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1조달러짜리 거짓말, 홀로코스트 Part I. II.--[U][B]다른 계획들[/B][/U]
  • 1조달러짜리 거짓말, 홀로코스트 Part I. II.

    다른 계획들


    워싱턴D.C.와 런던에 자리잡고 있던 단일 세계정부주의자 그룹들은 꽤나 다른 계획들을 갖고 있었고, 또 스탈린이 동유럽 지역과 독일을 약탈하는 것을 도와 줬습니다. 사실상, 우리가 히틀러의 (소위 말하는) 죽음의 수용소와 관련된 다른 자료들을 거론하게 된다면, 당신들은 또 다른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학살 수용소일지도 모르는 것으로 추정되던 수용소들은 바로 공산주의자들의 통제 아래에 있던 영토 내에 위치해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 말미, “지독한 스웨덴계 유태인[terrible Swedish Jew]”이었던 아이젠하워는, 모든 독일인들을 향한 공개적인 증오감 속에, “킬홀 작전[Operation Keelhaul]”이라는 것을 도모하여, 미국 군대 앞에 항복한 독일인들 가운데, 수천명에 이르는 반공산주의 투쟁가들[anti-Communist fighters]을, 억지로 ‘자비로운’ 공산주의자들의 손 아래 도로 떠넘겨 버렸던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수천명은 즉각적으로 살해되었으며, 나머지는 ‘러시아의 군락[Gulags of Russia]’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당신들이 너무나 잘 기억하겠지만, 내가 이미 누차 이야기해온 바대로, 한국에서 행방불명된 많은 사람들은 바로 소련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지금 이 순간에도(아직 생존해 있는 채로)!

    아이젠하워가 미국으로 되돌아 갔을 때, 통제된 채로 움직이던 비열한 미국 언론들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유유히 배신해 왔던, 바로 그 대중들 앞에서의 그의 인기는 너무나도 높아서, 결국 그는 1953년 제 3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또 한가지 당신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나는 당신들의 오늘날의 “통제된 언론 매체들”에 관한 증거자료들도 보유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번 글을 쓸 때, 한 번 이야기할까 합니다.

    아이젠하워는 종전에 임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 “나는 전쟁을 혐오합니다. 바로 그 전쟁 속에서만 살아올 수 밖에 없었던 병사의 한 사람으로서 전쟁을 혐오하며, 또 그 잔인함과 그 무익함과 그 어리석음을 직접 목격해 온 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전쟁을 혐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독일인들을 혐오하는 것만큼 전쟁을 혐오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 전쟁이 이미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백만명이 넘는, 항복한[SURRENDERED] 독일 병사들과 민간인들을 상대로, 지독한 ‘탈무드 시오니스트식 보복[Talmudic Zionist’s revenge]’을 가했던 것입니다. 언론을 통해 칭송받고, 역사가들로부터 “보호받았던” 이 자는, 소위 말하는 문명화된 인간과 그들이 펼쳐온 전쟁사 속에서, 가장 비난받아 마땅할만한 행위들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훈족의 아틸라[Atilla the Hun](5세기 전반, 게르만족 대이동기, 유럽에 대제국(훈제국)을 건설한 인물. 후환을 없애기 위해 점령지를 철저히 파괴하고 약탈했으며, 유럽인들에게는 악마와 같은 존재로 각인됨?역주)나 그 밖의 완전한 야만인들과 동급으로 봐야 할 정도였던 것입니다.

    1945년, 완전히 패망한 독일에게 ‘강요된 평화’ 프로그램은 ‘모겐소 플랜[Morgenthau Plan]’이라 불렸습니다. 이는 바로 또 한 명의 시오니스트이자,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모겐소[Henry Morgenthau]에 의해 고안된 것이었는데, 그는 나중에 말하기를, 대부분의 아이디어들은 아이젠하워가 직접 제안한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모겐소 플랜


