 공간들도 존재하는데, 이는 특정 위치에 맞는 것으로 예견된 특징들을 띠는 새로운 원소들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빈 공간들 중에는 여전히 비어 있는 곳들이 있는데, 어떤 원소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 어떤 원소들은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특정 방사성 원소들은 이미 오래 전에 다른 원소들로 변형되어 버렸기 때문인 것이다. 이 이론은 20세기가 될 때까지는 불완전한 이론으로 남아 있었지만, 20세기에 접어 들어, 핵 물리학의 발달로 어떤 잃어버린 원소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됨에 따라, 보다 확고한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원소들은 어쩌면 자연 상태에서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지만, 실험실에서 인위적인 조건 아래 창조되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라부아지에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는 오직 핵 물리학에서 연구되는 방사성 원소에만 한정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화학 교육에 있어서, 예전과 같은 원칙들, 즉 아무것도 소실되지 않으며, 화학적 반작용에 의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원칙들은 계속해서 살아남았다. 이 원칙은 “화학”에서 만큼은 여전히 참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화학과 그 한계

    과학자들이 갖게 된 결정적인 오류는 살아있는 생물체 안에서 발생하는 반작용도 오직 ‘화학적 반작용’일 뿐이며, 따라서 화학은 생명 현상도 설명할 수 있고 또 설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는 데에 있다. 사실 이런 생각 때문에 과학 분야에는 “생화학[Biochemistry]”이라는 분야도 존재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생명 현상들이 ‘화학적 반작용’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오직 ‘화학적 반작용’만이 존재하고, 관찰되는 모든 것들도 ‘화학적 반작용’이라는 용어 아래에서만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는 틀린 가정인 것이다. 이 책을 쓰는 목적 가운데 한 가지는 물질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특성은 오늘날의 화학으로도 핵 물리학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특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달리 말하자면, 화학의 법칙들이 여기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많은 화학자들과 생화학자들이 갖는 오류는, ‘입증되지 않은 확신’을 갖고서, 화학의 법칙들을, 어떤 비용을 들여서라도, 화학이 항상 적용되지는 않는 분야에 있어서도, 억지로 적용시키려는 욕심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종국적인 단계에 가서도 “화학”이라는 결과가 나타났으면 참 좋겠지만, 오직 이해할 수 없는 변환 현상의 결과만이 남을 뿐인 것이다.

    이처럼 심각한 오류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하나의 조직체(생명체)에게 최초에 공급한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 다른 한 쪽 끝에서 나와야만 한다는 믿음을 갖게 만들었다. 달리 말하자면, 과학자들은 대변과 차변이 균형을 이루는 대차대조표를 갖게 되길 기대했고, 그러한 기대감 속에 어떤 조직체(생명체)가 여유분을 더 체내에 간직한다거나, 혹은 갖고 있던 여유분들을 더 써버렸다는 믿음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대차대조표는 한 번도 균형을 이룬 적이 없었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실험 도중에 어떤 것들이 달아나 버렸다고 말하기도 한다.--그러나 불행히도 이건 무능력의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생화학 분야의 전문가들은 화학적으로 순수한 반작용이 왜 오직 실험실 안에서만 실현되는 지에 대해 설명해 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왜 질소 원자 하나와 산소 원자 하나는 아크 방전[electric arc](전극의 전위차로 인해 전극 사이의 기체에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절연 파괴 상태--역주)을 이루는 온도에서만(또는 대단히 높은 온도와 압력 상태 아래에서만) 결합될 수 있는 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조직체(생명체)는 같은 현상을 실내 온도에서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많은 유사한 사례들이 인용될 수 있는데, 살아있는 조직체(생명체)는 실험실에서라면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만 실현될 수 있는 현상들을, 얼마든지 손쉽게 만들어 내고 있다. 단백질은 37℃ 밖에 안 되는 위 안에서 약산성 매개물을 통해 가수분해되는데, 이 똑같은 현상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내려면, 120℃의 온도와 고농축 산성 매개물이 필요한 것이다.

    일종의 생물학적 촉매제라고 할 수 있는 효소[enzymes]가 의심할 나위도 없이 이러한 저온에서의 체내 반작용[in vivo reaction]이 가능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러나 그 정확한 메커니즘은 알려져 있지 않다.(우리가 화학에서 익숙하게 알고 있는 촉매 현상과는 아주 많이 다른 것이다.--저자)

    하지만, 라부아지에의 법칙은 여기서는 아직 기각되지 않았으며, 다른 여타의 화학 법칙들도 마찬가지로 아직은 유효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기각된 것이 있다면, 너무나 많은 화학자들이 화학을 모든 분야에 다 적용시키려 드는 태도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 “우리가 종종 제대로 검토해 보지도 않고 되풀이하곤 하는, ‘깊숙이 뿌리박힌 편견’을 제거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하톤: 내 생각에 이 문장은 아인슈타인이 쓴 모든 글들 가운데 내가 절대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동의하는 유일한 문장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생물학적 형질 변환의 메커니즘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러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또 이것이 실제로 잘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그렇지만, 그 메커니즘은, 미래의 언젠가 과학이 준비되었을 때, 결국엔 규명될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물리학에 있어서도 대 전환의 언저리에 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은 물리학자들이 그간 스스로를 모래성을 쌓는 길로만 인도해 왔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주제를 벗어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의도는 독자들에게 아인슈타인, 드 브로글리와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남긴 가르침들을 상기시켜 주려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우리가 겸손하게 머물기를 권했고, 우리의 지식이 절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또 우리의 가르침들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길 원했다. 심지어 우리가 “정확한 과학”이라고 이름붙인 물리학에 있어서도, 사실상 ‘일시적인 가설들[transient hypotheses]’만이 존재할 뿐인 것이다. 생물학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런 것이, 생물학에는 엄청난 복잡성이 존재하며, 이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우리는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과를 관찰하게 되지만,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설명하려 들 때면, 그 결과에 대해 늘 얼마간의 주관성을 갖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부디 이 책이 객관적인 설명으로 다가가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화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단순히 원자 주변의 전자들간의 교환이 아닌, 그보다 심오한 차원의 현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도 있게 되길 희망한다.

