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제074권, 빛에 대하여..
  • 제074권, 빛에 대하여..

    하나의 빛[The One Light]


    왜 내가 당신들에게 “빛”에 대한 교훈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교훈들을 가르치려고 마음먹은 것일까요? 도대체 “내”가 어떤 “권위”를 갖길래, 무엇이 무엇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일까요? 나 역시 당신들이 갖는 권위, 그 이상의 권위를 갖지는 않습니다.--다만 당신들이 잘 모르는 어떤 주제에 대해 내가 알고 있기에, 꼭 그 만큼만의 권위를 가질 뿐인 것입니다. 참, 우스운 일이기도 하지만, 나는 ‘나의 사람들[my people]’이, 당신들 지구인들의 무지와 지식 부족으로 인해, 너무나 모질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곤경에 처해지는 상황들에 지쳐 있습니다. 당신들은 한 무리의 어린 물고기 떼처럼, 어떠한 방향 감각도 없이, 이쪽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어느 누구라도 커다란 물질적 이득이나 권력을 제공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에게 꿀꺽 집어 삼켜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위대한 마스터들[the GREAT MASTERS]을 위해 봉사하는 내 서기가, 당신들의 불공정한 (법률) 시스템 속의 판사들 앞에 불려 나가고, ‘탐욕의 십자가’에 못박히는 일에도 지쳐 있습니다.

    (빛에 관한 문제라면) 저메인[Germain]이 와서 다시 가르침을 전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비올리니오 저메인[Violinio Germain]은 플레이아데스 커넥션 시리즈(피닉스 저널 제 30-37권)의 대부분을 구술--역주) 아닙니다.--그는 이미 앞서 여러 차례에 걸쳐 가르침들을 건넸지만, 오직 당신들에 의해 거부당하고, 그의 글들은 땅 속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플레이아데스 커넥션 시리즈는 미국에서 금서로 지정--역주) 저메인이 이러한 구술들을 하기 이전에도, 그러한 가르침들은 놀랄만큼 깨어난 한 인물(월터 러셀[Walter Russell]을 가리킴. 1871-1963, 화가, 조각가, 건축가이자, 물리학과 우주발생론을 단일화한 이론, 그리고 빛 등에 대해 연구한 학자--역주)에 의해 전해진 바가 있으며, 그 내용은 인류를 계몽시켜 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는 단지 자신의 나이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한 아름다운 여자의 손에, 바로 그녀의 자비에 모든 것이 내 맡겨진 채로, 그녀의 몰락과 더불어 자신의 운명도 같이하고 말았습니다. 이 놀라운 인물은 그녀를 위해 55년이 넘는 앞선 결혼 생활을 끝내고, 재혼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해에 이르기 전까지 그의 전 생애는 영적 [Spiritual KNOWING]의 완전한 [total LIGHT]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이었기에, 그의 저작들과 자기 자신은 “인문주의(자)[humanist]”라는 카테고리 아래 남겨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종종 나의 서기(다르마[Dharma]--역주)에게도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는 것이, 당신들 모두가 하는 경험과 똑 같은 방식의 경험을 겪고 있는 그녀에게도, 그녀 앞에 펼쳐지는 일들을 제대로 직시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녀는 좀 더 대단하고 위대하며 훌륭한 누군가 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당신들 중 어느 누구와도 마찬가지의 사람이지만, 그저 봉사를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다만 필요할 때, 봉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어떤 다른 역할을 맡는 것보다 더 중요할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써 내려가는 이 글들도, 만약 다른 무수한 글들 밑에 깔려서 보이지 않게 된다거나, 혹은 어둠 속에 묻혀 버리고 만다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어떤 것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다르마는 한 때, 어떤 다른 “채널러들”을 통해서 하톤은 “삼류 스승 같은 자”라는 말은 전해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눈이 멀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참으로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자신이 아끼는 자녀들의 눈을 멀게 만들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발하는 “빛”을 완화시켜서 아이들의 눈을 충분히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다거나, 혹은 다른 방식의 보호 조치를 취해 주실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까?--어떻게 감히 인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한계 지울 수 있단 말입니까?

    자, 그래서 “나”, ‘아톤[Aton]’-‘하톤[Hatonn]’이 어떻게 그런 권위를 갖는단 말일까요? 왜냐하면 나는 정확히 나 자신이 내가 누구라고 이야기하는 그 자이기 때문입니다.--아톤[Aton], 바로 무수한 세월에 걸친 하나의 빛[the ONE LIGHT]--곧 태양[THE SUN]으로 대표되는, 그 하나의 빛[the ONE LIGHT]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러한 진술을 두고 웃어대며 부인할 당신에게 이야기합니다.--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과연 누구인지를 내게 말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내가 무엇인지도 압니다. 나아가, 나는, 당신이 누구일지라도, 당신을 가르칠만한 힘과 지식과 역량을 가졌습니다!--당신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든 부인하든 당신 내키는대로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기억하십시오 : 만약 내 말이 맞다면, 정말로 내 말이 맞다면, ‘변환의 날[TRANSITION DAY]’에 당신은 어디에 가 있을 것 같습니까? 마음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이집트 제 18대 왕조 시대로


    말씀[The WORD]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집트 제정[Imperial Age], 제 18대 왕조는 아모세 1세[Ahmose I]로부터 시작되었고, 이 시대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는 이스라엘, 솔로몬 성전[solomon’s Temple]의 위대한 보물들을 구해내기도 했습니다. 이제야말로 이집트에서, 인류의 마음은, 빛나는 아톤[the blazing ATON]이 새벽을 여는 것과도 같은, ‘말씀[the WORD]’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 지구상에서 아톤의 봉사자 역할을 맡아 했던 자는 아문호텝 4세[Amunhotep IV]였고, 그는 당시에 아크나톤[Akhnaton]으로, 곧 “이단의” 파라오[“heretic” Pharaoh]로 알려지기도 했던 자였습니다....

