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38권, 1991년 8월, 가짜 쿠데타와 반쿠데타
Results 1 to 1 of 1

제목: 제038권, 1991년 8월, 가짜 쿠데타와 반쿠데타

  1. #1

    Default 제038권, 1991년 8월, 가짜 쿠데타와 반쿠데타

    소련의 가짜 쿠데타


    ……


    1991년 8월 19일 아름다운 월요일 아침,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정부는, 당시 돌아가던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군부대, KGB, 그리고 소련 공산당 “강경파 세력[hardliners]”의 쿠데타로 표면상 전복되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삼일만에 쿠데타 세력은 무너졌고, 8명의 주동자들은 체포되었으며, 고르바초프는 다시 정권을 잡았노라고 알려졌습니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의 정치 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련 공산당과 세계 유수의 언론매체들은 이 쿠데타와 이어진 반쿠데타의 실제성(아무리 우둔한 자[정치인들과 거짓말쟁이들을 제외하고]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조잡하고 엉터리 같은 일임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에 대해서 목청을 높였지만, 쿠데타가 실제로 발생했다는 결론을 유도하게끔 만들어준 전체적인 사건들 속에서, 몇가지 아주 이상한 측면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미국과 세계의 언론 매체들은 8월 19일이 되기도 전에 이미 이전 몇일간에 걸쳐 다가올 쿠데타에 대해 경고를 했으며, 부시 대통령 자신은 이 쿠데타 소식을 듣고도, “대단한 관심을 표하거나 크게 놀라지 조차”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쿠데타를 기도하는 세력들이, 그들의 청사진에 따른 계획과 날짜를 미리 세계 언론을 통해 노출시키는 일이, 도대체 얼마나 자주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십니까? 서방의 정보기관들은 이 쿠데타에 대해서 이미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이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습니다.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공개적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이를 제지하거나 막아내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마치 부시 대통령처럼, 예정된 바캉스지로 떠났던 것입니다.

    2. 8명의 쿠데타 주동자들은 모두 고르바초프가 임명한 자들이었고, 또 고르바초프가 신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3. 주동자 중의 한 명인 겐나디 야나예프[Gennady Yanayev]는 자기자신을 단지 “잠정적으로 활동하는 대통령”이라고 칭했으며, “병”이 낫고 나면 고르바초프가 다시 권좌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자살 사건들” 가운데 그 어떤 사례도 실제로 밝혀진 것은 없었습니다. 당신들은 향후 어떤 순간에라도 이들의 놀라운 부활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4. 쿠데타 주동자들은 국내 및 국제 통신선들을 차단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그 어떤 쿠데타든, 혁명적인 전복기도이든 간에, 이것은 항상 행해지는 일입니다. 사실상, 고르바초프는 쿠데타로 인해 자신이 유폐상태에 머물게 된 기간 동안에도, 자기 아들을 시켜 바캉스 사진들을 찍곤 했으며, 언론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일도 한번도 제지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공항에 도착하는 장면을 연기하기로 되어있던 배우는 너무나도 엉성하게 고르바초프를 흉내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사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는데, 왜냐하면 당신들이 이런 터무니 없는 오류 정도는 간파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5. 쿠데타 주동자들은 언론을 통제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소련내 언론은 물론이고, 러시아에 정주해 있는 외국 언론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론사들은 쿠데타가 발생한 기간 내내, 국제 전화선에 대한 “완전한 접근권”을 가질 수 있었고, 심지어 이를 사용하도록 권장되기조차 했습니다. 언론사들은 어떠한 제반 시설들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소련인들은 이들에게 전화선들은 모두 다 열려있으니, 지체없이 사용하라고 말했습니다.

    6. 반쿠데타의 주도자들 가운데 하나였던 옐친[Yeltsin] 역시도 국제 전화선을 사용할 수 있었고, 쿠데타 기간 내내 그들 나름의 작전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7. “역사상 최대의 쿠데타이자 가장 중요한 쿠데타”가 벌어지는 동안, 정말로 황당하리만치 소수의 병력만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옐친에 대해 충성을 표했던 군대가, 국회 의사당 앞에서 옐친을 포위하는 일을 맡는데 보내졌습니다.

    8. 모든 공항들은 전부 다 열려 있었습니다.

    9. 국회의사당 건물에 공급되는 수도, 전기, 전화선, 그중 어떤 것도 단 한차례도 차단된 적이 없었습니다.