    화학의 한계는 연구자들이 특정 현상들에 대해 어떠한 실체적인 설명도 제시해 보이지 못하는 몇 가지 전형적인 사례들을 통해 드러내 보여질 수 있다. 그런 사례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원소의 생물학적 형질 변환’과 같은 현상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독자들 가운데 라부아지에의 법칙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가 그 신념이 흔들리게 된 자가 있다면, 그 독자는 자신에게 주어졌던 과거의 많은 다른 설명들도, 사실상 근거가 없고, 빈약한 것이며, 오직 “원소의 불변성[the invariability of elements]”이라는 기존 도그마를 합리화시키려는 목적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아마 더욱 놀라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특정의 실험을 통해, 어떤 한 가지 식물 안에, 이전에 포함하고 있던 원소와는 다른 원소가 풍부해졌다고 한다면, “명백히” 그 원소는 흙으로부터 온 것이거나 혹은 그 실험에 사용된 단지로부터 온 것이라는 설명이 주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축적된”, “선택적으로 취해진” 등등의 용어들이 사용되었다. 그리고는 아무도 더 이상의 의문은 갖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용어로 실험 결과를 설명해 온 과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문제가 되는 식물 배양에 있어서, 실험 전과 실험 후 사이의 변화된 원소의 총량은 측정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실험에 사용된 단지나 흙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식물에 더해진 원소가 단지에서 유래한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여전히 단지 안에 그러한 원소가 남아 있을 수도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단지도 반드시 검토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주”의 출처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과연 이 원소는 어디서 온 것인가? 왜 온 것인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온 것인가? 불투과성 흙[impermeable soil]을 통해서 온 것인가? [하톤: 나는 여기서 갑자기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불투과성”이라는 말은 그 표현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렇게 절대적이지는 않은 것입니다. 당신은 우주 파동[cosmic waves](‘우주 파동과 생명의 기원’ 참조--역주)이나, 또는 그런 종류의 것으로서, 고주파수의 소리 파동이나 빛 파동을 막거나 봉쇄할 수 없습니다. 한편, 흙에 비료와 같은 것을 더해 주면 성장 매개 역할을 하듯이, 또 다른 필수적 성장 매개물로서, 예를 들면 가이안드리아나[Gaiandriana](‘빛에 대하여..’ 참조--역주)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특별한 매개체는 전체 생명체에게 ‘드리아 세포들[Dria cells]’을 건네 주게 됩니다. 이것은 진동수를 올려 주고, 여러 가지 종류의 해를 끼치는 병원균들을 내쫓는 “치료”의 특성도 갖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생명체의 세포들은 우선적으로 성장에 필요한 특정 원소들을 보유하고 있어야만 하고, 그런 다음에 우주 에너지 파동[cosmic energy waves]에 의해 그 생명체는 완전한 성장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육체가 완벽한 면역 체계를 갖게 되는 데에는 진동수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를 유도하는 데에 필요한 물질들이 구비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사실 “이 자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설명해 나아갈 때, 서툰 조작과 작업으로 자신들이 ‘드리아스[DRIAS](‘가이안드리아나’와 같은 종류의 물질들--역주)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생겨날 수도 있고, 그 때, 불완전한 물질들이 당신들에게 전달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이안드리아나가 성장과 변화의 매개체로서 역할하여, 완벽한 형질 변환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체내에 특정 원소들이 우선적으로 들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사고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만 하며, 어떤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는 보다 신중해야만 하는 것이다. ‘원자[Atoms]’라는 책에서, 자신의 많은 동료 과학자들에 의해 주어지는 단순화된 가르침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던, F. 다고녜[F. Dagognet](1924-2015, 프랑스 철학자, 의사, 과학자--역주)의 글을 인용해 보기로 하자. 그의 주장에 대한 예를 한 가지만 들어 보자면, 그는 호흡 작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 “이산화탄소[CO2]는 산소가 들어오기 이전에 배출된다. ;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루빈 산[pyruvic acid]’ 또는 ‘아세틸 조효소 A[acetyl-coenzyme A]’(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물질들로 그 과정에는 산소가 필요--역주)는 산소의 도움 없이 혹은 최소한 산소의 직접적인 영향 없이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호흡을 연소작용이라고 믿었던 라부아지에[Lavoisier]나 최초의 생화학자들과는 이미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물리학자였던 브리우엥[Brillouin]은 죽은 물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부터 도출된 물리-화학의 모든 법칙들이 살아있는 대상에 있어서도 반드시 적용된다고는 볼 수 없다는 점을 기꺼이 인정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물질의 쇠퇴를 야기하는 열역학의 법칙 한 가지를 인용했다. 생명체를 유지하는 엔트로피(“역 엔트로피”!)는 정반대되는 힘인 것이다. 물리학자들에 의해 주어지는 설명은--그들은 카르노[Carnot]의 법칙(열역학의 법칙--역주)은 절대적인 법칙으로, 항상 참이며, “살아있는 대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당황스러울 정도의 순진함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은 실험으로 입증된 사실에 대해서는 논박하지 않아, 살아있는 생명체에 에너지가 공급된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주위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카르노-클라우지우스 제 2법칙(열역학 제 2법칙)[the 2nd law of Carnot-Clausius](열은 고온의 물체에서 저온의 물체 쪽으로 흐르지 반대로 흐르지 않으며, 일정한 온도의 물체로부터 열을 빼앗아 이것을 모두 일로 바꾸는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법칙, 고립된 계의 비가역적인 변화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법칙--역주)을 주장하는 것인가? 이것은 오직 외부와의 어떠한 상호작용도 없는 닫힌 계에서만 유효하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것은 정 엔테로피[positive entropy]든 “역” 엔트로피[“negative” entropy]든, 엔트로피와는 무관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J. 뤼에프[J. Rueff]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 클라우지우스는 자신의 원칙을 정립함에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대담한 일반화를 이끌어 냈다. 왜냐하면 이 원칙은 오직 서로서로 독립된 원소들로 구성된 격리된 시스템 안에서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그 자체로 엔트로피의 법칙과는 완전히 반대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왜인가? 그 비밀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소한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현상들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 혹은 생물학적 형질 변환과 같은 현상들을, 화학을 통해서건, 물리학을 통해서건, 알아내고 해석해 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역할인 것이다.

