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 106권, 국제 사회주의와 뉴 월드 오더
제 6장, 기록 #1 하톤
1995년 6월 29일 목요일, 7:22 A.M. 8년 3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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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권력의 어두운 면[DARK SIDE...]”으로 다시 되돌아 가 보도록 합시다. 내 생각에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것들이 하나의 통합된 메시지를 만들어 냄에 따라, 이제쯤 당신들은 전체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갖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적어도 나는 그러기를 희망합니다. 사실 당신들이 누구를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또 자기 자신은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들의 적과 싸우려고 이 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나는 진실에 입각한 역사적 사실들[historical FACT IN TRUTH]을 제시해 보이려고 여기 왔습니다. “피닉스”[The “Phoenix”]는 완전한 파괴의 잿더미로부터 날아 오릅니다.--당신들은 정말로 (하늘의 민족[the Sky People]이자, 피닉스[the Phoenix]로 상징되는) 우리의 근원인 하나님이 몰락한 문명의 잿더미로부터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지 (창조해내지[CREATE]) 못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용]
권력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Force], Part 24 :
by “데이비드 에머슨 구마에르[David Emerson Gumaér]”
로스차일드 가문[ROTHSCHILDS](계속) :
스파이 작전[Spy Operations]
전 MI-5 부국장인 피터 라이트[Peter Wright]가 쓴 ‘스파이를 잡는 자 : 정보기관 고위 관리의 솔직한 자서전[SpyCather : The Candid Autography of a Senior Intelligence Officer]’(뉴욕, 바이킹 출판사, 1987년)에서 이미 보았다시피, 1930년대 영국에는 테오도르 말리[Theodore Maly], 아놀드 도이치[Arnold Deutsch], 오토 [카츠][Otto [Katz]], 리처드 소르지[Richard Sorge], 알렉산더 라도[Alexander Rado], 루스 쿠친스키[Ruth Kuzchinski](“소냐[Sonia]”), 레오폴드 트레퍼[Leopold Trepper], 헨리 피크와 그의 아내[Henri Pieck & wife], 월터 크리비츠키[Walter Krivitsky], 루드비히 & 엘리자베스 포레츠키[Ludwig & Elizabeth Poretsky]를 비롯하여 그 밖에도 수많은 “불법” 트로츠키파[Trotskyite] 정보 요원들이 문자 그대로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라이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 “그들은 러시아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전혀 러시아 사람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국제 공산주의와 코민테른[the Comintern]을 신봉하는 트로츠키파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러시아 정보기관이 발탁한 최고의 요원들이자 관리자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서로 잘 알았고, 서로가 서로를 선발한 경우도 있었으며, 영국의 ‘링 오브 파이브[Ring of Five]’나 중국내 ‘소르지 조직[Sorge’s rings]’, 그리고 독일에 의해 점령된 유럽내 로트 카펠[Rote Kapelle]의 조직이었던 ‘레드 오케스트라[Red Orchestra]’와 마찬가지로 고위급 스파이 조직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저자가 편리하게 언급하지 않은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사실상 위에 언급된 빨갱이 정보 요원들 모두는 유태인들이었으며, 그들의 살인적인 멘토 트로츠키는 오랜 기간 로스차일드 가문[House of Rothschild]의 대리인으로서 이 가문으로부터 급여를 지불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하톤: (유일하게 트로츠키 보다도 더 높았던 공산주의자이자 유태주의자였던) 레닌[LENIN]의 동상은 예술적인 개똥 더미(동상 옆에 같이 놓여 있는 조각상의 일부를 지칭--역주)와 함께 오늘날 워싱턴 주 시애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이 ‘생각하기’ 시작할 만한 좋은 타이밍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나아가 피터 라이트는, 다른 저자들이 자신 보다 앞서 출판한 내용들을 상당 부분 재탕하긴 했으나, 392페이지에 달하는 저서를 통해 영국 내 공산주의자 스파이들에 관한 상당량의 정보를 공개하는 데에 헌신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한 때 소중하게 여겼던 나라를 전복시키는 데에 있어서 파비언 사회주의[Fabian Socialism], 시오니즘[Zionism], 그리고 프리메이슨주의[Freemasonry]가 동등하게 위험하다는 사실은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상 그는 종종 트로츠키주의와 시오니즘이 얼마나 잘 구동되는 지에 대해 조용한 찬사를 보내기조차 했다. 심지어 더 놀라운 것이 있다면, 라이트는 자신과 개인적으로 가까운 친구였던 빅터 로스차일드 경[Lord Victor Rothschild]의 이상한 행동들을 찬양하고, 방어해주고, 덮어주는 데에 상당량의 지면을 할애하기도 했다. 이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책 전체에 걸쳐 아주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왜 그러지 않았겠는가? 사실 처음에 라이트가 그러한 책을 쓰도록 설득한 건 바로 로스차일드였다. 그런데 당시 로스차일드는 영국내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조만간 공산주의자가 될 자’라는 비난을 받기 시작한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저자에게 감사를 표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피터 라이트는 자신이 프리메이슨이라는 사실 뿐만 아니라, 영국 내에서 비밀 활동을 펼치고 있고, 또 MI-5에 소속된 대부분의 최고위급 관료들(비록 전부 다는 아니지만) 또한 메이슨들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공개했기 때문이었다. 1987년 2월, 영국 프리메이슨들의 양대 통치 기구인, 유나이티드 그랜드 롯지[the United Grand Lodge]와 그랜드 최고 총회[Supreme Grand Chapter]는 “목을 베거나 혀를 뽑는 행위는 더 이상 내규를 위반한 메이슨들에 대한 벌로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그러한 징벌들은, 1987년 2월 17일자 애리조나 리퍼블릭[the Arizona Republic]지에 따르자면, 이미 수 세기에 걸쳐 프리메이슨들의 법규에 규정되어 있던 사항이었다. 그는 또한 1940년대에 정보기관 관료들은 모두 (파비언주의자들에 의해 통제되는) 영국 노동당에 투표했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실로, 그는 영국 양대 정보기관들의 (그리고 어쩌면 다른 조직에 있어서도) 최고위직에 오르기 위해서 필요한 단 한 가지 기준이 있다면, 아주 단순하게도 프리메이슨이어야만 했다는 사실도 분명히 밝혔다! 이제 우리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로 영국 정보기관 내 각 계층에, 어떻게 그리고 왜, 300명도 넘는 빨갱이 요원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파들에 의해 운영되던 “링 오브 파이브[Ring of Five]”는, 라이트의 말에 따르자면, 내가 앞서 언급한 특징들을 가진 요원들을 캠브리지 대학 졸업생들 사이에서 선발했다. 이들은 영국 정부의 다양한 부서와 기관들은 물론 군대와 언론 기관이 고용하려 했던 대상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같은 시기, 미국에서도 이미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대단히 중요한 스파이 조직에는 8명의 주요 회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최소 42명으로 구성된 조력자들이자 방어자들의 조직이 있었으며, 그들 중 다수는 파비언주의자들이었다. 이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관련 기록들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이 주제에 관해 글을 쓴 모든 저자들이 이미 확인한 사항이기도 하지만, 이 위험한 빨갱이 스파이 조직의 첫 번째 지도자는, 앞서 언급한 헝가리 출신의 공산주의자이자 전직 목사인(어쩌면 예수회 소속의?--저자) 테오도르 말리[Theodore Maly]였다. 한 때, 모든 주요 조직원들이 저마다 확실한 임무를 부여받았고, 저마다 정위치에 있었다. 이 스파이 조직은 제 2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1940-1945년간 NKVD(내무인민위원회, 구소련의 정부기관이자 비밀경찰 조직--역주) 장교였던 아나톨리 그로모프[Anatoli Gromov](코드명, “헨리[Henri]”--저자)가 처음으로 “운영”했으며, 나중에는 보리스 크로토프[Boris Krotov]가 승계했다. 두 사람은 모두 런던에 소재한 소련 대사관으로부터 비밀리에 명령을 하달받았다. 다른 러시아 출신의 소련 스파이들은, 때때로, 개별적으로 훔쳐낸 서류 더미들을 다른 개별적인 스파이들에게 넘겨주곤 했다. 예를 들어, 1944년 워싱턴 D.C.로 발령이 났던 콤래드 그로모프[Comrade Gromov]는 취약한 동성연애자 요원이었던 도날드 맥클린[Donald Maclean]의 특별 관리자 역할을 맡는 동시에, 소련 스파이 통신 요원이던 엘리자베스 벤틀리[Elizabeth Bentley]와 휘테커 체임버스[Whitaker Chambers]를 통제하는 일도 맡았다. 맥클린은 그 이전에는 영국 대사관에서 이시아 베를린[Isiah Berli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인물이었다. 벤틀리와 체임버스는 당시 미국의 수도에서, 그것도 우리가 자랑해 마지 않는 FBI의 바로 목전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두 개의 커다란 공산주의 스파이 조직들 안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링 오브 파이브[Ring of Five]”의 많은 조직원들은 당시 유리 모딘[Yuri Modin](코드명 “피터[Peter]”--저자)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으며, 모딘은 이 끔찍한 일을 자신의 러시아 하자르 마스터들을 위해 1963년까지 계속 맡아 했고, 주로 킴 필비[Kim Philby](1912-1988, 영국 정보기관 MI-6의 고위 관리였으나 소련 NKVD와 KGB의 공작원으로 활동했던 간첩--역주)를 관리했다. 여기서 잠시만 연대를 보다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하자.
