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1조달러짜리 거짓말, 홀로코스트 Part I. II.--[B]아우슈비츠와 폴란드계 유태인들[/B]
  • 1조달러짜리 거짓말, 홀로코스트 Part I. II.

    아우슈비츠와 폴란드계 유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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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슈비츠[Auschwitz]에 대한 진실을 말하자면, 그 곳은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공업지대를 이루었던 수용소로서, 군수 산업과 관련된 거의 모든 물자들을 만들어 내던 곳이었습니다. 수용소 안에는 I.G. 화벤 공업사[I.G. Faben Industries]의 합성 석탄 및 고무 공장들이 들어차 있었고, 수감자들은 이 곳에서 노동력을 제공했습니다. 아우슈비츠에는 또한 연구소들이 딸린 농업 연구 센터, 묘목 재배소, 가축 사육 시설, 그리고 크루프 군수 공장[Krupp’s armament works]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류의 활동들이 이 수용소의 주된 기능이었음을 우리는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습니다. 모든 주요 공장들은 저마다의 부속 기관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심지어 비밀 경찰들[The S.S.]도 자신들만이 운영하는 공장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놀랄만한 사항이 한가지 있다면, 그 곳의 군수산업단지들이 실은 거의 모두 유태인 소유였다는 것입니다!

    힘믈러[Himmler]가 이 곳을 방문한 것과 관련된 증언들은, 그의 주된 방문 목적이 이 산업 단지를 시찰하고 그 효율성을 평가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941년 3월, 그가 I.G. 화벤사의 고위 관계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을 때, 그는 수감자들의 수용 시설에 관해서는 거의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I.G. 화벤사의 노동력 수급을 위해 10만명 정도의 수감자를 더 수용할 수 있도록 수용소를 확장하라고만 명령했습니다. 이는 수백만명의 수감자를 학살하는 정책과는 실상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백만명, 그리고 또 수백만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용소 한 군데에서만 3백만의 유태인들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습니다. 또 어떤 저자들은 4백만에서 심지어 5백만명 가까이가 여기서 죽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4백만명이란 참으로 센세이셔널한 숫자로 이는 공산주의자들이 이 곳 수용소를 “검사”한 뒤, 소련 정부에 의해 주장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적인 시점에, 그들은 카틴[Katyn] 숲 학살 사건을 독일측에 떠넘기려고 시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라이트링거[Reitlinger]에 따르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다른 동부지역 수용소들에 관한 그 같은 정보들은, 전후 공산주의 체제하의 동유럽 국가들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 “폴란드에 있던 죽음의 수용소들에 관한 증거자료들은 주로 전쟁 이후, 폴란드 국가 위원회[Polish State commissions] 또는 폴란드 중앙 유태 역사 위원회[the Central Jewish Historical Commission of Poland]로부터 제공된 것이었다.”(‘마지막 해결책[THE FINAL SOLUTION]’, p. 631).

    그렇지만, “가스실 학살[gassings]”과 관련하여, 그 곳에서 살아남은 진짜 목격자에 의한 증언이나 확언은 결코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3년을 포함하여, 총 7년간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 베네딕트 카우츠키[Benedikt Kautsky]는 자신의 책 ‘악마와 저주받은 자[Teufel und Verdammte](Devil and Damned, 취리히[Zurich], 1946)’라는 책에서 “적어도 350만명의 유태인들”이 그 곳에서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썼습니다. 이는 정말이지 놀라운 진술인 것이, 저자 본인은 스스로도 단 하나의 가스실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같은 책에서 함께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나는 거대한 독일 수용소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있는 동안, 단 한 차례도 가스실과 같은 시설물을 본 적은 없었다.”(p. 272-3). 그가 실제로 목격했던 유일한 살해의 예는, 두 명의 폴란드인 수감자들이 두 명의 유태인 수감자들을 죽인 것에 대한 형벌로서 사형에 처해진 것이 전부였습니다. 1942년 10월 부헨발트[Buchenwald]에서 아우슈비츠-부나[Auschwitz-Buna]로 이송되었던 카우츠키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시 공업지대에서는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이 수용소 유지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결국 그는 바로 이러한 사실과, 추정되는 유태인 학살 정책이 동시에 양립되게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유태인 학살은 1942년 3월에서 1944년 10월 사이에 일어났던 것으로 추정되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기간동안 3백만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는, 32개월에 걸쳐, 매월 9만 4천명씩을 죽여야 되고, 밤낮 가릴 것 없이 매일 3350명씩을 2년반동안 끊임없이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것으로서, 거의 논박할 가치조차 갖질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트링거는 꽤나 진지하게, 아우슈비츠는 하루에 적어도 6000명씩을 처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매일 6천명씩이라는 라이트링거의 주장대로라면 1944년 10월까지 그 수치는 도합 5백만명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 같은 추정도 올가 렝겔[Olga Lengyel]이 자신의 책 ‘5개의 굴뚝들[FIVE CHIMNEYS](런던[London], 1959)’에서 보여준 황당한 공상에 비하면 무색해지고 맙니다. 이전에 아우슈비츠의 수감자였다고 주장하는 그녀는, 수용소에서는 “매시간당 750명, 하루 17,280명에 해당하는 송장들”을 소각시켰다고 단언합니다. 이에 더해, 그녀는 매일 8천명의 사람들이 “죽음의 구덩이[death-pits]” 속에 처박힌 채, 불태워졌다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대체적으로 볼 때, 매일 처리된 송장들의 숫자는 모두 24,000구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 해를 기준으로 봤을 때는 850만명이 넘는 수치입니다. 따라서, 1942년 3월부터 1944년 10월까지를 고려해 볼 것 같으면, 아우슈비츠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은 2100만명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단지 6백만명을 넘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태인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습니다. 좀 너무 많은 것 같군요. 내 생각에, 아마도, 그녀가 ‘쉬는 날’등과 관련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는 걸 미처 빼먹은 것 같습니다.

    비록 아우슈비츠에서만 수백만명이 죽었다고 가정한다손 치더라도, 1940년 1월부터 1945년 2월에 이르는 기간에 걸쳐 수용소에 등록된 수감자들의 총 수는 363,000명이었다는 사실(‘비밀 경찰, 국가적 알리바이[The S.S., ALIBI OF A NATION]’, p.268 ff.)을 라이트링거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그들 모두가 다 유태인들이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수감자들이 다 등록된 것은 아니었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곤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또 설령, 등록된 숫자만큼이나 등록되지 않은 숫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총 수감자들의 수는 겨우 75만명에 불과하게 됩니다.?3백만명 혹은 4백만명의 학살에는 너무나도 부족해 보입니다. 게다가 다수의 수감자들은 전쟁 중 풀려나거나 다른 곳으로 이송되었으며, 1945년 1월, 러시아인들이 들이닥치기 이전에, 80,000명의 수감자들은 서유럽 지역으로 이송되었습니다.
    pp.1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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