    물리학

    고전 물리학의 모든 법칙들은 죽어 있는 물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들로부터 정립되어 온 것이다. 분기의 원칙(또는 확산의 원칙--역주)[the principle of divergence]--탄성적 파동[elastic wvaes], 소리 파동, 빛 파동 또는 여타 물질들의 파동 : 모든 불활성 물체의 물리적 파동--은 생물학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와탄[Watan], 아담스[Adams], 맥레넌[MacLennan], 펜로즈[Penrose], 그리고 퍼시발[Percival]과 같은 물리학자들은 점진적인 엔트로피[progressing entropy](에너지의 저하, 또는 보다 정확하게는, 분자 무질서의 증가 정도--저자)와 파동의 지연[the retardation of the waves] 현상간의 연결고리를 입증해 왔다. 코스타 드 보르갸르[Costa de Beauregard]와 같은 과학자와 함께 우리는 물리학에 있어서 단일성의 원리를 논해 볼 수도 있다. 그러한 원리는 죽어 있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을 아우르는 법칙으로, 마치 앞면과 뒷면처럼, 서로 분리할 수 없으며, 보완적인 원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극동 지역의 철학의 중심적인 개념을 인정하게 되는데, 그건 음[Yin]과 양[Yang]의 원리, 바로 두 가지 면을 갖는 단일의 원리[a unique principle of two faces]인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소식에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 생물학적 형질 변환은 그들에게 있어서도 이해가 되는 현상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들은 이러한 정보를 기다려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처음에는 이 이론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들은 선험적으로 핵 물리학[nuclear physics]--핵 물리학 역시 죽어 있는 물체에 대한 관찰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이다.--이라는 학문에 입각해서 생물학적 형질 변환 현상을 부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이를 통해 그들은 물리학의 모든 측면에 있어서 존재하는 이원성[duality]의 원리(음양의 원리)에 대한 자신들의 무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들은 불활성 물질(죽어 있는 물질)을 기반으로 하는 화학이나 물리학의 원칙들이 살아있는 생명체에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센트-죄르지[Szent-Gyorgyi](1893-1986, 헝가리 생화학자, 193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역주)는 이 점에 있어서 지난 날의 물리학자들의 입장에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 “이는 물리학자들과 생물학자들간의 관계를 얼마간 미묘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만약 내가 물리학자들의 입장을 항상 수용했더라면, 나는 아마 이런 방식의 연구는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러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분자 생화학은 살아있는 생명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충분치 않으며, 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한 단계 더 아래로 내려가서, 원자를 연구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알려지지 않은 현상들은 아-원자 수준[sub-atomic level]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는 이를 달리 표현해서 이렇게 언급하기도 했다. : “물리학은 일어날 것 같은 현상에 대한 학문[the science of probabilities]이다... 하지만 생물학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현상에 대한 학문[the science of the improbable]인 것이다.” (센트-죄르지[Szent-Gyorgyi], 아-분자 생물학 개론[Introduction to a Sub-molecular Biology], 아카데믹 출판사[Acad, Press], 1960년, 런던).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현상들은 반드시 일어난다. 왜냐하면 양자 역학[quantum mechanics]은 통계학의 기본 원칙들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물학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은 좀 다르다. 전자[electron]는 단 한 번의 점프를 하지만, 아주 확실한 점프를 한다. : 전자는 타겟을 놓치는 법이 없다. (이것은 아주 소량의 에너지만이 필요할 뿐이라는 설명도 된다.) 왜인가? 이에 대해 센트-죄르지가 내놓은 답은 다음과 같다. : “심지어 양자 역학이라 할지라도 생물학의 대부분의 현상들을 분석하는데 적용될 수 있으려면, 반드시 개선이 이루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허공에 떠 있는 중이다!(일어날 것 같지 않은 현상에 대한 가능성을 빗댄 표현--역주)

    그렇지만, 우리는 다음을 인정해야만 하는데, 센트-죄르지, 그리고 센트-죄르지를 뒤따라 같은 행로를 걸어온 여타의 과학자들은 지나치게 원자에 대한 연구에만 매몰되었다. 그들은 오로지 (원자) 바깥 층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에만 신경을 썼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오늘날 ‘물리-화학[psysio-chemistry]’이라고 분류되는 카테고리의 연구자들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말하자면, (원자) 주변 층의 전자 움직임에 관한 물리학적 연구인 것이다. (전자들은 “흥분”되었을 때, 자신들의 정상적인 궤도가 아닌 다른 곳으로 점프하여 이동하게 된다.)

    그렇지만, 전자의 움직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물학적 현상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말하자면, 화학으로도, 물리-화학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현상들. 이는 바로 생물학과 이들 과학들간의 종종 발생하는 불일치성 때문인 것이다.