다시 1938년으로
1938년으로 되돌아 가서 ‘필비의 음모[The Philby Conspiracy]’라는 영국 서적이 밝혀주고 있는, 대단히 주목할만한 이야기를 살펴 보자. 이 시기, 가이 버게스[Guy Burgess]는 또 다른 캠브리지 출신의 동성연애자 친구였던 고로니 리스[Goronwy Rees]를 자신과 긴밀히 연계해 활동하는 코민테른 요원으로 가입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때 당시 리스는 군사 정보국[Military Intelligence](MI-5)에서 일하고 싶은 희망을 넌지시 비추곤 했는데, 그의 동성연애자 애인이던 버게스는 이미 비밀 정보국[the Secret Intelligence Service](MI-6)에 확실히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수 년이 흐른 후인 1951년, 리스는 버게스와 간첩 조직[the Ring]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밝혀야만 할 것 같은 애국적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결국 MI-5의 거만하면서도 심드렁한 수집관들에게 “필비와 버게스가 동성연애를 기반으로 한 친분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들은 리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리스의 말을 믿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이른 시기, 버게스의 또 다른 내밀한 친구로는 잭 휴위트[Jack Hewitt]라는 17세의 댄서가 있었는데, 버게스는 그의 젊음과 성적 매력을 유인으로 삼아, 자신의 오랜 동성연애자 친구가 스파이 임무에 보다 적극적으로 가담하도록 만들었다. 붙임성 있고, 달변가였던 버게스는 1938년 12월 경에는 정열적인 시오니스트이자 ‘유태인들의 하수인[Judenknecht]’이었으며, 곧 영국 총리가 될 인물이었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에게도 순조롭게 접근해 가고 있었다. 처칠은 전쟁 기간 동안 영국 정보기관들이, 소련 정보기관들의 영국내 활동은 물론 영국 식민지에서 펼치는 활동에 이르기까지, 이를 방해하거나 어떤 식으로라도 개입하는 일을 엄격히 금지시켰다. 왜 그러지 않았겠는가? 처칠 역시 또 하나의 프리메이슨이 아니었던가? 이후, 1939년 초반, 가이 버게스는 MI-6 D-섹션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는데, 사실 당시 이미 60대에 이르렀던 자존심 강한 노년의 동성연애자였던 조셉 볼 경[Sir Joseph Ball]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조셉 볼은 또 한 명의 프리메이슨으로 “성인이 된 이후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영국 비밀 정보국(MI-6)에서 보낸” 인물이었다. 버게스는 이 늙은 동성연애자에게 적절한 유흥을 제공해 준 대가로, 이 대단히 민감한 정보 기관에 즉시 고용되도록 추천 받을 수 있었다.--비밀 정보국(SIS)(MI-6)은 버게스가 학창시절 공공연하게 공산주의 활동을 펼쳐온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절대적으로 어떠한 조사도 취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러는 동안 도날드 맥클린[Donald Maclean] 또한 자기 나름대로 전진해 나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성도착증 친구인 마크 쿨름-세이모어[Mark Culme-Seymour]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맥클린은 해외정보국(MI-6)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내 파리에 있는 영국 대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느강 좌안 지역(남쪽 지역)[Left Bank of the River Seine]에서 적절한 가명을 만들어 활동했던 맥클린은 이내 자신과 같은 두 명의 극좌파들과 친구가 되었다. 한 명은 아방-가르드[avant guard] 조각가였던 지아코메티[Giacometti]였고, 다른 한 명은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기괴하면서도 파괴적인 다다이즘(“예술” 운동)[Dada (“Art”) Movement]의 창시자였던 트리스탕 차라[Tristan Tzara]였다. 차라는 의심할 나위도 없이, 스페인 출신의 유태인이자 공산주의자였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후원자 역할을 했다. [하톤: 바로 이 작자들이 리얼리즘이라는 미명 아래, 개똥, 비둘기똥 그 밖의 잡다한 쓰레기들을 자신들의 예술 작품의 일부로 활용했습니다! 저런, 당신들은 어쩌면 이제서야 워싱턴 주 시애틀에 그러한 유산이 남겨져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까!?] 맥클린은 물론 전문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자로서, 자기 조국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에 뛰어 들었다. 1940년 6월, 그는 그답지 않게 당시 파리에 와 있던 젊은 미국인 아가씨였던 멜린다 말링[Melinda Marling]과 결혼했다. 이는 분명코, 자신의 평소의 비정상적인 활동에 대한 영리한 위장의 일환이었으며, 종종 많은 저명한 동성연애자들이 자신들의 진짜 성적 취향을 감추기 위해 택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멜린다 자신도 점점 헌신적이고 극단적인 공산주의자이자 맥클린의 조력자가 되어갔다.
