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궁극의 미스터리


나는 우리가 이 장의 제목을 “환생, 계속되는 부분”이라고 붙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용어 그 자체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정작 중요한 점은 사실상 죽음과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모든 것은 영구적이고 무한합니다! 모든 것들 전부 다.

자연의 작용 방식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는 것은 당신들에게 있어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편,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일은 우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이, 당신들은 지금껏 너무나 많은 쓸데없는 내용들, 공포, 그리고 거짓 가르침들 속에서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거대한 떡갈나무와 그것이 맺는 도토리를 바라 보면서, 그 무한한 존재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생각[God’s thoughts]의 가장 놀라운 투사체’이자, ‘그 분 자신의 재창조[recreation of Himself]’이기도 한, 당신 자신의 ‘무한한 존재성’은 부인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들에게는 ‘더 많은 “분산[decentration]”(모든 것들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들의 통합을 통한 ‘일반화’[generalization through integration of all within all] 과정)을 통한 커다란 집중[great attention]’(명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들은 이에 대단히 “능숙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당신들이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복잡해 보이는 것을, 당신들 앞에 간단해 보이도록 설명해 줄 수 있을만한 역량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감히 당신들에게 단언하건대, 만약 당신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칙[God’s creative principle]’의 ‘기본적인 단순성[the basic simplicity]’을 마침내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단순성’이, 모든 것들 속에서 마찬가지로 발견된다는 사실을 당신들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에 따른 계몽[its illumining]은 당신을 변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항상 모든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간단한 것이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데, 특히 이를 ‘말[WORDS]’로서, 감각[SENSES]’에 기초한 채, 설명하자면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당신들에게 전하고 있는 이 놀라운 이야기는, 사실 ‘말’을 통해 ‘감각’적으로 설명될 수는 없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오직 ‘영감에 찬 마음[inspired Mind]’을 통해, ‘새로이 영감에 찬 마음[reinspired Mind]’으로 전해질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감각으로 느껴질 수 없습니다[It cannot be SENSED]. 이것은 ‘알아’져야만 하는 것입니다[It MUST be KNOWN]. 전해지는 이야기 자체가, 이어지는 글과 글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중심이 되는 내용은 ‘행간의 빈 공백들’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들이 감각에 의지한 채로, 먼저 주어진 글들을 읽은 다음에야, 비로소 ‘읽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글을 읽은 후에 잠시 휴식을 취해 보십시오. 종종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의 마음[your Mind]’이 읽은 글들 사이의 “빈 공백들[blank spaces]”을 ‘읽도록’ 도와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당신은, 단지 ‘기억하는 일’과 ‘모든 것들을 반복하는 일’밖에 모르는 ‘당신의 감각[your senses]’의 ‘진동하는 움직임[the vibrant motion]’ 대신에, ‘당신 의식[your Consciousness]’의 ‘정지된 빛[the still Light]’ 속에 잠든 채로 내재해 있던, ‘앎[the KNOWING]’을 깨워 일으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진동하는 감각들이 일으키는 ‘잡음’을 얼마간이라도 낮춰 보십시오. 그리고 그 잡음이 들려 오는 곳으로부터 ‘침묵’을 발견하려고 애써 보십시오. 이러한 방식으로 당신은, 지금 여기서 다루어지는 미스터리, 말하자면, 여러 페이지에 걸쳐, 단계별로, 한번에 한가지씩 설명해 가면서, 가능한 한, 가장 쉬운 방식으로, 당신에게 제시되고 있는, 이 위대한 미스터리를, 혼자서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최대한 쉽게 설명해야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당신이 접하게 될 내용은, 전혀 새로운 생각들과 개념들, 전적으로 새로우며, 이상하게 보이기까지 할 것들이기에, 당신들이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낡고 원시적인 개념들을 버리려는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기존의 개념들은 당신의 감각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러한 개념들을 갖도록 속여 온 것들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감각이 가진 ‘왜곡 능력’을 초월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들로 구 개념들을 대체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감각이 여지껏 당신을 위해 마련해 온 세상과는, 전적으로 다른 세상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서, 당신은 당신의 삶을 단순화시킬 수 있을 것이고, 또 당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역량도 배가시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취지 속에서,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의 분리되지 않는 하나[His indivisible ONENESS]’를, 겉보기에 셀 수 없이 많은, ‘분리된 것들처럼 보이는 각각의 존재들[seemingly separate individual ONES]’로 분리해 내시는지, 그저 겉보기에만 그래 보일 뿐인, 그 ‘분리’를 어떻게 펼쳐 내시는 지에 대해서, 단계별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나님이 형체도 없고[formless], 변화하지도 않으며[unchanging], 측정할 수도 없고[unmeasurable], 어떠한 조건도 지워지지 않은[unconditioned], 전체적인 환상의 원천[Source of entire illusion]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the ONE]’로부터, 겉보기에 셀 수 없이 많은 변화와 다양한 조건들 속에 처해 있는, 복잡한 형태의, 보이는 ‘육체들[bodies]’을, 과연 어떻게 펼쳐 내시는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창조[Creation]’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의 형태만을 창조하십니다.


