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14권, 가이아나, 존스타운 사건의 실체
Results 1 to 2 of 3

제목: 제014권, 가이아나, 존스타운 사건의 실체

Threaded View

Previous Post Previous Post   Next Post Next Post
  1. #1

    Default 제014권, 가이아나, 존스타운 사건의 실체

    진짜’ 가이아나 이야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당신들의 연대상, 1976년, 미국과 러시아는 제 3차 세계 대전이자, 제 1차 핵 전쟁 준비라는 ‘일급 비밀’을 둘러싸고, 서로간의 암투로 여념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1976년 여름, 당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수중 미사일 위기[Underwater Missile Crisis]’가 발발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이 일은 전 미국에 걸친, 말 그대로, 수천 곳에 설치되어 있던 무기들을 이용한, ‘전면적인 핵 방해행위[wholesale nuclear sabotage]’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따로 구체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이 무기들 가운데에는, 초대형 댐과 저수지들을 날려버릴 수 있는 메머드급 수소 폭탄에서부터, 러시아인들이 ‘미니핵폭탄[micronukes]’이라고 부르던 작은 핵 폭파 장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때때로 러시아인들은, 미국 전체에 대한 전면적 핵폭발 이전의 일종의 경고조치로서, 이 미니핵폭탄들을 터뜨리곤 해 왔던 것입니다. 여전히 편하고 아늑하기만 해서, 사람들을 ‘흔들어 깨울’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겠습니까?

    1977년 9월, 이 비밀 전쟁은 결정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역시나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일로, 우주 공간 상에서 펼쳐졌던 ‘하비스트 문(추석 달) 전투[Battle of the Harvest Moon]’에서, 미국의 비밀 통치자들은 예정된 핵전쟁을 치뤄 내기 위해 꼭 필요했던 ‘에이스 카드’를 그만 잃어버렸습니다. 충격적인 반전이기도 했는데, 러시아인들은 달의 코페르니쿠스 크레이터[Copernicus Crater] 내에 있던, 미국의 비밀 빔무기[beam-weapons] 기지(그렇습니다. 거기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를 궤멸시켰던 것입니다. 그 때 이후로, 러시아는 우주 공간 상에서, 군사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 잠깐만 산수 문제 하나 검토해 보기로 합시다. 대략 1975년부터 1990년(1990년 4월 30일 구술?역주)에 이르기까지라,,?음,,, 그럼 이러한 국면이 15년간 계속되어 온 셈인가요? 당신들 그동안 러시아인들이 우주 공간에서 뭘 해 왔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우리는 이 모든 주제들을 보다 면밀히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가이아나[Guyana] 사건은 ‘종교적인 설정’ 속에 발생했던 일로서, 이 저널 상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이야기들과 어울려 맞아 들어가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 일이 있기 전, 러시아와 미국은, 양쪽 모두에 있어서, 저마다의 리더십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먼저 러시아에서는, 1917년 이후로 계속 권력을 쥐어 왔던, 원래의 통치 세력들인 무신론의 볼셰비키들이, 60년도 넘게 지속되어 왔던 내부적 투쟁의 결과로, 마침내 전복되고 말았습니다. 볼셰비키들을 악의 화신으로 간주하던, 한 기독교파 소속의, 일군의 토착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강력한 세력이 크렘린[the Kremlin]의 절대 통치권을 거머쥐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볼셰비키들은 러시아에서 쫓겨났고, 이들 대부분은 미국으로 날아들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들은 이미 미국에서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많은 볼셰비키들에 합류했고, 양국 볼셰비키들의 규합 세력은, 그 때까지 ‘제 3세대 록펠러 형제들[the third generation Rockfeller brothers]’로 구성된 ‘비밀 동맹[Secret Allies]’이 휘둘러 오던 권력을, 점차적으로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볼셰비키의 권력이 점점 더 커져 나가자, 이 ‘사탄의 열매[the Satanic fruits]’는 점점 더 눈에 두드러지게 되었습니다.