스페인 내전
한편, 킴 필비[Kim Philby]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스페인에서, 영국 일간지 런던 ‘타임즈지[The Times]’의 “보수주의자” 전쟁 특파원 역할을 맡으면서, 자신이 반-공산주의자[anti-communist]라는 인상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다. 대외적으로는 “내전”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상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피바다가 펼쳐졌던 스페인에서, 국토를 황폐화시켰던 극심한 충돌 속에, 필비는 비밀리에 ‘빨갱이 공화주의자들[the Red Republican]’의 편을 도왔으며, 자신의 소련 마스터들을 위해 프랑코 장군[General Franco]이 이끄는 애국주의자 장교들을 염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링 오브 파이브[Ring of Five]’ 스파이 조직은 지하에 숨어서 움직이고, 할당된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자신들의 ‘본색’은 철저히 감추도록 명령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스페인 내전에 관해서 언급하자면, 프랑코 장군에 대하여 수 년 간에 걸쳐 너무나도 많은 악의적인 프로프갠더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 몇 가지 정정 작업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A.H.M. 람세이 장군[A.H.M. Ramsay]이 쓴, ‘이름없는 전쟁[The Nameless War]’(런던, 1952년)에도 나타나듯이, 소련에 의해 조직되고 스페인에서 활동했던 ‘국제 여단[the International Brigades]’에는 52개국으로부터 차출된 공산주의자들과 범죄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이들은 빨갱이 유태인들의 상징인 오각별[Red Jewish 5-pointed star]이 새겨진 무기들을 들고 싸웠다. “이 별과 솔로몬의 문장(紋章)은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불한당들이었던 이들 공산주의자 무리들 속에서 하사관과 장교들을 표시하는 인장이었다. 바르셀로나는 1936년 10월 소련 연방의 서유럽의 수도로 선포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D.D. 룬스[D.D. Runes]가 편집, 출판한 ‘서구 문명에 있어서 헤브루의 영향[The Hebrew Impact on Western Civilization]’(1951년)이라는 책, 764에서 765 페이지 사이에 나오는 찬양적인 단락에서도 확인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 “1936-39년간 펼쳐졌던 스페인 내전에서, [공산주의] 공화파를 지원했던 외국 출신의 참전자들 사이에는 유태인들의 비율이 높았다. 미국 출신 3,500명 중에는 630명 즉 약 20%가 유태인들이었다. 아브라함 링컨 여단[the Abraham Lincoln Brigade]의 리더들이었던, 존 게이츠 중령[Lieutenant Colonel John Gates]과 밀튼 울프 대대 사령관[the battalion commander, Milton Wolff]의 경우, 두 명 모두 유태인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설명에서 편리하게 건너 뛰어 버린 사실이 있다면, 이 여단은 공식적으로는 ‘공산주의 전선[Communist Front]’으로 불렸으며, 게이츠와 울프는 모두 냉혹한 공산주의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생략된 또 다른 세부적인 설명이 더 있다면, 이 악의적인 빨갱이들은 스페인 전역에 걸쳐 수 백, 수 천 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는데, 그들 중 다수가 신부와 수녀들이었다. 특히 신부와 수녀들은 극한의 고문 대상으로 불려 나갔으며, 취조 끝에는 종종 신체가 조각조각 난도질 당하거나, 산 채로 불태워졌다. 전체적으로 볼 때, 희생자들을 통해 엄청난 ‘카르마의 빚’을 진 셈이었다.
1939년 말, 반-공산주의자처럼 보이려고 했던 킴 필비의 책략은 마침내 결실을 맺어, 그는 영국 SIS(MI-6)내의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필비는 캠브리지 대학 시절 공공연히 공산주의 활동을 펼쳐 왔지만, 이러한 자신의 배경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안 조사도 받지 않았다. ‘필비의 음모’를 집필했던, 날카로운 통찰력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 “놀랄만한 숫자의 사기꾼들이 SOE(특수작전부[Special Operations Executive], 1940-1946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었던 영국 비밀 정보기관--역주)와 SIS(MI-6)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러한 일들은 모두 전쟁 기간에 벌어졌다...” 사실 이는 대단히 조심스러운 표현이었다. 비록 정보기관 요원들 가운데 다수가 런던의 ‘김나는 하수구[steaming sewers]’(부정 청탁--역주)를 통해 채용된 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중 많은 자들이 ‘술집이나 침실’을 통해 발탁되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이러한 방식의 채용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게 불명예스러운 사례가 있다면, ‘음경이 2개인 기형[diphallic terata]’을 가졌던 브라이언 호워드[Brian Howard]였다. “호워드는 MI-5에 채용되었는데, 구 에스토니아 출신의 동성연애자로 종종 버게스와 술을 마셨으며, 심지어 자신이 막시스트[Marxist]임을 떠벌리고 다닌 인물이었다.”
[Part 24 인용의 끝]
하톤: 나는 여기서 잠시 휴식을 갖고자 합니다. 다음 번 글을 쓸 때는 이들 “알파벳 대문자로 된 비밀 정보기관들”에 대해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그 내용을 다루면 글이 지나치게 늘어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pp.50-54
제 7장, 기록 #2 하톤
1995년 6월 30일 금요일, 8:03 A.M. 8년 3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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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Force], Part 25 :
by “데이비드 에머슨 구마에르[David Emerson Gumaér]”
로스차일드 가문[ROTHSCHILDS](계속) :
[인용]
알파벳 대문자의 비밀 정보기관들[Cryptic Alphabetical Agencies]
계속 설명해 나가기에 앞서, 잠깐 동안 이 당황스러운 알파벳 대문자로 된 기관들이 어떤 기관들인지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자. : MI-5는 원래 영국 군사 정보 분야의 방첩 기관이었다. MI-5는 나중에 잘 알려진 이름의 ‘보안 총국[the Directorate General of Security Service]’이 되었으며, 단순히 “회사[The Firm]”(주로 영국 내에만 국한된 국내 조사 업무를 맡았으며, “우리의” FBI와 얼마간 유사한 기관이다.--저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 MI-6도 영국 군사 정보 기관이었으나 “적극적인” 첩보 활동이 주된 임무였다. MI-6는 나중에 잘 알려진 이름의 비밀 정보부(SIS)[the Secret Intelligence Service]가 되었으며, 정보 수집, 스파이 활동, 와해 공작, 암살 등의 임무를 맡았다. (주로 영국 국외에서 활동을 펼쳤으며, “우리의” CIA와 얼마간 유사한 기관이다.--저자) ; GCHQ는 영국 정부 통신 본부[the British Government Communications Headquarters](라디오 도청 기관)이며, 2차 세계 대전 기간 블레츨리 파크[Bletchley Park](런던 북서부 버킹험셔에 위치--역주)에 자리를 잡았던 기관으로, “우리의” 국가 안보국(NSA)[National Security Agency]과 유사하다. ; OSS는 2차 대전 기간 미국의 전략 사무국[the American Office of Strategic Services]으로 CIA의 전신에 해당한다. ; NKVD는 1934년 설립된 소련의 내무 인민 위원회[the People’s Commissariat of Internal Affairs]로, 국외 첩보 활동을 펼쳤으며, 정부 부서에 준하는 기관이었던 ‘국가 안보 총국’(글라프노이에 우프라프레녜 고수다르스트베노이 베조파스노스티)[Glavnoye Upravlenye Gosudarstvennoy Bezopasnosti (Chief Directorate of State Security)]의 통제를 받았다. ; KGB는 1954년에 설립되었으며 NKVD를 직접 계승하는 기관이었다. (NKVD는 오늘날 “새로운 러시아”에서 ‘보이스카우트’ 행세를 하고 있다.