전기적으로 분리된 우주[the electrically-divided universe]’ 안에는, 오직 ‘하나의 분리된 육체[one divided body]’가 갖는 ‘하나의 분리된 형태[one divided form]’만이 존재할 따름입니다.—바로 그 단순한 하나의 형태가 ‘정육면체-구체[the cube-sphere]’입니다.(46페이지 그림A를 보십시오.) 구체는 ‘하나의 극화된 육체[the one polarized body]’의 ‘눈에 보이는 응축된 절반[the visible compressed half]’입니다. 정육면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확장된 절반[the invisible other expanded half]’으로, ‘차가운 공간[cold space]’의 ‘정적 제로 지점들[the static zeros]’을 통해 ‘뜨거운 구체들[hot spheres]’을 분리시키고, 고립시킵니다. (프린스턴[Princeton]씨, 나는 여기 이 설명들이 당신이 지난 주에 제기했던 대단히 사려깊고도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의문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르마[Dharma]가 타이핑하기까지,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깨달을)[KNOW]’ 수도 있었으면 합니다.—혹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책들을 전체 한 권으로 묶어서 가능한 한 빨리 내놓을 것이니까, 그 때까지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한가지 육체의 형태가, 이 우주 모든 곳에서의 ‘형성(만드는) 과정[the making]’과 ‘분해(되돌리는) 과정[the unmaking]’ 사이에 존재합니다. 눈에 보이는 구체가 진정한 구체로 완전히 만들어졌을 때, 그것의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절반 역시 완전한 정육면체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정육면체-구체 조합이 모든 육체들의 가장 기본적인 하나의 형태입니다. 당신 자신의 육체 역시, 그것이 형성 과정에 있든, 분해 과정에 있든, 전적으로 ‘정육면체-구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제비꽃이든, 장미든, 곤충이든, 코끼리든, 자동차든, 혹은 원양 어선이든 간에, 이 모든 것들의 ‘육체’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수천, 수만 가지의, 셀 수 없이 많은 형태들도, ‘정육면체-구체’라는 단순성 속에 결합되어 있는 ‘무수한 생각-고리들[the countless thought-rings]’로서, 이 속에서 그러한 개체들의 ‘복잡성’은 사라져 버립니다. 동물, 식물, 광물이 갖는 모든 형태들이 전부 이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거울을 통해 바라다 보는 당신 자신의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에, 당신의 육체가 ‘정육면체-구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런 설명은, 참 이해하기가 난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울 속에서, 당신은 팔과, 다리, 머리, 그리고 손과 발을 가진 당신의 육체를 봅니다. 한편, 당신의 육체가 모두 ‘원자들[atoms]’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면, 더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당신의 육체 구조가 갖는 패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한가지 종류의 삶’이 진행되는 동안 당신이 갖게 되는 무수히 많은 ‘생각들의 패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또 당신이 알고 있는 ‘한가지 종류의 육체’를 통해 표현되는 무수히 많은 ‘행동들의 패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진지하게 알아보려 한다면, 당신은 어쩌면, ‘정육면체-구체의 파동-장[the cube-sphere wave-field]’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창조의 기본 형태[the basic form of God’s Creation]’임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다른 형태들은 ‘진정한 정육면체-구체’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거나, 혹은 이 ‘진정한 정육면체-구체’로부터 떠나와서 부식해 가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모든 육체들은, 그것이 인간의 육체이든 그 밖의 어떤 것의 육체이든 간에, 물질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모든 것들이 ‘균형잡힌 짝[balanced mates]’을 이루었을 때, ‘진정한 정육면체 결정[crystallize in true cubes]’을 만들어 냅니다. 불균형을 이룬 짝들은 ‘뒤틀린 형태의 결정’, 혹은 ‘복잡한 형태의 결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정육면체-구체간의 상호 관계[the inter-relationship of the cube-sphere]’라는 지식 체계 속에, 실상, 살아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들, 달리 말해, 자신들의 육체가 우리의 감각 범위 너머로 떠나가 버린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들 사이의 ‘생각-전이[thought-transmission]’ 현상에 대한 답이 들어 있기도 합니다. 당신이 갖는 ‘생각-체들[thought-bodies]’이 당신에게 익숙한 당신의 ‘물리적인 육체’의 기본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깨닫게)[KNOW] 될 때, 당신은 ‘당신이 몹시 바라는 가능성[much-hoped-for possibility]’이 ‘당신의 이해 범위 안으로[within the range of your comprehension]’ 들어오게 되며, 나아가 이것이 ‘당신의 실행 역량 안으로[within your powers of practice]’ 들어올 수도 있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구체[the sphere]’는 ‘하나님의 생각[God’s thinking]’의 ‘응축적인 맥동[the concentrative pulsation]’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각의 빛[the light of God’s thinking]’이 ‘생각-체[thought-body]’가 형성될 수 있는 ‘정지 지점[a point of stillness]’ 주위로 모아질 수 있도록, ‘바깥쪽에서 안쪽으로의 응축’을 통한 집약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생성[generation]’이라고 알고 있는 ‘우주적 결과[universal effect]’의 원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집중이 되어 있는 ‘정지 지점[the still point]’이 ‘중력 중심점[a center of gravity]’입니다. 생성’은 ‘힘’을 배증시킵니다[GENERATION MULTIPLIES POWER].

