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부재
독일인들이 유태인들을 고의로 학살하려고 의도했다거나, 혹은 이를 수행했다는 것을 입증해 줄만한 단 한 건의 문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폴리아코프[Poliakov]와 불프[Wulf]가 쓴, ‘제 3제국과 유태인 : 문서와 서류들[Das Dritte Reich und die Juden : Dokumente und Aufsatze]’이라는 책(베를린, 1955년)에서, 그들이 수집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자료들은 전쟁 후, 홰틀[Hoettl]이나 올렌도르프[Ohlendorf] 그리고 비슬리세니[Wisliceny]와 같은 인물들의 진술로부터 얻어진 것으로, 특히 비슬리세니가 한 진술의 경우는 소련의 감옥에서 고문을 당한 끝에 내놓은 것들이었습니다. 결국 어떠한 문서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폴리아코프는 다음과 같이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유태인들의 완전한 제거를 계획하는데 참여했던 서너명의 주요인물들은 모두 사망했기에, 어떠한 문서들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는 아주 손쉬운 합리화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분명코, ‘계획’이라는 것도, “서너명”의 인물들이라는 것도 모두 저자의 막연한 가정에 불과한 것들이고, 그 어느 것도 입증될 수 없는 내용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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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벨[Manvell]과 프랑클[Frankl](‘하인리히 힘믈러[HEINRICH HIMMLER]’, 런던, 1965년)에 따르면, 대량 학살 정책은 히틀러[Hitler]와 힘믈러[Himmler] 사이의 “비밀 논의[secret discussions]” 끝에, 마침내 “도래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seems to have been arrived at]”고 합니다. 비록 그들이 이를 입증하는데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트링거[Reitlinger]와 폴리아코프[Poliakov]는 이를 토대로 유사한 “구두[verbal]” 명령 라인[lines]만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하며, 그 때문에 어떠한 기록도 남겨질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순수한 창작으로서, 심지어 히틀러와 힘믈러 간의 그같은 기이한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줄만한 증거조차 단 한 가지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윌리엄 쉬어러[William Shirer]는 대단히 개괄적이고도 무책임한 서술로 일관한 자신의 책, ‘제 3제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에서, 역시나 마찬가지로, 문서화된 증거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닫아 버립니다. 그는 단지 다음과 같이 언급할 따름입니다.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명령은 결코 문서화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최소한 이에 대한 단 하나의 사본 조차도 지금껏 발견된 적이 없다. 이 명령은 아마도 구두로 괴링[Goering], 힘믈러[Himmler], 그리고 하이드리히[Heydrich]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이고, 이 후 명령체계를 따라 아래로 하달되었던 것이다...”(p. 1148)
pp.10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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