    L. 드 브로글리[L. de Broglie]는 물질과 빛 사이의 불일치성을 인정하고 있다. [하톤: 독자들이여, 당신들 가운데 빛과 “물질”간의 상관 관계라는 주제--이에 대해 우리는 오늘날 금서로 지정된 피닉스 저널들에서 이미 다 설명했습니다.(피닉스 저널 제 30권-37권, 플레이아데스 커넥션 시리즈 참조--역주)--에 대한 우리의 다음 서술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자가 있다면, 이 사람의 저서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의 저서는 의 비밀이 담긴 “과학”과 그 영적 영역에 관한 측면들을 보다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훌륭하고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을 것이라면, 우리 곁에 좀 더 머물러 있기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빛과 물질의 관계뿐만 아니라, 빛과 “영혼” 에너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는 “물리학에 있어서 새로운 개념화가 ‘객관적인 과학이 취해 온 고전적인 방식이 중요한 학문적 질서를 정립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우리에게 설명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궁금해 했다. 현대 물리학은 20세기 후반기에 발전해 온 것처럼, 그 뿌리를 양자 역학에 두고 있다. 양자 역학은 보어[Bohr]와 플랑크[Planck]가 기틀을 마련하고, 20세기 전반기에 L. 드 브로글리[L. de Broglie]가 구체화시켰으며, 1960년대 가보어[Babor]와 브리우엥[Brillouin]에 의해 꽃을 피웠다. 그런 다음 요르덴[Jorden], 오지에[Augier], 다빌리에[Davilliers] 등은, 다른 방식의 관찰을 통해, 불활성 물질에 관한 미시 물리학적 원칙들이 살아있는 생명체, 즉 ‘그 구성 부분들이 상호의존적인 역할을 하는 생명체’에 대해서는 항상 유효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자신들의 믿음을 갖게 되었다. 생명체의 구성 부분들은 모두 상호 조정적, 유기적인 것으로, 서로간의 명백한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또 그렇지 않다면, 그건 생명체가 아닌 것이다. 이 모든 설명들은 아인슈타인[Einstein],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슈뢰딩거[Schrodinger], 그리고 디렉[Dirac]이 정립한 개념들과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하톤: 여기서 당신들은 신 세계 질서[New World Order]와 연계되고 또 신 세계 질서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잘못된 정보들로 채워진 사회를 형성하는데 기여해 온, 몇몇 가장 위대한 ‘잘못된 정보의 거인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실을 알도록 허락되는 자들도 하자르계 시오니스트들의 세계 지배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그들의 연구가 잘 부합될 수 있을 때에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명백한 진실 전달자들은 불태워지고, 그들의 연구는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 소중한 자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을 때, 그들은 조롱당하기 마련이며, 그들이 그간 받아 왔던 ‘건강하고 튼튼한 문명’으로 향하는 “록펠러”의 신임장들은 박탈되고 마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러한 방식들 속에서, 완전하고도 순수한 ‘거짓의 국민들[PEOPLE OF THE LIE]’이 되어왔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결코 맞을 수가 없습니다.--결코--그런데 더 나쁜 것이 있다면, 아인슈타인 자신도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는 걸 이미 알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들도 기억하겠지만, 그는 원자 폭탄을 만드는 일을 돕는다고 너무 바빴던 것입니다.] 오늘날, 살아있는 생명체 안에서의 분자 반응은, 전자들의 궤도 상의 위치 변경에 따라 통제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인정되고 있다. (말하자면, 전자들이 갖는 에너지 값의 변화에 따라) ; 요컨대, 화학 반응은 아-원자 수준[sub-atomic level]에서 먼저 준비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연구자들은 원자에 관해서 보다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전자가 “움직이기 시작하는[get started]” 이유나 방법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원자 한 복판에는 다른 현상들이 개입되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이 반드시 인정해야만 할 것이 있다면, 아-원자 수준에서는 질량이나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항상 지켜지는 것은 아니며, 이는 심지어 무생물을 대상으로 한 물리학에서 조차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보어[Bohr]는 우리가 선험적으로 (질량 또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원자 수준에서도 유효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예전에 인정했다. 사클레 핵 연구소[Centre d’Etudes Nucléaires of Saclay] 소장인 J. 드비스[J. Debiesse]는 원자 시스템에서 질량이나 에너지가 갑자기 증가할 때, (에너지는 질량의 감소 때문에 증가하지는 않으며, 또한 질량의 증가 때문에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저자) 파이 중간자[pi mesons](중간자는 원자핵을 구성하는 핵자들(양성자와 중성자들)을 결합하고 있는 힘인 핵력을 매개하는 입자로, 질량이 전자와 양성자의 중간에 해당되어 중간자라는 명칭이 붙여졌으며, 파이 중간자, 케이 중간자, 에타 중간자 등이 존재--역주)가 방출된다고 언급했다. 드비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 “(핵자들 사이의 파이 중간자들의) 교환 속도는 10-23초인데, 이 상황에서 질량 보존의 법칙과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와 관련하여, R. 퓌롱[R. Fur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의 빠른 발전은 정설과 (이에 대한) 순응주의를 배제해 나가고 있다.”(‘과학 일반지[Revue Générale des Sciences]’에서 인용, 파리[Paris])

    이 시대의 가장 저명한 학자들이 보여준 이러한 겸양의 교훈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어떤 미리 설정해둔 목적 없이, 이어지는 연구를 수용할만한 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E=MC2라는 아인슈타인의 법칙도 사전에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심지어 아인슈타인 자신도 이 “특수 상대성[special relativity]” 법칙의 한계를 적시했다시피, 이것이 ‘특수’한 이유는, 이 법칙은 가속되지 않고, 순환 운동을 하지 않는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첫 번째 가정은 이 법칙이 오직 단일의 직선 운동에서만 유효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저자) 아인슈타인이 명시한 또 다른 한계는 이 법칙은 오직 불변의 빛의 속도 “C”라는 두 번째 가정을 받아들일 때에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똑같은 가정이 자신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 달리 말하자면, 이것은 강력한 중력 효과 아래에서 빛이 휘어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불변의 속도는 직선 운동으로 대표된다. 움직이는 물체에 양성적인 에너지가 주어지면, 선형 운동은 위로 휘게 된다. 음성적인 에너지 X가 주어질 경우, 속도는 줄어들고, 선형 운동은 아래 방향으로 커브를 그리게 된다. 중력이 점점 더 가중될 때, 빛은 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빛의 속도는 더 이상 불변이 아니게 된다.) 예를 들어, 하나의 별에서 나오는 빛 광선이 태양의 가장자리를 스치듯 지나가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빛이 직선으로 온다는 가정 아래 계산했을 때 보다, 별은 더 빨리 보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식이 있는 동안 관찰되어 왔다.) 이것은 빛이 태양의 채층[chromosphere](태양 광구면 주위의 백열 가스층--역주)을 통과할 때 (또는 단지 태양의 “왕관” 부분을 통과할 때), 달리 말하자면, 빛이 “진공”의 공간 보다 고밀도의 지역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회절[diffraction] 현상의 결과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생긴다는 것은 빛의 속도가 변화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빛이 통과해 지나가는 매질의 밀도에 따라 빛의 속도는 줄어들거나 증가하는 것이다. 이 같은 빛의 휘어짐 때문에 우리는 태양 채층의 굴절률을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계속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실제로 적용해 보았을 때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갖는 “취약성”인 것이다. 하지만, 중력이 미치는 일반적인 영향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을 때, 생물학에 있어서 그러한 모든 에너지들이 다 그대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에는 아마도 여러 페이지에 걸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라부아지에[Lavoisier]가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 완벽하게 옳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의심의 여지도 없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화학은 원자들의 결합에 관한 학문인 것이다. : 화학은, 함께 모여서 분자를 형성하게 되는, 원자 주변의 전자들 사이의 다양하고 특별한 방식의 결합을 다루는 학문이다.

    [하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아인슈타인의 법칙들이 사실상 “법칙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아인슈타인 자신이 그것은 법칙들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아인슈타인이 자신을 통제하던 자들에 의해 통제받던 인물이자, 그들의 수하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자, 우선적으로 그가 그처럼 위대한 과학자였다면, 협박이나 뇌물에 의한 통상적인 성적 “매력”에 이끌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친구들이여, 아인슈타인이라는 ‘과학자’는 그러한 유혹에 취약한 인물이었으며, “모나크[MONARCH]”로 알려져 있는 마인드 컨트롤 프로그램에 따라 준비되고, 무대 위에 올려진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와 실제로 관계를 가졌던 것입니다. “어떤” 아인슈타인을 말하는 것이냐구요? 성적 매력이 넘치던 버터플라이에게 선물 공세를 펼치느라 당신들을 팔아 넘긴 그 아인슈타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악의 제국이 펼쳐 보였던 ‘연출’이었던 것입니다.]