‘정육면체[the cube]’는 ‘하나님의 생각[God’s thinking]’의 ‘분산적인 맥동[the decentrative pulsation]’의 결과입니다. 이것은 정육면체의 가장자리를 이루고 있는 정지면들 방향으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의 밀침’을 통해, 우리가 “방사[radiation]”라고 알고 있는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방사’는 ‘힘’을 분리시킵니다[RADIATION DIVIDES POWER].

생성[generation]’과 ‘방사[radiation]’는 ‘피스톤’의 반대되는 양 극점들로, ‘이 영구적으로 살아있는 하나님의 ‘이중 육체’[this eternally living dual body of God]’(이것은 당신의 ‘이중 육체’이기도 합니다.)의 ‘심장 박동’을 구동시키는 것입니다.이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주고 되돌려 줌[giving and regiving]’은, 작용과 반작용[action and reaction]’ 양쪽 모두에 걸쳐, ‘사랑의 원칙[the love principle]’을 현현해 냅니다.—두가지 중 한가지만이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 방향을 향한 ‘나선형 통로[spiral lanes]’를 따라 그 둘 사이에 끊임없이 지속되는 ‘상호교환[interchange]’은 당신에게 뜨거운 구체들이 만들어 내는 ‘백열의 빛[the incandescent light]’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정육면체-구체들의 ‘소용돌이치는 중심 지점들[vertical centers]’을 이루는, 한 가운데의 인접 영역에서, ‘양쪽이 서로 지나가려고 할 때 생기는 저항 마찰[the friction of resistance to the inter-passings of both]’로 인해 생기는 것입니다. 역으로, 나선형 방향 바깥쪽의 ‘넓어지는 통로[widening lanes]’상에서 발생하는, ‘이 마찰력의 방출[the release of that resistance]’은, 당신에게 파동-장[the wave-field]의 절반에 해당하는 정육면체의 ‘차가움[the cold]’과 ‘어둠[the dark]’을 보여 줍니다. 이 안에 이 우주의 ‘모든 분리된 육체들[every divided body]’이 포섭되어 있는 것입니다. 항상, ‘이 우주적 피스톤[the universal piston]’의 ‘하나님 쪽 끝부분[God’s end]’으로서 ‘제로 우주[the zero universe]’를, 그리고 이 우주적 피스톤의 ‘인간 쪽 끝부분[man’s end]’으로서 ‘움직이는 전기적 우주[the moving electric universe]’를 시각화시켜 보십시오.

