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제012권, 크리슈나, 부처, 그리고 예수
  • 제012권, 크리슈나, 부처, 그리고 예수

    진실[Truth]

    당신은 진실을 알아야만 하고, 진실이 당신을 자유롭게 만들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논픽션”으로 발표된 공식적인 문서들 중 일부가 “자신들의” ‘작업’이라 주장하고, 또 이것이 “빼돌려졌다”거나 “도둑질 당했다”고 주장할 때, 우리가 그러한 ‘부분’을 두고 진실이라고 부른다면, 이는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까? 만약 임마누엘 사난다(예수)[Jmmanuel Sananda(Jesus)]가 어떤 글들을 자신이 직접 쓴다거나, 혹은 다른 함대 사령관들[Fleet Commanders]이 역시 저마다의 경험들을 자신들이 직접 글로 쓴다고 했을 때, 마침 이것이 다른 사람들이 이미 서술한 것들과 맞물려 있는 내용이라면, 그 때 이것은 진실입니까? 거짓입니까? 진실에 대한 서술에 있어서 다른 내용은 제외한 어떤 특정 부분이, 당신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라서, 이를 두고 당신은 하나님께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이 서술한 어떤 글이 진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상황에서, 정확히 똑 같은 내용을 당신 자신이 직접 (진실인 양) 서술한다면(여전히 그것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이는 당신이 당신의 동료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뜻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어떤 글들을 전부다 읽어 보지도 않은 채로 그 글들을 판단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당신은 그 글의 저자들을 악한 존재로 예단하여, 글의 내용 자체를 비난하거나 부인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나는 우리 글들(피닉스 저널들)에 대한 가장 최근의 불만제기자 한 사람을 접하게 되었는데, 오늘 아침, 이 서술의 말미에 이를 한 번 짚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이러한 행위가 바로 ‘피닉스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CRUCIFIXION OF THE PHOENIX](이 장이 들어 있는 피닉스 저널 제 12권의 제목--역주)인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시작되었는지를 당신들에게 설명할 것이며, 또한 이런 부정적인 태도(에너지)[negative power]가 실로 가장 어리석은 행동으로 밝혀질 것이라는 점 역시 당신들에게 이야기해 주려는 것입니다.


    부처님(주 부처)[LORD BUDDHA] :


    “진실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여기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어리석도다.--진실은 항상 진실이며, 거짓은 항상 거짓이라. ... 오직 악한 자만이 고통을 받아--현재도 고통스럽고, 나중도 고통스러우며, 현 세상에서도 고통스럽고, 다음 세상에서도 고통스럽노라. 그러나 선한 자는 행복을 누려--현재도 행복하고, 나중도 행복하며, 현 세상에서도 행복하고, 다음 세상에서도 행복하리라...”

    “옳은 시각은 자신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옳은 포부는 자신의 안내자가 될 것이다. 옳은 말은 자신이 걷는 길 위의 거처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러한 자의 걸음걸이는 똑바를 것인데, 왜냐하면 그의 행동이 옳기 때문이라. 그 자가 갖는 심신의 건강은 자신의 생계를 꾸려 나가는 옳은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옳은 노력은 자신이 내딛는 걸음걸음들이 될 것이고, 옳은 생각은 자신의 호흡들이 될 것이며, 옳은 뜻은 그에게 평화를 건네주게 될 것인데, 이 평화는 그가 남기는 모든 발자국, 발자국들을 따라 다니리라.”

    “타인의 고통에 슬퍼하는 자들은 복받은 자들이라,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들이 위로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니라. 온화한 자들은 복받은 자들이라, 왜냐하면 이들은 이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옳음과 정의에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는 자들은 복받은 자들이라, 왜냐하면 이들의 부족은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니라. 자비로운 자들은 복받은 자들이라, 왜냐하면 이들은 자비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니라. 마음이 순수한 자들은 복받은 자들이라, 왜냐하면 이들은 신(하나님)[God]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니라. 평화를 만드는 자들은 복받은 자들이라,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들[the children of God]’로 불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니라. 옮음과 정의를 추구하다 박해받는 자들은 복받은 자들이라, 왜냐하면 ‘천상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이 이들의 것이기 때문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임마누엘)[LORD JESUS CHRIST(JMMANUEL)] :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 찾아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구하는 모든 자는 얻게 되고, 찾는 모든 자는 발견하게 되고, 두드리는 모든 자에게는 열릴 것인데, 왜냐하면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기 때문이고, 아무것도 명백해지지 않을 것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어떠한 비밀도 없기 때문이고, 아무것도 빛을 보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왜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할까요?


