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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ument to follow is translated from scrolls which were brought forth in thy year nineteenth hundred plus sixty three by a Catholic priest of Greek heritage. The writings were recorded, mostly at my side. The scrolls were preserved as well as was possible at that time and hidden beneath flat stones within the tomb in which I was placed. The priest will remain without name in protection of any heirs remaining from his household lineage. These daring few are not of thy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families are even more in jeopardy in the part of the world in which they resided or now reside. He requested security and secrecy at the time of bringing them forth and we shall continue to honor that request until such time all is safety.
다음의 문서는 그리스화한 유대인 출신의 한 천주교 사제에 의해 1963년에 폭로되었던 두루마리(복음서)들로부터 번역되었습니다. 그 기록물은 주로 나의 관점에서 기록되었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그 당시 가능했던 (방법으로) 보관되었으며 내가 놓였던 무덤 속의 평평한 돌 밑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 사제는 그의 혈육으로 살아남을 어떤 후손이라도 보호하기 위해 이름 없이 남을 것입니다. 그대의 USA와 가족이 행하지 않은 극히 드문 이 용감한 행동은 그들이 존재했거나 지금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더욱 위태롭기조차 합니다. 그는 그 두루마리들을 내놓을 때 비밀유지와 안전을 요청했으며 우리는 모두가 안전할 때까지 삼가 그러한 요청을 계속하는 바입니다.
Judas Iscarioth was a beloved disciple of myself. He has been falsely deprecated as the betrayer of myself for lo, these two thousand years, although this precious one was not connected in any way with the betrayal. The heinous deed of betrayal was actually executed by one of the house IHARIOTH---JUDA.*역자주; 지구에는 성경이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읽혀지고 있지만, 그 성경의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합니다./ 성경 왜곡의 역사/바트 어만
유다 이스카리옷은 나의 제자 중 가장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그(유다 이스카리옷)는 배신행위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랑스러운 존재였으나, 나를 배신한 자로 무려 2000년 동안 부당하게 비난 받아 왔습니다. 가증스러운 배신행위는 실제로는 이하리옷IHARIOTH 집안의 유다JUDA가 저질렀습니다.
The still reigning orthodox and conservative clergy and their misled followers may well try to deny, destroy, and accuse as untrue, the text which will be presented, with all possible means, just as they have with many other documents which testified to the actual truth (reference to the books of HENOCH and JEZIHRA, etc). Never heard of them? Of course ye have not -- but if ye dig ye shall find of them, for they have been purposely preserved in duplication for the originals have been destroyed that you never hear of them. These aforementioned books were originally placed within the covers of the Holy Bible of which ye dally, then removed intentionally for they were "too truthful". This was done intentionally to preserve the threatened, misleading, false teachings as presented by Earth doctrine hierarchy. Every effort will be put forth to pull this document from publication and circulation--news flash;;;; IT WILL NOT WORK THIS TIME.
아직도 군림하는 그리스 정교회의 보수적인 성직자들과 그들의 현혹된 추종자들은, 마치 그들이 실제의 진실로 증명된 많은 다른 문서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가능한 수단으로, 제출될 그 원문이 허위라며 부정하고 파기하고 소실시키려 할지도 모릅니다 (HENOCH와 JEZIHRA 등의 책을 참조하여서). 그 책들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결코 없다고요? 물론 그렇겠지요 -- 그러나 그대들이 조사하면 그것들을 찾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그것들에 대하여 결코 알아듣지 못 하는 원본들이 파기될 것에 대비하여 일부러 복사해 두었으니까요. 앞에서 말한 이 책들은 처음에는 그대들이 가지고 놀았던 성경Holy Bible의 표지 사이에 두었는데, 그것들이 “너무 진실”하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없앴습니다. 그것은 지구의 교의 체계에 의해 나타났듯이 협박하고, 현혹시키고, 부실한 교육을 유지하기 위하여 고의로 행해졌습니다. 이 문서를 출판하고 유포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할 것입니다--급한 뉴스를 전합니다;;;;그것이 이 시대에는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Pressure has been placed upon the first editor of the text from many facets, and he has been persecuted and fears assassination fulfillment as three major attempts at such in the year, 1975, were almost successful. This even with witnesses present.
그 원문의 첫 편집자에게 여러 가지로 압력이 가해졌고, 또 그는 괴롭힘을 당했으며 1975년에는 거의 성공할 뻔 했던 세 번의 암살시도로 두려워했습니다. 그것을 본 목격자까지 생겼습니다.
Steps are long underway by police, authorities, prosecutors, judges and courts, as well as a media defamation of character on a wide scale basis, to destroy this material. Of course it cannot succeed in nor harm the truth of the text in one iota. The cunning agents charged with this assignment shall most certainly proceed with utmost caution and skill, and with much intrigue in order that the text will be denounced, regarded as a lie and destroyed, as was also the case after the publication of other texts: THE ORIGINAL, HOWEVER, WERE, AND ARE, INCLUDED IN THE VATICAN'S LIBRARY IN ROME. SO BE IT.