당신이 자연의 그 무엇을 바라다 보든, 그것이 개짖는 소리이든, 나뭇가지나 나뭇잎이든,—혹은 나비 날개에 붙어 있는 한 점의 먼지이든,—초원의 풀이든, 혹은 그 풀을 뜯고 있는 사슴이든,—혹은 다양한 형태와 구성부분을 가진 당신의 육체이든, 당신 머리 위 머리카락에서부터, 손가락과 발가락 끝에 자라있는 손톱, 발톱들에 이르기까지,—모든 것들은 ‘정육면체-구체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그들의 가장 성숙한 상태인 균형점으로 나아가고 있거나, 또는 균형점에 도착한 상태이거나, 혹은 그 균형점으로부터 되돌아 나와, 저마다의 옥타브 파동들[octave waves]의 ‘역방향의 최대 진폭 지점[the amplitude reversal point]’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물론 ‘옥타브 파동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설명할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정육면체-구체’라는 이 ‘이중 육체[dual body]’는 삶을 표현해 내는 최대 성숙 지점을 향해 자라는 것으로, 당신의 육체가 삶을 표현해 내는 가장 성숙한 상태까지 계속 자라는 것이나 꼭 마찬가지입니다.—전체 우주의 모든 ‘육체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마다의 옥타브 파동 진폭상에서의 생성력[generative power]의 극대치까지 성숙한 후에는, 모든 것들은 그들이 생겨났던 ‘공간상의 육체[spatial body]’로 되돌아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당신들의 육체도 꼭 마찬가지로 그렇게 합니다. 그렇지만, 잘 기억하십시오. 이 ‘지구’와 ‘공간’은 당신들의 육체의 응축된 절반에게 “삶”을 주기 위하여, 자신들의 “죽음”을 표현해 내는 것입니다. 한편, 그런 다음, 당신들은 당신들의 육체의 확장된 절반으로 다시 되돌아 가게 되는데, 즉, 당신들은 ‘죽게’ 되는데, 이 때, 당신들의 “죽음”을 그들(지구와 공간)에게 건네주는 것이, 곧 그들에게 “삶”을 건네주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삶과 죽음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냐구요? 삶의 두가지 표현은, ‘움직임[ACTION]’과 ‘움직임으로부터의 쉼[REST from action]’으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다 적용되는 것인데, 그들이라고 해서 왜 그런 관점으로 생각해 보지 못한단 말입니까? 삶과 죽음을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법을 배우십시오.—시작과 끝이라는 개념 대신에, ‘상호교환의 연속성[interchanging continuity]’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십시오. 모든 육체들과 모든 육체들이 만들어 내는 모든 행위들, 즉 끝없이 ‘주고’, 끝없이 ‘되돌려 주는’ 행위들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는, 모든 육체들의 모든 행위들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의 원칙의 현현[the manifestation of the love principle]’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당신이 허공에 공을 던져 올린다면, 그 ‘빈 공간을 채움(충전시킴)[charging space]’을 통해 ‘삶’을 현현하는 셈이 되고, 그와 동시에 ‘지구를 그만큼 비워 버림(방전시킴)[discharging Earth]’으로서 ‘죽음’을 현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정확히 ‘공을 통해 지구로부터 확장될 수 있는 잠재력’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역으로, 그 공이 다시 지구로 낙하하게 될 때, 공은 자신의 육체를 한가지 상태에서 다른 한가지 상태로 바꾸게 되는 것인데, 이를 통해 공은 지구에게는 “삶”을 되돌려 주고, 공간에게는 “죽음”을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 역시 정확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 육체의 안쪽 절반은 바깥쪽 절반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육체의 보이는 절반의 “죽음”을 확장시켜, 당신 육체의 보이지 않는 절반에게 “삶”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항상 다음을 기억하십시오. 모든 창조 상태에 있는 모든 육체들은 ‘하나님의 응축적-분산적 생각[God’s concentrative-decentrative thinking]’의 기록체들[the recordings]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의 양쪽 맥동들[Both pulsations of God’s thinking]’은 모두 ‘창조적[creative]’입니다.—단지 한가지의 맥동만이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양쪽 모두가 ‘건설적[constructive]’인 것입니다. 한가지의 맥동은 보이는 육체들을 창조해 낼 수 있도록, 그 중심점을 향해,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응축을 가하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이들을 보이지 않도록 만들게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분산력을 더하는 것입니다. 양쪽 모두가 ‘삶’을 표현해 냅니다.—‘삶’과 ‘삶’이 상호교환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연속적인 생각의 양쪽 맥동들 속에는 어떠한 “죽음”도 어떠한 ‘파괴’도 없습니다.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변화는 연속적인 것입니다. 태양을 떠나 태양으로부터 뻗어져 나오는 광선들은 태양을 ‘비우게(방전시키게)’ 되지만, 그 똑같은 광선들이 지구로 모아질 때, 이들은 지구를 ‘삶’으로 ‘채우는(충전시키는)’ 것입니다. 어느 한 육체로부터의 ‘음성적 비움(방전)[negative discharge]’은 다른 육체들에게는 ‘양성적 채움(충전)[positive charge]’이 되는 것입니다. 삶은 연속적으로 흐르는 것입니다. 그 어떠한 죽음도 없습니다.