    10. 만약 이것이 실제 쿠데타였다면, KGB는 옐친, 고르바초프, 그리고 그밖의 다른 개혁 성향의 지도자들을 모조리 살해했을 것이었습니다. KGB라는 기관은 그들의 테러 전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렇게 좋은 사람들로 구성된 단체가 아닙니다. 당신들은 그들이 갑자기 모두 하나님을 만나기라도 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옐친을 체포하기 위한 그 어떤 시도도 행해진 바가 없지만, 쿠데타 주도 세력들은 고디얀[Godiyan]이라는 자 만큼은 체포했는데, 이 자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고르바초프의 적이었습니다.

    11. 쿠데타를 통해 사망한 자들은 모두 사고로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 일들은, 잠시동안 “사라져 있던” 몇몇 사람들과 기타의 사람들이, 그들이 한 일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게 미화된 채 열렸던 기쁨과 축하의 장이 펼쳐지고 난 후에야 일어났습니다. 친구들이여, 일반적으로 쿠데타란 참으로 무시무시한 일[dirty business]입니다. 만약 실제로 KGB가 개입되었더라면, 그 결과는 완전한 재앙이 되었을 것이며, 유사이래 최대규모의 유혈이 낭자한 사태를 낳았을 것입니다.

    쿠데타가 끝난 후, 소비에트 연방 조지아 공화국[Soviet Georgia]의 대통령은 앞에 나서서, 이 모든 일들을 총괄지휘했던 고르바초프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전체 소련 국민의 65%가 넘는 사람들이 이 쿠데타가 가짜일 것으로 믿었습니다. 심지어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Eduard Shevardnadze]조차도, “고르바초프가 이 쿠데타의 배후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누군가가 얻는 게임이었습니다?물론 그들은 얻었습니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완전한 비공개로 일을 진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데는 항상 일련의 이기적인 행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엄청난 일을 행한 자들은 자신들의 영리함에 대해 자랑하고 싶어서, 늘상 이에 대해 떠들고 다니게 되는 것입니다?이게 바로 악한 자들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만약 고르바초프가 반동분자들로부터 나라를 다시 구해내려 애쓰고, 또 헌법적 정통성을 되살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비춰지게 된다면, 국민들 사이에서의 그의 인기와 정당성은 더욱 높아질 터였습니다. 그렇지만, 쿠데타와 반쿠데타는 부산스런 소련 국민들을 잠재울 목적으로 행해졌던 것입니다--바로 생활 여건 향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를 보류시킬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쿠데타와 반쿠데타는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소련의 개혁/민주주의/글라스노스트[glasnost]/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의 신뢰성을 더 높여줄 수 있었고, 동시에, 외국의 차관 및 기술 원조를 더 많이 끌어 올 수 있었습니다. 세계를 쥐고 흔드는 “부시 일가”는 : “보라, 우리의 친구들이여, 고르바초프와 소련의 민주주의 세력들은 ‘강경파 세력이 쏜 총탄을 피했으며’, 앞으로 소련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우고 개혁이 보다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희망하는 한, 이제 우리는 그들을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게 되었다?공산주의는 사망했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쿠데타는 서방세계에 고르바초프가 얼마나 멋진 인물인지를 부각시켜 줄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그는 지나치게 과도한 군사비 지출, 발틱[The Baltics]에서의 주민 학살, 기타 등등의 사건들로 점차 신뢰도를 잃어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쿠데타가 끝나자, 그는 이 모든 무분별한 행위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강경파들” 쪽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고, 끝없는 학살 행위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계속 진행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강경세력들이 종식”된 것처럼 보이는 이 사건을 통해, 서방국가들이 그들 자신들의 무장해제에 보다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좋은 구실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또한 미국, 유럽, 그리고 소련에 산재해 있는 세계주의자들[the globalists]은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향한 통합화 과정을 가속화시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쿠데타와 반쿠데타는, 비효율적인 소련 공산당과 KGB 그리고 정부 관료들 가운데 수십만명에 이르는 자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연기되어져 왔던 숙청[PURGE] 작업을 실행에 옮기는 좋은 구실이 되기도 했습니다?수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총살되거나 감금되었습니다. 이러한 소련 공산당의 내부적 숙청 작업은, 당신들이 지난 1917년 그들의 혁명에 자금을 대어 준 이래로, 늘 있어온 일이었습니다. 숙청은 나무나 꽃의 가지치기와 비슷한 일로서, 죽은 가지들을 잘라냄을 통해 나무가 더 튼튼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1991년 10월 기점--역주) 소비에트 연방에서 공산당 내부의 숙청 작업은 한창 진행 중에 있고, 유혈의 규모는 실로 광범위하지만, 모두 거짓 속에 감춰진 채 행해지고 있습니다.

