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139권, 유태인들의 영국 지배사 - 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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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37,139권, 유태인들의 영국 지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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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6장, 1995년 5월 6일 토요일, 11:58 A.M. 8년 263일
    ......
    권력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Force], Part 5 :
    비밀 음모[the Occult Conspiracy]에 관한 역사적 고찰
    by “DEG”
    [인용]

    ......
    계속되는 “희생적” 출혈

    ......

    마침내, 도처에 존재하던 세파르딕 유태인들[Sephardics]이 마지막으로 은밀히 침입해 들어간 나라는 영국으로, 때는 A.D. 1077년이었다. 정확히 11년 전,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 공작[William, Duke of Normandy]이 야심차게도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을 침공하게 되었을 때, 사립의 유태계 은행가들은 이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이 대담한 공격이 진행되는 동안, 윌리엄은 색슨의 귀족이었던 헤롤드 왕[Saxon nobleman, King Harold]을 1066년, 결정적인 헤스팅스 전투[Battle of Hastings]에서 물리쳤다. 이상하게도, 교황 알렉산더 2세[Pope Alexander II]로부터도 후원을 받았던 정복왕 윌리엄은 이후 새로운 형태의 영지내 집회였던 “대회의[Great Council]”를 개최했으며, 이를 통해 즉각적으로 대단히 무거운 과세 제도를 도입했다. 이 역동적이었던 새로운 노르만의 왕은 전 영국 땅의 주인이 되었고, 그 중 일부는 노르만의 지지자들과 자신을 후원해 준 유태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모든 영국의 땅 소유주들은 법적으로는 국왕의 땅의 임차인들에 불과하다. 유태계 역사학자인 S.W. 바론[S.W. Baron]은 이 특별한 유태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그들은 곧이어 “왕립 고리대금업자들”이 되었는데, 이들의 주요 역할은 정치적, 경제적 사업들에 대해 돈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높은 이자율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후, 이 대출업자들은 그 중 일부를 이런 저런 명목으로 왕가의 재정적 지원을 위해 내놓아야 했다. 그렇지만, 많은 유태계 가문들은 오랫동안 화려한 저택에서 호화로운 복장으로 안락하게 살았으며, 그들의 영향력은 공적 업무에도 미쳤다... 이 유태인들은 자신들이 따르는 왕가 주인들의 보호에만 배타적으로 의존한 채 살아갔다.”--그러나 마침내 영국 국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누적된 불만은 1189-1190년간 폭동으로 이어졌다...”[하톤: 당신들 훌륭한 미국 시민들 가운데, 미국 땅의 3분의 1 이상이 실은 영국 왕가의 소유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오늘날까지도, 실제로 그렇습니다! 내가 한가지 첨언하자면, 그 왕가는 유태계 왕족으로부터 유래한 영국-이스라엘계 가문이라는 것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다채로운 삽화가 들어 있는 ‘유럽 왕족의 문장(紋章)학[Heraldry of the Royal Families of Europe]’(루다 & 맥클라건[Louda & Maclagan], 뉴욕, 1981년)이라는 책의 120-121페이지에도 나와 있듯이, 그 때 이후로 유럽 각국의 모든 왕과 여왕들은 윌리엄의 후손들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예외가 있다면, 독일 하노버 왕가의 겔픽 가문[the German Guelpic line of the Hanovers]이 해당된다. 하노버 왕가도 결혼을 통해 연결되었다.) : 영국, 스페인, 노르웨이, 덴마크, 리히텐슈타인,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웨덴, 벨기에 그리고 모나코. 물론 기독 전통의 독일, 러시아, 프랑스, 스코틀랜드, 덴마크 왕가도 결혼(앞에 이야기했듯이)을 통해 맺어졌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 대체로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이들 모든 왕족들은 그 조상을 추적해 올라가 보면, 모두 고대 이스라엘의 헤브루-이스라엘 13개 부족[13 Hebrew-Israelite Tribes of ancient Israel]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직 영국 왕족만이 다른 왕족들과의 빅딜을 통해, 자신들이 다비드 왕[King David]의 직계 후손임을 주장하며, 이들 모두에 대한 군주의 권한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면, 이들 통치자들과 왕족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유태인들이 아니라는 점이다(내가 아는 바에 따르자면). 그렇지만, 사실상 모든 왕과 여왕들은 자신들의 통치 시기 동안 최고위급 참모들 또는 내각 구성원들로 세파르딕 또는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을 가졌던 것이다.