    인간에게는 두 가지 상태가 존재합니다.--현 세상에서의 상태(삶)와 다음 세상에서의 상태(삶) ; 또한 제 3의 상태도 존재하는데--이는 두 세상 간의 매개적인 상태로 이것은 마치 꿈과 같은 상태에 가깝습니다. 매개적 상태 속에서, 한 인간은 자신에게 앞으로 닥칠 불행과 행복, 양쪽 모두를 내다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전의 삶에서 자신이 행한 선행과 악행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당신들이 “가사상태(假死狀態)[near death]”라고 부르는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이 말하는 어떤 ‘전형적인 표현들’에 대해서 언급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를 차라리 “가생상태(假生狀態)[near life]”라고 불렀으면 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제 3의 존재상태를 그 정의에 따라 단순히 묘사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이 터널의 끝에 아름답고 밝은 빛이 있었어요. 처음엔 작았지만, 내가 다가갈수록 빛은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밝아졌어요. 나는 마치 자석처럼 그 빛에 끌렸답니다. 갑자기 이 백색의 빛은 내 주위를 전부 둘러쌌어요. 따뜻함과 사랑으로 나를 감싸고 내 주위를 휘감았죠. 그런데 그건 단순히 빛 이상의 것이었어요. ; 그건 어떤 존재 같은 것[being], 명백한 인성[a definite personality]을 가진 성스러운 존재[a Divine Presence]였답니다. 그 존재 안에서 나는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사랑받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때 그 존재가 내게 질문을 했어요 : 내가 내 인생에서 그에게 보여줄 어떤 일을 했는지를 물었어요. 그리고 내가 죽을 준비가 되었는지도 물었죠. 갑자기 나는 내 인생 전체에 대한 파노라마 같은 장면들을 보았어요.--내가 생각했고, 말했고, 행동했던 모든 것들이 총 천연색으로 펼쳐졌어요.--마치 영화 같았지만, 영화보다 훨씬 생생했답니다. 그 존재는 내가 나 자신과 나의 삶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을 도우려는 것 같았어요.”

    “그 때의 느낌은 내 두뇌의 10분의 9가 열린 것과도 같았고, 내가 모든 지식을 보고,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내게 특권이 주어진 것과도 같은 느낌이었답니다. ; 잠깐동안, 모든 시대와 이 우주에 대한 모든 비밀들, 창조의 의미, 삶과 죽음의 의미, 그리고 그 끝없는 사이클이 내게 드러나 보였답니다.”

    “다음으로 그 존재는 내게 어떤 아름다운 장소를 보여줬어요.--그 곳은 마치 천국과도 같았죠.--빛과 음악이 도처에 있었어요. 그 곳은 아름다운 전원 혹은 숲 속 같기도 했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곳의 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곳의 아름다움은, 그리고 그 곳에서 내가 느꼈던 그 사랑과 따뜻함은, 그 어떤 말로도 도저히 표현을 못하겠네요.”

    “그 존재는 내가 여기 머물길 원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래요!”라고 대답했죠. 나는 그 곳, 혹은 그의 존재감[His presence]을 결코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 때 그가 말하기를 나는 아직 여기 머물 수 없다는 거예요. ; 나는 아직 완수해야 할 임무가 남아 있고, 그를 위해[for Him] 해야 할 어떤 일들이 있다고 하면서, 내가 정말로 그를 사랑한다면, 내가 다시 되돌아 가서, 그를 위해[for Him] 내가 해야 할, 이 일들을 끝내야 한다는 거였어요.”

    “갑자기 나는 그 터널 속을 거꾸로 빠져 나왔고, 모든 게 다 되돌려 졌어요. 내가 다음 번에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 영혼이 다시 한 번 육체라는 감옥 속에 갇혀 있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죠.”

    “나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그가 그 곳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 줄 거예요. 그렇더라도 나는 지금 당장 죽기를 원치는 않는데, 내가 그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내가 다시 그 곳에 가게 된다면, 어떠한 후회도 없는 채로 가게 되길 바란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자살을 선택한 한 남자의 사례입니다. :

    “ ... 그 마지막 한 잔이 내게 필요한 ‘용기’를 줬습니다.”

    “나는 비틀거리며 술집에서 나와 내 차로 갔고, 차를 몰아 고속도로를 벗어 난 다음 절벽을 향해 돌진하였습니다. 절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오른쪽으로 차를 꺾었고 차는 나와 함께 허공을 가로질러 나아갔습니다. 충돌이 내 온 몸을 뒤흔드는 걸 느꼈고, 고통이 내 머리에 엄습했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 후, 난 내가 내 몸 밖에 나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끔찍한 림보[limbo](카톨릭 신학에서 이야기하는 곳으로, 비록 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천국에 사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영혼이 머무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경계지대--역주) 상태에 갇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건 정말로 끔찍했습니다. 내가 벗어나고 싶어했던 모든 것들--실직, 당황했던 일, 음주--이 계속,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일종의 끝없이 계속되는 재방송 같았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계속해서 다시 겪을 때마다, 나는 “이봐, 이건 이미 다 끝났잖아”라고 생각했지만, 그 때마다 모든 게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그 때 나는 내가 이 끔찍한 장소, 이 불쌍하기 짝이 없는 경험의 현장에 정말로 오랫동안--어쩌면 영원히!--머무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는 이내 내가 한 실수를 알아봤고, 내가 그러지 않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는데, 왜냐하면 더 이상 난 그 곳에서 벗어나 되돌아갈 육체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가졌던 모든 문제들은 여전히 나와 함께 했지만, 그 ‘정도’는 훨씬 더 강렬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는 걸 제외하고는 어떤 다른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혼동스럽고 당황스러웠으며, 머리가 “둔해진” 것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는 낙담했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 그 곳에서는 어떠한 탈출구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 때 어떤 추한 존재들이 내 앞에 다가오더니 나를 이 곳에서 더 깊은 곳으로 끌어 내렸습니다. 나는 마치 고문을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 뱀한테 물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내 ‘고통의 뱀들’이 나를 계속해서 다시 공격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존재들은 나를 그들과 함께 억지로 어디론가 끌고 갔는데, 갑자기 난 내가 다시 술집에 앉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거기서 나는 다름 사람들이 술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이 ‘악령들[demons]’--나는 이들을 달리 어떻게 묘사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은 이 술 마시는 자들의 육체를 소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멈추라고 이야기하려고 애썼습니다.--그들이 그러기를 멈춰서, 나처럼 끝을 맺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못 알아 듣는 것 같았습니다.”