    쿠데타와 반쿠데타는 소련 공산당과 KGB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 자체의 구조조정과 재명명의 구실이 되는 것입니다. 최상층부에서 최하층부에 이르기까지 소비에트 연방 전체에 걸친 구조조정과, 재조직 및 조직유연화를 위한 전략들은 이미 지난 수년동안 고심을 하며 짜 온 것들이었습니다. 쿠데타와 반쿠데타라는 허울아래, 이제 이 구조조정 작업은 거대한 ‘양자 도약’적 규모로 수행되어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의 또다른 목적이 있다면, 고르바초프가 점차 국민의 신망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을 “슈퍼스타”로 만들어 그를 권좌에 올려두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련 정치의 장은 적절한 순간에 새로운 스타가 무대위에 올려질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된 후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미국 역시 그러하며, 가령 부시가 사망한다거나 하면 준비된 인물이 등장하게 됩니다--꼬마 새, 퀘일[little bird, Quayle](댄 퀘일[Dan Quayle](1947- ), 부시 재임기간(1989-1993) 중 미국 부통령--역주)은 아닐 것입니다.

    정직하게 쿠데타에 동참하도록 강요받았던 자들은 모두 살해되었고, 그 이외의 자들은 현재 모습을 감춘 상태에 있습니다. 다음 사람들을 잘 관찰해 보십시오 : 크류체코프[Kryuchkov], 야조프[Yazov], 파블로프[Pavlov], 푸고[Pugo], 야나예프[Yanayev], 바클라노프[Baklanov], 스타로두브스테프[Starodubstev] 그리고 티즈야코프[Tizyakov]. 이것은 보비[Bobby]의 샤워 장면이 나오는 드라마 “달라스[Dallas]”(1980년대 중반 미국의 인기 드라마. 재방송의 대명사와 같은 예로서 언급--역주)의 끝없는 재방송과도 같은 것입니다. 당신들은 아직도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관련하여, 성경상에 어떠한 오류도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까? 친애하는 자들이여, 지금도 쇼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의를 위해 이중 속임수를 쓰고, 그들 자신의 최상층 지도자들을 숙청하는 것, 바로 이같은 일들은, 적어도 소련에 관한 한, 소련 공산당이 살아가는 방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트로츠키[Trotsky]를 축출한 다음 살해했습니다.(멕시코에서); 1936년, 그들은 또한 부하린[Bukharin](레닌[Lenin]의 최측근으로서 혁명 영웅)을 숙청한 뒤 살해했는데, 왜냐하면 그가 1936년과 1937년에 걸쳐 행해졌던 스탈린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지 않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56년에 그들은 NKVD(소련 비밀 경찰 조직?역주)의 수장이었던 베리아[Beria]를 처형했습니다. 크리우치코프[Kryuchkov]와 그의 동료들 역시 유사한 상황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비록 그가 오랫 동안 당을 위해 헌신했지만?이젠 같은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선례가 있었을까요?


    물론입니다. 이러한 사건의 선례가 되는 일들은 무수히도 많았습니다. 1917년 이래로, 소련 역사 상에는 무수히도 많은 숙청, 기만, 이중 속임수, 그리고 잔인한 살해 사건들이 있어 왔습니다. 당신들은, 미국 역시,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과 이라크 국민들을 너무나도 뻔뻔스러운 셋팅 속에 집어 넣고, 한 편의 연극을 펼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끊임없이 당신들 코앞에서 펼쳐지고 있지만, 당신들은 이를 오히려 돕고 있고, 그저 국기나 자랑스레 흔들며, 또 정부에 돈이나 갖다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 역사 전체에 걸쳐서 보더라도, 유사한 가짜 쿠데타의 선례는 있습니다. 그 일은 폭군 이반[Ivan the Terrible]이 차르[Czar]로 있던 1554년에 벌어졌습니다. 이반은 자신의 뜻대로 러시아를 만들어 나가지 못하게 되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이 무렵, 지배 계층이던, “친위대 세력[old guard]”은 그가 하는 일이라면 사사건건 방해했습니다. 이반은 자신의 아내 아나스탸샤[Anastasia]도 바로 이들 지배 계층에 의해 살해되었을지 모른다고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휴가를 떠나는 것처럼 꾸미고는 짐을 챙겨 나섰습니다.(보십시오. 연극대본조차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자신이 왕위를 포기할 것이라는 뜻을 이들 지배 계층 엘리트들에 알렸습니다.