    은행가들의 도시, “시티 오브 런던”

    유태인들이 영국에 들어온 지 100년 남짓 지난 후인 A.D. 1189년, 런던에는 ‘더 시티[The City]’라고 불리는 지구가 형성되었는데, 이 곳은 옛 런던의 심장부에 위치한 사립 은행들의 집결지였다. 이 장방형의 지대(677 에이커)는 런던 시장[Lord Mayor]과 시 자치단체[Corporation]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양 기구는 이 곳에 자리잡은 십 여 개의 무역업자들의 본부도 감독했다. 나아가 ‘시티 오브 런던’은 결국에는 세계를 노예화시키려는 악마적인 음모의 핵심 중추가 되기도 했다.

    한 세대가 완전히 지난 후, 그곳으로부터 남동쪽으로 약 2800마일 떨어진 곳으로, 팔레스타인 북부 해안 지방에 위치한 도시 에이커[Acre]에서 그랜드 케힐라[Grand Kehilla](유태 공동사회 대표자 명부이자 의회 조직--역주)의 막강한 권력자들로 구성된 300인 위원회[Council of 300][하톤: 존 콜먼[John Coleman]의 책, “음모가들의 위계조직, 300인 위원회 이야기”를 빠뜨리지 말기 바랍니다. 아직 못 읽어 봤다면, 당장 구해 보십시오! (WIR, 2433 N, 카슨가[Carson St.], 네바다주[NV] 89706)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연결됩니다!]의 모임이 개최되었으며, 여기에는 다른 하자르-아슈케나지 유태인들과 함께 ‘시티 오브 런던’의 대표들도 참석했다. 음모가들 사이의 극비 모임이었던 팍티오 세크레타 라운드 테이블[the Round Table of the Pactio Secreta](“신들의 유산[Legacy of The Gods]”, 로버트 차루[Robert Charroux], 뉴욕[NY], 버클리 메달리언 북스[Berkley Medallion Books], 1974년, pp.182-191) 회의를 주재한 자는 독일 호엔슈타우펜 황제[the Hohenstauffen Emperor of Germany]이자 예루살렘의 왕[King of Jerusalem]이었으며, 강력하고 살인적인 루시퍼계 리더였던 프레데릭 2세[Frederick II]였다. 당시 프레데릭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권[gold scepter as Holy Roman Emperor]과 시실리 왕[King of Sicily]의 지위도 보유하고 있었던 인물로, 로마 교황 다음으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전제 군주[tyrant]였다. 그의 황금빛 방패에 새겨진 문장(紋章)에는 피처럼 붉은 색의 부리와 치켜세운 발톱을 가진 악마적인 모양새의 검은 까마귀가 묘사되어 있었다.--검은 까마귀는 페르시아 미트라스 종파[Persian Cult of Mithras] 제 1계급의 오컬트적인 상징에 해당한다. 이 전설적인 인물은 그 때 당시, 독일 겔프[German Guelphs] 가문, 그리고 비엔나[Vienna], 피렌체[Florence], 제노아[Genoa]의 검은 귀족단[Black Nobility]의 주요 후원자였으며, 그들을 위해 하노버 가문[the House of Hanover]을 형성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 라운드 테이블 회의가 소집된 건 A.D. 1228년이었다. 오늘날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상을 뒤흔들었던 이 모임에는 프랑스 템플러 기사단[the French Order of Knights Templars], 튜튼 기사단[the Teutonic Kights], 독일 호스피텔러 기사단[the Germanic Order of Knights Hospitalers](300년 뒤 이 단체는 몰타 기사단[the Knights of Malta]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사라센 파타스[the Saracen Fatas], 에도미트-터키인들[the Edomite-Turks], 그리고 페르시아의 아사신(하사신) 동맹[the Order of Assassins(Hashashin)]도 참석했다. 당시 세상 곳곳으로부터 팔레스타인으로 모여든 이 끔찍하면서도 굳은 결심으로 가득 찼던 음모가들은 공동의 목표를 갖고서 하나로 뭉쳤다.--그들 자신들만의 메이슨적인 세계 “종교”[a Masonic universal “religion”]를 설립하는 것. 이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 철저히 반대되는 것이었지만,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있었고, 미트라교에 기반한[Mithraic-based] 극도로 억압적인 규율을 내세우며, 피를 부르는 종교재판을 일삼는 단체이기도 했다. 오컬트적인 단체들 전체를 아우르는 이 새로운 메이슨 조직[this new Masonic organization]은 단 한 명의 그랜드 마스터, 바로 프레데릭 2세에 의해 통제되었다.
    pp.49-51
    ......