이 문서를 파기하기 위해, 매스컴(을 동원하여) 전방위적으로 인격에 대한 비방을 가할 뿐만 아니라, 경찰, 관헌, 검찰, 재판관, 의회에 의해 (사태 처리를 위한 후속) 조처가 오래 진행됩니다. 물론 그것은 원문의 진실을 조금이라도 해침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 임무를 맡은 교활한 정부의 관리들은 그 원문이 거짓이라 주목 받고 공공연히 비난 받아서 파기되도록 하라는 명령 속에서 극도로 조심스럽게 또 능숙하게, 그리고 많은 음모를 꾸미며, 매우 확실히 처리하여야 합니다. 다른 문서들의 출판 후 또한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원본은 로마에 있는 바티칸의 도서관에 포함되어 있었고, 또 (현재도)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YE HAVE JUST HAD THE SHROUD OF TURIN REJECTED AS UNTRUTH---AH, SO? IT WAS IN THE SAME TOMB WITHIN WHICH THE SCROLLS HEREIN WRITTEN WERE ALSO PRESERVED AND PRESENTED! AT ONE AND THE SAME TIME! ***
*** 그대들은 허위라고 거절한 ‘튜린의 세마포’를 갖고 있지요---안 그래요? 그것은 여기 기록된 두루마리들이 또한 보관되었다가 나타난 같은 무덤 안에 있었습니다. 같은 한 시기에! ***
(*역자주; 위에 나온 'The Shroud of Turin'을 알아봅니다. )
THE SHROUD OF TURIN
(튜린의 세마포)
출처:(발췌) 사이트명 -> '안티예수' (* <- 웹주소가 입력이 되지 않아서 사이트명을 씁니다.)
[마가 복음 15:43] "그 스스로 천국의 도래를 기다리던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자가 와서 예수의 시체를 요구 하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니..."
[요한복음 20: 5] 무덤에 이르러 " 구부려 세마포가 놓인 것을 보니..."
긴 세월 침묵 끝에, 프랑스의 작은 도시 "리레이"의 한 작은 성당에, 소중히 보관된 세마포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다. AD 1350년 경의 일. 후에 이탈리아의 "사보이" 왕실의 후원 아래 "투린"으로 옮겨졌으며, 성당 측은 관람을 허용하였고, 관객이 폭주하였다.
1898년 현지 시의원 "피아"가 처음으로 세마포의 사진을 찍었다. 깜깜한 현상실에서 필름의 음영이 서서히 드러나자, 세마포에서는, 한 사람의 얼굴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피아"는 자신이 예수의 얼굴을 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1978년 교황청은 미국, 이태리, 스위스의 20여 과학자들에게 조사를 허용하였다. X 레이, 자외선 검사, 화학 물질 분석을 토대로 하여, 과학자들은 세마포가 인간의 육체와 맞닿았던 흔적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마포의 핏자국이 실제 진짜 피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1988년 이번에는 세마포의 한 귀퉁이를 짤라서 스위스, 영국, 미국의 과학자에게 더 세밀한 분석을 의뢰했다. 세 군데 연구 기관은 각각 독립적으로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들 모두가 세마포의 기원이 1260년에서 1390년인 것을 밝혀냈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탄소 14 함유 량은 일정하지만, 죽는 순간부터, 일관된 방식으로 감소한다는 원리를 이용해 세마포의 연대를 밝힐 수 있었다. 이 연대는 세마포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바로 그 시기와 일치 한다.
조사에 참가했던 과학자들의 언급을 보면: "....이 세마포가 중세 시대 것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잡았다." ; "누구든 이 세마포가 진짜라고 생각 하는 사람은,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일 것이다."
그 후에도 계속 논란이 많았다. 1532년 화재 시 세마포의 부분이 불에 그슬린 적이 있는데, 이 영향으로 탄소 14 연대 측정에 오차가 있다는 등등... 하지만 분석에 쓰여진 샘플은 불에 그슬린 부분도 아니었고, 그랬다 해도 아무 영향이 없는 것으로 판정 났다. 과학자들이 시꺼멓게 타다 남은 숱 검댕이의 연대도 정확히 측정해내는 것을 상기하라. 이 세마포가 인간이 그린 예술품이며, 예수 실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은, 당시 추기경의 입을 빌림으로써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1389 년 프랑스 추기경 "삐에르 디아시스"는 당시의 로마 교황에게 한 편지를 보냈고 그는 여기서 이 세마포가 "모조품"이며 "예수의 세마포로 공식 인정한 적이 없는데도, 세간의 설이 분분하여 잡음이 일고.." 라고 불평하고 있으며 그의 전임자가 "그것은 인간의 기술로 교묘히 그려낸 작품"임을 주지시켰었다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