    이것은 지배 계층에 엄청난 공포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그 경우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인데, 이를 막아내는 데 있어서 당시 이반을 따르던 상업자층(이들은 바로 이반의 조력자들이었는데, 이들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이들이 바로 하자르인들[Khazars]이기도 했습니다.)으로부터 그들이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반에게 “제발 돌아와 달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이반이 대답하기를, “돌아가기는 가겠지만, 내가 요구하는 조건들이 충족될 때에만 그렇게 하겠노라”고 알렸습니다. 그들은 이에 대해 생각해 봤고, 이를 따르는 것이 최악의 결과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이반은 권좌에 돌아왔고, 지배 계층들로부터 더 적은 저항을 받으면서 뜻하던 개혁을 이뤄나갈 수 있었으며, 그러는 가운데 문제아들을 숙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당신은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고 보십니까? 오, 저런,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엄청난 규모로 잘못되어져 버렸습니다. 국민들은 옐친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아직도 고르바초프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자들이 이 속임수를 눈치챘고, 그들 대부분은 지난 6년간의 고르바초프의 전제주의적 통치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 일은 옐친 그리고/또는 셰바르드나제를 무대의 중앙에 데려다 놓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점을 잘 기억하십시오?고르바초프든 옐친이든 모두 골수 맑스-레닌주의자들[Marxist-Leninists]인 것입니다. 다음 속담을 한 번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 “더 많은 것이 변하면 변할수록, 더더욱 똑같은 것이 변치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다.”

    ……
    ……


    소련 제국의 재조직과 재구조화


    고르바초프 : “우리는 소련의 권력 구조를 변경시키려는 것도, 그 기본 원칙들을 포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사회주의를 보다 강화시켜 줄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할 뿐이다.”

    지난 몇 달간 각종 신문과 언론매체들의 헤드라인 및 이어지는 페이지들은 모두 소련의 해체와 관련된 허튼 소리들로 채워졌습니다. 말하자면, ‘토마스[Thomas](토마스 제퍼슨--역주)의 불행, 그리고 그의 측근들과 함께한 도피 행각(역사적으로 정작 중요한 일이었지만, 대중의 시선을 피해서 발생한 경우에 대한 예로 언급--역주)’과는 동떨어진 사안들에 대한 평가들만이 줄을 잇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주의분산은 참으로 최악의 일이라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를 통해, 모든 다른 중요한 뉴스들은 당신들의 주목을 받지 못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를 잘 살펴 보십시오. 당신들이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 것”과는 무관하게, 당신들은 “지진”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남 캘리포니아에 작열하는 태양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린 날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스케줄대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주위를 잘 살펴보고 경계상태 속에 있길 바랍니다! 크리스토씨[Mr. Christo]가 만든 예술작품인 거대한 우산은 곧 움직이려 하고 있습니다.(1990년대초 LA에서 크리스토라는 환경예술가가 만든 거대 조형물의 우산이 갑자기 무너져 내려 지나가던 사람들이 사망하는 사고 발생--역주) 다시 본론으로 되돌아가 보도록 합시다.

    당신들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이제 폐기되었고,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소식들, 그리고 소련 공산당과 KGB는 해체되고, 분해되었으며, 마침내 역사의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거짓말들을 질리도록 듣고 있습니다. “8명의 깡패들”의 사망, 집권 세력으로서 옐친의 부상, CPSU(소련공산당)와 KGB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의 많은 공화국들의 독립 선포와 같은 뉴스들은 분명히 “악의 제국”의 종말을 알려주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짓된 뉴스들 뒤로 뭔가가 숨겨져 있을 때, 겉으로 보여지는 것들이란 가장 속기 쉽게 포장되기 마련이고, 사실 맑스-레닌주의의 변증법[Marxist-Leninist dialectic]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기도 합니다.

    소련 제국은 서구의 언론과 지도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분해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소련은 재구조화 중이고, 재조정 중이며, 재조직 중이자, 유연화 중에 있으며, 썩은 가지들을 잘라내고 있는 중이며, 동시에 다가오는 몇 년안에 새계를 지배하려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해 내기 위한 마지막 총력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고르바초프는 1989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재구조화(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우리는 사회주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소련 공산당은 볼셰비키 혁명의 원칙과 근본으로 되돌아 가야 하며,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레닌의 이상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 그보다 좀더 앞섰던 1987년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 “1917년 가을, 우리는 구시대를 영원히 청산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계, 바로 공산주의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이 길을 벗어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윗단락은 오늘날 당신들이 듣고, 읽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언급이 될 것입니다. 당신들은 지금 혁명의 10월달로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며, 몇몇 “놀라운 10월의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겠지만 당신들은 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들 소비에트인들은 축제일이라든지 또는 중요한 기념일등을 지키는데 있어서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감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자들입니다.?“사탄의 드러머들[Satan’s Drummers]”(피닉스 저널 제 9권--역주)을 한 번 읽어 보십시오!

