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부터 음악은 인류에게 필수적이었습니다. 동물들조차
음악에 매료되고, 식물들도 음악을 들으면 더 빨리 성장합니다.
이렇듯 외부의 선율이 모든 생명체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
면, 내면에 있는 천상의 이 불가사의한 소리는 훨씬 더 매혹적이
고 은총과 축복으로 가득 찬 것이라 할 것입니다.
엄마의 자궁 속에 있는 태아는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그 안에
는 공기도 없고 햇빛도 없지만 태아는 전혀 걱정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태아가 모든 사랑과 지복과 힘의 원천인 내면의 경이로
운 소리와 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아는 이런 조건 속에서 놀
랄 만한 속도로 자랍니다.
만일 태어난 후에도 계속 이대로 자란다면 키가 하늘에 닿을 것
입니다. 그러나 태어난 다음에는 이 진동과의 연결이 끊어집니
다. 그래서 아기가 외부 세계를 처음 대할 때 우는 것입니다. 웃
으면서 태어나는 아기는 없습니다. 그것은 태아가 소리와 단절
될 때 상실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소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세속의 소리와 초세속적인 소리
가 바로 그것입니다. 세속의 소리는 우리의 감각을 즐겁게 해주
고 정신적 위안을 주는 반면, 초세속적인 소리는 우리를 신에게
데려다 줍니다.
칭하이 무상사/ 1987. 3. 24. 포모사 펑후
모든 종교의 경전에서 천상의 음악을 언급합니다. 이를테면 기
독교에서는 ‘말씀’이라 하고 힌두교에서는 ‘샤브드(shabd)’라
하며, <장자>에서는 ‘천상의 음악’, 그리고 <도덕경>에서는
‘도’라고 합니다. 이 천상의 음악은 신의 왕국에서 직접 오는 단
하나의 참된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우주적인 사랑과 위대한 지성의 언어입니다. 모든 가르
침은 침묵의 소리에서 나오고, 모든 언어는 이 우주적인 언어에
서 나옵니다. 그래서 이 길을 가는 높은 경지의 입문자들은 영혼
의 영역에 있는 모든 언어를 말합니다. 이것이 스승의 경지이며,
이렇게 신의 왕국의 언어에 통달한 자가 바로 스승이 됩니다.
그림자 같은 이 세상을 초월해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무소부
재하며 우리를 이 우주에서 가장 완전한 존재가 되게 하는 이 지
혜가 우리 모두 안에 있습니다. 단 우리가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다시 기억하기를 열망한다면 말입니다.
칭하이 무상사/ 1993. 5. 4. 독일 베를린
이 말씀이나 성스런 진동은 모든 종교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
리는 그것을 음(音)이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들은 천상의 음악,
로고스, 도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 안에서 진동하며
온 우주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 내면의 선율은 모든 상처를 치
유하고 모든 소원을 들어주며 속세의 모든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능함이고 전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소리로 만들
어졌고 이 소리와 접할 때 우리 마음에 평화와 만족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후에는 존재 그 자체가 변하고 인생
관이 엄청나게 좋은 방향으로 변합니다. 게다가 이 놀라운 진동
은 ‘원죄’나 ‘업’이라고 부르는 바람직하지 않은 흔적도 모두 씻
어 줍니다. 마치 거센 강물이 지저분한 쓰레기를 모두 쓸고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내면의 소리는 우주의 위대한 창조력입니다. 이것이 만물을
키우고 유지시킵니다. 바람 소리, 물소리, 배 소리 등 자연의 선
율 속에서 우리는 외부 세계로 화현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
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저급한 수준입니다. 이 물질 세계보다
더 높은 주파수로 진동하기 때문에 육신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보다 섬세하고 높은 소리가 있습니다. 이 높은 차원으로 가는 길
이 그 소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따라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높은 소리
를 듣고 높은 세계를 보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감각을 열고 개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내자인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스승은 앞
길을 훤히 아는 여행 가이드와 같습니다. 종교 경전은 마치 지도
처럼 이런 세계들에 대해 묘사만 하고 있으니 그 세계를 진정으
로 알려면 몸소 그곳에 가 봐야 합니다. 그때 안내자가 있으면
더욱 빠르고 안전합니다.
칭하이 무상사/ 1989. 5. 25. 미국 샌프란시스코
불경에서 말하기를, 부처는 오직 한 언어로만 이야기하는데 모
든 중생이 그 자신의 이해력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합니
다. 여기서 언어란 평범한 언어가 아니라 일종의 소리나 내면의
진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교신할 때도 쓸
수 있으며 부처가 중생과 교신할 때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 세상의 언어라고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부처의 지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언어로 말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물이나 이해 능력이
있는 저급한 존재들을 포함하여 모든 중생이 동시에 모든 언어
를 듣는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 언어는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도덕경>에서 노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름할
수 없는 이름인 도는 형용할 길이 없다. 귀 없이도 들을 수 있고,
눈 없이도 볼 수 있으며, 감각기관 없이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도이다."
이 말씀, 소리, 진동은 우주의 창조적인 힘입니다. 경전을 자세
히 들여다보면 모든 경전에서 이 소리, 이른바 내면의 음악에 대
해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칭하이 무상사/ 1989. 5. 27. 미국 산호세
지금 어떻게든 이 말씀이나 음류와 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신
의 소재를 알고 신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
과 접하고 있다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이 내면의 진동과 접하고
나면 생활이 개선됩니다. 또 우리가 예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
을 알게 되고,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이해하며,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성취합니다. 우리는 점
점 더 위대해져 마침내는 전능해집니다. 점점 더 유능해지고 확
장되어 끝내는 무소부재해집니다. 그때 우리는 신과 하나가 되
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음류나 말씀을 접한 사람은 모두 자신의 삶에서 큰 변화를 체
험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이 음류, 관음법문과 많이 접할수록 우리는 더욱 현명해지고 성
스러워지며 고뇌와 집착, 분노, 증오심, 욕정에서 점차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더욱 자유롭고 평온하고 사랑과 지혜로 충만하게 되고
안락한 생활과 더불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갖게 됩니다. 우
리는 영적으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면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발전합니다. 우리는 예전과는 크게 다르다고 느낍
니다.
우리 내면에 있는 이 위대한 보물을 빈약한 세속의 언어로 묘사
해야 하니 그때마다 이런 부족한 설명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
을 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나는 어떻게든 이 위대한 지혜의 일
부나마 옮기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흥미를 갖고
스스로 발견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고 나면 여러분은 말도
필요 없이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칭하이 무상사/ 1987. 3. 24. 포모사 펑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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