공간 상의 정육면체-구체들[The Cube-Spheres of Space]


당신들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 보면서, ‘정육면체-구체[the cube-sphere]’를 보다 잘 시각화시켜 볼 수 있습니다. 맑은 밤하늘에, 당신은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는데, 모두 정확한 구체들입니다.—물론 조금 늘어진 형태의 구체들도 있지만, 이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인 것입니다.—또한 이미 완성되었던 구체들이지만, 그 ‘반대되는 공간상의 형태[opposite spatial counterparts]’로 변형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별들 주위로는 검은색을 띤 빈 공간이 엄청난 규모로 확장되어 있음을 역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그 빈 공간들이 아무런 형태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아마 저마다 완벽한 구체를 띤 별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정육면체 형태’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가진 감각은 이들을 간파해 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마음[Your Mind]’은 ‘당신의 감각[your senses]’이 인지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어쩌면 ‘알도록[KNOW]’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궁극의 발견


내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되면, 이어서 설명하게 될 내용들을 당신들이 이해하는 데에 아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우주 공간 상에 떠있는 수백, 수천만 개도 넘는 별들이, 사고로 인해서건, 다른 이유 때문에서건 간에, 왜 서로 부딪쳐서 파괴되거나, 훼손되거나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 해 본 적이 없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자면, 이 우주에서 각각의 육체-쌍들(정육면체-구체들)[body-pair]을 둘러싸고, 경계 짓는 모든 파동-장들[wave-fields]은, 마치 정육면체가 6개의 평면들을 갖는 것처럼, 저마다 ‘제로 곡면율[zero curvature]’을 가진 보이지 않는 평면들로 인해 절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빛이 그 너머로 진행해 나아갈 때에는, 그 방향을 전환시키지 않고는 통과해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작용에 대한 반작용인 셈입니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의 방향전환, 적색에서 청색으로의 방향전환, 생성에서 방사로의 방향전환, 이 모든 방향전환들은 이 우주의 모든 파동-장들이 서로서로 균형 상태에 머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절연기제[the insulator]’로서, 그들의 중심태양들이 다른 태양들과 충돌하는 일을 막아주고, 또한 중심점을 가진 모든 천체들(육체들)[bodies]이 궤도를 변경시킬 때에도,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궤도를 가진 다른 천체들(육체들)과의 균형을 맞춰, 서로간에 조정하는 역할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늘의 천체들과 동일한 빛으로 된, 당신 자신의 이중-육체(정육면체-구체)[dual-body]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당신의 육체는 수십억개도 넘는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파동-장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파동-장들’은 ‘밀도를 갖는 물질[dense matter]’로 된 각각의 ‘미립자들[corpuscle]’과 이들을 둘러싼 일정한 공간의 대응체들[its surrounding spatial counterpart]을 함께 아우르는 영역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당신 육체 안의 이들 구체들과 타원체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입니까? 그 대답은 똑같습니다. 