    고르바초프의 모든 언급들이, 과연 공산주의의 사망을 주도하는 자가 한 말일 것이라고 보십니까? 고르바초프가 숭배하는 레닌은 손자(孫子)[Sun Tsu]의 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 “우리는 퇴각을 통해 전진한다... 우리는 힘이 약할 때, 우리의 힘을 자랑하고, 우리의 힘이 강할 때, 우리는 약함을 가장한다. 레닌 독트린에 바탕한 고전적인 변증법에 따르자면, 두 걸음을 전진한 다음에는, 적을 교란하기 위해 반드시 한 걸음을 물러서게 되는데, 바로 이 원칙이 오늘날, 고르바초프에 의해 분명히 준수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신봉자들에 따르자면, “과학적 사회주의[scientific socialism]” 또는 “심리정치학[psychopolitics]”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은 결코 사회주의를 폐기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를 쇄신하고, 재구조화시키며, 강화시키려 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될 사항이 있다면, 오늘날 소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변화들은 바로 사회주의라는 큰 틀 안에서 행해지는 일들이라는 점입니다.


    소련 공산당과 KGB의 폐지


    소련인들은 소련 공산당과 KGB를 폐지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들은 이 기관들의 이름을 바꾸고, 재조직하며, 비능률적인 죽은 가지들을 잘라 내고, 그들의 임무를 확대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

    KGB는 1917년 이래로 그 이름을 여섯번이나 바꿔 왔습니다 : 1. CHEKA; 2. OGPU; 3. GPU; 4. NKVD; 5. MVD, 그리고 6. KGB. 이렇게 이름이 바뀔 때마다 항상 숙청이 동반되었고, 그 때마다 최고위층에 있던 수천명의 이르는 자들은, 산꼭대기에서 산아래로 둘둘 감아 내몰리듯 처단되어져 온 것입니다. 재구조화와 재조직이 동반되었으며, 비밀 경찰의 역할은 계속적으로 확대되어 왔지만, 공개적으로는 늘 비밀 경찰은 마침내 폐지되었노라고 말해 왔습니다. 남겨지는 수뇌부들은 항상 더 많은 권력을 거머쥐었습니다. 1950년대의 잔인하고 악명높은 NKVD의 수장이었던 베리아[Beria]는 숙청되고 처형되었습니다. 바로 최근의 쿠데타와 반쿠데타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KGB의 우두머리였던 블라디미르 크리우치코프[Vladimir Kryuchkov]는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박탈되었는데, 이제 그도 똑같은 운명을 겪게 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당신들도 보게 되겠지만, 이러한 일은, 적절한 타이밍이 되었을 때, 세상 사람들 앞에 보여주기 위해 이들을 복제인간으로 대체시켜 버리는 것과 같은, 그런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KGB는 미국 전역에 은둔해 있는 5만여명의 요원들을 포함하여, 전체 요원의 수가 150만명을 넘습니다. 군사력을 보유한 KGB의 하위 기관들은 이제 소련 군대의 명령체계 밑으로 들어가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UN의 군대를 이끌게 됩니다. 이것은 KGB를 파괴하려고 행하는 일들이 아니며, 단지 이를 더 강하게 하고, 더 효과적으로 만들며, 보다 유연하게 만들면서도, 보다 교활하게 만드는 방식인 것입니다. 그동안 KGB는 너무 방만하고, 우둔하며, 게으른 기관으로 변질된 것처럼 인식되어졌던 것입니다. 차우세스쿠[Ceausescu] 정부 시절, 5만명으로 구성된 강력한 루마니아 비밀 경찰이었던 세큐리테이트[the Securitate]는, 겉으로는 더 이상 공산주의 정부가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아직도 루마니아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KGB 역시 겉으로는 더 이상 공산주의 정부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소련을 위해서 계속 기능하게 되겠지만, 이들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는 것입니다.


    재구조화와 재명명


    소련 공산당[CPSU(Communist Partyy of the Soviet Union)]은 2천만명의 당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하위 기관인 레닌 청년 조직, 콤소몰[Lenin youth organization, Komsomol]의 구성원은 4천5백만명에 이릅니다. 콤소몰은, 적군[the Red Army], KGB, 적해군 및 공군, 그리고 공장 노동자들 가운데 젊은층 대부분이 그 구성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소련 공산당은 지나친 관료화로 인하여, 상층부가 비대해졌고, 그 효율성도 현격히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조직은 재조직되고, 재구조화될 것이며, 그 규모도 축소되고, 불필요한 인력들은 숙청될 것이며, 궁극에 효율성을 다시 증대시킴과 동시에 그 기관명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소련 공산당은, 고르바초프, 부시, 그리고 소련 및 서방 언론들이 당신들에게 끝없이 이야기해 온 바와는 달리 결코 폐지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소련 공산당은 수차례에 걸쳐 그 이름이 변경되어져 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 최초에는, 러시아 사회 민주주의 노동당[The Russian Social Democratic Worker’s Party]이라고 불렸습니다. 1912년 당 내부적인 불화를 겪은 후, 이 노동당은 볼셰비키[the Bolsheviks]와 멘셰비키[the Mensheviks], 즉 “큰 세력[big ones]”과 “작은 세력[little ones]”으로 나뉘어졌습니다. 큰 세력은 이내 작은 세력을 집어삼켰던 것입니다. 이후, 당의 명칭은 러시아 볼셰비키 사회 민주주의 노동당[the Russian Social Democratic Workers Party of Bolsheviks]이 되었습니다. 1918년에는 러시아 공산당[the Russian Communist Party](볼셰비키)이 되었습니다. 1925년에는 전소련 공산당[the All-Soviet Communist Party](볼셰비키)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52년, 소련 공산당[the Communist Party of the Soviet Union]이 되었고, 이 명칭은 현재까지 유지되어져 온 것입니다. 이제 이 당명은 다시 변경되어, “사회 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이 되려고 합니다.