    제 7장, 1995년 5월 7일 일요일, 8:28 A.M. 8년 264일

    권력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Force], Part 6 :

    [인용]
    군주제는 신경쓰지 말 것[NEVER MIND THE MONARCHY] :
    종교 재판의 연속

    [하톤: 당신들 가운데, 우리가 그저 헛소리들, “말도 안 되는 언급들과 왕들”에 관한 이야기들만을 내놓으며, 단지 하나의 종족, 하나의 신조, 또는 하나의 집단만을 예외적으로 끄집어 내, 배타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고 믿고 싶은 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우리가 여지껏 제시해 온 무수히도 많은 글들을 계속해서 읽어 왔다면, 우리는 오직 진실만을 제공하고 있으며, 우리가 주장하는 바를 분명히 입증해 줄 역사적 자료들만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여기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그룹에 속해 있다고 느낀다면,--부디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스스로를 주의깊게 살펴 보기 바랍니다. 당신은 스스로의 탄생을 좌우하고, 부모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까? 당신이 이것 또는 저것이 되는 데 있어서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었습니까? 이제야말로 ‘이단자 탄압[Inquisition]’이라는 인식의 틀을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불행히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단자 탄압”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멜 브룩스[Mel Brooks](영화감독, 작곡가, 배우로 활동하며 에미상, 그래미상, 아카데미상, 토니상을 다 받은 경력을 가진 인물--역주)가 헐리우드에서 해낸 일과도 연결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카톨릭 신자들도 “내”가 ‘이단자 탄압’을 했다고 공격합니다. 한편, 유태인들은 로마 카톨릭과 (우리) 메신저들을 모두 비난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역사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제시하는 것들은, 적어도 오늘날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역사는 아닙니다!]

    에이커[Acre]에서 개최된 ‘왕들의 컨퍼런스’에 참석한 유태인들에게 다시 눈을 돌리자면, 이 일로 인해, 당시 카톨릭 교회는 전 유럽의 모든 유태인들에 대해 엄청난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교황 이노센트 3세[Pope Innocent III]는 공식 포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 “유태인들은 (이유 불문하고) 제거되지 않는다면,, 사과 안에 든 벌레나 심장 속에 든 뱀 만큼이나 우리에게 위험할 것이다... 이들은 이미 쥐처럼 우리를 갉아 먹고 있으며, 뱀과 같은 악취를 풍기고 있다. 우리 가슴 속의 불길이 이들을 제거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가 이들에게 집어 삼켜진다면, 그건 엄청난 수치가 될 것이다.” 부패한 로마 교회에 반대하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단자들[heretics]”)에 대해, 전 유럽에 걸친 종교재판[Inquisition]을 통해, 대량 학살과 고문을 허락했던 자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치고는 아주 흥미로운 언급이었다.
    ......

    ...... 1215년, 제 4차 라테라노 공의회[the Fourth Lateran Council]에서는 당시 유태인들에 의해 통제되던 무역 카르텔에 대해, 활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조치들이 채택되었다.