    “이 존재들이 나를 다음으로 데려간 곳은 뜨거운 구덩이였습니다.--온통 거품과 연기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그 안을 들여다 보도록 강요했는데, 거기서 나는 내가 한 일의 결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 아내와 아이들이 나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으며, 그 때 그들은 집에서 내 쫓기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집을 저당 잡히고 빌린 돈을 더 이상 갚을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울면서 내가 한 일에 대해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때, 위대한 자비의 주님[the Lord, in His great Mercy]이 내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갑자기 나는, 내가 다시 내 육체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엄청난 고통이 뒤따랐지만, 어쨌든 내가 내 몸으로 되돌아 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두번째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 : 북미 인디언 시우스족[The Sioux]은 이것이 단지 이 경우에만 벌어지는 일로 간주되고 말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실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감각과 세속적인 것들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무지 속을 살고 있는 것이며, 그는 자기 자신의 고통을 대표하는 ‘뱀들’에 의해 소진되고 마는 것입니다.--하톤주


    천국 또는 지옥


    앞에 나온 이야기들은 지금 이 시대, 이 땅에 살고 있는 당신들, 육체를 가진 인간들의 실제 경험담들로 구성된 것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죽음 이후의 삶[life-after-death]을 경험했습니다. 첫번째 진술--천국 같은 사후의 삶을 일별해 주는 것으로--은 감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사고로 또는 자연적인 이유로 이미 “죽었다가”, 나중에 그들의 영혼이 육체와 재결합하여 물리적인 삶을 되찾게 된 사람들이 겪은 실제 이야기들을 편집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위대한 성인들도 아니고 영적으로 고양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근본적으로 “착하고” 사랑을 베풀었던 자들이었으며, 특별히 완벽했다거나 “하나님을 깨달았다거나[God-Realized]” 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당신들 모두와 마찬가지로--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삶을 살아가면서 무수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현생 이후의 경험들은, 비록 ‘천국’같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아주 유쾌한 경험들이었으며, 대체적으로 볼 때, 이러한 사건 이후, 삶의 의미, 사랑의 의미, 하나님의 의미에 대한 개개인들의 관점에, 이 경험들이 대단히 긍정적인 방식으로 심오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진술--지옥 같은 사후의 삶을 일별해 주는 것으로--은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았거나, 또는 이기적인 삶이나 증오하는 삶을 살았던 개개인들의 실제 경험담들로부터 인용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바꿔볼 수 있는 현생에서의 두 번째 삶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들 역시도 이 사후의 경험들이 자신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쳐서, 비록 대부분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많은 자들이 여태까지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변화시켰습니다. 특히 그들은 보다 사랑을 베풀고, 남을 돌보고, 다른 이들의 어려움에 보다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경험 이전의 삶이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God’s Law of Love]에 반하는 것이었음을 깨달았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반대편에[the other side]” 서서, 하나님께 저항하는 “반란자들[rebels]”의 삶이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 타인의 경험에 관심을 갖는 것인가?


    당신들은 실제로 큰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인데, 왜냐하면 당신들의 계산상으로 앞으로 다가올 몇 년 안에, 오늘날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당신들 가운데 약 90%가 아주 분명히 “죽게” 될 것이며, 그 때 당신들은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중 한가지의 “사후의 삶[afterlives]”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보았다시피, 어떤 장소, 어떤 “세상”을 경험하게 될지는 실제로 당신들의 선택에 달려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천국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지옥을 원하십니까? 만약 당신이 사랑을 베풀어 왔고, 하나님의 법칙[God’s Laws](‘하나님과 창조의 법칙’ 참조--역주)을 지키는데 신경을 써 왔다면, “천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만약 당신이 증오하고 파괴적인 삶을 살아 왔고, 끝없이 하나님의 법칙을 어겨 왔으며, 그 분의 창조물들[His Creations]을 파괴하는 삶을 살아 왔다면, “지옥[Hell]”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리 될 것입니다.--그 선택은 항상 당신의 몫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말하는, “종말의 시기[the End Times]”에 대한 예언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합시다.--힌두교도들[the Hindus]은 이 시대를 칼리의 시대[the Kali Age], 즉 카오스의 시대[the Age of Chaos]라고 부릅니다. 내가 이미 한 말을 자꾸만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부디 반복 서술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문제에 관한 엄청나게 많은 질문들을 받고 있으며, 얼마간 이 질문 세례가 잠잠해 지기 전까지는, 그 다음 진술을 할 수가 없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에고[ego], 거짓말, 증오, 폭력, 그리고 파괴와 같은 것들로 구성된 시스템의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인간들의 시스템이자, 인간들이 만든 법칙의 종말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 평화, 균형[Balance], 화합[Unity], 그리고 진실로 구성된 하나님의 법칙과 하나님의 시스템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현세의 확신들