    ....아문호텝 4세[Amunhotep IV]는, “아문은 만족되었다[Amun-is-satisfied]”라는 의미인 자신의 이름을 아크나톤[Akhnaton](“아톤과 함께 평안하다[It is well with the Aton]”)으로 바꾸었습니다. .... 그는 아문[Amun]이 드러나 있는 이집트 전역의 모든 무덤과 신전과 기념물들을 없앴습니다. ....그(아크나톤)는 태양의 원반(아톤)[the Disc of the Sun(Aton)]으로 상징되는 오직 하나의 신[One God]만을 인정하고 섬겼습니다. 자, 어린 학생들이여, 아무도 두 명의 스승을 한꺼번에 섬길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당신이 “빛의 하나님과 악마”를 동시에 섬길 수는 없다’는 말이 유래된 것입니다. 결국에 가서 당신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아문[Amun]과 아톤[Aton]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습니다.

    다르마가(또는 나와 함께 일하는 다른 누군가가) 자신이 하톤이거나, 아톤, 그리스도, 혹은 다른 어떤 존재이기를 주장하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그들은 심지어 이 앎[KNOWING]에 이르는 시기에 자신들이 행하기로 선택한 봉사 또는 일에 대해 항상 애틋한 심정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 일은 정말로 모두가 “꺼리는” 일이지만,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만 되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구요? 진보[Evolvement]--바로 존재하는 사이클 안에서의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해내야만 합니다. 배우고 경험하여--지금의 이 “연극”으로부터 다음 단계의 “보다 중요한” 표현[“more important” expression]으로 나아가는 진보[evolve]를 이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편협한 시각으로 가득찬, 당신들의 좁은 세상 속의 ‘자기중심주의[the Me-ness]’를 넘어서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당신들은 다시금 똑같이 좁은 표현의 국면 속에 갇혀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게 될[will]”까요? 그건 엄격히 당신 자신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진실”에 대해 논하십시오. 물질적인 재산이나 낮은 차원 속에만 머문다면, 당신은 오직 점점 더 영혼이 없는 상태로, 죽음과 어둠의 세계로, 그리고 영적 억압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될 뿐인 것입니다. “나”는 “시간”이 있습니다.--하지만 당신들은 시간이 없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대 정화[the Great Purification]’의 순환의 주기[cycle of this revolution]라는 “시간” 속에 있습니다. 당신들은 실로 가장 심각하게 이 시기를 이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다음으로, : 왜 우리는 피닉스[the Phoenix]라는 상징을 사용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사자와 새 부족들[the Lion and the Bird Tribes]의 장소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플레이아데스 별자리[the Pleiades Constellation] 내의 한 행성으로부터 왔고, “하톤[Hatonn]”이라고 불립니다. 이는 내가 지휘하는 사령부 안에서 내 신분을 밝혀주는 출처로서의 의미를 갖습니다. 사실 이런 시시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원한다면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실상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들이 다른 불필요한 잡동사니에 매달린다고, 정작 보물을 놓치지는 말기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피닉스[Phoenix]” : (1) 이집트와 그리스의 신화에 따르자면, 피닉스는 태양[the sun](아톤[Aton], 또한 태양의 “아들”[THE “Son”]을 가리키기도 합니다.)을 상징하는 새로서, 아주 아주 긴 세월(누구는 수 백년의 세월이라고 하고, 다른 누구는 수 천년의 세월이라고 합니다.)[나, 하톤에 따르자면, 이 세월은 피닉스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긴 세월입니다.]을 산 후에, 불로 자신을 연소시키며 날아올라,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새입니다. ; 피닉스는 불멸[immortality]과 영적 재탄생[spiritual rebirth]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2) 능가할 수 없는 우월과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 또는 어떤 대상; 빛의 귀감[LIGHTED paragon]--뛰어남의 전형이며 본보기이자, 일종의 완벽함; 비길 데 없는 어떤 범례

    나는 이제 당신들이 왜 우리가 타고 다니는 우주선의 이름이 피닉스[Phoenix]호인지(‘플레이아데스 커넥션’ 참조--역주), 그리고 지금 우리가 추진 중인 프로젝트를 왜 “피닉스[Phoenix]” 프로젝트라고 부르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편, 이는 또한 우리가 적들과 대결 국면에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왜 그렇게 많은 어둠의 비밀 작전들 역시 ‘피닉스 작전’이라고 불리는 지에 대한 설명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악은 항상 속임수의 일환으로 선함의 가면을 쓰는 것입니다. 악이 속임수와 통제를 위해 선호하는 장소 역시, 종교적 도그마와 잘못된 정보들로 얼룩진 교회 한 복판인 것입니다. 인간들의 영적 여행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함에 있어서 그보다 더 좋은 장소가 어디 있겠습니까?