--저자)(KGB는 1991년 이후 해외첩보를 담당하던 제 1총국이 SVR(대외정보국)로, 국내 보안을 담당하던 제 2총국이 FSB(연방보안국)로 분리 개편--역주) ; GRU는 ‘붉은 군대[the Red Army]’의 ‘정보 총국[Main Intelligence Directorate]’으로 소련 군사 정보 업무를 담당했다. ; SOE는 영국 특수작전부[Special Operations Executive]로 2차 대전 기간 나치[the Nazis]에 대항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 영국 해군성[Admiralty]은 “우리의” 해군과 ‘팬타곤스키[Pentagonsky]’(오늘날 미 국방부(팬타곤)는 하자르계 유태인들에 의해 완전히 점령되어 있으며, 그들의 동료인 샬리카슈빌리 장군[General Shalikashvili]의 통제 아래에 있다.--저자)(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비꼬아 국방부(팬타곤)[Pentagon]를 ‘팬타곤스키’로 표현--역주)를 합쳐 둔 것과 다소 비슷한 역할을 하는 영국 군사 기관이다. 오늘날 그러한 국방부 관리 중의 한 명인 조슈아 고트바움[Joshua Gottbaum]은 미래의 적국의 침략으로부터 미국을 완전한 위험 속에 빠뜨릴 수 있도록, 예산 삭감과 업무 축소 등을 통해 국방부의 모든 역량을 후퇴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히틀러가 프랑스를 침공하기 이전인 1940년 초반에 만들어졌던 특수 작전부(SOE)[the Special Operations Executive]는, 고도의 비밀 정보/활동/조정 기관으로, 런던 시내 베이커 스트리트[Baker Street]에 있던 유태인 소유의 마크스 & 스펜스 백화점[Marks & Spencer Department Store] 꼭대기 층의 넓은 공간을 본부로 사용했다. 물론 대단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이 특별한 백화점 체인 업체의 사장은 1901년 쉬운 돈벌이를 위해 영국으로 이주했던 러시아계 유태인의 아들로, 극단적인 시오니스트이기도 했던 이스라엘 시에프[Israel Sieff]였다. 우리가 알아낸 바에 따르자면, 시에프 가문은 1890년대 시오니스트 운동의 주요 활동가들이었다. 이스라엘 자신은 ‘영국 상원에 의석을 갖는 귀족[a Peer of the Realm]’이 되었으며, 자신이 소유한 거대한 백화점 체인망을 운영하던 1984년까지, 영국 노동당 정부에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베일에 가려진 채 활동하던 저명인사이기도 했다. 시에프 가문은 또한 영국계 로스차일드 가문의 은행업 파트너가 되기도 했다. SOE가 비밀리에 본부로 활용했던 백화점 체인망의 또 다른 최고위층 관리 중의 한 명은 플로라 솔로몬[Flora Solomon]으로, 그녀는 러시아 태생의 유태인이자 비밀 공산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헤롤드 “킴” 필비[Harold “Kim” Philby]의 젊은 시절 애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필비와 그의 ‘링 오브 파이브[Ring of Five]’에 있어서 중요한 스파이 연락망[spy courier]이기도 했다. 유럽이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던 시기, SOE가 종종 러시아 NKVD나 GRU와 공동으로, 와해 및 암살 공작이나 첩보 활동을 펼쳤던 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상호 연관된 문제가 되겠지만, 1943년 7월, 유명한 영국 공산주의자였던 더글라스 프랭크 스프링홀[Douglas Frank Springhall]은 간첩 활동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레드 오케스트라[Red Orchestra(Rote Kapelle)] 스파이 조직의 영국 지부의 일원으로 소련 GRU를 위해 수년간 스파이 활동을 펼쳐왔던 것이다. 이 놀라운 스파이 조직은 약 5,000명에 달하는 지하 조직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모두 비밀 공산주의자들이자 반-나치 운동가들이었다.--그들은 당시 영국 전역에서 활동중인 것으로 알려진 공산주의자들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단히 효과적으로 운영되던 이 스파이 조직은, 그 신원 추적이 아주 어려웠던 폴란드계 유태인, 레오폴드 트레퍼[eopold Trepper]에 의해 운영되었다. 트레퍼는 (내가 가진 계보 차트에 따르자면,--워싱턴 D.C. 카네기 연구소[Carnegie Institution]가 1934년 이래 정리해 온 것으로, 1936년 2월 29일 워싱턴 스타[The Washington Star]지에도 실렸던 계보 차트에 따르자면--저자) 젊은 시절, 팔레스타인에서 시오니스트 헤찰루츠[Hechalutz](이스라엘 땅에 농업 정착지 설립을 목표로 추진했던 유태계 젊은이들의 운동--역주) 조직에 가담하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스프링홀의 동지들 가운데 또 한 명의 일급 비밀 정보원은 오르몬드 우렌[Ormond Uren]으로, 그는 영국 육군[the Highland Light Infantry]의 젊은 유태계 장교이자, 그 때 당시 이미 SOE에도 소속되어 있었다. 그는 군 입대 이후인 1940년, 영국 공산당[CPGB, Communist Party of Great Britain]에 가입한 인물이었다. 실로, SOE는 조직내 모든 직위에 걸쳐서, 파비언 사회주의자들, 프리메이슨들, 막시스트들, NKVD와 GRU 요원들, 동성연애자들과 알코올중독자들이 문자 그대로 북새통을 이루는 기관이었으며, 2차 대전 기간, MI-5, MI-6, OSS도 정확히 꼭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OSS가 포함되는가? 왜냐하면 OSS는 사실상 SOE를 운영했던 빨갱이들의 “도움”으로 설립된 기관이었으며, 소련을 사랑하는 인물이자, 좌파 변호사였던 윌리엄 “와일드 빌” 도노반 대령[Col. William “Wild Bill” Donovan]에 의해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도노반 대령은, 비밀-유태계 인물이자 33단계 프리메이슨이기도 했던 프랭클린 들라노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대통령의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하자르계 유태인들의 미 정부 침투사’ 참조--역주) 도노반은 1883년생으로, 젊은 시절이었던 1916년 3월, 록펠러 재단[the Rockefeller Foundation]이 운영했던 ‘미국 전쟁 구제 위원회[American War Relief Commission]’에 의해 제 1차 세계 대전으로 폐허가 된 유럽의 상황을 조사하는 임무를 띠고 유럽으로 파견된 적이 있었다. 그 무렵 그는, 4월과 5월에 걸쳐 당시 부유하고 촉망받던 젊은 시오니스트이자 동성연애자였던 윌리엄 스테펜슨[William Stephenson]과 함께 영국에 체류하기도 했다.(수 년 후에 그는 “두려움을 모르는 자라 불리던 남자[A Man Called Intrepid]”로 알려지기도 했다.--저자)(스테펜슨은 1940년대 MI-6가 미국 내 설립한 영국 안보 조정국(BSC)[British Security Coordination]이라는 단체를 운영. 이 단체는 공식적으로는 여권 관리 사무를 맡았으나 실제로는 미국 내에서 영국 국익을 위한 비밀 첩보활동을 펼쳤고, 당시 스테펜슨의 암호명이 ‘두려움을 모르는 자(인트레피드)[Intrepid]’였음. 1976년 윌리엄 스티븐슨[William Stevenson]이라는 유사한 이름의 캐나다 작가가 그의 일대기를 그린 ‘두려움을 모르는 자라 불리던 남자[A Man Called Intrepid]’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스테펜슨은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됨--역주) 1919년, 도노반은 록펠러 가문에 의해 이번에는 시베리아로 파견되었는데, 당시 랭글[Wrangle] 장군과 데니켄[Deniken] 장군이 이끌던 “화이트 러시아 세력[White Russians]”을 평가하는 임무를 맡았다. 화이트 러시아 세력은 붉은 군대[the Red Army]에 맞서 싸우고 있었으나 “입지가 상당히 축소되어” 있었다. 그런데 도노반은 부패한 하자르-아슈케나지 볼셰비키들[Khazar-Ashkenazim Bolsheviks]이 러시아에서 자행하고 있는 끔찍한 학살들에 대한 진상을 보고하는 대신에, 이처럼 중요한 충돌 속에서 “반-공산주의자 세력들은 부패하고 분열되어 있었다”고만 국무부에 보고했다.