    ...... 헝가리에 살고 있던 유태인들도 점차 자신들에게 불리한 국면을 맞게 되었다. 쾨스틀러[Koestler]에 따르자면, 고대 로마 시대 이래로 소수의 “진짜 유태인들”이 살고 있던 훈족(마자르족)[the Huns(Magyars)]의 땅에서, “A.D. 1222년 엔드레(앤드류)[Endre(Andrew)] 왕에 의해 “골든 불[Golden Bull]”(헝가리판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1215년 영국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을 위해 왕에게 강요하여 받은 법률 문서--역주)에 해당--저자주)이 공포되었는데, 이에 따르자면, 유태인들은 조폐업, 세금 징수업, 왕립 소금 독점업에 참여하는 일이 금지되었다.--이는 바로 이 칙령이 있기 전까지, 무수히도 많은 유태인들이 이러한 주요 직책들을 맡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러한 위치들을 더 많이 차지해 나갔다. 당시 엔드레 왕의 왕실 재정 관리인은 챔벌레인 테카 백작[Chamberlain Count Teka]이었는데, 그는 부유한 지주 출신으로 하자르계 유태인이었다...”

    ...... 한편, A.H.M. 람세이 대령[A.H.M. Ramsay]이 쓴 ‘이름없는 전쟁[The Nameless War]’(런던, 1952년)에 나와 있듯이, A.D. 1255년, 영국에 살고 있던 유태인들은 더 큰 문제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영국 링컨[Lincoln]시에서 휴그[Hugh]라는 이름의 어린 크리스챤 소년이 유태인들의 소름끼치는 의식에 따라 살해[ritual murder]된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소년은 온 몸이 절단되고 피가 모두 빠져나간 채, 냉담하게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고이 희생[Goyim sacrifice] 의식’에 따른 것으로, 역사 기록에 따르자면, 탈무드를 준수하는 랍비들에 의해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여러 다른 나라에서 행해져 온 것과도 유사한 일이었지만, 영국의 유태인들에게는 그들의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되었다.

    [하톤: 나는 여기서 ‘누군가’에 의해 “오늘날”에도 행해지고 있는 이 “의식에 따른 살해”와 관련하여 몇가지 참견할까 합니다. 당신들은 아이가 실종되고 나중에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살해 또는 범죄 현장에 관한 완전한 정보를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물론 “버려진” 시체에 관한 모든 뉴스들이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경찰은 얼마나 잔인하게 살해되었는지에 관한 완전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알리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어떤 조직 또는 개인에 의한 “의식에 따른 살해”는 사탄주의에 기반한 것으로, “사건을 책임진 자들”도 경우에 따라 일련의 ‘교파’에 소속되어 있을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감히 이러한 일들을 공개적으로 알리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살해에 사용된 방식이나 단서 같은 것들에 관한 소식을 듣지는 못할 것인데, 대개 범죄자를 추적하는 주요 단서들은 비밀로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이러한 사건들을 다룸에 있어서 당신들, ‘대중들을 통제하기 위한 규정’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국왕 헨리 3세[King Henry III]가 직접 소집한 이 센세이셔널한 재판에서, 총 18명의 범죄자들이 기소되었고,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이들은 끔찍한 범죄에 대한 대가로 사형되었다. 물론 그들 모두는 유태인들이었다. 만약 이것이 영국에 의한 유태인들에 대한 일종의 차별로 여겨진다면, “의식에 따른 살해와 관련된” 주목할만한 122건(“피의 기소[Blood Accusations]”)의 재판에 대해 나와 있는, 유태 백과사전 1905년판을 읽어보면 그러한 생각이 곧 바뀔 것이다. [하톤: 빙산의 일각!] 그 중 39건은 19세기 “유럽 전역에 걸쳐” 발생한 사건들이었다...

