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뉴욕/모스크바/텔아비브 트라이앵글--뉴욕/모스크바/텔아비브 트라이앵글[NEW YORK/MOSCOW/TEL AVIV TRIANGLE]
  • 뉴욕/모스크바/텔아비브 트라이앵글

    뉴욕/모스크바/텔아비브 트라이앵글[NEW YORK/MOSCOW/TEL AVIV TRIANGLE]


    내가 이 글에 앞서 썼던 여러가지 글들 가운데, 가장 집요한 반박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바로, ‘이 권력의 삼각구도[this triangle of power]’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관점에서 이 ‘삼각구도’를 검토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가서 확인해 보십시오. 왜냐하면 증거들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증거들을 당신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기려는 노력 역시 미친 듯이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증거들은 존재합니다.

    다음은 잭[Jack]의 연구에 따른 것입니다. :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신들은 어쩌면 이스라엘과 소련이 이데올로기적 동맹 관계였다는 사실에 대해서 무척이나 의아하게 여길 것입니다.?그러나 양국 모두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교리들을 신봉하며, 양국 모두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들입니다. 하지만, 소련은 이스라엘의 적에 해당하는 아랍 국가들에게 여태껏 군사 장비들을 공급해 왔습니다. 다른 한편, 소련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해 왔던 것입니다. 나, 하톤은 이 저널들이 처음 나올 때부터, 미국은 소련의 오랜 동맹 국가였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대중들은 이런 ‘미친 소리’를 하는 나의 서기들을 죽여버리고 싶어 했습니다.?그렇지만, 잠깐만 그 손에 들고 있는 돌들에 옆에 놔 두고, 이제부터 제시될 설명들에 얼마간 귀를 기울여 보도록 하십시오.

    시오니스트/볼셰비키 유태인들이 능숙하게 행하는 배신행위들을 이해하려면, 그리고, 1973년 전쟁 동안 발생했던 배신행위 역시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뉴욕/모스크바/텔아비브 트라이앵글’에 대해서 반드시 설명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난 역사를 얼마간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로부터 미국으로 향하는 대규모의 유태인 이주는 1831년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유태인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코뮤니스트/볼셰비키 유태인들[communist/Bolshevik Jews]이 뉴욕시에 정착했기에, 뉴욕은 “허드슨 강변에 있는 모스크바[Moscow on the Hudson]”라 불려왔던 것입니다.

    공산주의 정책들에 관한 지령들이 나오는 곳은 ‘모스크바가 아니라 뉴욕[NOT FROM MOSCOW, BUT FROM NEW YORK CITY]’이라는 지적들이 제기되어 온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 이 지적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뉴욕에 있는 시오니스트/볼셰비키 유태인들과 모스크바에 있는 시오니스트/볼셰비키 유태인들 간에는 긴밀하고도 탄탄한 유대 관계가 있으며, 이러한 유대 관계는 이스라엘 정부를 통제하고 있는 시오니스트/볼셰비키 유태인들까지도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미국에게 있어 참으로 ‘멋진 그림’이 하나 있다면, 미국의 엘리트 정부 관료들은, 미국 해안으로부터 인접한 곳에 미사일을 설치해 두고 있는 소비에트인[the Soviets]들에 의해, 늘 관찰되어 왔고, 늘 정조준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 미사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미국의 도시들을 지금도 제대로 겨누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 미국을 겨누고 있는 것입니다!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정부 위에 군림하는 시오니스트의 힘은,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시오니스트/볼셰비키들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미국 전역에 펼쳐져 있는 광대한 시오니스트 네트워크[the vast Zionist network all over the U.S.]를 통해 하달되는 지령들의 출처는 바로 뉴욕인 것입니다.?이 네트워크는, 비단 연방 정부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주 정부들(전부 다는 아닐지라도), 그리고 중대규모 도시 수준의 지방 정부들에까지 걸쳐 광범위하게, 정치적, 경제적 사안들에 있어 영향을 미칩니다. 이처럼 미국 전역에 걸치는 시오니스트/볼셰비키 유태인들의 권력이, 전세계 공산 정책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뉴욕/모스크바/텔아비브 트라이앵글’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 축[the New York leg]’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1973년 전쟁으로 다시 되돌아가 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소비에트 러시아가 이집트를 비롯한 다른 아랍 국가들에게 군사 장비들을 팔아 왔기에, 소비에트인들은 1973년 전쟁에서 아랍인들을 지지하는 줄로만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사기[false impression]’였습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이러한 일들이 바로 이스라엘과 소련 간에 있었던 보다 간교한 속임수의 결과였음을 알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당신들은 ‘골다 메이어?스탈린/카가노비치 협정[the Golda Meir?Stalin/Kaganovich Pact]’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골다 메이어[Golda Meir]는 러시아 태생으로, 자라기는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Milwaukee, Wisconsin]에서 자랐으며, 1921년 이스라엘로 이주했습니다. 1949년 골다 메이어는 소련에 부임하는 초대 이스라엘 대사[first ambassador]가 되었습니다.