    영겁의 세월에 걸쳐, 예언가들은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이 세상의) 시작[the Beginning]”(왜냐하면 아주 분명코 이건 끝[the End]이 아니기 때문입니다.--하톤) 또한 대략 이 때쯤에 발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왜 못 믿겠습니까? 그렇지만, 어떠한 사실들에 근거해서 지금 당신들이 칼리의 시대[the Age of Kali] 또는 “종말”의 시기[“ending” times]에 있다는 걸 입증해 보일 수 있을까요?


    (고대) 인디언들을 살펴 봅시다.


    내가 다른 데서 이야기한 적이 있듯이, 2000년도 훨씬 거슬러 올라간 시기에 인디언들이 남긴 예언은, 미국의 “네 꼭지점의 지대[Four Corners Area]”(콜로라도주 남서부, 뉴멕시코주 북서부, 아리조나주 북동부, 유타주 남동부가 만나는 지역--역주) 근처에 있는, 블랙 메사[Black Mesa](거대한 현무암 바위산--역주)의 바위 위에 분명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대 파괴의 시대[a time of great destruction]’를 예언했습니다. 인디언들은 이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이 ‘대 고난/정화의 시대[the great Tribulation/Purification]’는 “재의 호리병박[a gourd of ashes]”이 발명될 때 임박하게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에 따르자면, 이 무기는 너무나도 강력하여, 이것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바다를 끓게 만들고, 땅을 완전히 불태워, 여러 해 동안 아무것도 자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기의 발견은 ‘특정한 인디언들의 가르침’을 일반 대중에게 유포해야 되는 시기가 왔음을 말해주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 가르침은, 만약 세상 사람들이 깨어나서 그들의 방식을 변경시키고, 지도자들로 하여금 행성의 절멸을 향해 나아가는 현재의 방향을 변경시키도록 만들지 못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을 끝장내 버리게 될 마지막 재앙이 도래하게 됨을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기--재의 호리병박--는 북미 인디언들에게는 호리병박처럼 보이는, 버섯 구름을 형성하는 원자 폭탄으로 간주됩니다.

    원자 폭탄이 도래한 이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다른 수백 가지의 징조들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친구들이여, 세인트 헬렌스 화산[Mt. St. Helens]은 인디언들에게 이미 ‘말’을 건넸습니다. 사실상, 당신들의 계산상으로 지난 주(1990년 1월 30일 구술--역주), 사우스 다코다[South Dakota] 지역이 흔들렸을 때, 이 산은 또 한 번 말을 건넸던 것으로, 행성과 땅을 흔들어 경고의 메시지를 주었던 것입니다.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JIMMANUEL JESUS CHRIST]는 어떠했던가?


    의심 많고 겁 많은 제자들이 종말의 시대에는 어떤 징조가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물었을 때, 예수는 전쟁, 지진, 기근, 화산폭발, 전염병, 가짜 예언자들, 그리고 종교적 박해들이 마지막 징조들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또한 그 때에는 해와 달과 별들에게서도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 인간들은 두려움에 혼절하고 세상에 닥칠 일들의 전조에 혼절할 것인데 ; 왜냐하면 하늘의 권위[the powers of the heavens]가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니라.”

    이 문맥에서 “하늘[heavens]”이라는 단어는 “천상의 힘[celestial powers]”, 또는 창조의 권능[powers of creation]을 의미합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하늘[heavens]”은 “우라니아[Ourania]”인데, 이 단어는 또한 “우라늄[uranium]”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문장을 다시 쓰자면 ; “왜냐하면 우라늄의 힘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니라.”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라늄이 흔들리면 원자력이 생성됩니다. 사실상 원자력의 발견과 파괴는 약 2000년 전 임마누엘에 의해서도 정확히 예언되었던 것으로, 종말의 시기의 전조로 제시되었던 것입니다.

    아하! 마침내 우리는 다음 문장을 제시할 때가 되었군요. : “그 때,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의 표시가 하늘에 나타날 것이니라... 그리고 인간들은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사이로부터 오는 것을 보게 되리라...!”

    당신들은 첫번째의 성공적인 원자/핵 융합 실험의 암호명이 “아기 예수[Baby Jesus]”였으며, 첫번째의 성공적인 원자/핵 폭발 실험이 “삼위일체[The Trinity]”라고 불렸던 게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십니까?

    “왜냐하면 그 때, 세상이 시작된 이래 지금껏 없었으며, 앞으로도 결코 없을, 대 고난[great tribulation]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이 시기가 짧아지지 못한다면,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 남지 못하리라...”

    “이제 이러한 일들이 시작되면,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 보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니라. 진실로 내 너희에게 이르건대,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모든 일이 벌어지리라.” 여기서 말하는 세대는 그러한 징조들이 벌어지는 때를 사는 세대를 의미합니다.