    이제, 지난 20여년 간에 걸친 엄청난 연구 노력 끝에, 미군 병력을 지휘했던 시오니스트 지휘관이자, 제 34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자에 관한 진실들이 마침내 밝혀지게 되었고, 이에 대한 자료들도 축적되었습니다. 당신들은 눈에 띄진 않지만 큰소리 치는 사람들의 말을 아무 생각없이 “단순히 다 믿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의 외교 정책은 워싱턴 D.C.에 자리잡은 소수의 막강한 시오니스트들의 손에 따라 좌우되었습니다. 지난 50여년간 미국을 통제해 온 이 보이지 않는 비밀 정부는, 그 무렵에는, 허버트 레만[Herbert Lehman] 상원 의원, 펠릭스 프랑크푸르터[felix Frankfurter] 대법관, 그리고 헨리 모겐소[Henry Morgenthau] 재무장관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청사진”을 그렸고, 이는 열정적인 아이젠하워에 의해 유럽에서 수행되었으며, 이는 문명화된 인간 역사상 가장 가공할만한 증오와 복수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이 정책은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아직까지 수행 중에 있는 것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하고, 심지어 만들어 내기조차 하는 언론계 거물들의 지원 속에, 이미 70대와 80대의 노년에 이른 유럽출신 전쟁 베테랑들을, 50년 전에 발생한 일이라고 주장되는, 추정적인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 끝없이 뒤쫓고, 괴롭히고, 또 체포해 왔던 것입니다.

    다음 사실들은,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복무했던, 미국출신 베테랑들과 장병들이 반드시 알아야만 할 사항들입니다. 당신들은, 바로 국제주의자들[the Internationalists]의 이득을 위해, 당신들이 어떻게 속임수를 당해 왔으며, 어떤 방식으로 유린당해 왔던 것인지를 알아야만[KNOW] 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해외 참전 용사 재향 군인회[Legion and Veterans of Foreign War Post]’ 소속의 모든 베테랑들은 이 글을 반드시 읽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같은 소속원들과 관련 단체들을 통해서 여기 나와 있는 내용들이 정말로 사실인지를 조사해봐야만[RESEARCH] 할 것입니다. 당신들도 알게 되겠지만, 똑같은 방식의 배신행위들은 한국에서도 발생했고, 나중에 베트남에서도, 캄보디아에서도, 라오스에서도, 중앙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도, 그리고 “폭풍의[Storm]” 걸프만에서도 계속되고, 또 계속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특히 당신들, 미국의 베테랑들이여, 당신들이야말로 반역자들에 관한 진실을 맨 먼저 알 권리[the first RIGHT TO KNOW]가 있습니다. 당신들의 동료 전우들의 살해에 대한 책임이 있는 자들, 수백, 수천명에 이르는 불구자들에 대한 책임이 있는 자들, 나아가,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 조차도 당신들의 아들과 딸들을 제 3차 세계대전(제 1차 핵전쟁)에 내 보내기 위한 준비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자들에 관한 진실을 알 권리가 당신들에겐 있는 것입니다.

    워싱턴 D.C.의 국립 문서 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에는, 1945년 9월 8일자, “전쟁 포로와 무장 해제한 적 병력에 관한 주간 보고서[Weekly Prisoner of War and Disarmed Enemy Forces Report]”라고 불리는 공식 문서가 있습니다. 이 서류에 따르면, 유럽의 전쟁터에서 미육군 통제 하에, 1,056,482명에 이르는 독일인 수감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 중 692,895명은 ‘전쟁 포로[POW’s (Prisoners of War)]’로 분류되었고, 나머지 363,587명은 ‘무장해제 적 병력[DEF’s (Disarmed Enemy Forces)]’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무장해제 적 병력’이라는 분류 체계는 국제법 하에서 볼 때 불법이었고, 미국과 독일 양국이 모두 서명한 ‘제네바 협약[the Geneva Convention]’에 비추어 보더라도 완전히 모순되는 것이었습니다. “DEF’s(무장해제 적 병력)”으로 지정된 독일군 병사는 음식도, 거처도, 물도?사실상 아무것도, 공급받을 권리를 갖지 못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도 구비되지 못했기에, 그들은 이내 수일 안에 죽어 나갔습니다.