    제 2차 세계 대전의 “홀로코스트”(‘1조달러짜리 거짓말, 홀로코스트’ 참조--역주)에 대해서도, 텍사스 와코[WACO, Texas](‘우주 문명과 인간 의식’ 참조--역주)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다른 어떤 곳에서 발생한 사건들도 마찬가지입니다.)에 대해서도, 속임수가 필요한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피닉스는 의 상징이자, 선함과 완벽함이 다시 날아오르는 일을 막아내려는 노력의 상징이기도 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이 이기긴 이기실까요? 물론입니다.--이것 자체는 결코 의문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없습니다. ; 그러나 인간들은 끔찍한 상황들, 질병의 고통, 그리고 가슴이 찢어질 듯 비통한 심정들을 느끼기 전까지는, 아마도 깨어날 것 같아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인간들은 욕심에 바탕한 물질적 이득에만 매달린 채, 밀랍으로 된 날개를 달고 성장해 왔지만, ‘부엌의 열기’가 점점 올라가다 보면, 결국엔 녹아 내려 추락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의 백성들은, 바로 피닉스와 함께, 그 열기 속을 뚫고,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날아 오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날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어디 한 번 지켜보기로 합시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당신이 무엇인지,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당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 당신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 등에 대해 배우지 못한다면,--그 때 당신은 등불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힌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당신은 누구인가?’ 참조, 이 장은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글에 이어지는 장--역주) 당신은 여지껏 ‘물리적 족쇄’라는 늪에 빠져 있었으며, 이 족쇄는 또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영혼을 망각 속에 가둬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되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신이 당신의 여행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가치있는 일을 하게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그리고(/또는) 나의 글들과 말들을 부인하든 개의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는 것이 단 한 치의 진실도 변경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누군가가 “이 하톤”이 맞느니, “저 하톤”이 맞느니 옥신각신한다면, 이 역시 완전히 초점을 잃고 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시대는 가까웠습니다.[The TIME OF THE LORD IS AT HAND] 아무도 이 점에 대해 의혹을 갖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어떠한 메신저나 가이드도 없이, 스스로가 알아서 모든 것을 번역하고 이해하도록 내버려 두실 것이라고 믿을 만큼, 그렇게도 하나님에 대해 신뢰가 부족한 것입니까? 하나님은 전에도 결코 그러셨던 적이 없습니다.--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인류와 행성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심각하고 종국적인 지금 이 시대에 와서, 당신은 이를 부인하려 드십니까?

    아, 알겠습니다, 학생들이여.--당신들은 무책임의 길을 안내하는 다른 가르침들을 선호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유감이군요.--하지만 그러는 것도 실상 ‘경험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한 번 상기해 볼만한 경구가 있는데, 어둠 속에서 다이아몬드는 그저 돌멩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잘 갈고 닦아, 태양빛 아래에서 바라봤을 때 마침내--다이아몬드는 모든 색상의 빛을 우주로 반사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다이아몬드를 어디에다 둘 생각이십니까?


    그래서, 도대체 빛이 무엇이란 말인가?


    당신은 “빛”을 알 수는 있지만, 빛을 볼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빛은 “보여질” 수가 없기 때문니다. 빛은 절대적인 “정지(부동)[still]”입니다. (빛을 감지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감각”이 정지에 대해서는 반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눈이 본다고 “느끼는 것”, 그리고 눈이 빛이라고 믿는 것은 단지 움직임[motion]일 뿐입니다.--이것은 ‘빛의 생각[IDEA of LIGHT]’을 가장하는--파동 움직임[wave motion]인 것입니다. 전기적 파동의 우주[electric wave universe]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빛의 생각[the IDEA of LIGHT]’은 생성될 수가 없습니다. ‘전기적 파동’이 이 ‘생각[IDEA]’을 단지 흉내내는 것일 뿐입니다. 전기적 파동들이 ‘생각’이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태양의 빛”을 바라 보면서 실제로 “빛”을 본다고 믿는다면, 이는 단지 당신 눈의 시신경들이, 당신이 백열(白熱)[incandescence]이라고 인지하는, 파동 움직임의 일종인, 강렬하고 빠른, 단-파동 진동들을 “느끼기” 때문인 것입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은 이를 측정해 볼 수도 있습니다.--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자신이 어둠 속에 있을 때와 태양 빛 아래에 있을 때를 압니다. 그가 ‘빛’을 “보지는” 못하지만, 알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다르마[Dharma]가 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 방식입니다.--그녀는 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진동수가 문자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는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그녀는 이러한 파동 진동을 통한 확신이 없이는 결코 다른 존재감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의 파동 진동은 당신들 손가락의 지문만큼이나 특정한 것입니다.--그런데, 사실 지문이라는 것은 “진짜”를 분별해 내는 데에 있어서 아주 좋은 체크 포인트는 아닙니다. 완전히 똑 같은 DNA-RNA 복제인간(‘로보토이드 & 씬테틱’ 참조--역주)은 완전히 똑 같은 지문을 가지며, 경우에 따라 흠집이나 착색 양상마저도 똑같습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이유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나의 존재를 아는 것입니다.--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언가를 “안다”고 “믿을”려면, 반드시 그 무언가를 “봐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시각적인 이미지란 실상,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기에, 그것을 근거로 당신들의 “믿음”을 형성하기에는 너무나도 형편없는 도구입니다. 당신들은, TV화면 상에 보이는 장면들, 당신들에게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프로그램들을 통해,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마다 속을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는 “오늘” 발생한 어떤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당신들에게는 비춰지는 화면은 6년 전에 발생한 일인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에게 있어서 그 장면은 “오늘 일”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더 이상 시청자들에게 “과거에 녹화된” 테잎을 지금 틀어주는 것이라고 귀찮게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들은 당신들이 보는 어떤 것이라도, 더 이상 그대로만 믿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당신이 “느끼는 것”과 “듣는 것”을 시작해야 하는, 그리고 ‘내적 [inner KNOWING]’을 대표하는 당신의 직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명상, 하나님과의 교신’ 참조--역주)