    잃어버린 고리들


    당신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역’ 가까이 가보기를 원하고, 또 어떤 도덕적 판단에 입각한 견해를 제시해 보려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러한 자들에게, 명상 중에 그저 머리 속을 비우거나 주문[mantras]을 외우는 것을 대신하여, 도움이 될만한 (생각해 볼만한--역자) 어떤 ‘양식’을 건네주려 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팔짱을 낀 채로 일어서서 ‘그리고 그들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불렀다[AND THEY CALLED HIS NAME IMMANUEL](피닉스 저널 제 2권--역주)’라는 책의 내용이 실제로 맞을 수가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임마누엘의 짧은 생애를 고려해 볼 때, 그가 인도에 오랫동안 머물며 높은 수준의 학업을 할만한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거의 2000년간 감춰져 왔던 예수의 몸을 쌌던 수의 위에, 특히 예수의 이마를 감쌌던 부분에는 분명히 어떤 상징적인 글이 남겨져 있습니다. 핏자국은 산스크리트어[the Sanskrit](고대 인도어--역주)로 하나님에 해당하는 ‘옴[Om](또는 오움[Aum]--역주)’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띠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상징이 “기독교” 메시아[“Christian” Messiah]의 이마 위에서 나타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까? 이 사실은 당신이 모든 이야기를 다 알고 있지만은 않다는 걸 의미하진 않을까요? 혹은 당신은 이미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까요?

    왜 당신들은 내가 내 주는 ‘작은 숙제’는 하지를 않는 것입니까? 그렇지만 당신들은 결국엔 진실을 알게 되고, 잃어버린 부분을 메워줄 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설령 당신이 ‘그리고 그들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불렀다’라는 책을 전적으로 불신한다손 치더라도 예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에는 뚜렷이 눈에 띄는 몇몇 ‘구멍들’이 존재합니다. 이 “창백한 예언자[Pale Prophet]”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때때로 가장 힘든 시기에 각처에--인도에, 남미에, 북미에, 아시아에, 중동에, 그리고 극동에--심지어 우주선 피닉스호 위에-- 나타나는 이 놀라운 환영은 무엇입니까? 러시아의 각 나라들에서도 등장하는 이 모습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제 그 몇몇 ‘빈 부분들’을 살펴 보기로 합시다.--왜 예수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지 않은 것일까요?--유태 관습(참고로, 당시의 ‘유태(유대)’의 의미는 ‘유대 지방의[Judean]’라는 뜻이었을 뿐이며, 오늘날의 ‘유태[Jewish]/유태인[Jew]’에 해당하는 개념은 18세기 이후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예수를 유태인이라 부르는 것은 일종의 궤변. 피닉스 저널 제 223권 9, 10장 참조--역주)에 따르면 심지어 13세 무렵에 결혼하는 것도 가능할만큼 조혼이 보편적이었습니다. 당신들의 성경에 보면 예수는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Joseph]로부터 도제 수업을 받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나아가 기록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의 20세 생일 무렵에 있었던 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자리에 없었습니다. 또한 요한[John]과 예수는 사촌간이었으며 그 가족들은 서로 아주 가까이 살았다는 사실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가 자신의 전 생애를 나사렛[Nazareth]에서만 보냈다면, 왜 요한이 자신의 사촌인 예수를 못 알아 봤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라면 광적으로 믿는 당신들 가운데,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분들을 몰라 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건 지금 당신들의 성경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당신들은, 당신들 자신들이 치러야 하는 시험도 통과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이 모르는 꽤 여러가지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당신들이, 당신들의 “목사들” 혹은 “사제들/여사제들”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말고, “느끼지도” 말라고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어떤 정보들을 검토해 보기를 거부한다면, 당신 자신들의 견해 표명의 기초가 되는 균형과 지식을 제공해 줄만한 내용들을 도대체 어디 가서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목사들은, 자신들과 또 자신들이 주장하는 편견에 사로잡힌 광적인 오류들을 당신들이 저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당신들에게 그런 정보들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말씀[THE WORD]”에 당신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 속에, 항상 ‘짐승의 표식[THE MARK OF THE BEAST]’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빛의 우리들[WE OF THE LIGHT]’은, 당신들이 당신들 주위를 ‘깨끗이’ 정리한 다음, 통찰력과 이해를 요구하게 되길 희망합니다.--그리고 당신들에게 진실을 알려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 읽고, 다 검토하고, 다 건드려 볼 것을 제안합니다.

    당신들은, 다른 사람이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이 펼쳐지는 그 때에, 악은 이미 제 안에 ‘얼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어떤 상황에서든 마찬가지입니다. 진실은 가장 깊은 대양은 최저점에서부터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이르기까지 다 들리기를 요구합니다. 진실은 “우리 것을 훔쳐갔다”는 비난 뒤에 숨지도 않고, “어떤 정보에 대해 우리만이 유일하게 소유권을 가졌다”고 주장하지도 않으며, 혹은 또 다른 어떤 ‘뻔뻔하고 어리석은 성명’을 발표하지도 않습니다. 비밀주의와 비밀 사회가 갖는 특별한 제한들이야말로 사탄 자신의 도구들입니다.