    매번 당명 개정이 있을 때마다, 요란한 선전과 야단 법석을 피운 후,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 이제야말로 완전히 변화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들을 내놓곤 했으며, 이전 정당이 행했던 그러한 정치, 경제적 압제 및 악행과는 달리, 새로운 정당은 대민 우호적이고, 민주주의적이며, 자유를 사랑하는 정당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곤 했지만, 이 같은 일들은 내내 반복되어져 온 것입니다. 사실상, 모든 과거의 악행들은, 새롭게 변화된 정당 아래에서도, 오직 보다 사악해진 방식의 무력 및 통제력을 통해 계속 수행되어졌 왔을 뿐이었으며, 실제로 변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현재의 변화 역시 소련 공산당의 원칙과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 어떤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레닌과 스탈린 시절의 주요 공산당 당명 변경은, 조직을 유연하게 만들고, 보다 체계화된 명령 시스템으로 당이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드는, “당 쇄신[party rejuvenation]”이라는 명목아래, 대규모의 숙청이 늘 동반되었습니다. 이러한 숙청 과정에서 수백만명의 러시아 공산당원들은 감금되거나 혹는 굴라크[Gulag](러시아 강제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오늘날의 소련 공산당은 비대해지고, 우둔해졌으며, 게을러졌고, 부주의해졌으며, 무감각해진데다 수동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보다 10배정도나 더 커져버린 것입니다. 소련 공산당은 목표의식을 잃어버렸으며, 흐리멍텅해져버렸기 때문에, 거의 수백만명에 이르는 당원들이 반드시 숙청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당의 폐지는 아니며, 오직 재조직화이자 재구조화이며, 당의 강화의 일환인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인들과 대부분의 서구인들의 사고수준이 얕고, 표면적이며, 어리석기 때문에, 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환상을 통해 얼마든지 손쉽게 이들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때문에, 만약 자신들이 당명이라든지 혹은 앞에 내세우게 되는 특정한 이름들을 변경시킨 다음, 구 조직은 이제 사망했노라고 선언하게 되면, 대부분의 서구인들이 이를 믿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수십년간에 걸쳐 이들은 번번히 최전방에 드러나 있는 공산주의 기관들의 이름을 똑같은 방식으로 변경시켜 온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바로 최근에 이탈리아 공산당[the Communist Party in Italy]도 민주당[the Democratic Party]으로 개명했습니다. 폴란드에서도, 폴란드 연대 노동당[the Polish United Workers Party]이라고 불렸던 공산당의 명칭을, 사회 민주당[the Social Democratic party]으로 바꾸었습니다. 루마니아에서도, 구 루마니아 공산당[Romanian Communist Party]을 “신 구제 전선[the New Salvation Front]”이라는 당명으로 개칭했습니다. 이 중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또한 많은 다른 사례들의 경우에서도 다 마찬가지이지만, 공산주의자들이 진정으로 공산당을 폐지한 적은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당의 이름만 바꾸고, 조직을 정비하고, 구조를 변경시켰을 뿐이지만, 속기 쉽고, 어리석은 서구인들은 이 속임수를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한데, “장미를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지 간에, 장미는 여전히 장미다.”라는 말이 바로 여기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련 공산당[CPSU]을 사회 민주당[the Social Democratic Party]이라고 부르든, 혹은 그 어떤 유사한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 그 조직은 여전히 똑같은 소련 공산당으로서, 다만, 타이틀이 바뀌었고, 얼굴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며, 그저 혼동을 야기하기 위한 제스츄어를 좀 취했을 뿐인 것입니다.