    격렬하게 진동하는 전기적 흐름이 반사되어 눈의 감각기관에 가 닿게 되면 눈을 태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그 정도로 높은 진동 수준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진동은 눈을 파괴시켜 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빛이 그러한 파괴의 원인인 것은 아닙니다. 빠른 움직임, 빛을 흉내내는 것[simulating light]이 그 원인인 것입니다. 이것은 얇은 전선으로 고압의 전류를 흘려 보내게 되면 전선이 타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어둠을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시신경은 낮은 진동 수준의 느린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지만, 완전한 어둠 속에서, 시신경은 더 이상 “감지”를 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다양한 물체를 비추는 다양한 강도의 빛, 아주 높은 강도나 아주 낮은 강도의 빛이라도 실제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자신의 감각은 다양한 강도의 파동 움직임을 반사시키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간이 깨닫기란 힘든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야말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자연 속에서 전기적으로 조건지워진 모든 대상은, 모든 다른 대상들이 내는 진동을 반사시켜, 모든 다른 대상들이 갖는 진동과 동시적으로 어울려 진동하고자 하는 자신의 목적을 완수해 냅니다. 모든 물체는 빛의 움직임입니다. 모든 움직임은 파동으로 표현됩니다. 모든 빛의 파동들은 각각 거울들로서 서로간의 조건들을 반사시켜, 저 먼 별이 있는 곳까지 가 닿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기적으로 조건지워진 파동의 우주[electrically conditioned wave universe]인 것입니다.

    모든 파동화된 조건들[all wave conditions]은 끝없이 하나됨[oneness]을 갈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감각들은, 모든 다른 감각들에 반응하게 됩니다.


    빛이란..


    소위 말하는 당신들의 “최고의” 과학자들은, 세대에 걸쳐 그들 간에 빛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해 왔습니다. 뉴턴[Newton]은 빛이 “미립자[corpuscular]”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정의에 따르자면 이것은 일종의 작고 분리된 기초 단위들[cells]로서, 마치 혈액 속의 혈구들(적혈구, 백혈구 등)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그 의미는, 분명히 “문자그대로” : 물질의 작은 입자인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빛은 “파동”일까요? 빛을 입자 혹은 파동으로 보는 양쪽 이론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증거들은 제각각 무수히도 많습니다. 빛은 양쪽 다입니다. 빛은 움직임으로 표현됩니다. 모든 움직임은 파동 움직임[wave motion]입니다. 모든 파동들은 동등하면서도 반대되는 압력을 갖는 두 방향의 움직임의 장들[fields]에 의해 표현됩니다. 파동 장들 안을 구성하는 전체 부피는 두가지 반대되는 움직임의 표현들에 의해 채워집니다.--빛을 딱딱하게 응축시키는[compresses light into solids] 양성적인 표현[the positive expression]과, 그 딱딱한 것을 둘러싸는 공간으로 역으로 팽창시키게 만드는[expands it into space surrounding solids] 음성적인 표현[the negative expression]이, 바로 그 두가지 표현들인 것입니다.

    파동 장들 안의 모든 공간은 굽어 있습니다. 이 공간의 곡도[curvature]는 제로 곡면율을 갖는 평면에서 끝나고, 이 평면은 모든 파동 장들을 경계 짓게 됩니다. ‘항존하는 자기적 빛[omnipresent magnetic Light]의 이 모든 경계 평면들’은 마치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여, 이 우주 안의 모든 다른 파동 장들 속으로, (경계내 공간 안의) 모든 곡도를 반사시키는 것입니다. 마치 지렛대의 받침점처럼, 이 경계 평면들을 통해, 한 파동 장 안의 움직임들이 우주적으로 반복되는 것입니다.(‘물질의 구성’ 참조--역주)


    “물질”은 파동이며--“물질”은 빛입니다.


    이것이 다함께 소위 말하는 물질과 공간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빛을 순수하게 입자로 보기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빛은 모든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공간은 비어 있지 않습니다. 공간은 파동 움직임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물질을 이루는 입자들은 빛의 파동 사이클의 한 쪽 절반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공간이 그 나머지 절반입니다.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미스터리도 있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공간 안의 빛과 어둠을 흉내내는 움직임의 파동은 모두 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딱딱한 물체를 이루는 빛과 움직임, 그리고 공간을 형성하는 가스체, 이 양자 사이에는 오직 그 부피와 상태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지표상의 물은 작은 부피로 응축되어 있는 반면, 하늘에 떠 있는 물은 그 부피에 있어서 수천배로 확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각각의 상태는 물이 갖는 사이클의 반대되는 절반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당신에게 논리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수증기화된 물은 안쪽이 바깥으로 뒤집어진 물입니다. 이것은 바깥쪽이 안쪽으로 뒤집어지면 다시 물이 됩니다. 팽창-수축의 시퀀스는 이러한 과정으로부터 생기는 결과인 것입니다.