    우리는 이 글을 받아쓰는 서기에게도 계속 이야기해 왔지만, 그녀는 공격당하고, 공격당하고, 또 공격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그녀가 한 작업들이 완벽한 것들이라고 이야기했다가 이내 돌아서서 결국은 그녀를 비난하게 될 자들로부터 그녀가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이, 실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임을 이미 그녀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바로 이 자들은 1987년 8월(참고로, 1987년 8월 17일은 새로운 주기상 1년 1월 1일에 해당, 이 글이 구술된 1990년 1월 30일은 새로운 주기로는 3년 167일째가 되며, 이러한 두가지 날짜 표기는 피닉스 저널의 모든 장의 머리 부분에 병기되어 있음. 2011년 4월은 24년도 후반기에 해당하고, 2011년 8월 17일이 25년 새해 첫 날이 됨--역주), 우리의 첫 작업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그녀에게 말하기를, 그녀가 “친구들(피닉스 저널을 구술하는 쪽--역주)”이라고 여겼던 자들로부터 결국 배신을 당하고 이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그러나 그녀의 영혼은 결코 찢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피닉스 저널을 읽는 독자들도 반드시 알아야만 할 것인데, 최근에 그녀에게 가해졌던 공격들은 가장 심했던 것으로서, 이로 인해 그녀의 영혼은 정말로 지칠대로 지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로, 혹시 당신들 가운데서도 그녀를 괴롭히고, 또 그녀에게 불신의 언사를 건넬 의향이 있다면, 부디 참아주기를 바라는데,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너무나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일 뿐입니다.


    당신들은 지금 누가 이야기하는 진실이 정말로 맞는 진실인지를 두고,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우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자, 다음 진술을 하기에 앞서, 지금 여기서 한가지만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원하는 ‘한 세트의 진실들[set of truths]’을 선택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나는 이러한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그렇지만, 그러는 것이, ‘당신이 선택한 진실’이 실제로 진실이 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이사[Issa], 에사[Esa], 이수[Esu], 임마누엘[Immanuel], 임마누엘[Jmmanuel], 헤수스[Hesus], 엠메나우엘[Emmenauel], 흰색 버팔로 송아지 여인[White Buffalo Calf Woman], 서있는 곰[Standing Bear], 부처[Buddha], 케찰코아틀[Quetzalcoatl], 기타 등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사실 이들 모두가 다 하나인 것입니다. 이제 당신들은 이것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해야만 합니다. 당신들은 끝없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고 또 못박는 일을 이제는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전설은 어떠한가?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여행은 사람들이 갖는 통찰력[visions]의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통찰력은 어디서 유래한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기억의 책[The Book of God’s Remembrance]” 또는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로부터 나왔던 것입니다. “아카사[Akasha]”란 산스크리트어로 “원초적 물질[Primary substance]” 또는 ‘하나님의 영혼[the Spirit of God]’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모든 것의 기원은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그리스도의[Christ’s]” 여행에 대한 설명들은 단지 ‘통찰력’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예수가 여러 지역을 가로질러 여행을 했다면, 이에 관해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들, 또는 그의 여행이나 방문지에 대한 설명, 혹은 최소한 이들 나라들 가운데 그가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에 대한 언급들 정도라도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 대답은 아주 분명히 ‘그렇다!’입니다.

    “예수[Jesus]”에 대한 가장 오래된 언급은 슈리마드 바가바탐[The SHRIMAD BHAGAVATAM](바가바타 푸라나[BHAGAVATA PURANA]라고도 하며 총 12권으로 구성된 힌두교 비슈누파 경전으로 크리슈나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구성. 브라만, 시바와 함께 비슈누는 힌두교 3대신으로 각각 우주의 창조, 파괴, 유지를 관장. 힌두교도들은 비슈누가 ‘세계의 악을 몰아내고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지상에 부활한다’고 믿었으며, 크리슈나는 비슈누의 화신--역주)이라 불리는 힌두교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책은 “베다(고대 인도의 신화적, 종교적, 철학적 문헌들로 삼히타[Samhitas], 브라마나[Brahmanas], 아라냐카[Aranyakas], 우파니샤드[Upanishads], 수트라[Sutras]로 나뉘며, 삼히타는 다시 리그베다[Rigveda], 야주르베다[Yajurveda], 사마베다[Samaveda],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 4가지로 구성되는데, 이 4종의 삼히타만을 ‘베다’ 또는 ‘베다서’라고도 함--역주)와 우파니샤드(우파니샤드는 베다 문헌의 일부로 우주의 원리에 대한 사상 등을 담은 철학서로서 200여종이 존재--역주)의 결정체(열매)[the fruit of the Vedas and Upanishads]”로 묘사되기도 하며, 이 시대--칼리[Kali]의 시대, 카오스[Chaos]의 시대 또는 종말의 시기[End Times]-- “주 자신의 현현[the embodiment of the Lord Himself]”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으로도 설명됩니다. 슈리마드 바가바탐은 ‘유대-기독교’의 성경과도 유사한 것으로, 여러 시대에 걸친 위대한 성인들[saints]과 현인들[sages]의 삶에 대해, 그리고 주 자신[The Lord Himself]의 가르침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우주와 이 세상의 창조 그리고 지구를 뒤덮었던 대홍수[The Great Flood]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의 연대기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는데,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여기 나오는 대홍수는, 성경에 나오는 노아[Noah]의 대홍수보다 시기적으로 최소 1000년 이상 앞선 시대의 대홍수를 설명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놀랍게도, 이 책을 보면, ‘어떤 보다 높은 근원의 에너지[the energies of higher Source]’가 개별적인 인간의 서술을 “훔쳐[pilfered](마치 ‘피닉스 저널’처럼 대신 서술하여--역주)” 심지어 “창조[Creation]” 이전에 관한 내용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책에는 또한 구약의 다니엘서[Daniel]에 나오는 것과 대단히 유사한 방식으로 왕들과 통치자들의 계보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들어 있습니다. 다니엘서가 중동 지방의 통치자들에 대해 언급했던 것처럼, 여기 나오는 왕들과 또 그들의 치세 기간은 물론 인도에 관한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대단히 정확한 기록입니다.