    이후 1275년, 영국에서는 “유태인에 관한 법[Statute of Jewry]”이 통과되었는데, 이 법은 이처럼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거주를 나라의 특정 지역에 한정시키고, 그들에게 악명높은 고리대금업도 금지시키는 내용이었다. 또한 유태인들에게는 식별용의 노란색 배지[yellow badge]를 다는 일도 강요되었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오래된 방식들을 고집했고, 이는 영국의 관습과 법률에는 너무나도 어울릴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A.D. 1287년, 그들은 모든 권한과 특권을 박탈당했으며, 3년 후, 에드워드 왕[King Edward]은 유태인들을 영국 땅에서 모조리 추방하는 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에브라임[Ephraim](요셉의 아들로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 가문의 선조, ‘유태인들의 계보’ 참조--역주)과 마나셰[Manasseh](유다 왕국의 왕--역주) 부족의 영국계 후손들이 갖게 된 이 최후의 분노에 직면하여, 유태인들은 A.D. 1290년 영국을 떠났으며, 약 400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다수의 유태인들이 한꺼번에 영국으로 되돌아 오지는 못했다. 그 해 10월, 16,000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배를 타고,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 독일, 스페인 등지로 흘러 들어 갔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종교를 가진 자들과 함께 어울렸다. 그러나 1298년, 독일인들은 유태인들을 다시 내쫓았다. 독일인들은 15년 전에도 일련의 문제에 따른 유태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그들을 내쫓은 적이 있었다.

    [하톤: 이것은 본질적으로 제 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에서 일어났던 것(‘1조달러짜리 거짓말, 홀로코스트’ 참조--역주)과 동일한 일로, 독일인들은 이들 하자르계 지크들(유태인들)[Khazarian Zhiks]로부터 자기 나라를 되찾으려고 했습니다. 독자들이여, 당신들이 어떤 것을 믿도록 유도되어 왔든지 간에, ‘사실’을 말하자면, 이 집단적 유태인들[the Ghetto Jews]은 독일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대해 한 일이, 합리적이었다거나, 옳았다거나 하는 류의 문제가 아닙니다.--이건 아주 단순히 ‘역사상의 진실[the TRUTH of the times]’일 뿐인 것입니다. 자칭 “유태인들”이라 불리는 집단이 평화적으로 독일로부터 떠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통로와 교통수단은 제공되었습니다. 당신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그 때 당시, 사실상 어떠한 “인종적[RACE]” 고려도 없었다는 것입니다.--단순히 “찬탈자들에 대한 그룹 규정[grouping of usurpers]”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날에도 당신들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인종”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오직 모두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가하려는 ‘특정 “그룹”의 의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몇 년 뒤, 프랑스 전제 군주였던 필립 르 벨(공정왕)[Philip le Bel(The Fair)]은, “유태계 의사들이 저지르는 살인적인 행태에 관한 악명높은 스캔들”이 발생한 이후, 당시 “무한한 이타심”의 표본으로 이름이 높았던 프랑스 카톨릭의 수장에게, 이들 유태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토로했다. 그리고 지금이 유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땅과 부를 몰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보았다. 아서 쾨스틀러[Arthur Koestler]가 이야기한 바대로, “1306년 6월 21일, 필립 르 벨은 특정일에 자신의 왕국 내의 모든 유태인들을 체포할 것을 명령하는 비밀 교서에 서명했다. 7월 22일 거국적인 유태인 체포는 감행되었고, 몇 주 뒤에 이들은 추방되었다. 이들은 왕의 통치 영역 바깥의 프랑스 지방, 말하자면, 프로방스[Provence], 브루군디[Burgundy], 아키탄느[Aquitane], 기타 몇몇 봉건 영주의 영지 등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14세기 말엽, 프랑스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사실상의 유덴라인(유태인 청정지역)[Judenrein(clean of Jews)]이 되었다. 그러나 여러 세기가 지난 후인 1789년(프랑스 혁명--역주), 이들 유태인들의 후손들은 프랑스 왕가와 교회, 양쪽 모두에 대해 고스란히 보복했다.
    pp.53-55
    ......

    흑사병(역사는 반복되는가?)