    1978년 4월에는, 백 명도 넘는 무고한 시민들이 고의적으로 위험에 처하게 된 일도 있었는데, 이는 ‘어떤 비밀 임무[an intelligence mission]’과 연루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대한항공 902기와 관련된 사건으로, 이 비행기는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러시아 영공으로 침입해 들어가는 바람에 피격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한항공 여객기 사건은 전혀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고, 무고한 승객들에 대한 ‘살해 위협’이 정작 이 사건의 핵심 요소였습니다. 사실, 러시아 전투기들이 이 보잉 707기(KAL 902기)를 공중에서 폭파시키는 것이, 실제 벌어졌던 일처럼, 소수의 사상자만을 내며 지상으로 끌어 내리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미국에서 볼셰비키들의 권력은 점점 더 강화되어 갔고, 이와 함께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해만 갔습니다. 가이아나 사건에서는 단지 백 여명이 아니라, 천 여명의 목숨이 걸려 있었는데, 결국엔 이들을 죽이는 쪽으로 일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도 ‘새어 나가게’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이아나, 존스타운[Jonestown, Guyana]에서의 이 기괴한 비극은, 만약 볼셰비즘을 비롯한 다른 몇몇 카르텔 세력들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향후 전 미국에 걸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지에 대한 어렴풋한 전조를 보여주는 사례였던 것입니다. 볼셰비키들의 사고 패턴은 거의 정신분열적[schizophrenic]이고, 악마주의적[Satanic]이며, ‘옳음’과 ‘그름’ 사이의 분별력을 거의 상실한 듯한 양상을 띱니다.?또는 최소한 “옳은 행위”라는 가면을 쓴 채로 무슨 일이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경향들이 무분별하게 허용되는 가운데 볼셰비키들은 권력을 쥐어 왔고, 그 결과로서 이는 사회 전체에 참담한 비극을 안겨 주어 온 것입니다.

    살해’와 ‘자살’이라는 행위들이 거의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는 스케일 상에서 발생합니다. 75년 전 볼셰비키들이 러시아에서 정권을 잡을 때의 상황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볼셰비키들은 미국을 차지하기 위해서 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바로 당신들의 코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중입니다.


    존스타운[Jonestown]의 군사적 목적


    그렇습니다. 나는 “군사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나는 당신들에게 레오 J. 라이언 하원의원[Leo J. Ryan, Congressman]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도 알려줄 것입니다. 가이아나 비극에 관한 ‘무대 설정’은 이미 1974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해에, 바로 그 자리에 가이아나 미사일 기지가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던 것입니다. 이 뉴스는 전 미국에 걸쳐 라디오 방송을 한 번 탔지만, 즉시 차단되었고, 마치 없었던 일처럼 간주되었습니다. 이게 그 해 6월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0월에 와서, 몇몇 ‘용감한 발설자들’에 의해, 이 사실이 새롭게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즉시 뉴스 전파를 멈추라는 위협이 또 들어 왔고,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이라는 협박도 뒤따랐습니다.

    당시 알려졌던 뉴스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관련 문제에 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에 따르자면, 가이아나 공화국[the Republic of Guyana](남미의 베네주엘라[Venezuela] 옆에 위치)은 또 하나의 쿠바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곳에 배치되어 있는 핵미사일들은 파나마 운하의 가툰 갑문[the Gatun Locks of the Panama Canal]과 미국의 여러 도시들을 조준하고 있다.”

    물론, 당시 “왕조[Dynasty]”(록펠러 가문을 의미?역주)와 함께 ‘춤을 추고 있던’ 미국 정부는 이 사실의 진상을 조사해 보는 일조차 거부했습니다.?그들이 왜 그랬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이를 설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경고는 종종 다시 등장하였고, 몇몇 시민들은 필요한 정보를 얻어보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직면해야 했던 것은, 대개, “벽보고 이야기하는 듯한 침묵”, “이중 발언” 그리고 “부인” 밖엔 없었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전체 이야기 자체를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 몇몇 통찰력이 있는 자들은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 누가 더 옳은 판단을 내렸던 것 같습니까?


