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프리메이슨, 권력과 통치지배
  • 프리메이슨, 권력과 통치지배

    by Published on 2013-10-06 22:09  조회: 2818 
    1. 글위치:
    2. 세계의 검은 세력의 지배,
    3. 아눈니키 후예들,
    4. 일루미나티 지배세력들,
    5. 프리메이슨, 권력과 통치지배,
    6. 이스라엘, 러시아, 하자르계, 유태인,
    7. 사탄 SATAN, 666


    제 12장, 1995년 5월 10일 수요일, 10:06 A.M. 8년 267일

    권력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Force], Part 11 :

    [인용]
    섹션 II[Section II]

    메이슨(건축 석공)[Architectural Masonry]

    ......

    네스타 웹스터[Nesta Webster](1876-1960, 음모론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긴 영국 여성 작가--역주)에 따르자면, 영국에 처음으로 메이슨들이 자리잡게 된 건, A.D. 926년, 유명한 요크 센터[York Center]가 생기면서부터였으며, 주로 컬데스[Culdees](?--저자)에 의해 운영되었던 이 기관을 통해 영국내 메이슨 활동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컬데스는 이와 함께, 스코틀랜드, 킬위닝[Kilwinning], 멜로즈[Melrose], 에버딘[Aberdeen]에 있던 메이슨 학교[the Masonic Collegia]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존 야커[John Yarker]의 책, ‘불가사의한 학교들[The Arcane Schools]’에 따르자면). 중세시대 프랑스에 있던 메이슨(노동 석공)[working stone masons] 동업자 조합은 “꽁파뇨아쥬(동업조합)[Compagnonnages]”로 불렸으며, 독일에 있던 메이슨들의 조합은 “슈타인메첸(석공들)[Steinmetzen]”으로 불렸다. 프랑스 단체의 본부는 파리에 있었으며, 독일에서는 나중에 석공들 가운데서도 고딕 건축업자들[Gothic architectural builders]의 본부가 스트라스부르그에 생겼다.(이 단체는 1498년 막시밀리언 황제에 의해 마침내 승인되었다.)

    이와 같은 초창기 유럽내 메이슨들의 단체는 그 활동에 있어서 어떤 부패한 면모이나 불길한 양상을 띠지는 않았다. 다만, 오늘날의 프리메이슨[Freemasonry]처럼, 그들도 친절하고 인간적인 면모 너머로, 어떤 정부 전복적 성격을 가진 비밀 움직임들을 가졌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체적인 윤곽 속에서,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갖는 것은, 사변적이고, 철학적 성격의 메이슨들, 보다 나은 표현으로는 ‘프리메이슨[Freemasonry]’으로 알려진 자들이다. 어쩌면 당신이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15세기, 영국에서 헨리 6세[King Henry VI]의 통치가 시작될 무렵, 의회 법안에 의해 활동이 금지되었던 건 바로 이 ‘프리메이슨들’이었다. 정확히 1세기 후, 엘리자베스 여왕[Queen Elizabeth]은(우리가 이어서 곧 보게 되겠지만) 요크[York]에서 매년 열렸던 그랜드 롯지 모임[the Annual Grand Lodge meeting]을 없애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마음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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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Published on 2013-10-06 22:00  조회: 2202 
    1. 글위치:
    2. 은폐된 진실과 사건,
    3. 세계의 검은 세력의 지배,
    4. 일루미나티 지배세력들,
    5. 프리메이슨, 권력과 통치지배,
    6. 이스라엘, 러시아, 하자르계, 유태인,
    7. 유전자 DNA, 유전자 조작,
    8. 사탄 SATAN, 666


    제 6장, 1995년 5월 6일 토요일, 11:58 A.M. 8년 263일
    ......
    권력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Force], Part 5 :
    비밀 음모[the Occult Conspiracy]에 관한 역사적 고찰
    by “DEG”
    [인용]

    ......
    계속되는 “희생적” 출혈

    ......

    마침내, 도처에 존재하던 세파르딕 유태인들[Sephardics]이 마지막으로 은밀히 침입해 들어간 나라는 영국으로, 때는 A.D. 1077년이었다. 정확히 11년 전,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 공작[William, Duke of Normandy]이 야심차게도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을 침공하게 되었을 때, 사립의 유태계 은행가들은 이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이 대담한 공격이 진행되는 동안, 윌리엄은 색슨의 귀족이었던 헤롤드 왕[Saxon nobleman, King Harold]을 1066년, 결정적인 헤스팅스 전투[Battle of Hastings]에서 물리쳤다. 이상하게도, 교황 알렉산더 2세[Pope Alexander II]로부터도 후원을 받았던 정복왕 윌리엄은 이후 새로운 형태의 영지내 집회였던 “대회의[Great Council]”를 개최했으며, 이를 통해 즉각적으로 대단히 무거운 과세 제도를 도입했다. 이 역동적이었던 새로운 노르만의 왕은 전 영국 땅의 주인이 되었고, 그 중 일부는 노르만의 지지자들과 자신을 후원해 준 유태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모든 영국의 땅 소유주들은 법적으로는 국왕의 땅의 임차인들에 불과하다. 유태계 역사학자인 S.W. 바론[S.W. Baron]은 이 특별한 유태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그들은 곧이어 “왕립 고리대금업자들”이 되었는데, 이들의 주요 역할은 정치적, 경제적 사업들에 대해 돈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높은 이자율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후, 이 대출업자들은 그 중 일부를 이런 저런 명목으로 왕가의 재정적 지원을 위해 내놓아야 했다. 그렇지만, 많은 유태계 가문들은 오랫동안 화려한 저택에서 호화로운 복장으로 안락하게 살았으며, 그들의 영향력은 공적 업무에도 미쳤다... 이 유태인들은 자신들이 따르는 왕가 주인들의 보호에만 배타적으로 의존한 채 살아갔다.”--그러나 마침내 영국 국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누적된 불만은 1189-1190년간 폭동으로 이어졌다...”[하톤: 당신들 훌륭한 미국 시민들 가운데, 미국 땅의 3분의 1 이상이 실은 영국 왕가의 소유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오늘날까지도, 실제로 그렇습니다! 내가 한가지 첨언하자면, 그 왕가는 유태계 왕족으로부터 유래한 영국-이스라엘계 가문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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