    젠타일들[Gentile](유태인이 아닌 자들--역주)이 행하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다른 지역에 거주하던 유태 랍비들은 어둠의 게토[ghettos]에 모여, 분주히 복수를 위한 음모를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다. A.D. 1347년, 흑사병으로 인해 전체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사망하는 사건들을 통해, 그들은 재기를 노렸던 것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자면, 당시 아시아로부터 투르게스탄[Turkestan]을 경유하여 지중해의 여러 항구에 도착한 많은 배들에는 알려지지 않은 쥐떼들이 들어 있었다. 이 쥐들에게는 파스퇴렐라 페스틱스 바실리[Pasteurella pestix bacilli](흑사병의 원인균--역주)라 불리는 치명적인 병원균을 보유한 벼룩이 있었다.

    [하톤: 이 부분을 놓치지 마십시오! 미국과 서유럽 몇몇 지방은 이미 경고단계에 접근해 가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설치류의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올해 홍수와 (설치류들에) 충분한 영양공급으로 인해 그 경향이 보다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학살과 죽음의 장치 속에 놓여 있습니다. 부디 우리가 쓴 책들을 주의깊게 살펴 보십시오. 당신들을 향하고 있는 이 질병을 적절히 막아낼 만한 항생제도 부족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다량으로 확보해야만 합니다. 다르마여, 우리는 꾸물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것은 생존 또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비스트(짐승)”의 계획은 적절한 타이밍이 되자마자, 이것을 당신들에게 ‘쏟아 붓는 것’입니다. 이 질병은 심각한 상황을 만들게 될 것이고, 설치류의 분포가 높은 지역에서 갑자기 발생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일들은 ‘멸종동물 보호법에 따른 조치’라는 미명아래 행해질 것입니다. 학살을 위한 원인균들은 이미 퍼져 있습니다.]

    끔찍한 질병이 유럽 대륙 도처에 퍼져 나갔으며, 지나는 데마다 사람들의 시체 더미만 쌓여 갔다. 그런데 이 배들에는 저마다 유태인들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내, 흑사병에 대한 비난은 유태인들에게 돌려졌으며, 심지어 유태인들이 질병에 감염된 시체를 모두가 마시는 우물에 던져 넣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사람들의 분노는 “유럽 전역에 걸쳐, 유태인들에 대한 집단 화형”으로 이어졌다.

    [하톤: 당신들이 마시는 물도 곧 감염될 것입니다! 염소 살균으로 죽지 않는 크립토스포리듐 기생충[cryptosporidium parasite]이, 퍼뜨리려는 병원균의 선별된 매개체로 사용될 것입니다. 지금 나는 “유태인들”을 비난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 이건 단순히 ‘유태인과 고이간의 문제[Jewish-Goyim problem]’ 이상의 문제입니다. 놀랄만큼 넓게 퍼져나간 “미스터리한 질병”은 단지 “업데이트”되고 “업그레이드”된 폐렴일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에게 다가올 일을 어떻게 예방할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신들이 얼마나 쉽게 속는 지에 대한 “테스트”이자, 진짜 질병이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을 때, 어떻게 사람들을 죽일 수 있을 지에 대한 “테스트”였던 것입니다!]

    화형을 피하기 위해, 많은 유태인들은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다... 산 채로 불태워지는 것보다는 나은 방편이었다.” 이후, 쾨스틀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이어갔다. : “흑사병의 뒤를 이어 프랑스, 독일 등지의 오래된 유태인 커뮤니티가 사실상 제거되고 난 후, 서유럽은 약 2세기간 유덴라인[Judenrein](유태인 청정지역)이 되었으며, 오직 소수의 집단거주지만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스페인을 제외하고...”
    pp.60-61
    ......

    계속되는 추방

    영국과 프랑스에서의 유태인 추방, 그리고 흑사병에 따른 고난과 이에 수반된 유태인들에 대한 기소의 뒤를 이어, 이 명백하게 성가신 존재인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혐오스러운 전통으로 인해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쫓겨났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뿐만 아니라(앞서 언급한 것처럼--저자)(생략된 단락에서 저자는 스페인(1492년), 포르투갈(1497년)에서 각각 유태인들이 추방되었다고 서술--역주), 헝가리(1360년), 슬로바키아(1380년), 프랑스(1394년 “영구적으로”), 오스트리아(1420년), 리투아니아 & 피렌체(1495년), 프러시아(1510년) 그리고 바바리아(1551년)에서도 쫓겨나게 되었다.