    플롯’을 이해하려면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합니다.


    존스타운[Jonestown]에서의 비극으로 그 절정을 맞게 되는, 이 이야기의 발단은, 실상, 1965년도에 시작되었습니다. 가이아나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인 영국령 가이아나[British Guiana]였다가, 새롭게 독립을 맞이한 나라였습니다.

    그 당시, ‘비밀 록펠러/소비에트 동맹[the secret Rockefeller/Soviet alliance]’은 그들간 동맹관계의 정점에 있었고, 장기에 걸친 제휴 계획[joint plan]이기도 한, ‘통제된 핵 전쟁[a controlled Nuclear War]’ 계획은 본 궤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양쪽 모두는 서로서로 궁극적인 ‘배반[double-cross]’을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건 당시로서는 아직 나중에야 있을 일이었습니다. 미국 측의 비용 부담을 통해, 러시아 쪽의 힘을 의도적으로 키우는 것은, ‘세계 정부와 세계 지배[World Government and conquest]’를 향한 그들 간의 제휴 계획의 일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the Cuban Missile Crisis]는 그들의 프로그램에 일시적인 ‘장애[monkey wrench]’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하여, 쿠바의 핵무장을 막았던 것입니다. : 결국 이 일로 인해, 그리고 다른 몇 가지 “부주의한 행동들[indiscretions]”로 인해, 그는 겨우 1년 정도 지난 후, 달라스[Dallas]에서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

    케네디의 후임자였던 린든 존슨[Lyndon Johnson]은 ‘시나리오[the script]’를 주의깊게 준수할 것임을 보다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데, 쿠바 사태를 보면서, 소련은 카리브해 지역에 또 다른 전진 배치 기지가 하나 더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쿠바에서의 미사일 발사 이전에, 전략적 목적의 기지를 하나 정도 더 보유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곳으로 가이아나가 선택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는 막시스트[a Marxist]인 포브스 번햄[forbes Burnham]이 이 나라의 수상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 주었습니다. 그에 대한 답례로, 체이스 맨하탄 은행[the Chase Manhattan Bank]은 가이아나 공화국의 재정 담당 은행이 되었는데, 이는 록펠러 가문이 가이아나산 금에 접근하는 일을 용이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한편, 이러한 모든 일들의 순조로운 진행을 도왔던, 또 한가지 주요 요소는,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미 공군 기지인 앳킨슨 필드[Atkinson Field]를 가이아나 정부 측에 넘겨주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이 수 십년간 보유해 온 기지에 대한 통제권이, 적절한 구실도 없이, 하루 아침에 포기되었던 것입니다. 앳킨슨 필드는 가이아나의 수도 조지타운[Georgetown]의 남쪽에 위치해 있던 것으로, 이 후, 테메리 에어필드[Temehri Airfield]로 재명명되었습니다. 이 비행장[airfield]은 나중에 존스타운 사건이 있은 후, 미국 헬리콥터들을 이용하여, 시신들을 미국으로 공수하는 데에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테메리 에어필드를 막시스트 국가인 가이아나에 넘겨 주었을 때, 그는 실로 러시아 측에 커다란 선물 하나를 안겨 준 셈이었습니다. 테메리 에어필드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비행장이기도 한데, 실제로 뉴욕 최대 공항인 존 F. 케네디 공항보다도 더 큽니다. 그리고 그 위치는 쿠바 군 병력과 물자들을 아프리카 지역으로 실어 나르는 데에도 아주 이상적인 곳입니다.