    오늘날, 소련 공산당은 선출된 의원들과 소련 정치국[the Politiburo], 그리고 중앙 위원회[the Central Committee]를 통해 운영됩니다. 300명에서 450명에 이르는 위원들로 구성된 소련 중앙 위원회는 소련에서 진정한 권력을 휘두르는 기관으로, 그 중에서도 핵심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100여명의 위원들이 실권을 쥐고 있습니다. 이 중앙 위원회 위원들은 “눈에 보이는” 정치인들인 고르바초프, 옐친, 셰바르드나제를 비롯 다양한 내각의 장관들 뿐만 아니라, 소련 군부와 KGB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단순히 배우이자, 이들에 의해 고용된 사람에 불과합니다. 고르바초프는, 이 중앙 위원회 위원들과 KGB가 1980년대 초반에 이미 그 초안을 작성했던 연극 대본 제 6편,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 편에 따라 정해진대로 정책을 수행해 온 것일 뿐입니다.

    소련 공산당의 쇄신 및 명칭 변경은 지난 1986년부터 1990년에 이르는 장기간에 걸쳐, 소련 의회 내부에서 논의되어졌던 문제입니다. 고르바초프는 이 “새로운 정당”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 “이 정당은 사회주의적 선택과 공산주의적 전망을 담은 정당이 될 것이다... 이 정당은 모든 인류를 위한 공통된 인본주의적[humanistic](인도주의적[humanitarian]이 아닌) 이상을 추구하는 정당이 될 것이며... 국수주의, 민족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그 어떤 반동주의적 이상과 반계몽주의에도 관용하지 않는 정당이 될 것이다... 이 정당은 공화국들간의 연대 속에서 공산당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정당이 될 것이고... 공산주의자들, 사회 민주주의자들, 그리고 다양한 국가에 걸친 사회주의자들 간의 접촉과 협력에 대해 개방적인 정당이 될 것이다.”

    소련 공산당 지도자들에 의해 고안된, “신 정당”의 강령을 읽어보면, “구 정당”과 “신 정당”간의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신 정당의 경우, 세계 전체에 걸친 모든 혁명적 운동에 대해 보다 넓은 수용적 자세를 견지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공산주의”를 대체하는 “사회주의”


    1989년 10월, 고르바초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우리는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사회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사회주의 시스템의 잠재력이 드러나도록 만드는 것에 주된 이상을 담고 있다.”

    이어 1989년 12월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오늘날 우리는, 사회주의의 구제책인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사회주의에 새바람을 불어 넣고, 사회주의 시스템에 내재한 모든 좋은 면들이 드러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친애하는 자들이여, 내가 당신들에게 한가지 상기시켜 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소련에서는 단 한 번도 진정한 “공산주의”가 실행된 적은 없고, 그건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회주의”야말로 항상 그들이 지향해 온 진정한 의도인 것이며, 미국 역시 완전한 독재체제 아래에서 이 사회주의로 향하는 길을 걸어 온 것입니다. ‘독재체제 속의 사회주의’야말로 다다를 수 있는 최악의 상태인 것입니다.

    “공산주의[communism]”라는 말 대신에 앞으로는 “사회주의[socialism]”라는 용어가 쓰이게 될 것이며, ‘공산주의’라는 단어 자체는 앞으로 공산주의자들의 사전에서 완전히 배척될 것입니다. 레닌에서부터 고르바초프에 이르기까지, 공산주의자들은 이 두 단어를 서로 바꿔가며 쓸 수 있는 것처럼 사용해 왔습니다. 칼 맑스[Karl Marx]가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에서 정의한 ‘사회주의’의 개념은, 소련, 중국, 쿠바를 비롯한 기타의 공산국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그대로 적용되어져 왔습니다. 사회주의는, 종국에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 목표로 나아가는 주춧돌로서, 사유재산 제도의 폐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냉혹한 정치, 경제적 규제와 통제, 거대한 관료체제, 누진적 소득세, 상속제도의 폐지, 독점적 중앙 은행, 교육 제도의 중앙 통제, 가족, 아동, 종교의 국가 통제등을 수반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어쩐지 1991년 현재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 않습니까???

    조지 부시, 헬무트 콜[helmut Kohl], 존 메이저[John Major], 미하일 고르바초프, 셰바르드나제, 옐친, 그리고 대부분의 서방 지도자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바로 이들 모두는 사회주의자들이자, 위선적인 휴머니스트들이며, 세계주의자들[globalists]인 것입니다. 바로 부시와 고르바초프는 “신세계 질서[the New World Order]”라고 부르는 단일 사회주의 세계 정부[a common socialist global government]를 지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 해 전, 역사 학계에 “수렴 이론[convergence theory]”이라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좌파”를 지향하게 되고, 소련은 정치적으로 “우파”를 지향하게 되어, 결국 이들 모두는 ‘사회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영역에서 통합된다는 것입니다. “수렴 이론”에 따른 전개는 지금 한창 진행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 몇 년간에 걸쳐,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 동유럽의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서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하나의 거대한 단일 국가 형태 또는 연방주의로 나아가고자 할 것입니다. 소련의 전복이라는 엄청난 사건과 더불어 서유럽의 흡수 통합이라는 놀라운 일들이 곧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소련의 재조직