    이 책에는 슈리 크리슈나[Shri Krishna](오, 저런!--하톤)와 같은 주[the Lord]의 탄생과 삶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당시 그가 오기 전부터 있어 온 그의 도래[His coming]에 대한 예언이나 예견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미안합니다, 학생들이여, 그러나 당신들은 이제 당신들 앞에 펼쳐져 있는 진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입니다.--지금껏 당신들이 어떤 허튼 소리들을 들어 왔건 간에,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부처[the Buddha](오, 기절!--하톤)와 같은 주의 탄생에 대해서도 이미 예언되었으며, 심지어 주가 오실 장소까지 거명되었습니다. : “칼리의 시대(카오스의 시대)[Kali(the age of chaos)]가 도래했을 때, 그 분(주님)[He (the Lord)]은 하나님의 적들[the enemies of God]을 속여, 부처[Buddha]로서 마가다(인도 북비하르주--하톤주)[Magadha(North Bihar, India)]에서 태어나실 것이다.” 실제로 부처님은 B.C. 563년 인도 북비하르주[North Bihar, India]에 위치한 옛 카필라바투[ancient Kapilavatthu]에서 태어나셨습니다.--미안합니다!

    또한 칼리의 시대[the Kali Age], 주님의 현현[lord’s incarnation]에 대한 여러가지 다른 예언들도 들어 있습니다. 이에 따르자면,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며, 이번에 오실 주님은 주로 가난한 자들, 어부들이 따르게 될 것이며, 또한 헌신하는 자들이 진실의 말씀들[THE WORDS OF TRUTH]을 먼저 퍼뜨리게 될 것이다’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칼리[Kali]의 시대이자, 그리스도[Christ]가 오는 시기)의 사람들은 욕심많고, 비도덕적이며, 잔인하게 변해, 이유없이 적대적일 것이고, 불행하며, 극도로 탐욕스러울 것이다.[하톤: 나는 이것이 당시의 통치자들에 대한 아주 정확한 묘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드라들[The Sudras](낮은 계급의 사람들, 또는 가난한 노동자들--하톤주), 어부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신분의 자들이 앞장서게 될 것이다.[하톤: 바로 그렇습니다. 가난한 베드로[Simon Peter]가 그러했지요]”

    아주 초기에 예수를 뒤따랐던 자들 대부분은, 사회적 표준에 비추어 봤을 때, 낮은 계층의 보잘것없는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예수 주변으로 모여 들었는데, 왜냐하면 예수는 그들에게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건네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은 대부분 어부들이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인데, 베드로[Peter], 안드레[Andrew], 야고보[James] 그리고 요한[John]과 같은 자들이 그러했습니다.--가난하고 지쳤던 베드로는 늘 “12제자[fisher of men(apostle)]”가 될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슈리마드 바가바탐[SHRIMAD BHAGAVATAM]전체를 통해, “이사[Isa]”라는 단어는 계속 발견됩니다. “이사[Isa]”는 “하나님[God]” 또는 “창조된 존재들의 주님[Lord of Created Beings]”을 의미합니다. 한가지 주목해 볼만한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예수가 ‘위대한 예언자’였다고 믿는 이슬람교도들[Moslems]은 예수를 “이사[Isa]”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요?

    부처 역시 미래에 이 땅에 또 다시 하나님의 화신이 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부처가 자신의 물리적인 육체를 떠나려고 할 때, 제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물었습니다. : “당신께서 가버리시고 나면 이제 누가 우리를 가르치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Lord Buddha]은 대답했습니다. :

    “내가 이 땅에 처음 온 부처[Buddha](계몽된 자[enlightened one]--아바타[avatar]--하나님의 아들[Son of God]--하톤주)가 아니며, 또한 내가 마지막에 오는 부처도 아니다. 적절한 때가 오면 또 다른 부처가 이 세상에 나타나리라. 성스러운 자, 지고로 계몽된 자, 지혜 속에 행하는 역량을 갖춘 자, 상서롭고, 우주를 알며, 비할 데 없는 인류의 지도자이자, 천사들과 인간들 모두의 스승되는 자가 오리라. 그는 너희에게 내가 가르쳤던 것과 똑 같은, 영원한 진실들[eternal truths]을 밝혀 보여 줄 것이니라. 그는 자신의 종교를 전할 것인데, 그 기원에 있어서 영광되고, 그 정점에서도 영광되고, 그 목표에 있어서도 영광된 종교를 전하고자, 영혼 속에, 글 속에 남을 내용들을 설파하리라. 그는 지금 내가 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전적으로 완벽하고 순수한 삶이자 종교적인 삶을 분명히 제시해 보여줄 것이니라.”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 분을 알아 보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대답했습니다. “그는 미륵불[Metteyya](고대 인도 팔리어. 범어로는 [Maitreya]--역주)로 알려질 것이며, 미륵불이란, 친절[kindness]과 경이[wonderful]를 자신의 이름으로 가진 자를 의미하노라.”