    당신은 어쩌면 다르마[Dharma]와 리틀 크로우[Little Crow](‘당신은 누구인가?’ 참조--역주)가, 어떤 진행 중이던 “의식들”에 대해 논쟁을 가졌던 날, 공유했던 생각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 지금 우리가 논하고 있는 주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만, 당신은 현재의 “사이클”에서의 진보라는 측면에 있어서, 인류를 위한 해결책을 착안해 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합니다. 리틀 크로우는 손으로 제스츄어를 써가며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바깥으로 뒤집어져야(보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그가 한 말의 의미를 다시 설명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는데, 왜냐하면 당신들은 지금,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바깥으로 나와야 하는 사이클 속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금 이 “개념”을 잘 음미해 보고,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당신은 아직 앎에 관한 길고 긴 여정을 떠나야 하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물질은 다 빛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물은 여전히 물이며, 이 물은 여전히 빛의 파동이기도 한 것입니다. 땅 위의 물과 하늘에 떠 있는 물 사이에는, 양성적인 측면이 우월한 상태에서 음성적인 측면이 우월한 상태로 조건이 변화되었다는 걸 제외하고는 어떠한 변화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중력 중심점[center of gravity]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 방향성이 바뀌었다는 점에 기인할 뿐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너무 헷갈려 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중력”은 현재 당신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력은 밀도[density]와 상관이 있는 것이지, 자기적인 밀고 당김과 상관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고밀도의 차가운 물체들, 말하자면 쇠, 돌, 나무 같은 것, 혹은 다른 어떤 성장하는 것들 혹은 부식하는 것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다 빛입니다. 당신들은 이러한 것들을 두고 빛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움직임의 파동들이며, 모든 움직임의 파동들이 다 빛인 것입니다.

    부디 다음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빛은 실상 앎의 영적 우주[the spiritual universe of knowing] 안에 모두 다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으로 확장된 상태 속에 있는 빛을 흉내 낸 것[simulation]은, 감각의 전기적 파동의 우주[the electric wave universe of sensing] 안에 모두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질 속에서 빛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 실은 진짜 빛은 아닙니다. “물질” 안에는 사실 “빛”이 없는 것입니다.


    혼동


    물질을 구성하는 많은 종류의 입자들, 즉 전자[electrons], 양성자[protons], 광자(포톤)[photons], 중성자[neutrons] 등 여러가지의 것들에 관해서는 너무나 많은 혼동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많은 입자들이 다 다르다고 여겨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어떤 것들은 음성적으로 충전된 상태이고, 어떤 것들은 양성적으로 충전된 상태이며, 또 어떤 것들은 양성과 음성이 동등한 정도로 충전되어 있는 상태로, 이들은 다른 것들마저도 중성화시켜 버릴 수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자연 상태에서 음성적인 충전과 같은 상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음성적으로 충전된 입자란 없는 것입니다. “충전[charge]”과 “방전[discharge]”은 단지 반대되는 상태입니다. 마치 채움과 비움, 혹은 압축과 팽창 등이 반대되는 상태인 것과 마찬가지일 뿐입니다.

    하나의 단위체(육체)[body]를 압축시키는 것은 높은 전위[potential] 상태로 충전시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단위체를 팽창시키는 것은 낮은 전위 상태로 방전시키는 것입니다. 전자를 음성적으로 충전된 단위체라고 묘사한다고 할 때, 이는 하나의 전자가 팽창하고-수축하는 단위체[expanding-contracting body]라고 말하는 것이나 사실상 마찬가지입니다. 충전이나 방전은 또한 그 방향성에 있어서 반대됩니다. 이 양방향 우주[two-way universe]에 있어서, 빛이 중력을 향한 안쪽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면, 빛은 물질을 충전시키고 공간을 방전시키는 것입니다. 반대로 빛이 공간을 향한 바깥쪽으로 나아가게 되면, 빛은 공간을 충전시키고 물질을 방전시키는 것입니다.

    충전하는 상태가 양성적인 것입니다. 충전은 물질화된 상태의 밀도에 이를 만큼 움직임의 속도를 배가시킵니다. 부피의 감소로 인한 움직임 배증의 원칙[the principle of multiplication of motion]이 중력의 가속적 증가의 원인이 됩니다. 방전하는 상태는 음성적인 것입니다. 방전은 물질의 상태가 희박해질 정도에 이를 만큼 움직임의 속도를 반감시켜 나갑니다. 부피의 증가로 인한 움직임 반감의 원칙[the principle of the division of motion]이 방사[radiation]의 감속적 감소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가 “물질[substance]”이라 부르는 것들이 순수하게 움직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신들은 어쩌면 이러한 원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움직임은, 그 압력과 속도의 변화를 통해, 그리고 중심이 되는 파동 축[wave axis]과의 회전 운동 관계의 변화를 통해, 물질을 흉내내는[simulates] 것입니다. 입자들이 다양한 압력 상태를 띨 수는 있습니다만, 다른 종류의 입자들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은 다 배증적으로 충전된 입자들을 감싸는 빛의 파동들입니다. 파동 상의 어느 한 지점에서 갖는 위치[Their position at any one point in their wave]가 그 지점에 걸맞는 전기적 상태를 갖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빛 입자들은 그들의 “옥타브” 파동[“octave” waves] 안에서 영원히 움직입니다. 모든 빛 입자들은 자신의 음극점[cathode]이나 양극점[anode]을 향해서 나아가는데,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이들이 중력[gravity] 방향이거나 아니면 공허[vacuity]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이들 모두는 안쪽 아니면 바깥쪽으로--나선형을 그리며[SPIRALLY]--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실로 많은 전기 공학도들을 “잃고” 있는데, 이들은 아주 잘 교육받았지만, 틀렸던 것입니다. 학생들이여, 이에 관한 논의를 하면 할수록, 오직 내가 한 진술이 맞다는 사실만이 입증될 뿐일 것입니다.


    모든 빛 입자들이 다 똑같습니다.