    핵 물리학에 있어서 상징들

    우리가 원자 핵을 다룰 때, 화학에서 원자를 표시할 때 쓰이는 상징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종종 입자들의 총 수(즉, 원자 핵 또는 핵을 구성하는 입자들인, 양성자와 중성자들의 수--저자)를 표시해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 상의 원소들은 저마다 다른 원자들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 동일한 원소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들은 똑같은 수의 양성자들과 전자들을 가지는데, 왜냐하면 보통의 원소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핵 속의 중성자 수는 저마다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성자는 그 이름이 보여주듯이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하지만, 중성자는 양성자와 거의 동일한 질량을 갖는 것이다.

    원자들의 양성자의 수는 동일하지만, 중성자의 수가 다를 때, “동위원소[isotopes]”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들은 다음과 같이 표기된다. : 24Mg, 25Mg, 26Mg라고 쓸 때(이들은 모두 안정적인(방사성을 띠지 않는) 마그네슘 동위원소들이다.--저자),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들의 원자핵에는 24, 25, 26개의 핵자들[nucleons]이 있다는 뜻이다. 모두가 양성자는 12개만 갖고 있기 때문에, 중성자의 개수는 뺄셈을 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리는 붕소에 대해서, 10B, 11B, 탄소에 대해서는 12C와 13C, 규소에 대해서는 28Si, 29Si, 30Si, 기타 원소들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표시할 수 있다.

    이러한 표기 방식은 종종 발견된다. : 예를 들어, 168O, 178O, 188O는 산소의 세가지 안정적인 동위원소들을 나타낸다. 여기서 작은 숫자 8이 의미하는 것은 16-8=8, 즉 산소 동위원소 16에는 중성자가 8개 들어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7-8=9, 산소 동위원소 17에는 9개의 중성자가 들어 있으며, 18-8-10, 산소 동위원소 18에는 10개의 중성자가 들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생물학적 형질 변환 현상은 원자 핵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가장 중요하면서도 많이 일어나는 형질 변환 현상들은 대부분 첫 20가지 원소들에서부터 그 다음 10가지 정도 범위의 원소들에서 주로 발견된다.(전체 92가지 원소들 가운데서) [하톤: 사실 우리는 “빛의 비밀[Secrets of Light]”을 다룬 우리의 글에서 이미 보았다시피, 이보다 훨씬 많은 원소들이 존재합니다.(‘물질의 구성’ 참조--역주)] 말하자면, 수소가 맨 처음 나오는데, 수소는 오직 하나의 양성자와 하나의 전자만을 가지고 있다. 그 다음 두 개의 양성자를 가진 헬륨[He, Helium], 그 다음이 3개의 양성자를 가진 리튬[Li, Lithium], 기타 등등의 순서대로이다. [하톤: 자, 바로 여기 이 대목에서, 목록에 나와 있는 92가지 원소들보다 더 많은 원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대단히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단순화된 표기 방식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이론적 설명을 제시하기 보다는 화학 반응이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사실들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현실은 너무나 복잡해서 현재 우리가 가진 과학적 지식만으로 항상 쉽게 접근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전기 분해[electrolysis](증발 효과를 야기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저자)가 발생하는 동안, 수소와 산소가 전극 부분에서 왜 가스 형태로 나타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물 속에 이들이 이러한 형태로 존재한다고는 해도, 왜 이렇게 되는 것인가?

    촉매 현상이 발생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하며, 심지어 화학 반응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다.(예를 들어, 즉각적으로 생겨나는 에너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다.--저자) 아무도 깨어있는 상태에서 수면 상태로 넘어가는 이완 과정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스피린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에 대해서도, 기타 등등의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이 책에서 이론에 대한 설명을 피하려는 이유는 여기 있다. 여기서는 오직 결과만이 다루어질 것이며, 과거에 관찰된 현상들, 여태까지 어둠 속에 묻혀 있던 현상들을 함께 다룰 것이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많은 답변들이 주어질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연구의 결론을 입증해 보여줄 수 있는 체계적인 실험들이 행해져 왔고, 이 책에서 인용될 것이다. 광물(무생물)을 통해 화학을 연구해 온 과학자들의 주장을 회피하기 위해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간략히 제시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몇몇 화학자들과 원자 물리학자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 형질 변환은 새로운 학문 분야로 이 분야에만 특화된 표현 방식들이 아직은 정립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과거의” 상징과 표현 방식들을 사용하지 않고는 내용을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제시되는 학문을 연구하는 일은, 과학의 많은 개별 분야들을 다 다루지 않고서는 접근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각각의 개별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러한 가정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본다. 때때로 정확한 용어나 딱 맞는 표현들이 사용되지 못하지만, 이는 여기서 다루는 학문 분야가 일반 대중에게는 아직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거나, 또는 특이한 용어를 사용해 봐야 그런 설명들은 일반 대중의 접근성을 현저히 떨어뜨리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심지어 전문가 집단에게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인데, 왜냐하면 여기서 다루어지는 방대한 종합적 연구는, 이 연구의 본질적인 부분이 특정의 어느 한 가지 학문 영역과는 동떨어진 바깥에 놓여 있는 것임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바람이 있다면, 이 연구의 어떠한 측면도 단순화를 위해 왜곡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 책을 위한 상징들

    우리는 수학이나 화학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 (등호)와 구분이 되는 :=: 라는 상징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데, 이는 두 개의 원자가(價)[Valence](화합물을 구성하는 원자가 다른 원자와 이루는 화학결합의 수--역주)를 의미하며, 화학 반응에서 흔히 쓰이는 → (화살표)와도 구분되는 것으로, 역 방향의 반응도 일어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약 한 가지 방향으로만 반응이 일어날 경우에 (화학에서처럼) 우리는 화살표를 사용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할 것이다. : 2Na + O → Na2O.