    [하톤: 독자들이여, 이건 당신들이 가서 확인해 볼 수 있는 팩트들[facts]입니다! 무작정 부인하기를 멈추고, 가서 역사를 공부해 보십시오--이러한 사실들이 영원히 묻혀버리기 전에. 우리가 현재 다루고 있는 이 역사적 데이터들을 포함하고 있는 책들은 지금 모든 도서관과 서고에서 제거되고 있는 중입니다.]

    유태인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는 운이 좋은 일이었지만, 대부분의 유태인 피난민들은 폴란드네덜란드[Holland]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애시 당초 이 나라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인지는--그리고 그 곳에 머무르지 않았던 것인지는-- 내게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어쨌거나, 그들의 불온한 관습에 따라, 몇몇 용감하고 굳은 결심을 가진 유태인들, 마라노스들[Marranos](신분을 숨긴 비밀 유태인들--저자)은 예전처럼(로마 카톨릭을 따라 기생충과 같이 잠입--저자) 또다시 비밀리에 프랑스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번에도 그들의 기괴한 행동에 따라 이내 국왕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다시 한 번 프랑스 국민들의 무서운 분노를 샀다.
    p.62
    ......

    제 8장, 1995년 5월 7일 일요일, 1:57 P.M. 8년 264일

    권력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Force], Part 7 :

    [인용]
    이름없는 전쟁

    한편, 암스텔담[Amsterdam]에 살던 유태인들은 영국 귀족계급의 전복을 위한 복잡한 음모를 거의 완성시켜 나가던 중이었다. A.H.M 람세이 장군[Captain A.H.M Ramsay]은 자신의 책, “이름없는 전쟁[The Nameless War]”에서, 대단한 공을 들여, 그 구체적인 사항들까지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원한을 품은 유태인들이 이 엄청난 음모를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수족[their cat’s paw]’으로 선택했던 인물이 바로 야심차고도 무도덕적[amoral]이었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1599-1658, 영국의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청교도 혁명을 통해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실시한 인물--역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 목적 달성을 위해 크롬웰에게 거의 무한정의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충분한 자금력을 보유했던 크롬웰은 1640년부터 조장하기 시작했던 영국 내전(1642-1651간 이어진 영국 왕당파와 의회파간의 내전--역주)을 이끌 수 있었다. 끝없이 계속되는 출혈과 국력 쇠퇴를 야기했던 이 내전을 통해, 국왕 찰스 1세[King Charles I]는 처형되었고, 크롬웰 자신은 영국의 사실상의 독재자(수많은 유태인 참모와 관료들이 그의 주위에 있었다.)가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1664년, 유태인들의 대규모 영국 복귀[mass return of the Jews]를 이끌어 냈다.--이에 뒤따라 즉각적으로 또 한차례의 흑사병[bubonic plague]이 영국을 강타했다. 암스텔담과 기타 여러 곳에서 온 선박들에 ‘우연히’ 실려 있던 쥐떼들로 인한 것이었다. 또한 1666년에는 런던 대화재 사건[the Great Fire of London]이 발생하기도 했다. 유태인들과 그들을 뒤따르는 사건들의 쇄도는, 보다 일찍이 스페인에서 일어났던 일과 마찬가지로, 결국 오랫동안 계획되어 온 음모에 따라, 영국을 집어 삼키게 되었다.