    나아가, 모든 빛 입자들은 모성의 빛의 원칙[the mother-light principle] 혹은 부성의 빛의 원칙[the father-light principle]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빛 입자가 파동의 최대 진폭 상태에 있을 때, 이 입자는 완전한 구체[a true sphere]가 되며, 완전 구체 상태에서 이 입자는 양성적[positive]이지도 음성적[negative]이지도 않습니다. 이 때의 입자를 두고, 어쩌면 “중성자[neutron]”라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소용돌이의 정점을 향해 나선형을 그리며 안쪽으로 나아가는 입자는 양성자라 불릴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때의 입자는 부성의 빛의 원칙[the father-light principle]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개념들”을, 글을 서술해 나가면서 계속 적용해 나갈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다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다시 이야기합니다. : 만약 한 빛 입자가 나선형을 그리며 바깥쪽으로 움직인다면, 이 때 그 입자는 전자라 불릴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 때, 입자는 과다 충전 상태에서 방전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혹은 과다 수축 상태에서 팽창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태양에서 출발한 빛의 광선은 태양을 방전시키는 것입니다. 이 빛들은 또한 스스로를 방전시키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보다 큰 부피 상태로 확장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부피를 배가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전위를 낮추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지구 위로 방사상(放射狀)[radially]으로 수렴될 때, 자신들의 충전상태를 바꾸게 됩니다. 이들은 작은 부피로 수축되면서 지구와 자기자신을 충전시키며, 동시적으로 그러한 수축을 통해 스스로의 전위를 배증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당신 역시도 수축과 팽창의 결과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왜 쉬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는 당신도 바로 “전기적 파동의 우주[electric wave universe]”라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당신들 자신들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알게 되는 걸 싫어하는 자들이, 당신들 앞에 늘 들이 밀곤 하는 복잡한 방정식들은 죄다 잊은 채, 단순히 숨을 내 쉬고 들이 쉬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발전(發電)과 주기[Alternators and Cycles]


    여기에다 절반의 주기를 더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전류에는 양극점[anode]과 음극점[cathode]사이 혹은 양극과 음극[positive and negative poles]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교환[interchange]이 있습니다. 하나의 빛 입자는 음극점[cathode]을 떠나 방사상으로[radial direction] 바깥쪽으로 나아갈 때 확장되며, 방사상으로[radially] 양극점[anode]으로 접근할 때 수축됩니다. 이 모든 여행에 있어서 빛 입자들은 항상 똑 같은 입자들인 것입니다. 빛 입자들이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하는 유일한 이유들은, 그 충전과 방전의 변화, 움직임의 방향의 변화, 그리고 파동 압력의 상태 변화 속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빛 입자들은 항상 똑 같은 빛 입자들이지만, 오직 그 압력 상태[pressure conditions]에 있어서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들에 있어서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철이든, 탄소든, 규소든, 라듐이든, 뭐든 간에 이들 모두는 같은 종류의 빛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들 모두는 다른 특성과 속성들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들이 가진 특성과 속성들이란, 순전히 이 원소들이, 그 파동 상태 속에서, 점유하고 있는 위치들 때문에 생겨나는 것일 뿐입니다.


    빛의 모방[Light Simulation]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빛을 모방합니다[All things simulate light]. 나트륨의 원소체계를 이루는 하나의 빛 입자는 존재하는 모든 다른 원소들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성질을 자기자신 안에 다 가지고 있고, 나아가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다 표현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입자는 단순히 나트륨이라는 ‘아이디어(생각)[Idea]’의 목적성을 수행해 내도록 행동할 뿐인데, 왜냐하면 자신이 나트륨의 압력 상태 속에 있기 때문이며, 또 그것이 펼쳐지기 시작한 옥타브의 ‘불활성 가스 씨앗[the seed of inert gas]’의 전개 패턴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구성’ 참조--역주) 그 똑 같은 빛 입자가 떡갈나무의 씨앗으로부터 펼쳐졌다면, 그 입자는 나무 줄기의 섬유소의 일부가 되거나, 나뭇잎이 되거나, 또는 그 나뭇잎의 색깔을 형성하는 엽록소 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섬유소라는 목적을 수행해 내는 빛 입자이든, 나트륨이라는 목적을 수행해 내는 빛 입자이든, 모두가 다 똑 같은 빛 입자인 것입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들은 ‘달리 조건지워진 움직임을 흉내내는 빛’[differently conditioned motion simulating light]일 뿐인 것입니다. 조건(상태)에 있어서 모든 차이점들은 압력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그럼, 빛의 “여행”은 어떻게 된 것인가?


    좋습니다. 여기 잘 알려진 숫자가 있습니다. : 빛의 “여행” 속도는 추정컨대, 초당 186,400 마일이라고 합니다. 자, 그리고 이번엔 별(항성)과 행성사이의 거리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들 간의 거리는 대개 너무나 멀어서, 빛의 속도로 계산된 “광년[light years]”이라는 단위가 사용되고,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낮은 단위의 수치가 나올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그 숫자는 너무나 커서 종종 의미없는 계산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또 이와 관련된 사실을 언급하는 것도 거의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리곤 합니다.--하지만, 그러한 거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빛의 “여행”도 존재하지 않습니다.(‘우주 문명과 인간 의식’ 참조--역주)

    빛은 오직 여행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이는 단지 빛의 “파동” 움직임으로부터 생겨나는 셀 수 없이 많은 환상들 가운데 한가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대양의 파도는 대양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오직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주적 엔진[the universal engines] 속에 있는 파도(파동)[wave]는 피스톤이나 마찬가지이고, 피스톤은 오직 아래 위로만[up and down]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빛의 파동 피스톤, 혹은 대양의 파도는, 중력 방향으로 혹은 중력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방사상의 형태이자 나선형 모양으로, 안쪽으로 혹은 바깥쪽으로, 나아가며 작동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이 어렵고 오래된 과학의 숙제가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빛의 파동은 여행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공간의 한 파동 장으로부터 다른 파동 장으로 스스로를 재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거울이 빛을 하나의 장에서 다른 장으로 반사시키듯, 제로 곡면[the planes of zero curvature]에서 모든 파동 장의 움직임들은 튕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치 빛이 여행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지만, 이는 순전히 환영[illusion]에 불과한 것입니다.