이 우주에서 가장 큰 별들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육체도 ‘미시적 파동-장들[microscopic wave-fields]’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구상의 모든 별들이 ‘창조의 개별적인 단위체들[individual unit of Creation]’이듯이, 당신 역시 ‘창조의 개별적인 단위체들’로서, 당신은 당신 안에 있는 수백만개의 ‘작은 개체들[little ones]’을 포섭하는 ‘당신 자신의 집합적인 장[your own collective field]’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신의 장 속에 있고, 당신이 책임지고 있는 이 작은 것들은, ‘당신의 욕구[your desire]’의 강도가 증대되는 정도에 따라 반응합니다.창조의 개별적인 단위체인 당신이 바로 ‘마음의 제로 우주[the zero universe of Mind]’ 상의 ‘욕구 지점[POINT OF DESIRE]’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당신의 영혼[your Soul]’이기도 한, ‘그 중심점[that centering point]’을 둘러싸고, 당신은 당신 욕구의 기록들을 만들어 나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당신의 이중-육체[your dual-body]’입니다. 이 이중-육체는 ‘불변의 제로 우주의 정지 지점[the stillness of the unchanging zero universe]’에 놓여 있는 당신에게 맞춰진 ‘파동-장’인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됩니다[Thus you become that which you think]. 당신의 ‘파동-장의 규모’는 당신의 ‘욕구 강도의 규모’입니다. 그 속에서 당신이 창조해 내는 당신 ‘육체의 패턴’은 당신이 갖는 ‘욕구의 기록[record of desires]’ 그대로인 것입니다. 당신의 육체는, 당신이라는 자가 수백만년도 넘는 시간에 걸쳐 전개되어 나오면서 표현해 온, ‘모든 욕구들의 전체 총계의 기록[the record of the sum total of the desire]’인 셈입니다. 당신은 결코 당신 욕구의 ‘패턴화된 기록[that patterned record]’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 육체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항상 당신의 육체를 갖습니다. 당신의 ‘감각[senses]’은 ‘당신이 사망한 기간[your death period]’ 동안 육체에 대한 ‘인식[awareness]’을 잃어버릴 수 있겠지만, 이건 단지 당신이 잠들었을 때와 마찬가지일 뿐이고, ‘당신의 의식적인 영혼[your conscious Soul]’은 결코 당신 육체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당신 의식 상의 욕구[desire in your Consciousness]’가 육체를 기억합니다.—육체를 재조합[reassemble]합니다. 부분, 부분별로 긴 세월에 걸친 욕구 패턴대로 재조합하는 것입니다. 마치, 떡갈나무의 씨앗에 중심을 두고 있는 ‘영혼의 욕구[desire of Soul]’가 동일한 패턴에 따라 떡갈나무를 재조합해 내듯이, 즉, 나뭇잎은 나뭇잎대로, 목재는 목재대로, 나무껍질은 나무껍질대로, 그 강도와 형태의 완전성을 재조합해 내듯이, 당신 역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꽃의 씨앗 속을 들여다 본다면, 그 안에서 당신은 꽃도, 그 식물의 어떤 부분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가장 배율이 높은 현미경을 통해서 보더라도, 나뭇잎도, 꽃의 색상도, 줄기도, 그 어떠한 징후도 발견할 수 없지만, 결국은 이러한 특성들이, 그 씨앗을 둘러싸고, 그 씨앗으로부터 뻗어 나와 조합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씨앗 안에는 어떠한 물질적인 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마음-욕구의 제로 우주[the zero universe of Mind-desire]’에 달린 문제입니다. 씨앗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은, 장미꽃이나 제비꽃이라는 ‘생각[the idea]’을 표현해 내는 ‘마음의 욕구 지점[point of desire of Mind]’입니다. ‘그 중심을 잡고 있는 영혼[that centering Soul]’ 주위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의 상태들[invisible states of motion]’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바로 화학자들에게는 “불활성 기체들[the inert gases]”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들입니다.