    볼셰비키 유태인 여성[a Bolshevik Jewess]이자,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사로서, 그녀는 소련에서 두 명의 대표를 만났습니다. : 한 명은 볼셰비키 유태인, 카가노비치[Kaganovich]였고, 다른 한 명은 볼셰비키 유태인인 여자와 결혼한 스탈린[Stalin]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비밀 협정을 하나 체결했던 것입니다.


    협정의 이스라엘 측 약정 사항


    1. 이스라엘은 어떠한 서방 국가도, 특히 미국이, 이스라엘 영토 안에 군사 기지를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2.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안에서 ‘공산당[communist party]’이 활동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한다.

    3.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떠한 약속도 체결하지 않는다.

    4. 이스라엘은 전세계에 있는 유태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 내 유태인들에게 영향을 미쳐, 서구 국가들이 아랍국가들보다 이스라엘에 호의적인 정책을 취하도록 만든다.

    5. 이스라엘은 막시스트 경제 정책[Marxist economic policies]을 지속하고, 사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막는다.


    협정의 소련 측 약정 사항


    1. 소련은 실제 의도를 속이는 위장 전술의 일환으로 친 아랍 정책을 표방하고, 아랍 국가들에게 각종 물자들을 공급해 주지만,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파괴시킬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양은 결코 제공하지 않는다.

    2. 소련은, 소련의 위성 국가들이 이민 정책을 완화하도록 만들어, 이 지역 유태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것이 불충분할 경우, 소련은 자체적인 문호 개방을 통해, “이주”를 지원한다.

    3. 소련은 이스라엘의 안위를 절대적으로 보장한다.

    **소련과 이스라엘 양측은 기밀 문서들[intelligence reports]을 상호 교환한다!!!

    당신들은 이 협정의 내용으로부터 알 수 있겠지만, 소련과 시오니스트/막시스트 국가 이스라엘의 목표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1991년 2월?역주), 모든 아랍 국가들이 소련의 지도 체제 아래에 놓이는 사회주의를, 강제적으로 채택하게 될 때까지,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의 평화를 막는 것입니다.

    1973년 전쟁이 펼쳐졌던 양상 속에서, 당신들은 이 기만적인 협정의 일부가 실제로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특히, 소련이 아랍 국가들을 돕긴 돕되, 결코 이스라엘을 패배시킬 만큼 충분히 돕지는 않는다는 항목이 그것입니다.

    1967년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이스라엘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는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의 동맹국, 소련으로부터 군사 장비들을 사들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골다 메이어?스탈린/카가노비치 협정’에 근거하여, 소비에트인들은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을 무너뜨릴 만큼 충분히 돕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결국 아랍인들에 대한 소련의 도움은 아랍 국가들을 소비에트의 덫에 끌어 들어는 “미끼”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아메리칸 시오니스트 형제들이 미국 정부를 부추겨, 아랍인들을 막아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무기들을 공급해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군대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장비를 보내주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1973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스라엘은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 그리고 이라크의 향상된 전투력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집트 군대는 이스라엘의 영토 안으로 뚫고 들어가는 일, 어쩌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가로질러야 할 물로 된 장애물, 수에즈 운하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그들은 이스라엘이 모래와 흙더미를 쌓아 올려 만든 높은 장벽에 마주쳐야 했습니다. 그 장벽 너머로는 세번째 장애물로, 이스라엘이 구축해 둔 요새로 된 전선[a line of Israeli fortification]을 넘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 요새들은 제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프랑스 침공을 막기 위해 프랑스가 구축했던 마지노선[the Maginot Line]보다도 더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군대는 아주 요령있게 수에즈 운하를 넘었으며, 흙과 모래 장벽도 쉽사리 가로질렀고, 이어 불과 몇 시간 만에 육중한 이스라엘의 요새들도 격파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난국에 처하게 되었고, 아랍인들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눈 앞에 둔 듯 했습니다.

    그러나, 필요할 경우를 위해, 미리 준비되어 있었듯이, 미국은 엄청난 분량의 군사 장비와 물자들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로 공수했고, 이에 더해, 이스라엘의 승리를 돕기 위해, 여차하면 파병할 수 있도록, 노스캐롤라이나 브래그[Bragg] 기지의 공수사단과 독일 주둔 미군 병력을 출동 준비 상태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미국에게는 운이 좋은 일이었지만, 미군 부대들은 이스라엘을 구하려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추가적으로 공급된 무기들이 이미 충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아랍 병력은 이스라엘이 더 많은 아랍 땅을 정복하는 일만큼은 막아낼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전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상, 이집트는 과거에 빼앗겼던 시나이 반도 영역을 되찾아 올 수도 있었습니다.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Sadat](1918-1981. 1970-81년 이집트 대통령, 1978년 노벨 평화상 수상(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과 공동 수상)?역주)는, 소비에트인들이 아랍 국가들의 전쟁 승리를 도와줄 의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던 것입니다. ; 소비에트인들이 그들에게 몇몇 장비들을 판매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단지 ‘소비에트 그물망[the Soviet net]’에 이집트가 걸려들도록 만들기 위함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사다트는 소련의 군사 참모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이집트 자국의 민간 기술자들을 그 자리에 대신 갖다 앉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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