    소련 중앙 위원회, 소련 정치국, KGB 그리고 소련 과학 아카데미에 소속된 소련의 지도자들은 이미 십여년 전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 왔습니다. 소련이 가진 방대한 자연자원 및 인력자원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이러한 자원들을 가장 “야만적인 방식[barbaric manner]”으로 사용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난 십년간에 걸쳐 소련의 산업은 서방 세력에 비해 크게 뒤쳐졌으며, 특히 인력 자원과 물질 및 에너지 자원의 소비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더더욱 그러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소련의 산업은 서구 국가들에 비해, 생산 단위당 두배에서 두배 반에 이르는 자연 자원을 사용했고, 한 배에서 한배 반에 이르는 에너지를 소모해 왔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와 소련의 지도자들은 소련 사회를 최상층에서 최하층에 이르기까지 모두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라는 큰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신경제 정책”은 “자유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었고, 다른 많은 용어들이 서구에서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와 소련의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자유 시장”이 의미하는 바는, 국가를 비롯, 집단적으로 소유되는 자산과 사업들은 여전히 국가에 의해 통제된다는 것이었고, 사업 또는 투자에 따른 이윤이란 여전히 불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소련인들이 “자유 시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당신들과 ‘거래하겠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인들이 이 단어를 사용할 때, 서구인들은 소련이 자본주의로 돌아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언어 조작 또는 개념 조작의 또 다른 예는 바로 “해방 신학[liberation theology]”입니다. 소련인들은 “해방 신학”이라는 표현을 약 15년전부터 도입하였는데, 이는 사실상, 맑스-레닌주의에 따른 독트린을, 기독교적인 또는 성격에 기반한 용어 내지는 독트린으로 포장한 것으로, 악의적이고도 기만적인 용어 사용의 예가 될 뿐입니다. 해방 신학은 중앙 아메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 남아프리카, 그리고 필리핀 등지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엄청난 성공을 안겨다 줬습니다. 오늘날 그들은, 맑스주의적, 사회주의적 개념들을, 바로 ‘자유 시장’이라는 용어 및 개념으로 잘 포장한 채, 어리석은 서구의 정치 및 경제 지도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르바초프가 스테그네이션[stagnation], 산업의 첨단화, 시장 경제로의 국가 개방, 사회의 민주화등을 이야기할 때, 그가 정작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들을 대신해 소련을 이끌고 있는, 부패하고, 지나친 급료를 받으면서도, 비능률적인 관료들의 척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비대해진 관료체제는 이제 축소될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이 이미 혁명적 열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고르바초프는 공산당 의회에서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하였습니다 :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것은, 노동자 계급이 아닌 바로 관료시스템이 소련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관료들은 편하고 수입이 보장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만 만족해 할 뿐이며, 혁명적 운동이나, 세계의 다른 국가들의 정치적 기반침식을 위한 활동, 또는 공산주의의 군사적 확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분명 ‘스테그네이션(정체) 상태’인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건데, “장미는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간에, 장미일 뿐입니다.” 바로 이것은 훔친 땅을 이용하여 통합된 세계 지배 체제를 지향하는 하자르계[Khazarian] 유태인들의 활동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을 만한 표현으로서, 자기 자신들을 유태인들이라 칭하고, 자신들에 반대하는 자들은 무조건 “반유태주의자”라 비난하고 몰아세우며 (이들 가운데서 그 어느 누구도 유태인들이 아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들을 조상대대로 이어 온 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입니다. 당신들은 하나의 용어와 그 정의를 받아들이는데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떤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게 되면, 당신들은 그저 배고픈 물고기 마냥 이 미끼를 덥석 집어 무는 것입니다.

    ……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38권, “The Dark Charade :...And The Sins of The Fathers Shall Be Visited Upon All The Generations To Come...”, 제 2장, 제 3장, pp. 30-43.


    http://www.fourwinds10.com/journals/
    Last edited by phoenix; 2010-04-24 at 09:39. Reason: 특수문자 제거

주제글 정보

Users Browsing this Thread

이 주제글은 현재 1명이 열람중입니다. (0명의 회원과 1명의 손님)

이 주제글의 글단추(태그)

글쓰기 규칙

  • 새 글 작성이 불가능함
  • 응답글 작성이 불가능함
  • 파일 첨부가 불가능함
  • 내 글 수정이 불가능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