    그가 임마누엘 예수[Emmanuel Jesus]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이 “경이(로운)[Wonderful]”라고 불려야 할까요?) 자,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면, 예수는 연민[compassion]과 친절[kindness]과 성스러운 사랑[Divine Love]의 화신[embodiment]으로 묘사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예술 작품 속에서 예수는 종종 ‘자신의 성스러운 심장(성심: 聖心)[His Sacred Heart]’--친절과 성스러운 사랑의 상징--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이 점은 예수를 따랐던 자들이 어부들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던 분이, 바로 창백한 예언자, 임마누엘[Emmanuel, the Pale Prophet]이었을 가능성에 무게감을 실어 주는 것입니다.


    심지어 불교신자들도 그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당신들 가운데 “불교신자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자가 있다면, 내 말 똑똑히 들으십시오.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을 때, 불교 승려들은 예수가 바로 “성스러운 자[The Holy One]”이자, 거의 600년 전 부처님께서 그 도래를 예언하셨던 ‘주님의 환생[the reincarnation of the Lord]’임을 알아챘습니다!

    “이제, 인도에서 가장 분별력있는 현인 가운데 한 사람이자 불교 사찰의 책임자이기도 했던, 비다파티[Vidyapati]는 헤브루의 예언자[Hebrew prophet]의 설교를 듣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사제들은 내 말을 들어 보아라. : 우리는 지금 최고의 시대를 살고 있다. 여섯 시대 전(600년 전--하톤주), 한 스승의 영혼(부처님--하톤주)이 태어나서 인간들에게 영예로운 빛을 건네 주었는데, 이제 또 한 분의 스승께서 여기 이 사찰 안에 서 계시는구나...”

    “이 헤브루의 예언자는 지고의 존재이며, 지혜의 떠오르는 별이니라.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밀의 지식들을 알려 주신다. : 온 세상이 그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고, 그의 말씀을 깊이 되새기게 될 것이며, 그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리라. 너희 사제들은 이 분이 말씀하실 때, 조용히 경청하여라. ; 이 분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신탁(神託)[the Living Oracle of God]이시니라.”

    “그러자 모든 사제들이 감사를 표하고, 이 계몽의 부처[the Buddha of Enlightenment](“예수” 임마누엘 그리스도[“Jesus” Emmanuel Christ]--하톤주)를 찬양하였다.”

    다르마[Dharma]여, 전설의 이야기 속으로 더 들어가기 전에 잠시 휴식을 갖기로 합시다. 왜냐하면 이 글을 통해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불렀다[AND THEY CALLED HIS NAME IMMANUEL]’(피닉스 저널 제 2권--역주)라는 책 내용 너머로 계속되는 실타래(이야기의 전개--역주)를 알아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실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긴 글들을 잘 상기해 보면 알겠지만, 그의 계속되는 여행에서, 예수는 예수[Jesus]라 불리지 않았습니다.(사실상 갈릴리[Galilee]에서도 그는 그렇게 불리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이사[Isa](이사[Issa], 이수[Esu], 기타 등등 앞에 쓴 글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나는 여기서 되풀이 하지 않겠습니다.--하톤)라고 불렸습니다. 주목할만한 부분입니다! ‘실타래’는 모두 그 자리에 놓여 있고, 당신들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이미 당신들 세상에 존재하는 기록물들과 이야기들에 대해서 우리가 따로 언급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당신들이 이 실타래를 바라보도록 만들 수가 없을 뿐인 것입니다. 나의 사령관[Commander]과 마스터 가이드[Master Guide]에게 비난의 화살들이 날아드는 상황에서, 나는 더 이상 조용히 앉아 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진실과 말씀[TRUTH AND THE WORD]’이 그 분의 이름이며, 사난다(하나님)[SANANDA(GOD)]는 그 분의 칭호[LABEL]입니다. 어떻게 감히 이 경이로운 창조[WONDROUS CREATION] 앞에, 어둠의 존재라는 비난을 가할 수가 있으며, 그 분의 완벽함 앞에 도둑질 운운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주의하십시오. ‘입장’을 위한 ‘신임장’이 없이는 당신들은 문 앞에 서 있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럼 그리 될 것입니다. 부디 ‘듣고 볼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현명해지십시오. 스스로가 대단한 권위와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전혀 현명치 못한 자들입니다. ; 만약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실로 전 인류 가운데서도 가장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SALU!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12권, “Crucifixion Of The Phoenix”, 제 18장, pp.139-149.

    http://www.phoeixarchives.com/
    http://blog.daum.net/truthinlight
    이 기사가 처음 게재된 포럼의 주제글: 제012권, 크리슈나, 부처, 그리고 예수 started by phoenix View original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