    “폴[Paul]”의 기억 속에


    글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 나는 한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왜냐하면 조금전 다르마가 자신의 아들, 폴[Paul]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폴은 자신이 “장[field]” 이론(이것이 아주 정확한 정의는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을 통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을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누구라도 모든 이론들을 통합해 볼 수 있고, 나는 이게 사실상 꽤나 근사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폴은 이미 물리적으로는 사망했지만, 그는 여전히 이러한 문제들로 고민 중이며, ‘무시간성[timelessness]’과 ‘무공간성[spacelessness]’ 그리고 그 속에서의 ‘하나됨[ONENESS]’간의 연결을 통해, 이러한 개념들을 실제로 통합해 보는 문제에 매달려 골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도 알겠지만, 머리를 관통하는 총알은 단지 에너지를 전달할 뿐입니다.--이것이 지식을 파괴하지는 못합니다. 앎[KNOWING]이 그대로 존재하듯, 지식도 마찬가지로 남는 것입니다. ‘폴의 차원적 삶의 이론[Paul’s Dimensional Life Theory]’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은 이 장의 부록에 나와 있는 내용을 참조하기 바랍니다.(이 장의 끝인 56페이지를 보십시오.) 나는 지금 이 글이 그에게 헌정하는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당신들도 보다시피, 적들이 한 사람의 육체를 죽일 수는 있겠지만,--그의 영혼[SOUL]과 그의 앎[KNOWING]을 죽이지는 못합니다.


    다시 “빛”으로


    당신의 몸 위로 느끼는 “태양빛”은 실제로 태양으로부터 온 빛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발생하는 일이란, 태양은 자신의 상태를 지구 위에서 재생산해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커지는 파동 장들[wave fields] 속의 차가운 공간을 뚫는 ‘재생산의 확장’으로부터, 보다 작은 파동 장들 속의 당신들의 중력 중심점을 향하는 ‘재생산의 응축’이 시작될 때까지,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열과 당신이 보는 빛은 전적으로 빛과 열을 재생산해내는 파동 장들의 역량에 달려 있으며, 이러한 역량은 대기 중에 있는 수분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만약 대기 중에 수분이 전혀 없다면, 당신들의 육체는 재생산되는 열에 의해 완전히 숯덩어리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열이 태양으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광선 때문이라고는 생각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그 똑 같은 태양빛이 지구와 태양 사이 공간 상의 거대하게 확장된 파동 장들을 통과하는, 재생산의 여정 동안에는 극도로 차갑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첫걸음(이해)이 나쁜 것일까요, 좋은 것일까요?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입니다.--하지만 사실상 별이나 태양으로부터 오는 것처럼 보이는 빛과 열은 결코 별이나 태양을 떠났던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빛이라고 “보고”, 열이라고 “느끼는” 것은 실상, 그 원인이 되는 빛과 열의 ‘재생산된 대응물[reproduced counterpart]’인 것입니다.

    파동 장의 진동률은 파동 장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한 파동 장 안에서의 진동은 그 응축된 중심과 그 중심을 둘러싸는 공간 사이의 상호교환되는 펄스를 의미합니다. 거대한 파동 장 안에서의 느린 진동은 그 속에 있는 누군가의 육체를 차갑게 만들거나 심지어 얼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극도로 작은 파동 장 안에서의 빠른 펄스 교환은 그 육체를 태워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초점으로 빛과 열을 배증시키는 렌즈는, 보다 큰 파동 장을 보다 작은 파동 장으로 단순히 응축시키는 것이기에, 그 위에 종이를 올려 두면 불이 붙습니다. 똑 같은 이유로, 진동률이 증가하기에, 태양 가까이에 있는 행성들은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들에 비해 작은 궤도를 보다 빨리 도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법칙”으로, 태양계 내의 행성들의 움직임은, 파동 장들 속의 진동률에 맞춰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케플러의 법칙[Kepler’s Law]


    그럼, 도깨비같은 “포톤(광자)” 벨트[“PHOTON” BELT]는 무엇인가?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빛, 진동[vibration], 진동수[frequency], 그리고 광선(사실 이것이 전부 다입니다.)과 같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다시금 당신들이 처해 있는 중요한 상황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들이 이 기분 나쁘고 오래된 주제인 “포톤 벨트”와 같은 것을 비껴난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에, 모두가 안도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당신들은 아무것도 비껴난 적이 없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신속하게 영리해지지 못한다면, 당신들은 완전한 문제덩어리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의 장소 위로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광선의 진동은 이미 “포톤” 샤워[“photon” shower]의 일부입니다.(1993년 6월 17일 구술--역주) 이 진동[frequency]은 자외선의 범위를 넘는 것이며, 이는 준비되지 않은 육체에 있어서 세포 돌연변이와 모든 종류의 손상의 원인이 됩니다. 당신이 해야 될 일은 앞으로 점점 더 커져 가기만 할 빛의 진동 속에서, 이것에 어울리고 또 이 속에서 번성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광선들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광선들입니다. 이는 방사선[radioactive radiation]이나 똑같은 방식으로 “닿게[getcha]” 될 것입니다.(‘원자력, 죽음의 에너지원’ 참조--역주)