도노반과 여타 빨갱이 공산주의자들
그 다음 해, 도노반은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민간 차원의 실태 점검 임무를 띠고, 특급 대우를 받으면서 또 다시 유럽을 방문했다. 록펠러 가문을 위한 이 같은 조력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윌리엄 J. 도노반은 미 법무장관 차관보[assistant U.S. Attorney General](1925-29)에 지명되었으며, 브나이 브리츠[B’nai B’rith]가 통제하는 조사국[Bereau of Investigation](동일 건물에 위치해 있다.--저자) 사이의 연락망 역할도 맡게 되었다. 1941년 7월, 그는 록펠러 가문의 후원으로, 당시 새롭게 생겨난 기구인 전략조정국(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의 수장이 되어, 국가 정보의 총괄적인 조정자가 되기도 했다.(그는 나중에 ‘미국에 대한 배신행위’의 공로를 인정받아, 준장[Brigadier General]으로까지 승진했다.--저자) 또한 2차 세계 대전 기간, 도노반은, 비밀 공산주의자이자 반역자였던 샤를 드골 장군[General Charles DeGaulle]이 이끄는 소위 ‘자유 프랑스 군대[Free French Forces]’와 수 차례에 걸쳐 접촉했다. 드골 장군이 지휘했던 이 부대에는 사실상 “소련 스파이들이 들끓고 있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드골 장군의 최측근이자 최고위층 부관이기도 했던 앙드레 라바르트[André Labarthe]는 소련 공산당 스파이 역할을 함께 맡고 있었다. 드골이 직접 선발했던 또 다른 인물로, 프랑스 국내의 모든 군사 문제를 총괄했던 뮈셀리에 장군[Admiral Muselier] 역시 또 한 명의 소련 공산당 요원이었다. 그러한 빨갱이들 가운데 드골과 아주 가깝게 일했던 다른 인물로는 장 물랭[Jean Moulin]이 있었으며, 그는 2차 대전 기간 프랑스 레지스탕스 조직이었던 마키[the Maquis](지방 게릴라 부대--역주)의 수장이었다. 그 밖에도 이러한 명단은 끝없이 이어진다.
드골 장군을 보좌했던 최고위층의 좌익 분자들 가운데, 보다 중요했던 인물로는 알폰즈 폴 드 로트칠드(로스차일드)[Alphonse Paul de Rothschild]가 있었다. 그는 빅터 로스차일드의 프랑스 사촌으로 프랑스 군대의 장군이었다. 친-독일파였던 프랑스 비시 정부[Vichy Government]는 1940년 이후로 프랑스 국내의 친-공산주의 유태인들로부터 강한 저항을 받게 되자, “이 로스차일드 일가들이 국외로 도망간 이후 그들의 다양한 가족 자산을 몰수하고, 시민권을 박탈했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The New York Times Magazine], 1982년 5월 12일자) 그러나 드골과 그의 새로운 공산주의 정부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즉시 모든 자산들을 기 남작[Baron Guy]과 그의 가문에게 넘겨주었다. 프랑스에 거주했던 로스차일드 일가는 나치를 피해 뉴욕으로 도망간 뒤 다시 런던으로 되돌아 갔다.--사실상 그들은 최악의 악몽을 경험했던 것이다. 기 남작은 프랑스 내 유태인 공동체에서 종교적인 문제를 관장하는 공식 기구였던 콩시스투와르(종교 회의)[Consistory(Consistoire)]의 의장 역할을 오랫동안 맡아온 인물이었다. 그는 나중에 유럽 은행 가문들의 프랑스 지부의 총책임자이자, ‘로스차일드 방크[the Banque Rothschild]’의 수장이 되었다.(과거 로스차일드 형제들[Rothschild Fréres]이 맡아온 일이었다.) 남작[Baron]이라는 지위는 1822년 오스트리아 황제가 프랑스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그들이 행한 재정적 지원에 대한 보상”으로 하사한 것이었다.
그럼 이제, 영국 특수작전부(SOE)[Special Operations Executive]로 되돌아가, 이 ‘서커스단’에 머물렀던 끔찍한 얼간이들 몇 명을 더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가 아는 한, SOE는 친-소련 파비언 사회주의자였던 휴 달턴[Hugh Dalton]에 의해 설립되었다. 열렬한 막시스트 변호사였던 달턴은 당시 경제전쟁 장관[Minister for Economic Warfare]을 맡고 있었다. 달턴은 또한 파비언 사회주의자들이 통제하던 영국 노동당 안에서도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쟁 기간 달턴과 긴밀히 협력했던 인물은 저명한(어쩌면 사랑스러운? 누가 알겠는가?--저자) 런던 경제대[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헤롤드 라스키 교수[Professor Harold Laski]였다. 라스키는 또 한 명의 배반적인 유태계 공산주의자였으며, 프리메이슨이자, 비밀 소련 스파이였다.--그와 강력한 유대관계를 맺었던 친형, 네빌 라스키 판사[Judge Neville Laski]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년 전, 라스키는 몬트리올 맥길 대학[McGill University]과 하버드[Harvard]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마찬가지로 런던 경제대에서도 교편을 잡았다. 그 무렵 그는 영국 노동당 총재[Secretary of the Labour Party]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라스키 교수의 명성을(혹은 악명을?--저자) 높여줄 한 가지 경력이 더 있다면, 1939년 그가 런던경제대 교수로 있을 당시, 영국 주재 미국 대사 아들의 개인 교사[personal instructor]도 했었다는 사실이다. 이 젊은이는 용모단정하고 부유한 하버드대 학생으로, 사실상 좌파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스페인 여행을 한 적이 있었으며, 당시 국가 전복을 시도했던 공산주의 혁명가들에 대한 열렬한 찬양자가 되기도 했다. 그의 부친이었던 조셉[Joseph]은, 수년 전 뉴잉글랜드 지역, 아일랜드계 마피아 두목으로 밀주 사업을 통해 백만장자가 되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조셉은 비록 ‘라운드 테이블 그룹[the Round Table Groups]’(친영 국가간 협력 제고를 위한 단체--역주)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지만, 2차 세계 대전 동안에는 반-유태주의자이자 친-나치주의자라는 이유로 영국에서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의 젊은 아들은 물론 존 피츠제랄드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였다.