    1945년 9월 첫째 주에, DEF지정 363,587명의 독일인들 가운데, 13,051명이 죽었고, 이들은 장부상에는 “기타 인명 손실[other losses]”이라는 제목 아래 비밀스레 기재되었습니다. 주당 사망률은 3.6%에 달했습니다. 그러한 비율로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가게 될 경우, 남아 있는 350,536명의 DEF들은 적어도 28주 안에는 모두 사망하게 될 것이었습니다?다가오는 겨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독일 내 미군 통제 수용소들 바깥 지역에서의 민간인 사망률은 년간 약 2%였는데, 대부분의 민간들이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수치는 수용소 안에서의 사망률보다가 거의 100배나 낮은 수치였습니다. 그렇지만, 수감자들에게 필요한 공급물들은 항시 조달되고 있었기에, 이러한 사망률은 전적으로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POW’s(전쟁 포로)라고 거짓 분류되었던 692,895명의 독일 병사들도, 실은 이미 한 달 전인 8월 4일 아이젠하워 장군의 명령에 따라, POW에서 DEF로 지위가 바뀌어져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들의 경우에도, 사망률이 수주 안에 신속히 4배로 불어나, 처음에 주당 사망률, 0.2%이던 것이 이내 0.8%로 바뀌었습니다. 소위 POW’s로 분류되었던 자들 가운데, 5,543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9월 첫째 주말이 끝나기 전까지 미국인들의 손아래 사망했던 것입니다.?그런 식으로라면 적어도 2년 안에는 전원이 사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DEF’s로 지정된 사람들의 주당 사망률 3.6%에 비해 POW’s에서 DEF’s 지위가 바뀐 자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망률을 보인 이유는, 단순히 처음부터 DEF’s로 지정된 사람들에게는 보다 가혹한 조치가 누적적으로 취해졌기 때문이며, 또한 몇몇 미군 부대에서는 그 같은 야만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상부 명령을 거부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 베테랑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일본에서 점령지 관리 임무를 부여 받았었던, 1945년의 겨울을 기억할 것입니다. 바로 유사한 명령이, 당시 일본인들에 대한 증오로 유명하던 미군 지역 군 사령관으로부터 하달되었습니다. 그것은 맥아더의 도쿄 본부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일본인 민간인들이 거의 아사 직전에 있었지만, 그들에게 음식물을 공급하는 것은 절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한 미군 장교는, 오사카[Osaka] 남쪽으로 80마일 떨어진 니스키야하마[Niski’ya’hama]라는 소도시에서, 병참 기지 관리를 위해 28명의 병사들로 구성된 파견대를 지휘했던 일을 상기합니다. 당시 창고의 음식물들은 말그대로 썩어나가고 있었지만, 당신들은 이를 일본의 민간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만큼은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해 크리스마스 보급품으로 이 파견대에는 8마리의 양고기와 28마리의 칠면조가 보급되었지만, 적당한 냉동 보관 시설은 없었습니다. 결국, 음식물들이 상하는 걸 지켜보는 대신에, 이 장교는 이를 굶주리고 있던 민간인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새어나가게 되어, 결국 그는 군사법정에 회부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맥아더의 도쿄 본부로부터 파견된 한 고위 관리 덕택에, 그는 겨우 목숨만은 살릴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 장교의 이름을 익명으로 유지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일들은 독일에서도 끝없이, 끝없이 반복되었고, 많은 미군 장교들과 병사들은 자신들의 배급품을 굶주리는 독일인들에게 나눠줬다는 죄목으로 아이젠하워의 명령에 따라 군사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집에 어린 아이들을 두고 있는 젊은이라고 한다면, 적군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의 아이들을 떠올렸을 이 미군들, 적어도 자신들의 정부가 뭔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을 이 몇몇 미군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이 관대했던 미군 병사들에게 있어서, 적군의 아이들은 결코 적이 될 수 없었습니다!?형제들이여, 우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바로 당신 자신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십시오!?바로 이 같은 사악한 행위들, 거의 정신병에 이를 만큼의 공포의 기억들이 바로 당신들의 양심과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도록 강요되어져 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독일인들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증오로 가득찼던 아이젠하워는, 8월 4일자 명령을 통해, 유럽 땅에서 미군 통제하에 있던 독일 전쟁 포로들을 향한 그 같은 호의적인 행위들[bona fide]이 더 이상은 불가능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대신에 그는 허허벌판, 진흙탕에다, 질병이 들끓는 환경의 거대한 강제 수용소들을 만들어, 그곳에서 사람들(여자들과 아이들을 포함하여)이 굶어 죽도록 내버려 뒀습니다.

    1945년 11월, 아이젠하워가 워싱턴으로 돌아가고 나자, 약 한 달 후, 얼마간의 여유가 찾아 왔습니다. 조지 패턴 장군[General George Patton]과 같이 양심적이었던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전쟁터에서는 독일 병사들을 죽이는 데 있어서 어떠한 관용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젠하워에 의해 주도되던 의도적인 살해 정책에 대해서는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그가 나중에 뜻밖의 순간에 이상한 죽음을 맞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오래된 기록물들로부터 진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쟁 범죄”는 결코 독일에 의해 독점되었던 것이 아니며, 시오니스트 언론매체들과 역사가들이 미국 내에서 “선의의 전쟁[good war]”이라고 칭해온 바로 그 전쟁이, 실은 역사상 그 어떤 전쟁보다도 더 지독한 “악의의 전쟁”이기도 했었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pp.14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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