    이러한 방식의 반응은 생물학적 형질 변환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화학에 기반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고, 그에 따른 혼동을 막기 위함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도 표기하게 된다. : Na + O := K. 이것은 반응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어남을 가리킨다. 왼쪽에 있는 원자들과 오른쪽에 있는 복합 분자 간에 균형을 이룸으로써 반응이 끝나게 되는 화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역방향으로의 반응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묘사하는 반응에 있어서 :=: 를 사용할 때, 반응은 역으로도 발생할 수 있지만, 같은 동인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효소가 필요하며, 어떤 효소들은 오직 동물들과 식물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반응은 뺄셈 현상도 일으킬 수 있다. : 초석[saltpeter](벽에 있는 석회에서 발견된다.--저자)에 들어 있는 질산칼륨[the potassium nitrate]은 칼슘에서 생성되는 것인데, 박테리아가 칼슘 원자 한 복판에서 수소를 제거하기 때문에 만들어 지는 것이다. 칼슘 – 수소 = 칼륨, 또는 40Ca – 1H = 39K이 된다.

    칼륨은 두 가지 기원을 가질 수 있다. : 나트륨 더하기 산소, 또는 칼슘 빼기 수소. 생물학적 형질 변환에서 이제 등장하려는 법칙 한 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원자핵 수준의 반응에 있어서는 항상 수소와 산소가 수반된다. 일반 생물학에 있어서는, 산소와 함께 하는 (산화) 또는 수소와 함께 하는 (환원) 화학 반응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원자핵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들간의 단순한 “고리 걸기[hookings]”보다 더 깊은 차원의 현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설명을 단순화하기 위하여, 핵자들[nucleons]의 수를 종종 표기할 (상징 기호의 왼쪽 상단 부분에) 것인데, 이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은 어쩌면 도움이 될 것이다. : 우리는 독자들이 각각의 원소들이 몇 개의 양성자 수를 갖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다.--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를 보라. 양성자 수는 개별 원소를 식별하기에는 충분한 정보가 된다. 예를 들어 Na라는 상징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이것이 나트륨임을 안다. 그런데 이것이 나트륨임을 표기하기 위해서 다시 양성자 수를 추가로 써주는 일은 불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실용적인 이유로, 양성자 수를 기록할 필요도 있다. 만약 누군가가 11Na + 8O :=: 19K라고 썼을 때, 그는 양성자 수(왼쪽 아래에 표기)를 기록해 둔 셈이며, 자동적으로 칼륨의 원자 번호도 함께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 방식이 다른 원소들에게도 적용된다.

    완전하게 다 표기를 하면 다음과 같다. : 2311Na + 168O :=: 3919K. 왼쪽의 숫자들은 맨 오른쪽의 숫자들을 만든다. 그런데, 이런 식의 표기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면, 왼쪽 상단의 숫자는 원자의 질량을 가리키는 숫자가 아니라, 바로 핵자들의 수[the number of nucleons]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Part 2 인용의 끝]

    하톤 : 오늘은 이 정도로 충분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제 2장, 기록 #1 하톤
    1995년 8월 21일 월요일, 7:32 A.M. 9년 005일

    ......

    생물학적 형질 변환[Biological Transmutations], Part 3
    by 루이 C. 케브랑[Louis C. Kervran]

    영어 번역 : 미셸 아베세라[Michel Abehsera]

    [Part 3의 인용]

    제 1장
    특이한 관찰들 : 닭에 관한 관찰

    [하톤: 여기서 “특이한[Aberrant]”이라는 단어는 : 일탈[deviation] 또는 왜곡[distortion]을 의미합니다.]

    내 부모님은 닭을 몇 마리 기르셨는데, 모두 마당 한 켠의 닭장 안에 있었다. 우리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 살았고,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일하셨다. 이 지역은 점판암과 화강암은 풍부했지만, 석회암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이었다. 닭들에게 석회암은 결코 공급된 적이 없었지만, 이들은 산란 시기가 되면 매일 같이 석회질의 껍질로 된 달걀들을 낳았다. 그 당시 나는 이 석회질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마당에 닭들을 풀어 두었을 때, 이들이 마당 곳곳에 흩어져 있던 운모[mica] 조각들을 끝없이 쪼아대는 것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운모는 석영이나 장석과 함께 화강암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였으며, 모두 규소로 된 것들이었다. 그 무렵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는, 이게 내가 알 수 있는 사항의 전부였다.) 나는 닭들이 운모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비온 뒤 해가 비칠 때면 더 잘 알아 볼 수 있었다. 비에 씻겨 나간 자리에, 수 백 개의 운모 조각들은 마치 작은 거울처럼 비춰 보였기 때문이었다. 닭이 부리로 쪼아댄 흔적이 있는 운모 조각들은 쉽게 발견될 수 있었다.

    닭들이 모래가 아닌 운모를 쪼아대는 이유를 아무도 내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닭을 잡을 때마다 옆에서 관찰해 보면, 닭의 내장 안에는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들어 있을 뿐이지, 결코 운모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럼 이 운모들을 어디로 간 것인가? 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던가? 닭들이 운모 조각들을 삼킨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문제는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고, 내 잠재의식 속에 항상 일종의 미스터리처럼 남아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보다 “분명하고 논리적인” 설명을 듣고 싶었고, 모든 닭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백열 난로에 관한 관찰

    내가 살던 동네의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대개 주철로 된 구형 난로가 난방 시설로 사용되었다. 통풍 조절을 위한 조절용 키가 파이프에 달려 있었다.--혹는 우리는 트레이를 밀고 당겨서 열을 조정하기도 했다. 오래된 떡갈나무가 주로 연료로 사용되었다. 나무에 불을 붙였을 때, 난로는 아주 빨리 “코고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금새 빨개졌다. 그럴 때면 모두가 두통을 호소했다. 이를 때를 대비해서, 난로가 빨갛게 변하기 시작할 때면, 조절용 키로 공기를 차단하고, 트레이를 미는 역할을 하던 “당번”이 늘 정해져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두통이 생기는 건, 난로가 빨갛고 뜨거운 지점에 도달했을 때, 나오는 일산화탄소 때문이라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바에 따르자면, 느린 연소시에는 일산화탄소(CO)가 나오는 반면, 빠른 연소시에는 이산화탄소(CO2)가 생성되고, 이건 훨씬 덜 위험한 것이었다. 우리는 난로가 천천히 데워질 때, 교실에서 잠들지 말라는 충고를 받기도 했었다.