내가 지난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산주의-시오니즘-메이슨주의에 기반한 음모론 전반에 관해 광범위하게 연구, 수집한 자료에 따르자면,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완수된 이래, 소련 정보기관들은 영국, 프랑스, 미국은 물론이고, 실로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 걸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활동을 펼쳐 올 수 있었다. 오직 나치 독일과 제국주의 일본만이 소련 정보기관들이 발견한 진정한[real] 저항 세력들이었다. 이 인류를 배반하는 적들은 만약 독일과 일본이 없었더라면, 물렁한 서방 정보기관들을 상대로 오직 연전연승만을 거듭했을 것이며, 거의 일방적인 싸움을 해 왔을 터였다. 나는 이것이 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왜냐하면 공산주의 신 좌파 운동[the Communist New Left movement] 조직 내부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가 비밀 수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경찰 정보원들이, FBI와 ‘반국가 활동에 관한 의회 위원회[the House 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HCUA)]’에 보고해 온 바에 따르자면,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는 빨갱이 단체들이 수백, 수천 개도 넘어, 거의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디 내 말을 믿어주길 바라는데, 오늘날 그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활동적으로 변모했는데, 왜냐하면 오늘날 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미국의 기관들마저도 사실상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라고 당신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의 아주 슬픈 현실에 따르자면, 소련 비밀 경찰과 그들이 거느린 다수의 빨갱이 보조 정보기관들은(수백만 명이 넘는 활동 요원들과 조력자들뿐만 아니라) ‘제 1일’ 이후로 비밀리에 서로서로 돕고 보호해 가며, 믿기지 않을 만큼 공격적인 그들의 음모 활동을 펼쳐 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영국 정보기관 최고위층에 안착한 스파이들과 이 기관내 파비언 사회주의자들과 메이슨 친구들을 활용했으며, 이어서 프랑스 정보기관, 다음으로 OSS, 그리고 마침내는 CIA까지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78년 레오나드 모슬리[Leonard Mosely]가 영리하게도 ‘덜레스[DULLES]’라는 제목으로 간행한 덜레스 가문(존 포스터 덜레스는 1953-59년간 미 국무장관을 역임--역주)의 전기 296페이지에 따르자면, “와일드 빌” 도노반[“Wild Bill” Donovan]은 자신이 OSS 수장으로 있는 동안, 연구, 분석 부서에 다음과 같은 빨갱이들을 고용했다. : 존 K. 페어뱅크스[John K. Fairbanks], 랄프 번치[Ralph Bunch], 모리스 헬퍼린[Maurice Halperin] 그리고 허버트 마르커스[Herbert Marcuse]. 그렇지만, 물론 이들만이 유일한 공산주의자들인 건 아니었다. 과거 소련 스파이 통신원이었던 엘리자베스 벤틀리[Elizabeth Bentley]가 쓴 ‘속박을 벗어나[Out of Bondage]’라는 책 263페이지에 보면, 헬퍼린[Halperin]은 OSS 안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담당하는 [유태계] 공산주의 스파이 요원이었다.--안보 분야 분석관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OSS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몇몇 다른 소비에트 요원들로는 다음과 같은 자들이 있었다. : 던컨 리 소령[Major Duncan Lee], 도널드 휠러[Donald Wheeler], 줄리어스 J. 조셉[Julius J. Joseph], 레오 M. 드로츠도프[Leo M. Drozdoff], 어빙 파얀스[Irving Fajans], 잭 사전트 해리스[Jack Sargent Harris], 폴 V. 마르티노[Paul V. Martineau], 레오나드 E. 민스[Leonard E. Mins], 헬렌 B. 테니[Helen B. Tenney], 밀튼 울프[Milton Wolff], 조지 S. 워치닉[George S. Wuchinich], 데이비드 자블로도프스키[David Zablodowsky], 그리고 칼 알도 마르차니[Carl Aldo Marzani] (마르차니의 경우는 유엔 깃발과 엠블럼을 디자인한 인물이었다.--저자) 실로 오늘날 CIA는, FBI와 마찬가지로, 모스크바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데, 이들 두 기관은 현재 자신들의 빨갱이 러시아 카운트파트와 한통속이 되어(손발을 맞춰 가며 / 장갑 속에 손을 맞잡고)[hand-in-glove] 일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톤: O.J. 심슨[O.J. Simpson]의 장갑과는 달리, 이들의 장갑은 분명히 잘 맞는 모양입니다] 유사한 방식으로 또 이와 병행해 나가는, 체제 전복 활동들이 전 세계에 걸쳐 셀 수 없이 많은 고위급 정치인들과 관료들 사이에서 진행 중에 있으며, 특히 런던, 파리, 로마, 브뤼셀, 본, 뉴욕, 워싱턴이 주 무대가 되고 있다. 그러한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오늘날 너무나도 명백해졌다시피, 바로 반역[TREASON]인 것이다!
국제 사회주의와 국제 공산주의
어쩌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영국의 MI-5와 MI-6 그리고 그들의 미국쪽 추종 기관인 OSS-CIA는 단순히 국제 사회주의[the SOCIALIST INTERNATIONAL] 세력의 팔다리가 되어, 정보 수집, 여타 정보 활동/암살/마약 거래 등을 펼쳐 나가고 있다. NATO 동맹과 UN 또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듯한 제스츄어를 취하고 있지만, 그저 이들의 부속 기관들일 뿐이다. 모두가 단순히 국제 공산주의[the COMMUNIST INTERNATIONAL] 세력에 맞서는 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이들 신성하지 못한 세력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세계 통제[control of the world]--즉 ‘뉴 월드 오더(신 세계 질서)[NEW WORLD ORDER]’인 것이다. 말하자면, 수십 년에 걸쳐 서로서로 강경하게 맞서고 있는 적들은, 실제로 서로에게 있어서 진정한 적들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의 라이벌들[rivals]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이다. 영국 정보기관 전체, 그리고 미국 정보기관 대부분(예외가 있다면 미 해군 정보기관 내의 COM-12가 될 것이다.--저자)은 사실상 비밀리에 런던 채텀 하우스[Chatham House in London](왕립 국제문제 연구소--역주)의 통제를 받고 있다. 채텀 하우스는 파비언 사회주의 소사이어티[Fabian Socialist Society]와 그들의 잡다한 막시스트 단체들[bastard Marxist sibling], 그리고 1901년 이전에는 “로드 시크릿 소사이어티[Rhodes Secret Society]”로 불렸던 알프레드 밀너 경[Lord Alfred Milner]의 ‘비밀 라운드 테이블 그룹[the secret Round Table Groups]’을 포함하여, 이들 전체의 사실상의 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
[Part 25 인용의 끝]
pp.57-61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143권, “Causes and Becauses : WHO You Don’t Know Will Kill you”, 제 6, 7장, pp.50-54, 57-61.
(피닉스 저널 제 143권은 미간행 저널로 원래 제목이 없으나, 하톤은 서문에서 이 책의 제목을 “Causes and Becauses : WHO You Don’t Know Will Kill you”로 정해줄 것을 요청--phoenix)
제 7장, 기록 #1 하톤
1991년 5월 2일 목요일, 8:35 A.M. 4년 259일
......
미국의 비밀 단체들에 대해 더 언급하기로 약속했던 만큼
‘해골 종단[Skull And Bones]’으로 되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 제대로 알아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되면 될수록, 당신은 ‘플레이어들’을 보다 잘 식별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who WANTS WHAT]’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자들이여, 이 세계는 커다란 자두입니다. 적들의 무리들은 여러 개의 파벌들로 나뉘어 이 자두를 따먹고 싶어 하며, 다른 누군가가 이를 먼저 따가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당신들은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날 당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또한 지금껏 당신들의 세상에서 펼쳐져 온 일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당신들은 다양한 방식들을 통해 당신들을 통제하도록 셋팅되어 있는 “오더[Order]”의 유사성을 반드시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지금 여기서 다루는 것들과 유사한 내용의 많은 글들이 ‘우리의 작업’으로부터 직접 얻어낸 것들이었음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그렇지만, 많은 저자들은, 안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례가 되길 희망합니다. 당신이 특별한 수신 장치를 통해 (혹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특별한 루트로, “외계에서 날아온 자들[space-cadet]”로부터 비밀 정보를 입수했노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는 편이, 어쩌면 당신이 전하는 정보가 보다 널리 퍼지고, 확인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받아들여지는 데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입니다.--결국 진실만 남게 되고, 그 이외의 것들은 자연히 따라 올 것입니다! 나는 여기 이 글들이 단순히 재간행되고, 복사되고, 전송되어, 가능한 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다만 ‘에고에 갇힌 행동’은 제외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누군가가, 내가 확인해 주고 또 재배포해 주기를 바라며, 내게 전해온 정보 한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L.A.에 사는 JH는 ‘해골 종단[the Skull and Bones]’에 관한 언론 배포용 자료를 첨부하여,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는데, 함께 살펴 보기로 합시다. :
1991년 4월 24일,
친애하는 조지[George]에게,
당신은 여기 ‘해골 종단’에 대해 다룬 동봉하는 글이 어쩌면, 추적 기사로 실릴 수도 있을 것으로 여기리라 봅니다. 하지만, (관련 기사를 실은 적이 있었던) 블레이드[the Blade]지의 편집자는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그는 내게 이렇게 답변해 왔습니다. “정말로 어떠한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데 낭비할 시간은 없습니다.”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닙니다.’
부디 하톤 사령관[Commander Hatonn]과 사난다[Sananda]와도 이 글을 공유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를 다룰 방송 매체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 자료가 우리에게 진실을 전하는 기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내가 전하려는 글의 사본을 동봉합니다.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 모두에게 축복을 건넵니다!
[하톤: 전체 글을 다 다루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야 할 것 같아서, 일부만을 “인용”토록 하겠습니다.]