    [하톤: 이어지는 단락에 보다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유태인들은 또 다시, 자신들의 오래된 본부인 ‘시티 오브 런던’을 구동시켰으며, 이 곳으로부터 수 천 명에 이르는 중무장한 깡패들--“작전 수행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들의 유일한 목표는 영국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해서, 자신들 앞에 비굴한 복종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들 부패한 세파르딕-아슈케나지 유태인들[Sephardic-Ashkenazim Jews]은 유서깊은 길드 홀[Guild Hall](시티 오브 런던의 중심에 자리잡은 건물로 시장 선거, 시의회 등이 열리며 각종 박물관도 위치--역주)에 9피트가 넘는 이교도의 우상[pagan idol]을 묘사한 거대한 황금 동상도 세우게 되었다. 활과 화살통 그리고 창을 보유한 이 동상은 두렵고 무서운 몽골 또는 하자르계 전사[Mongol or Khazar-type warrior]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이것은 전제적인 형상을 띤 야벳[Japheth]의 후손이자, 요한 계시록 20장 8절에서 경고한, 곡[GOG]의 뻔뻔스러운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시티 오브 런던에는 유태인들의 거점 시나고그(베트 하티플라[Beth Hattiflah])가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올드 베일리[Old Bailey](영국 형사 재판소--역주)(중세시대 성채로 쓰이던 건물--저자), 영국 주식 거래소[the British Stock Exchange], 유태인들이 자금을 대고 통제하는 영국 은행[Bank of England], 영국 법조 학원들[the Inns of Court], 런던 보험 시장[Lloyd’s of London], 여론을 선도하는 다양한 신문사들 등이 들어서게 되었다. 소수이지만 극도로 탐욕스럽고, 어마어마하게 부유한 유태계 은행가 가문들의 그룹에 의해 오랫동안 통제되어 온, 시티 오브 런던은 오늘날에 와서는 ‘유태인들의 세계 초국가[Jewish World Superstate]’ 그리고 ‘미슈푸카(미슈푸카는 악의적 유태인들을 지칭하는 또 다른 명칭--역주) 국제 범죄 패밀리[THE MISHPUCKA INTERNATIONAL CRIME FAMILY]’의 사실상의 핵심 중추[nerve center]가 되었다. 이들 탐욕의 범죄 집단[criminal lustmenschen]은 수 세기에 걸쳐 세계 도처에서 끝없이 계속된 전쟁과 혁명을 주도해 온 실질적인 ‘보이지 않는 손[Hidden Hand]’이자, 많은 주요 은행들의 파산과 주식 시장 붕괴의 핵심적인 선동자들이기도 했다. 이들은 또한 일종의 전염병처럼 오랫동안 서구 세계에서 계속되어 온 대부분의 경제 공황을 계획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교활한 대리인들은 오랫동안 세계 불법 마약 거래의 비밀 통제자들이었으며, 백인, 흑인 노예 무역을 마찬가지로 통제하기도 했다. 나아가 지난 반세기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보다 위험하고 범죄적인 ‘기업 습격대[corporate raiders]’는 마치 독수리처럼 비즈니스 세계에 내려 앉아 왔는데, 이들 대부분 역시 유태인들과 동류의 무리들[their tribes]이었다. 분명코, 유태인들은 아주 능수능란하고도 전문적으로,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들의 수많은 국내 문제들을 잘도 조작해 왔다.--자신들의 “끔찍한 금권[terrible power of the purse]”을 통하여. 전술한 모든 내용들은 물론, 문서화된 기록으로 잘 남아 있다.

    [하톤: 아직도 누가 (오늘날의) 16인 또는 17인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지 의아해 하고 있습니까? 아, 그렇지만, 그들 가운데는 다른 분파들[factions]도 존재합니다.(‘시오니스트, 볼셰비키 그리고 록펠러 카르텔’ 참조--역주)--이러한 사실은 “나머지 사람들”의 생존을 돕는 기회를 제공할 것인데, 왜냐하면 이들은 (제각각) 각국의 부를 소유하고 통제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그렇지만, 그들 모두가 사탄 의식을 따르는 것은 아닌데, 여기 큰 차이점이 놓여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13인 위원회 또는 16인 위원회의 구성원들 모두가 미국 시스템의 붕괴를 원하는 반-애국주의자들은 아닌 것입니다. 다만, 그들 모두는 단순히 이 시스템에 대한 통제와 권력을 얻길 바라는 것입니다.]
    pp.64-65
    ......
    Last edited by web master; 2013-10-24 at 10:28. Reason: 특수문자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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