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빛의 여정 / AH Forum
SPACE--GATE
스페이스 게이트
THE VEIL REMOVED
걷혀진 장막
BY
GYEORGOS CERES HATONN
[CHAPTER 1-(3)(4)(5)]
MJ-12 COMMITTEE (MJ-12 위원회)
I want to note right here, but will discuss substance later, that Henry Kissinger and J. Edgar Hoover were, and Mr. Kissinger is, a major player in the operation Majestic-12. The grandest and most horrendous cover-up known yet to man, for through that group and ones complementing it, your planet has been sold down the tubes.
나는 바로 여기서 주목하기 바라는데, 나중에 내용을 토론할 것이지만, 머제스틱-12 작전에 헨리 키신저와 제이. 에드가 후버가 있었고, 그리고 키신저씨는, 머제스틱-12 작전에서 주요한 인물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끔찍스러운 숨긴 일이 인간에게 이미 알려졌는데, 그것을 완전하게 (처리)하는 사람들과 조직을 통해서, 여러분의 행성은 터널을 따라 감쪽같이 속여지고 있었습니다.
In 1954, President Eisenhower, by secret Executive Memorandum, NSC 540111 (these numbers become important as we go along, so pay attention) established a permanent committee (not ad hoc) to be known as Majority Twelve (MJ-12) to oversee and conduct all covert activities concerned with the alien question. (I certainly do speak of cosmic aliens and not thy brethren across your borders.) NSC 541011 was created to explain the purpose of questionable activities and clandestine, above top secret meetings which speculative contents were being leaked to the Congress and the Press. Majority Twelve was made up of (watch closely): Nelson Rockefeller; the 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 Allen Welsh Dulles; the Secretary of State, John Foster Dulles; the Secretary of Defense, Charles E. Wilson; the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Admiral Arthur W. Radford; the Director of the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L Edgar Hoover; and six men from the executive committee of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known as the "Wise Men". It was claimed these men were all members of a secret society of scholars that called themselves "The Jason Society", whose members in turn supposedly came from the prestigious societies of Harvard and Yale, the "Scroll and Key" and the "Skull and Bones".
1954년, NSC 540111인 (이들 수자들이 우리가 이야기해 감에 따라 중요하니, 주의를 기울이세요.) 비밀 행정국Executive Memorandum에 의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외계인(or 우주인) 의문에 관련된 모든 은밀한 활동들을 감독하고 처리하기 위하여 머조러티 투엘브 (MJ-12)라 알려진 (임시가 아니고) 영구적인 위원회를 창설했습니다. (나는 확실히 여러분의 국경 너머 그대의 형제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우주의 외계인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NSC 541011은, 의심스러운 활동들과 은밀한, 불확실한 내용들이 국회와 보도기관으로 누설되고 있었던 전술한 특급 비밀회의의 목적을 설명하기 위하여 창설되었습니다. 머조러티 투엘브는 (자세히 보세요): 넬슨 록펠러; 중앙정보부의 국장, 알렌 웰쉬; 국무부 비서관, 존 포스터 둘레스; 국방부 비서관, 찰스 E. 윌슨; 스태프 조인트 칩의 사장, 애드미럴 아더 W. 랫포드; 연방조사국(FBI) 국장, L 애드가 후버; 그리고 “달인들Wise Men”로 알려진 외교 관련 심의회의 집행위원회에서 온 여섯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 (여섯) 사람들은 전부 자칭 “제이슨 학회”라 하는 비밀의 장학회 회원들이었습니다. 그 회원들은 소문으로는 하바드와 예일의 유명한 장학회와 “스크롤 앤 키(두루마리와 열쇠)”, “스칼 앤 보운즈(해골과 뼈)”에서 번갈아 왔습니다.
The "Wise Men" were key members of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There were twelve members including the first six from government positions, thus "Majority Twelve". This group was made up over the years of the top officers and directors of the Council of Foreign Relations and later the Trilateral Commission. George Bush, Gordon Dean and Zbigniew Brezinski were prominent among them. The most important and influential of the "Wise Men" who served on MJ-12 were John McCloy, Robert Lovett, Averell Harriman, Charles Bohlen, George Kennan, and Dean Acheson. Their policies were to last well into the decade of the 1970's. It is significant to mention here, that President Eisenhower as well as the first six members of MJ-12 were members from the Government and were also members of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I will come back to this momentarily, but I wish to introduce Mr. Kissinger at this point.)