[인용]
오더의 작용 방식[MODUS OPERANDI OF THE ORDER]
나는 ‘미국의 비밀 단체[AMERICA’S SECRET ESTABLISHMENT], 해골 종단에 관한 소개[an Introduction to the Order of Skull & Bones]’라는 책의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오더(해골 종단)[the Order]의 활동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켜 ‘뉴 월드 오더(신 세계 질서)[New World Order]’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지향한다. 이것은 ‘하나의 잘 계획된 질서[a planned order]’로서 극도로 제한된 개인의 자유, 헌법적 보호의 제거, 그리고 국가별 경계선과 문화적 구별의 제거를 지향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더 아래에서 움직이는 구성원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활동을 종합하여, 이러한 오더의 목표를 추론해 낼 수 있었다. : 백 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지속되어 온 ‘일관된 활동 패턴’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활동의 일부는 유사하거나 동일한 목표를 갖는 특정 그룹과의 협력 아래 이루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오리를 기르는 것에 흥미를 갖는 구성원들로 된 단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은 오리에 관한 글을 쓰고, 오리를 기르고, 오리를 팔고, 오리를 연구하는 협회도 만들며, 오리에 관한 철학까지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런 다음 만약 그들이 합리적인 결론의 일환으로 오리에 관한 일종의 단일의 최종적인 목표를 갖게 된다고 해보자. 이 정도가 되면 이건 무작위 활동이라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오더[the Order]의 활동은 ‘사회’에 집중해 왔다. :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특정한 방식을 통해 변화시켜, 특정한 목표, 즉 뉴 월드 오더[New World Order]로 가져갈 것인가에 집중해 온 것이다. 만약 우리가 뉴 월드 오더[New World Order]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꼭 변화되어야만 할 사회의 구성 요소들을 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맥락 아래에서 오더의 활동을 보다 잘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성 요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
교육 –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
돈 – 부를 소유하고, 물건을 교환하는 수단
법 – 국가의 의지를 강제하는 권위로서, ‘세계 국가[world state]’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제법과 국제 법정이 필요
정치 – 국가의 방향
경제 – 부의 창조
역사 – 과거에 일어났다고 사람들이 믿는 것
심리학 –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는 수단
자선 활동 – 사람들이 통제자에게 호의를 갖게 만드는 수단
의학 – 건강, 생명, 그리고 죽음에 대해 갖는 권력
종교 – 사람들의 영적 믿음,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동기
언론 –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사람들이 알고 배우는 매개체
시나리오 –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행동을 뒤따르게 만드는 힘
...존스 홉킨스대 총장, 다니엘 코이트 길먼[Daniel Coit Giman]은 독일로부터 분트 심리학 방법론[Wundt psychological methods]을 입수하여 미국의 교육과 심리학에 결합시켰으며, 각종 연구소들을 만들고, 이러한 교육학 연구소들이 주요 대학들에도 진출하게 만들었으며, 새로운 교육 조건과 시스템을 가르치는 수 백 명의 박사들을 배출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초기의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이 존 듀이[John Dewey]였다.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바대로이다. 198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아이들은 교육적 측면에 있어서 엉망인 상태를 경험했다.--(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철자도 몰랐고, 제대로 읽고 쓸 줄도 몰랐으며, 그저 대중 행동 패턴을 따라 프로그래밍될 수 밖에 없었다.
오더의 다음 목표는 각종 재단들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이들 모두가 중요한 단체들이었다.--카네기[Carnegie] 재단, 포드[Ford] 재단, 피버디[Peabody] 재단, 슬레이터[Slater] 재단, 러셀 세이지[Russell Sage] 재단, 기타 등등. 이 주제에 관해서는 다른 책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교육 분야에 있어서 오더의 작용 방식은 우선 이러한 재단들을 선점하고, 이어서 미래를 위한 무대를 꾸미는 것이었다. 초기의 목표는 해당 기관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관리자들을 선발하고, 직관적이며[intuitive], 도덕과 무관한[amoral] 방식의 교육 방향을 정해서 모멘텀을 계속 살려 나가는 것이다. 재단에 관한 한, 오더는 대체로 수 십 년에 걸쳐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오더의 개인 구성원들의 활동을 살펴보자면, 언뜻 보기에 그 행동 패턴이 혼동스럽고, 표면적으로는 불일치하기까지 한다. 몇 가지 예를 살펴 보기로 하자. :
*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는 철강 산업으로 전쟁 기간 동안 상당한 수익을 얻었다. 그렇지만, 오더의 또 다른 멤버인 다니엘 코이트 길먼[Daniel Coit Gilman]의 권유에 따라, 카네기는 미국 평화 협회[the American Peace Society]의 열정적인 의장이자 재정적 후원자가 되기도 했다. 겉보기에 이는 상당히 모순된 행동인 것이다. 전쟁을 통해 돈을 번 카네기가 평화도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인가?
* 평화를 강제하려 했던 국제 연맹[The League]은 윌리엄 H. 태프트[William H. Taft]와 테오도르 마르부르그[Theodore Marburg]와 같은 오더의 멤버들이 창설한 것으로 그 목표는 평화를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제 연맹은 미국이 제 1차 세계 대전에 개입하도록 압박하는 역할도 했다. 어떻게 국제 연맹이 전쟁과 평화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것인가?
* 1920년대, W. 에버렐 해리먼[W. Averell Harriman]은 소련에 재정적, 외교적 조력을 제공한 주요 후원자였다. 당시 그러한 행위는 미 국무부의 규제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해리먼은 소련의 첫 번째 상업은행인 루스콤 은행[RUSKOMBANK] 설립에도 관여했다. 해리먼-모건의 이익[Harriman-Morgan interest]이 지배적인 역할을 했던 개런티 트러스트[Guaranty Trust]사의 부사장이었던 막스 메이[Max May]는 루스콤 은행의 해외 금융을 담당하는 첫 번째 부사장이 되기도 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미국의 은행가들은, 오더의 멤버들의 지휘에 따라, 소련 은행의 주요 직위도 함께 맡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한 가지 발견하게 되는 사항이 있다면, 에버렐 해리먼과 그의 동생이었던 롤랜드 해리먼[Roland Harriman], 그리고 또 다른 오더의 멤버들이었던 E.S. 제임스[E.S. James]와 나이트 울리[knight Wolley]는 유니언 은행[the Union Bank](이 은행이 그들의 주된 이익 기반이었다.--저자)을 통해 히틀러[HITLER]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인물들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 오늘날 우리가 가진 교과서에 보면, 나치과 소련은 서로간에 끔찍한 적들이었고, 그들이 보유했던 시스템은 정반대였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성적인 인간이 소련과 나치를 동시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인가? 해리먼이 비이성적인 인물이었거나 혹은 모순적인 사람이었다고 해야만 이 상황이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 번디 가문[The Bundy Family]은 겉보기에 모순적인 또 하나의 사례를 제시해 준다. 윌리엄 번디[William Bundy]는 약 10년간 CIA에서 근무했다. 맥조지 번디[McGeorge Bundy]는 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 재임 시절 국가 안보 보좌관[National Security Assitant]을 맡았다. 말하자면 번디 가문은 언뜻 보기에 친-NATO[pro-NATO]를 지향하는 미국의 대 유럽 정책을 지지해온 것이다. 그렇지만, 번디 가문은 반-NATO[anti-NATO]를 표방하고, 친-막시스트[pro-MARXIST]를 지향하는 활동과 기관에도 동시에 연계되어 있었다.--예를 들어, 정책연구소[the Institute of Policy Studies]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번디 가문이 모순적인 것인가?
