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1조달러짜리 거짓말, 홀로코스트 Part I. II.
  • 1조달러짜리 거짓말, 홀로코스트 Part I. II.

    민족주의 억압


    정치적인 협잡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6백만명의 유태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주장은, 단순히 유태 국가에 도움이 되는 차원을 넘어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제국가들의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있어 보다 깊은 함의를 갖습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들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왜 그런 엄청난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도대체 그 목적은 무엇인가? 가장 우선적으로, 이는 어떤 형태의 민족주의든 간에 민족주의를 억제하는 용도로 거리낌없이 사용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민족국가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이 시대에 있어서, 영국 국민이든, 혹은 그 어떤 다른 유럽 국가 국민이든 간에 자신들의 애국심에 호소하고, 그들만의 국가적 단일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우가 생기면, 이에 대해서는 “네오-나치[neo-Nazis]”라는 오명이 손쉽게 갖다 붙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치즘이 바로 하나의 민족주의였고, 당신들 모두가 잘 알다시피, 그 당시 일어났던 일이란--‘바로 6백만명에 이르는 유태인 학살’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화가 계속해서 명맥을 유지하는 한, 세상 어디에 존재하는 민족들이건 간에, 그들이 민족주의를 표방하려 할 때면, 늘 그 곤란함 속에 구속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유를 보장해 주는 기제이기도 한, ‘민족국가주의[nationhood]’가 완전히 폐지되는 그 날까지, 이러한 사상에 대한 국제적인 관용과 이해의 정서는 바로 유엔[the United Nations]에 의해서 맹렬히 공박당하게 될 것입니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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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이전


    (독일의 대 유태인 정책)


    그것이 옳은 판단이었든, 그른 판단이었든 간에,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독일은, 유태인들이 비단 독일 문화에 퇴폐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 정도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들은 애국심이 없으며, 탐욕스런 존재들인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특히 지난 바이마르 시대[Weimar period] 이후로, 유태인들은 전체 국민의 채 5%밖에 되지 않았지만, 독일 법조계, 금융계, 그리고 언론계에서 놀랄만한 힘과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들은 죄다 차지하고 있었기에, 국가적 건전성에 위협이 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칼 맑스[Karl Marx]가 바로 유태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ourg](1870-1919, 막시스트 혁명가--역주)나 칼 리베크네히트[Karl Liebeknecht](1871-1919, 사회주의자, 독일공산당 창립자--역주)와 같은 독일 내 혁명 운동의 지도자들도 역시 유태인들로서, 국민구성 비율에 맞지 않을 정도로 대표되고 있었으며, 또한 이들은 나치즘에다 강력한 국제주의적 색채를 더하려고 했고, 나아가 공산주의 운동에 있어서도 유태 민족 자신들의 입김이 강화된 양상을 불어 넣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여기서 정작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유태인들에 대한 독일의 태도가 옳았느냐 옳지 않았느냐 하는 것도, 혹은 유태인들의 이익에 반하는 각종 독일내 입법 조치들이 정당했느냐 정당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단순히, 유태인들의 행태에 직면하여, 나치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했던 것은, 다양한 입법활동을 통하여, 독일 국가 내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없애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조치 중의 하나는 바로 유태인들 모두를 독일 영토 밖으로 이주시켜 보내는 일을 권장했다는 것입니다. 1939년까지 다수의 독일계 유태인들이 독일을 떠났고, 그들 모두는 상당량의 자산을 함께 가지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치의 지도부들이 그들을 대상으로 대량학살[genocide]과 같은 일을 고안해 냈던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유태인들은 ‘이주[Emigration]’를 ‘제거[Extermination]’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떤 유태인들은 이 같은 독일의 국내적 차별 정책을 ‘제거’ 그 자체와 동일한 것으로 해석했는데, 이는 대단히 우려할만한 시각이었습니다. 1936년, 레온 포이히트방거[Leon Feuchtwanger]와 다른 몇몇이 함께 출간한 반독일 선전용 책자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 : “노란 얼룩 : 500,000명의 독일계 유태인들의 제거[Der Gelbe Fleck : Die Ausrotung von 500,000 deutschen Juden (The Yellow Spot: The Extermination of 500,000 German Jews, Paris, 1936)]”이 붙여진 적이 있고, 이는 그 대표적인 예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주장을 할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었으나, 그 첫페이지에서부터 ‘유태인들의 절멸[the annihilation of the Jews]’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졌습니다--‘이주’ 자체를 독일계 유태인들의 물리적인 “제거”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정치범들을 위한 수용소도 잠재적인 대량학살을 위한 도구로 여겨졌으며, 특히 1936년 다하우[Dachau] 수용소에 있던 100명의 유태인들, 그 중 60명은 1933년부터 감금되어 오기도 했던, 이들 유태인들이 집중 조명 되었습니다. 또 다른 예는, 독일계 유태인 공산주의자였던 한스 바이믈러[Hans Beimler]가 쓴 선정적인 책으로, ‘히틀러의 지옥의 사냥개들에게 포위된 채 보낸 4주 : 다하우의 나치 살인 캠프 [Four Weeks in the hands of Hitler’s hell-Hounds : The Nazi Murder Camp of Dachau]’라는 제목으로, 1933년 초 뉴욕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는 다하우가 죽음의 수용소라고 주장했지만, 실상, 막시스트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던 그는, 자기 자신의 동의 아래 그 곳에 수용되었었고, 또 불과 한 달만 머물다가 이내 풀려났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동독 정부는 공산주의 활동을 한 공로자들에게, 한스 바이믈러 상[Hans Beimler Award]을 수여해 왔던 것입니다.

    요컨대, 반나치 대량학살 선전물들은 그러한 주장 자체가 아예 불가능했던, 이 같은 초기부터 인종적, 정치적 편견을 가진 자들에 의해 유포되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사례들은, 독립적인 시각을 가진 관찰자들이, 전시에 발생한 일들이라 주장되는 이와 유사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될 때면,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pp.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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