그 “달인들“은 외교 심의회의 주요 회원들이었습니다. 관리 신분government positions의 처음 여섯 사람을 포함하여 12명의 회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머조러티 투엘브”이지요. 이 그룹은 외교 심의회의 국장들과 고위 관리들 그리고 후에 3자 위원회로 수년에 걸쳐 구성되었습니다. 그들 중에서 죠지 부쉬, 골돈 딘 그리고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유별났지요. MJ-12에 봉사한 “달인들” 중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 있는 자들은 존 맥크로이, 로버트 로베트, 아브렐 하리맨, 찰스 보렌, 죠지 케난, 그리고 딘 아체슨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책들은 1970년대의 10년 동안 잘 유지되었습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중요한데, MJ-12의 그 첫 번째 여섯 명의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정부 출신 회원이었으며 또 외교 관련 심의회의 회원이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잠간 이 이야기로 돌아올 것이나, 지금은 키신저씨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In November of 1955 NSC-5412/2 was issued establishing a study committee to explore "All factors which are involved in the making and implementing of foreign policy in the nuclear age" as a neatly laid out plan to camouflage the real point of the matter, the "alien" question and problem.
1955년 11월, NSC-5412/2는 “외계인” 의문과 문제, 그 사건의 진정한 요점을 위장하기 위하여 교묘하게 계획한 음모plan로서 “핵 시대에 대외정책을 처리하고 만드는 데에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탐구하기 위하여 연구 위원회를 창설할 것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By secret Executive Memorandum, NSC 5411 in 1954, President Eisenhower had commissioned the study group to “examine all the facts, evidence, lies, and deceptions” and discover the truth of the "alien question". NSC 5412/2 (mentioned above) was a cover which was necessary when the press began inquiring as to the purpose of regular meetings of such important persons. These meetings were first dubbed the "Quantico" meetings which began in your 1954, and were held at Quantico Marine Base.
1954년 NSC 5411인, 비밀 행정국에 의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 연구단체에게 “외계인 의문”에 대한 모든 사실과 증거, 거짓말, 사기들을 검사하고 그리고 진실을 발견하도록 위임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NSC-5412/2는 보도기관이 그런 중요한 사람들의 정기적인 회의의 목적을 캐묻기 시작했을 때 필요한 하나의 은폐물이었습니다. 이 회의들은 처음에 여러분의 1954년에 시작한 “콴티코” 회의라고 칭해졌으며, 콴티코 해군 기지에서 열렸습니다.
(*역자주 - 콴티코Quantico : 미 해병대의 기지로, 개발 교육 군사령부가 있음; Virginia주 북동부에 있음. - 야후 사전)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외교 관련 심의회
Plot thickens; thirty-five members were members of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who were members of the afore mentioned secret scholars' groups. Dr. Zbigniew Brezinski was the Study Director for the first eighteen months. Dr. Henry Kissinger was the group’s Study Director for the second eighteen months, which would begin in the late fall of 1955. Nelson Rockefeller was often a participant and arranged facilities for such secret meetings on his property, which could not be reached other than by air. This was a bit later in the scenario after it became too public to meet at Quantico. The group roster is a literal who is who! Among them just for starters, Dr. Edward Teller, Maj. Gen. Richard C. Lindsay, Lt. Gen. James M. Gavin, Maj. Gen. James McCormack, Jr. and Gen. Walter Bedell Smith--Gordon Dean, was Chairman.
이야기가 점점 복잡해지는데; 35명의 회원들이 외교심의회 회원들이었고 그들은 앞에서 언급한 비밀 장학회 단체의 회원들이었습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박사는 첫 18개월 동안 조사국장이었습니다. 헨리 키신저 박사는 두 번째의 18개월 동안 그 단체(외교심의회)의 조사국장이었는데, (그 기간은) 1955년의 늦가을에 시작할 것입니다. 넬슨 록펠러는 여러 번 참여하였으며 또 이러한 비밀회의를 위해 자신의 사재로 편의를 준비(제공)했습니다. 공기air 외에는 근접할 수 없었습니다(=아무도 그 비밀회의를 모른다는 의미인 듯). 이것은 너무 소문이 나 콴티코에서는 회의를 열 수 없게 된 후 행동계획에 있어서 조금 뒤였습니다. 그 조직의 명부는 글자 그대로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그들 중에서 단지 발기자는, 에드워드 텔러 박사, 소장 리처드 C. 린드세이, 중장 제임스 M. 가빈, 소장 제임스 맥코막, 연소 장관(?) 월터 베델 스미스--회장이었던, 골돈 딘입니다.