* 오더의 개별적인 회원들은 저마다 표방하는 신념, 이데올로기, 정책에 있어서 대단히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윌리엄 버클리[William Buckley]는 주기적으로 소련을 신랄히 비판해 왔다. 반면, 또 다른 멤버인 존 버트[John Burtt]는 공산주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십여 개의 그룹에 소속되어 있기도 했다. 또 다른 멤버인 윌리엄 S. 코핀 주니어[William S. Coffin Jr.]는 CIA에서 3년간 근무한 후에, ‘새 정치를 위한 국가 컨퍼런스[the National Conference for a New Politics]’, 그리고 ‘베트남을 걱정하는 성직자와 신도들의 모임[Clergy and Laymen Concerned about Vietnam]’과 같은 단체를 이끌며, 베트남전에 반대 활동을 펼치는 리더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코핀은 ‘보스턴 파이브[the Boston Five]’(1968년 초반 반국가활동을 주도했던 5명의 리더들을 일컫는 표현--역주) 가운데 한 명으로, 연방 법률 집행 방해를 위한 음모를 꾸민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또한 W. 에버렐 해리먼[W. Averell Harriman]은 민주당 정계 원로이기도 했다.
요컨대, 오더의 멤버들은 신념과 활동에 있어서 대단히 혼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순적인 철학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 오더[The Order]는 개별 회원들의 혼재된 활동 속에서 일관된 목표를 가질 수 있는 것인가?
그 대답은 다음과 같다. : 그들은 전혀 모순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활동들에도 불구하고, 오더[The Order]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오더가 사실상 필요로 했던 것은 이처럼 ‘겉보기에 모순되어 보이는 상황들’이었던 것이다.
절대 국가[The State Is Absolute]
회원들이 저마다 명백히 반대되는 활동들을 펼치고 있는데, 어떻게 공동의 목표가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로, 독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면, 이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관찰하게 되는 것이 정말로 무엇인가’하는 부분이다. 사실상 오더의 목표는 “좌[left]”도 “우[right]”도 아닌 것이다. “좌”나 “우”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에 쓰이는 인위적인 장치들이다.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좌파나 극단적인 우파는 ‘통제된 변화[controlled change]’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처럼 겉보기에 정치적인 수수께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헤겔 철학[Hegelianism]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막시즘이나 나치즘으로부터 각각 ‘지적 고통[intellectual anguish]에 따른 비명’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변증법적 과정[The Dialectical process]은 막시스트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마르크스[MARX]에 그 기원이 있는 것이 아니며,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독일의 피히테[Fichte]와 헤겔[Hegel]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유태인[JEW]”, “시오니스트[Zionists]”, 그리고 “이스라엘[Israel]”(소문자 ‘i’의 이스라엘[israel]이 아니다.--저자)이라는 표현이 만들어진 직후였다.--저자) 변증법적 과정에서는 반대되는 것들의 충돌이 합을 가져오게 된다. 예를 들어, 정치적인 우파와 정치적인 좌파의 충돌은 두 가지 사조의 합으로서, 또 다른 정치적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은 좌도 우도 아니다. 이러한 반대되는 것들의 충돌이 본질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과정은 삼변회[the Trilateral Commission]에서 간행하는 책자들에서 발견되는데, 이에 따르자면, “변화[change]”는 촉진되며, 또 이러한 변화를 야기하는 수단에는 “충돌 관리[conflict management]”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이다.
헤겔 철학에 있어서 충돌은 본질적이다. 나아가 헤겔에 있어서, 그리고 헤겔 사조에 기반한 시스템에 있어서, 국가는 절대적이다[the STATE IS ABSOLUTE]. 국가는 개개인의 시민들로부터 완전한 복종을 요구한다. 한 개인은 이와 같은 유기체적 시스템에 있어서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국가의 작용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을 수행해 내게 된다. 히틀러의 독일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없었으며, 막시즘 체제 아래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없었다. 뉴 월드 오더[NEW WORLD ORDER] 아래에서도 역시 개인의 자유는 없을 것이다. 만약 이 상황이 당신에게 있어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를 연상시킨다면, 그 대답은 ‘맞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국가는 절대적이며, 충돌은 ‘이상 사회[the ideal society]’ 구현을 위해 이용된다는 것이다. 개인은 오직 통치자들에게 복종할 때에만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럼, 국가는 누구이며, 국가는 무엇인가? 분명코 이것은 소위 말하는 자칭 엘리트들이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헤겔 이전에 이러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던 피히테는 프리메이슨이었으며, 그는 또한 사실상 일루미나티[Illuminati]이기도 했다. 혹은 최소한 그는 일루미나티들로부터 후원을 받은 인물이었다. 예를 들어,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Goethe]는 피히테를 예나 대학[Jena University] 교수로 천거하기도 했던 것이다.
나아가 일루미나티들의 원칙들 가운데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end justifies the means]”는 것이 있다. 이 원칙은 키글리[Quigley](‘일루미나티의 계획’ 참조--역주)가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룹(일루미나티)[The Group]과 오더(해골종단)[The Order], 양쪽 모두로부터 사용되고 있다. 예일대 캠퍼스의 나무에 기념으로 새겨둔 이 경구는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더에 관한 다음 설명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된다. 오더의 공동 창시자였던 윌리엄 러셀[Willam Russell]은 1831-32년간 독일에 체류했으며, 당시 그는 헤겔의 이론을 접하고 이에 대해 토론하지 않았을 수 없었다. 헤겔 이론은 당대 캠퍼스의 주류 담론이었다. 이것은 마치 팩맨[Pac Man](1980년대 유행했던 비디오 게임--역주) 열풍처럼 당시 독일의 지식인 사회를 휩쓸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 미국인들도 이 이론을 더 듣고 싶어하진 않았다. 왜였을까? 왜냐하면, 이 이론에서 제시하는 가정들은, 개인의 자유와 또 이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미국식 개념과는 전적으로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우리들이 믿고 있는 바에 따르자면, 국가는 개인을 위해 봉사하는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닌 것이다.
오더는 우리들 대부분이 믿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을 믿는다. 이것이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것이다. 말하자면, 좌와 우 사이의 어떠한 논의도, 그것이 ‘변화’를 증진시키는 데에는 필수적일지 모르겠으나, 제퍼슨주의[Jeffersonian]에 입각한 “공화국[Republic]”과 “민주주의[democracy]”, 즉 ‘최고의 정부는 최소의 정부[the best government is the least government]’라는 우리 식의 주류 정치 담론을 발전시키는 데에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식의 토론과 펀딩은 항상 더 많은 국가 권력을 지향하고, ‘국가 권력의 사용’을 고무하는 반면, ‘개인의 권리’로부터는 보다 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오더의 관점에서 보자면, 좌파, 우파, 민주당, 공화당, 세속적, 종교적, 혹은 다른 그 어떤 표현을 사용하든 간에, 그들 간의 토론이 ‘국가와 국가 권력[the STATE and the POWER OF THE STATE]’이라는 프레임 안에만 있다면, 전혀 문제될 게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더의 멤버들이 취하는 겉보기에 너무나 상이해 보이는 입장들 간의 ‘공통된 특징’인 것이다.--요컨대 그들은 보다 고차원적인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아이디어들 간의 충돌은 본질적인 것이다. ‘개인의 권리’가 논의 속에 개입되지 않는 한, 아이디어들 간의 충돌은 ‘변화를 위해 필요한 마찰’을 만들어 내게 된다.
나아가 목표가 세계 통제[global control]에 있는 한, 글로벌 사고, 즉 국제주의[internationalism]에 방점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바로 국제 기구와 국제법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태프트[Taft]가 국제 재판 제도와 국제법 정착에 공헌한 것은, 그가 오더에게 남긴 가장 큰 기여이기도 했다.--이는 물론 국제주의적 측면에서 볼 때, 뉴 월드 오더[THE NEW WORLD ORDER]의 실현을 위한 기여이기도 했다.
[인용의 끝]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106권 (미간행 저널), 제 7장, pp.53-57.
http://www.fourwinds10.com/unpublished_phoenix_jour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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