    나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로가 빨갛게 변했다는 건, 정확히 말하자면, 통풍 시스템이 원활해서, 난로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며, 이 때 일산화탄소는 생겨날 수 없었다. 내가 나중에 선생님께 질문을 해서 들었던 모든 대답들은 나를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했으며, 이 미스터리 역시 내 잠재의식 속에 마찬가지로 남아 있었다. [하톤: 당신들은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는 선생님이 미치는 영향을 알아 보겠습니까? 아이들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억지로라도 믿도록 강요됩니다. 하지만, 가르침이 틀렸을 때, 아이들은 어쩌면 영원히 진실을 알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잘못된 정보 위에 또 다른 잘못된 정보가 쌓인 채, 어쩌면 모든 것에 있어서도 제대로 아는 바가 없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무지한 생각 위에 또 다른 무지한 생각이 더해져, 사실상 어떠한 진실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까지 내몰릴 수 있으며, 이 때 한 무리의 무지한 사람들은 그들이 겪는 현실 자체를 우스꽝스러운 광대극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굳이 과학적인 대답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 빨갛게 달아 오른 주철은 투과성을 갖게 되며, 이 때 난로 안의 일산화탄소는 통풍 파이프를 통해 빠져 나가는 대신에, 난로 밖으로 새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빠르고 완전한 연소시에는 일산화탄소가 생길 수 없다고 반박했을 때, 그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이산화탄소는 빨갛게 달아오른 주철과 만났을 때 탄소가 보다 풍부해지고, 그 때, 일산화탄소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설명은 주철은 궁극적으로 그 탄소 성분을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주철 난로로부터 수 백 그램의 석탄(주철 1킬로그램당 약 40그램의 석탄이 들어 있다.)이 빠져 나가 강철 난로가 만들어지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었다! 또 이 같은 수 백 그램의 탄소는 신속히 연소되기 마련이다! 또한 비록 주철이 뜨거워졌을 때, 투과성을 갖는다고 해도, 나는 이산화탄소와의 접촉으로 일산화탄소가 만들어진다는 것 역시 믿을 수 없었다. 나아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게 있다면, 우리는 지금 비현실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있는 셈인데, 왜냐하면 난로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뜨거워졌을 때 난로 안 쪽은 압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비록 주철이 투과성을 갖더라도, 가스가 새어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외풍이 심한 벽으로부터 아마 “찬 공기”가 새어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발생한 일은 무엇인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면, 밀폐된 교실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난로는 아이들에게 때때로 치명적인 일산화탄소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여전히 아이였을 때, 의문은 늘 반복적으로 제기되었지만 답을 구할 수는 없었는데, 모든 실질적인 설명은 내가 50세가 넘었을 때, 간접적인 경위를 통해 얻게 되었다. 1955년, 나는 어떤 치명적인 사고를 겪었는데, 이 때 비로소 나는 “물질의 불변성”이라는 이론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많은 분석가들이, 희생자들은 일산화탄소를 흡입했을 리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이 같은 공식적인 설명들을 여전히 신뢰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던 건 사실이었다. 나는 내 동료 연구자들(그 중 11명은 프랑스 최고의 학교에서 수학한 공학자들이었다.)과 함께 오랜 기간에 걸친 실험들을 하다가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건너고 말았다. 우리는 많은 의학 박사들의 협력 아래(혈액 분석과 관련하여), 실험실의 안전을 확보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뭐라고 설명을 하든, 실제 발생한 결과에만 초점을 맞췄을 때, 나는 죽음의 진짜 원인에 대한 나의 가설을 확인하거나 무효화하기 위해서라도, ‘물질의 불변성’이라는 전제만큼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1959년 봄이 되어서, 나는 마침내 참된 설명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나의 팀을 이룬 연구자들의 공동 노력의 결과로 ‘대차대조표’가 만들어졌다. 사하라 담당 장관(프랑스 역외 영토 담당 장관--역주)이자, 인류학자이기도 했던 자크 수스텔[Jacques Soustelle]은 유정(油井) 근처에서 심층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내게 제공해 줬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는 고전 이론에도 불구하고, 그 해 여름 나는 특이한 ‘대차대조표’를 발표했다. 화학적, 물리학적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지만, 유기 화학 분야의 저명한 권위자들, 그리고 내가 분명한 근거를 갖고서 접근하고 있다는 데 대한 믿음을 가졌던 의학 박사들과의 협력 아래 수행한 자체적인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나는 프랑스 정부의 고위 관료이기도 했기에, 정부 연구실을 사용할 특권도 누렸다. 또한 가장 저명한 각 분야의 연구원들, 대학 교수들과 협업할 수도 있었다. (아마 지금이라면, 여러 가지 다른 실험들을 하면서 동일 연구실을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특권들은 내게 매우 유용했다. 그런 학제간의 종합적인 접근이 없었더라면, 내 연구는 불가능했을 터였다. 단일 분야의 전문가라면 그러한 연구에 성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뛰어난 자격과 역량을 가졌던 저명 과학자들이 나를 지지해 주고, 내 이론의 유효성을 입증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또 이를 확인해 준 데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다.

    용접에 관한 관찰

    1935년, 나는 나 자신을 매우 당황스럽게 만드는 현상을 관찰하게 되었다. 한 용접공이 치명적인 수준으로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당시 나의 임무는 사고가 발생한 현장 주변을 조사하고, 원인을 밝혀 궁극적으로 그러한 일의 재발을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 일산화탄소 발생의 원인이 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그러한 사고가 발생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나는 일산화탄소 흡입의 원인이 될만한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1955년이 되기까지 늘 내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55년에 가서야 나는 빛을 발견했던 것이다.

    같은 해에 불과 몇 달 간격으로, 산소아세틸렌 불꽃으로 작업하던 세 명의 용접공이 연달아 사망했다. 나는 부검 결과를 포함한 상세 보고서들을 모두 받아 봤다. 관련 자료들은 용접공들이 모두 강철 절단 작업을 했으며, 산화 질소[nitrogen oxides]가 아닌 혈액 내 과도한 일산화탄소 중독[oxycarbonaemia]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분석에 따르자면, 공기 중 흡입을 통해 유입되는 일산화탄소는 너무나 소량이라서 위험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 때, 나는 용접공들이 일하던 업체에 소속된 의사들의 도움 아래, 그 희생자들의 동료 용접공들의 혈액을 분석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너무나 건강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발견하게 된 것은, 같은 작업을 하던 용접공들은 모두 심각한 수준의 만성적인 혈액 내 일산화탄소 수치를 보였으며, 어떤 자들은 치명적인 사고가 임박한 단계였음이 밝혀졌다.

    나는 모든 자료를 종합해 보고, 작업장의 환경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도 했지만, 용접공들이 들이 마신 공기를 분석해 봤을 때는, 결코 일산화탄소가 생성될 여지가 없었다. 조사는 다른 곳에서 행해졌다. 용접공들에게 있어서 혈액 내 일산화탄소 수치가 올라가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연구 방법상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4년 간의 연구 끝에 나는 다음 결론에 도달했다. :

    1) 용접공들이 금속을 절단할 때 사용하는 강한 백열의 토치는 일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았지만, 철의 넓은 면적에 백열을 일으켰다.