    우리가 당신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실로 그러합니다. 적절한 방식으로, 약간의 가이안드리아나[gaiandriana]를 섭취하는 것이 이에 대한 대응이 될 수 있으며, 쏟아지는 진동으로 인한 위험을 무마시켜 줄 수 있습니다.(가이안드리아나는 가이아[Gaia](어머니 지구)와 드리아나[Driana](음료)의 합성어로 산화연(PbO) 함량 24%의 순수 크리스탈 잔에 물을 담아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최소 하루 이상 두었을 때 만들어지는 액체입니다. 현대과학에서는 이것을 물과 동일한 것으로 평가하지만 이것은 더 이상 물이 아니며, ‘가이안드리아나’라는 특수한 액체인 것입니다. 가이안드리아나를 처음 복용할 때는 첫 날 약 120ml정도(큰 요쿠르트 한 병 정도)를 마시고, 이후 12일간은 30ml정도(작은 요구르트 반 병 정도)를 마십니다.(가이안드리아나는 물보다 조금 더 무겁고 농도가 짙은 듯한 느낌이 납니다.) 이렇게 13일이 지난 이후로는 혀 밑과 아랫니 사이의 공간에 8-10방울 정도의 소량의 가이안드리아나만을 떨어뜨린 후 최소 3분이상 그 사이에 가두어 둔 채 머금고 있다가 삼키면 됩니다.(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 3분동안 가이안드리아나가 우리 몸의 정확한 DNA구조를 리딩[Reading]하게 되고, 이후 체내로 들어갔을 때, 몸 속의 손상된 DNA구조가 발견되면 이를 복구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계속 섭취하면 몸 전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혹시 감기에 걸리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 때는, 가이안드리아나 복용량과 복용횟수를 조금 늘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피닉스 저널에서 권장하는 가이안드리아나의 올바른 복용방법입니다. 한편 가이안드리아나를 조금 덜어서 로션을 바르듯이 얼굴이나 손에 바르면 피부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하톤은 가이안드리아나를 복용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창조의 법칙’을 지키고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피닉스 저널 전체를 통해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피닉스 저널 제 62권 10장, 제 84권 8장, 제 130권 15장 참조--역주) 사실상 가이안드리아나는 영구적인 것으로, 어떤 것에 대해서도, 또 어떤 진동 수준에 대해서도 대응력을 갖습니다. 나아가 가이안드리아나는 살아있는 세포 구조를 올바른 형태로 만들어 줍니다. 가이안드리아나를 섭취하는 것은 조화로운 상태로 머무는데 있어서, 아주 분명히 이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당신들이 분명히 깨달아야 할 사항이 있는데, 당신들은 분명 경이로운 존재들이지만, 결국에 가서 끔찍한 문제에 직면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아직 원시적인 존재들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은 완벽함 속에 균형잡힌 상태로 있으며, 당신들도 이러한 ‘상태(프로그램)’에 어울릴 줄 알아야 됩니다. 당신들이 스스로를 ‘인류’라는 하나의 종족으로 여길 때, 당신들은 당신 자신들이 결코 다른 생명체나 혹은 기타의 다른 어떤 존재물들 보다도 더 우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그저 ‘이 위대한 창조[this great Creation]’의 일부일 뿐인 것입니다. 당신들의 역할이란, 창조의 다른 존재물들이 행하는 바 그대로를 당신들도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다른 모든 (창조의) 체계(시스템)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피부색, 민족, 그리고 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는 법을 반드시 찾아내야만 합니다. 당신이 에너지이며, 당신이 “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심이란, 바로 ‘창조의 에너지[energy of Creation]’로서, 이것은 형체도 모양도 냄새도 색깔도 없습니다. 창조의 에너지에는 편애도 없고, 사조(독트린)도 없으며, 원죄를 가진 자도, 성자도 없는 것입니다. 창조의 에너지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며, 어떠한 선호도 갖지 않습니다.[IT IS and it has NO PPREFERENCE.] 당신들이 충분히 많은 것들을 더 일찍 깨닫게 되면 될수록, 당신들은 이 시대에 있어서 구루들[gurus]과 복음 전도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 “상승”(하톤은 그들이 주장하는 ‘상승’ 혹은 ‘들어올림’에 대해서는 대단히 냉소적인 태도를 보임--역주)하는 법을 아마 더 빨리 배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 이 자리에서 당신들에게 한가지 상기시켜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상승’에는 오직 한가지 방법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미립자화[particulation]. 양방향의 흐름[two-way flow]을 잘 유지하면서, 당신들은 이 일을 훌륭히 해 낼 수 있습니다.--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당신은 분해된 수증기 속으로 스스로를 파열시키게[blow] 될 것입니다.--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당신은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만큼, 정도(正道)에서 멀리 벗어난 당신 자신의 방식을 탈피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러기를 희망하는데, 왜냐하면 이것이 곧, 당신의 선택이 지혜 속에서 취해진 것인지의 여부를 판별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내게 소중한 존재들이며 나는 내 존재의 모든 것을 당신들에게 내어 줄 것입니다.--그렇지만 당신들이 이를 받아들여야만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 일은 언뜻 그 첫 짐작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지 않습니까?

    무한 속의 하나됨 속에서, 나는 어쩌면 나중의 당신일 수도 있습니다!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74권, “Mysteries of Radiance Unfolded : Relative connections Vol II” 제 3장, pp. 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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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가 처음 게재된 포럼의 주제글: 빛에 대하여.. started by phoenix View original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