(*역자주 ; 소장:Major General / 중장:Lieutenant General *)
KISSINGER'S EARLY ROLE
키신저의 초기 역할
By the time Dr. Kissinger took over as director in November, 1955 the meetings were still being held at the Marine Base in Quantico, Virginia and were then known as Quantico II. Then Mr. Rockefeller built the retreat in Maryland, which could only be reached by air, so the groups and MJ-12 could meet away from public scrutiny. This place bore the code name (your government children love code names), The Country Club. Rightfully so in this instance as there were elaborate living, dining, recreation, meeting and library facilities, built in, as well as state of the art communications systems (which were also monitored illicitly). I wonder what AT&T would know about that sort of thing?
1955년 11월, 키신저 박사가 국장으로 인계 받을 그 때까지, 회의는 여전히 버지니아, 콴티코에 있는 해군기지에서 열리고 있었으며 그 후 콘티코 II로 알려졌습니다. 그 후 록펠러씨는 매릴랜드에 은신처를 세웠고, 그 곳은 아무도 근접할 수 없었으며, 그리하여 그 조직들과 MJ-12는 공공의 조사에서 벗어나 회의를 열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컨트리 클럽The Country Club이라는 암호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통치(권)자들government children은 암호명을 좋아합니다). 이 경우에는 매우 합법적으로, 예술 보도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공들인 거실, 식당, 휴게실, 회의실 그리고 도서관들이, 완비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부정하게 감시도 하고 있었습니다). AT&T가 그런 종류의 사태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는 알고 싶습니다.
(*역자주 - AT&T : AT&T(American Telephone and Telegraph)는 미국 최대의 전화회사. 초고속 인터넷 접속 서비스와 가입형 텔레비젼(subscription television)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미국 제2위의 이동전화 서비스 제공자(가입자 8,510만 명)이다. 총 고객수는 1.5억 명이 넘는다. 1885년 뉴욕 시에서 전화기의 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 의해 설립되었다. - [위키 한글백과 - Link=> http://ko.wikipedia.org/wiki/AT%26T] *)
A "public" announcement was made that the "study group" was officially ended in 1956. This announcement was followed by Mr. Kissinger's "results" in 1957. His document was entitled "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 (by Henry A. Kissinger), Published for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by Harper and Brothers, New York. Funny thing here: Mr. Kissinger wrote the document, at least 85 % of it, while he was at Harvard.
그 “조사 단체”가 1956년에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 발표는 1957년에 키신저씨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의 기록(문서)는 “핵 무기와 외교”라는 제목이었고 (헨리 A. 키신저 지음), 뉴욕의 하퍼 앤 브라더즈에 의해 외교 관련 심의회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키신저씨가 그 기록(문서)를, 적어도 그것의 85%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버드에 있는 동안에 말입니다.
Ah, plot thickens; Mr. Kissinger became totally different in his behavior as never before nor since. He would leave home very early each morning and return late each night without speaking to anyone or responding to anyone's queries. Obviously the "secret meetings" continued in great seriousness (an understatement of grossness). The presence and actions of "aliens" during this time was most certainly a "shocker" to Mr. Kissinger, who was dedicated under threat of death if he divulged information. His marriage did not survive this period of time.
아, 이야기가 복잡해지는데요; 키신저씨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듯 그의 행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거나 누구의 질문에 응하지 않고 매일 아침 매우 일찍 집을 떠날 것이며 그리고 밥 늦게 돌아올 것입니다. 분명히 그 “비밀회의”는 매우 심각하게 계속되었습니다 (지겨운 사람이라는 것은 절제된 표현이지요). 이 시기에 “외계인들”의 존재와 활동은 키신저씨를 가장 확실히 오싹 놀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정보를 폭로한다면 죽음의 위협 하에 놓입니다. 그의 결혼생활은 이 시기에 살아남지 못했을 테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