    결과적으로 록펠러 가문을 대신해서 행한 존슨의 행동은, 아프리카를 잇는 중요한 병참 요충지를 미국으로부터 강탈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쿠바 병력이 원활하게 드나드는 관문을 만들어 주기도 한 셈이었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되기도 했던 일로, 앙골라[Angola]와 다른 아프리카 지역에 쿠바 병력이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 이에 따른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이 후 수년간에 걸쳐, 가이아나에서의 러시아 군사 작전들은, 테메리 에어필드를 부근으로 해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74년, 그들은 이 비행장을 빙 둘러싸는 지역에 미사일들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두 해 동안, 이 곳의 미사일들을 이동시켜, 조지타운[Georgetown]시 서쪽에 위치한 격리된 미사일 단지[missile complex]에 배치했습니다.

    이 새로운 지역에서는, 미사일들이, 직경 약 30마일에 이르는 지역에 산재된 형태로, 배치되었습니다. 그 대략적인 중심 지역에 명령 및 통제 시설이 있었고, 이 곳은 러시아 지휘관에 의해 통제되었습니다. ‘플롯’은 점점 더 탄탄해져 갔던 것입니다.

    미사일 재배치가 완료되었을 때, 이 새로운 미사일 단지는 테메리 에어필드로부터 북서방향으로 7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그 중심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으로부터 대략 70마일 정도 더 북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이스라엘식의 키부츠[Israeli-type kibbutz] 형태를 띠었던, 존스타운 인민 사원 단지[the Jonestown Peoples Temple complex]가 위치해 있었던 것입니다. 즉, 미사일 단지는 존스타운 공동체[the Jonestown commune]와 테메리 에어필드 중간 쯤에 있었던 셈입니다. 친구들이여, 인민 사원 키부츠[the Peoples Temple kibbutz]가 미사일 단지에 가까이 위치해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인민 사원의 기원


    처음 인민 사원(기독교계 종교단체?역주)이 생겨난 것은 1950년대로,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단체는 정부 음모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경, 미국 정보 공동체 쪽에서 동원한 ‘몇몇 요원들[certain elements]’이 이 곳에 침투해 들어가, 인민사원을 전복시켰던 것입니다. ‘록펠러 형제들’이 늘 견지해 온 표준적인 행동 지침이 있다면, 그건 일군의 권력을 쥐고 있는 세력[faction]만을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반대세력과 스파이들도 함께 지원해 주는 것이었습니다.?어느 누가 “공짜” 자금과 금전적 후원을 마다하겠습니까? 이런 방식을 통해서, 적어도 이론상으로, 그들은 항상, 누군가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자가 발생하면, 언제라도 그 자를 제거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들 가운데 누구라도 그들의 책략에 넘어가서 ‘우리의 작업’을 망치지 않길 바란다면, 부디 이 교훈을 잘 새겨 두십시오.

    가이아나에 있어서, 록펠러 형제들은, 그들 자신의 자금을 통해 권력을 손에 쥐어 줬던, 포브스 번햄[Forbes Burnham] 수상에 대한 견제책으로, 인민 사원이라는 도구를 이용하려 했던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CIA의 조율 아래에 있었던, 미국 정보 공동체 내부의 ‘몇몇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 일을 성취해 내는 방법을 찾는 임무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여러가지 옵션들을 평가해 본 결과, 인민 사원이 이상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 단체의 리더인 짐 존스[Jim Jones]에 대한 심리상태 진단 기록을 보면, 그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 통치자들[the Unseen Rulers]’의 막강한 도구로 전환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통제되는 주요 언론매체들을 통해 보도된 것과는 달리, 짐 존스는 타고난 유태인으로, 그는 항상 키부츠 스타일의 조직이 이상적인 지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사고’는 의식적, 무의식적 ‘요소들’ 간의 결합으로 생겨난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의식적인 수준’에서는, 돈과 막강한 정치적 지지 세력들이 그의 이상 실현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 한편, ‘무의식적인 수준’에서는, 심리학적 프로그래밍 기술[the technique of psychological programming](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다음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이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점차적으로 짐 존스는 자기 자신의 인격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갔고, 점점 ‘당신들의 보이지 않는 통치자들’이 만들어 내고 싶어 했던 짐 존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은 불가피하게, 짐 존스라는 자에게 엄청난 내부적 갈등들을 야기시켰고, 결국 이 자를 문제성을 띤 위험한 인물로 바꿔 놓았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자들이여, 이것이 정확히 그에게 발생했던 일입니다.