떡갈나무의 ‘육체’는 씨앗 안에 없지만, 떡갈나무에 대한 ‘생각[the IDEA]’은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곳에 계신 것입니다.—‘창조 전체에 대한 ‘생각’의 일부[part of the whole idea of Creation]’를 구현해 내려는 욕구를 갖고 계신, 창조주, 하나님[God, the Creator]께서, 그 떡갈나무 씨앗의 중심을 잡고 있는 ‘욕구 지점’ 상에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떡갈나무의 육체는 어디 있는 것입니까? 그건 어디로 간 것입니까? 그것은 떡갈나무의 ‘파동-장’의 또 다른 절반인, ‘보이지 않는 씨앗[the invisible seed]’ 안에 있습니다. 바로 그 안에서 떡갈나무의 보이는 절반은 그간 자신이 해온 ‘응축적 행위[concentrative action]’로부터의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시각 범위 밖에 벗어나 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욕구[desire of Mind]’가 응축된 형태의 육체로 자신의 욕구를 재응축시키게 될 때, ‘음성에서 양성으로의[from negative to positive]’ 방향 전환을 통해, 응축된 형태는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의 욕구’는 ‘파동-장의 정육면체[the cube of its wave-field]’의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마음의 욕구’는, 떡갈나무 ‘바깥쪽의 보이지 않는 육체[outer invisible body]’로부터, 떡갈나무가 갖는 모든 ‘패턴화된 양상’을 가져와, 떡갈나무 ‘안쪽의 보이는 육체[inner visible one]’를 표현해 내는 데에 있어서, ‘파동 지렛대의 받침점[the fulcrum of the wave lever]’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역으로, ‘마음의 욕구’가 분산될 때, 보이는 육체를 구성하는 ‘움직임의 모든 상태들[every state of motion]’은, ‘채움에서 비움으로(충전에서 방전으로)[from charging to discharging]’ 향하는, 또 다른 방향전환을 통해, 그 정육면체 상의 ‘보이지 않음[invisibility]’ 쪽으로, 원심성을 띠며 팽창하는 것입니다.

항상 다음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육체의 두 개의 반대되는 절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갖는 생각의 추[the pendulum of your thinking]’가 두 개의 반대되는 ‘궤적들’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신 육체의 한가지 절반은 “작용” 기간[“work” period]에 있고, 휴식을 위한 아주 짧은 시간(수면 시간)을 통해서 늘 새롭게 갱신됩니다. 반면, 당신 육체의 또 하나의 절반은, 작용 상태의 절반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완전한 갱신을 준비하기 위하여, “죽음 기간[the death period]”이라는 긴 휴식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다음 역시 잘 기억하십시오. 당신 육체의 ‘극성 전환’을 통해 당신의 보이는 육체를 재조합해 내려는 ‘욕구’는, 당신 안에 중심이 잡혀 있습니다. 이는 떡갈나무의 경우에도, ‘생각의 모든 다른 형태들[all other forms of IDEA]’의 경우에도, 다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God’s creative secrets]’이기도 한 이 같은 작용 방식을, 당신이 당신의 것으로 잘 ‘소화해’ 내게 되었을 때, 당신은 그 분이 하신 다음 말씀의 의미를 보다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보아라, 나는 모든 것 안에 있으며, 모든 것을 중심 잡노라,
또한 나는 모든 것 너머에 있으며, 모든 것을 통제 하노라.

For behold I am within all things, centering them,
and I am without all things, controlling them.

pp. 42-49



Violinio Germain, 비올리니오 저메인



피닉스 저널 제 36권, HUMAN, THE SCIENCE OF MAN : The Scientific Definition and Proof of God, and The Cosmic Order of The Universe, What is Creation and How It Came To Be, Pleiades Connection Vol. VII, 제 3-4장, pp. 29-49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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