    2) 작업 부위 위로 구부린 채로 있는 용접공들은--특히 안전 감독관이 옆에 서 있지 않는 용접공들은--, ‘철과 백열의 금속 면’과 접촉한 공기를 흡입했다.

    3) 그들이 흡입한 공기 안에는 일산화탄소가 있을 수 없었으며, 공기 자체는 항상 질소와 산소의 혼합물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세상 전체에 걸쳐 보다 많은 사례 연구를 한다손 치더라도, 흡입된 공기 안에 일산화탄소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 줄 뿐이었다.

    4) 작업자들의 혈액에서--안전 감독관들의 혈액이 아니라--, 발견되는 일산화탄소는 공기를 들이 마셨을 때, 오직 내생적으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철과 백열의 금속 면’과 공기가 접촉할 때, 활성화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어린 시절) 주철 난로가 백열 상태로 과열될 때 발견되었던 현상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서도 한 줄기 빛이 되었다.

    들이마신 공기 안에 들어 있는 산소는 조직체 내에서 일산화탄소를 만들어 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산소는 있지만, 탄소가 필요한 것이다. 많은 연구 끝에 나는 조직체 내에서 탄소를 형성하는 것은 활성화된 질소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적혈구가 폐포[pulmonary alveoli](폐 안에 있는 기도의 최종 부위--역주)를 적시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이러한 의문은 아직까지 분명하게 확인되진 않았다. 질소 분자(질소는 결코 단일의 원자 형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개체화된 질소는 항상 N2의 형태를 갖는다.)는 두 개의 질소 원자 핵을 갖고, 이 핵들은 분자 궤도를 도는 전자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분자 한 복판에 있는 두 개의 원자 핵들은 이미 잘 알려진 주파수(진동수)에서 진동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동일한 주기를 갖는 진동 에너지이자 외부로 향하는 에너지를 내놓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때에는 하나의 핵에서 다른 핵으로 하나의 양성자가 인접한 중성자와 자리를 바꿔 넘어 들어가는 일을 야기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일은 주변의 전자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서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원자 핵들 가운데 하나의 핵은 양성자 하나를 잃어버린 채로 남게 되고, 이 때 이건 탄소(원자)가 된다. 다른 원자 핵 하나는 양성자 하나를 더 갖게 되고, 이 때 이건 산소(원자)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핵 물리학 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현상이다. 원래의 개체는 여전히 분자 상태인 채로 남아 있게 된다. 그렇지만, 하나의 원자 핵에서는 양성자 하나가 제거되고, 그 양성자가 다른 원자 핵으로 이동하여, 내부적인 리모델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질소 분자에서 두 개의 질소 원자 핵들 간의 거리는 1.12 옹스트롬[angstrom](빛의 파장이나 원자사이의 거리를 재는데 쓰이는 길이의 단위로 10-8cm--역주)인 반면, 일산화탄소에서 탄소 원자 핵과 산소 원자 핵 사이의 거리는 1.09 옹스트롬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나의 양성자가 인접한 중성자와 자리를 바꿀 때, 이러한 원자 핵 상의 변화가 방사성[radioactive]을 나타내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폐 안 공기 세포 상의 밝혀지지 않은 효소의 역동적인 작용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고, 혹은 공기 세포를 통과해 지나가는 적혈구의 두꺼운 막으로 인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아직까지 나의 가정이 틀렸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림 1
    (피닉스 저널 49권은 미간행 저널로 첨부 그림들은 없고, ‘그림 1’과 같은 표시만 있음--역주)

    내가 위와 같은 설명을 1960년 처음 발표했을 때, 논쟁이 일어났다. 어떤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개진하기도 했다. : 들이마신 공기가 뜨거울 때, 이것은 팽창하는 성격, 즉 밀도를 낮추게 되고, 따라서 흡입된 공기는 ‘희박화 현상(힘을 갖는 현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산소의 압력이 낮아지게 되고, 이는 혈액 안에서 “나쁜 연소”를 유도해, 이산화탄소(CO2) 대신에 일산화탄소(CO)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어떠한 설득력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기는 쉽다. 만약 백열의 금속과의 접촉이 없다면, 단지 뜨거운 공기를 들이 마신 것만으로는 같은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3년 드주왈[Desoille] 교수와 자신의 동료인 트뤼페르[Truffert]는 체계적인 연구를 행한 바 있다. 두 사람은 모두 고위 공직자들이기도 했다. 그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자면, 이 현상은 산소 압력과는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H. 드주왈[H. Desoille], 혈액 내 일산화탄소와 산소 압력 간의 상관 관계 부재[Absence de corrélation entre la pression de l’exygéne et l’oxyde de Carbone dans le sang], 직업병에 관한 연구 자료[Arch. Mal. Prof.], 1963년 7월) 1964년, 나는 금속판이 400℃ 정도로 가열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최소한 금속 판이 짙은 붉은 색을 띨 정도에는 도달해야 되고, 밝은 붉은 색까지 도달하게 되면 이러한 현상은 신속하게 나타났다.(참고로 철의 녹는 점은 1538℃--역주) 산소는 그 원인 아닌 것이다. : 따라서 내가 1960년에 발표했던 첫 번째 가정은 맞는 것이었다. 공기 중에 있는 질소 대신 헬륨을 사용한다고 해도, 동일한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질소 만이 이러한 내생적 일산화탄소 생성의 원인인 것이다. 과학계에 내 연구를 발표한 이래로 이러한 현상은 분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는 일산화탄소 중독을 피할 수 있도록 공장 내에 측정 “감시관들”의 배치도 중단시켰다.

    [Part 3 인용의 끝]

    하톤 : 이제 당신은 당신 자신이 하나의 놀라운 형질 변환 기구임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충분한 학식을 갖추지 못한다면, 당신은 소위 말하는 자유를 쟁취하려는 목적 의식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무지한 상태 이상의 것’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창조자이자 당신의 운명의 창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149권 (미간행 저널), 서문 및 제 1, 2장, pp.4-17, 20-24.


    http://www.fourwinds10.net/unpublished_phoenix_journals

    http://blog.daum.net/truthinlight


    [추가 번역 예정--phoenix]
    Last edited by phoenix; 2016-08-14 at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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