    행동 변화


    1973년에 이르러, 존스의 행동 변화는 그의 친구들과 그를 따르는 자들에 의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반쯤 의식을 가진’, 죽음을 부르는 인물로 변해 있었고, 이 무렵 ‘음모’는 한창 진행 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해에, 비록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를 따랐지만, 인민 사원으로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자금은, 그로 하여금 가이아나 공화국, 존스타운에, 농장형태의 키부츠를 세우는 일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이아나는 엄격한 막시스트 경찰 국가였고, 포브스 번햄의 승인 없이는, 어느 누구도 공동체 스타일의 새로운 단체를 그 곳에서 출범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 그러나 데이비드 록펠러 쪽 요원들은 번햄이 필요로 하는 모든 보장을 다 들어 주었고, 존스가 만들려고 하는 공동체는 가이아나의 막시스트 환경에 멋지게 들어맞을 것이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포브스 번햄은 데이비드 록펠러를 상대로 ‘이중 속임수[double-crossing]’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정확히 록펠러가 염려했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록펠러에 협력하고 있었지만, 가이아나산 금괴들을 산지의 저장고[caves in the mountains]에 숨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이 사실을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를 알게 되었을 땐, 그보다 더 큰 문제, 즉 ‘러시아의 배신’이라는 사태가 발생한 상태였었고, 우선 더 심각한 문제를 처리했어야 했기에, 번햄에 대한 응징은 뒷전으로 밀렸던 것입니다.

    1974년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록펠러 형제들은 여전히 크렘린[Kremlin]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 이미 불길한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이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자신들의 오랜 동지들인 볼셰비키들이 전복되고 있는 일일 줄은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일은 계속 진행되어 갔습니다. : 오늘날 러시아로부터 가해지는 어떠한 위협에 대한 언급도 전적으로 부인되듯이, 당시 가이아나 미사일에 대한 어떠한 경고도 역시 전적으로 부인되었던 것입니다. 정부 대변인들은 대놓고 거짓말을 했고, 이에 대해 감히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자들을 ‘우스꽝스러운 바보들’로 만들어 버리곤 했습니다. 1970년대 말로 잡혀있던, ‘계획되고 예정된 핵전쟁’의 청사진이 잘 그려지고 있던 중이었는데, 대중이 이 계획을 알게 되어 일을 그르치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 그렇지만, 2년 후, ‘1976년 수중 미사일 위기[the Underwater Missile Crisis of 1976]’를 시작으로, 러시아의 미국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적 배신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이를 감추어 왔지만, 대부분의 당신들은 이 위기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당신들의 보이지 않는 통치자들’은 이 놀라운 사건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는데, 사실 그 최초의 목적은 크렘린의 지도자들과의 비밀 동맹을 원상회복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룰’을 깨고, 쿠바 미사일을 이슈화시켰던 일이 있었던 이 후로, 한 때, 실제로 그들은 이러한 관계회복 시도에 성공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그들은 계획 중이던 실제 전쟁 계획을 발전시켜 나감에 있어서, ‘우연성 계획들[contingency plans]’도 함께 가동시켜 나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
    Last edited by wave; 2009-07-31 at 23:42.

주제글 정보

Users Browsing this Thread

이 주제글은 현재 2명이 열람중입니다. (0명의 회원과 2명의 손님)

이 주제글의 글단추(태그)

글쓰기 규칙

  • 새 글 작성이 불가능함
  • 응답글 작성이 불가능함
  • 파일 첨부가 불가능함
  • 내 글 수정이 불가능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