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단일성[unity]을 창조하는 열쇠 : 사랑, 지식, 존경, 관용 그리고 자비
  •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단일성[unity]을 창조하는 열쇠 : 사랑, 지식, 존경, 관용 그리고 자비


    사랑[LOVE] : 내가 정의하는 사랑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God-love]’으로, ‘주는 것과 다시 주는 것[giving and regiving]’ 사이를 동등하게 가져가는 사랑입니다. 인간[hu-man](높은 우주적 인간[higher universal man])에게 있어서 사랑은 ‘하나님과의 공동 창조[co-creation with GOD]’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것은 “성적” 행위[“sexual” act]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God-love]’을 주고, 다시 주게 될 때, 당신은 균형잡힌 관계들(거래들)[balanced transactions]을 창조해 내게 될 것입니다.

    지식[KNOWLEDGE] : 내가 정의하는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GOD-Knowledge]’으로, 부제를 붙이자면, ‘인간 상황 지식[Human Circumstance Knowledge]’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지식[GOD-Knowledge] : ‘바램[Desire]’이 바로 열쇠입니다. 당신 안에 계신 하나님을 알고자 하고, 또 그 분을 위해 봉사하고자 바라십시오. 그 분의 속삭임과 외침을 듣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당신의 ‘성공’은 바로 ‘당신이 갖는 바램의 수준과 강도[the level and intensity of your desire]’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요구하면 답변은 주어집니다.[The call compels the answer]” 그러니, 당신의 바램을 ‘알도록’ 하십시오. 이는 ‘영혼의 앎[SOUL awareness]’을 통해 느끼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어쩌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마음이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는 “내 직관이 내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해주고 있다.” 또는 “내 양심이 내게 이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거기에 당신을 맞추십시오. 그 원인을 알아보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런 다음 당신은 하나님께서 이에 대해 당신에게 밝혀 주실 것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답변이 주어지게 될 지에 대해 선입견[PRE-conceptions]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답변이 주어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계십시오. 그런 다음 그 답변을 받을 준비 상태 속에 머물러 있기 바랍니다.

    인간 상황 지식[Human Circumstance Knowledge] : 하나님과 또 당신의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을만한 계획을 짜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 당신은 많은 정보들을 가져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적들이 누구인지를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당신들을 통제하고, 노예로 만들고 또 파괴하기 위해서, 그들이 무슨 계획과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 지를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제시되는 자료들(피닉스 저널[THE PHOENIX JOURNALS]과 익스프레스[EXPRESS]지) 말고라도, 우리가 초반에 출간한 책자들에 이미 언급한 바가 있는, '몇몇 용감한 사람들'로부터도 당신들은 진실을 전해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들 각자 각자는, 우리가 여기서 제시하는 내용들이 정말로 맞는 것들인지를 확인해 볼 수 있도록, 저마다 관심 분야에서의 탐구자들이 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정보들은 확인해 보기가 꽤나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얻게 되는 정보들의 의미를 항상, ‘하나님의 빛의 현존[The presence of God’s Light]’ 속에서 되새겨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당신은 이내 다음 단계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사는 곳 주위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가이드에 따라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나갈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존경[RESPECT] : 이 단어에서 내가 정작 의미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보다 분명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은 가치로운 것에 대한 ‘높은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분리된 생각의 조각들이자 일부분들인 모든 생명체들과 창조물들, 즉, 바로 ‘그 분의 고요한 앎의 빛[the still Light of His Knowing]’으로부터 창조된, 이들 모두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단일성을 창조해 내기 위해서[To create UNITY], 당신들 개개인들은, 저마다가 가진 차이점들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서로서로 존중하고, 서로서로 경의를 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차이점들이 ‘하나님과 창조의 법칙[the Law of God and Creation]’을 무시하는 일로 이어지지 않는 한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말이 항상 다른 사람의 견해에 동의하기만 해야 한다거나, 혹은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거나, 똑같은 관점만을 가져야 된다는 걸 의미한다고 보십니까? 분명코 아닙니다...(당신이 영적인 완벽함에 도달하여, ‘당신의 앎[your KNOWING]’의 상태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하나[One With God]’가 되기 이전이라면, 당연히 저마다의 견해와 태도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십시오 : 당신에게 있어 가장 깊고 심오한 영적 도전들은, 이 물리적인 지구 위에 육체를 입고 있는 상태에서,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상의 상호작용[inter-actions]으로부터 오게 될 것입니다.

    관용[TOLERANCE] :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관점을 갖고 있고,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지에 관해서, 당신이 당신 자신과의 차이점들을 발견하게 될 때, 존경과 더불어 꼭 실천에 옮겨야 될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관용입니다. 다만, 타인의 행동이 ‘하나님의 법칙들’을 무시하지 않는 한, 혹은 그 행동이, ‘당신의 공동-창조적 잠재력[your co-creative potential]’을 발전시켜 나아가는 당신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것인 한, 그래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이 용어를 결코 ‘맹목적인 관용[BLIND TOLERANCE]’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행동도 말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다 허용되어야 한다거나, 혹은 종종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실상 ‘하나님의 법칙’에 대한 노골적인 경시에 불과한 것들 조차 모두 허락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닌 것입니다. 실상 당신은, 어떠한 행동이, 그것이 악한 행동인 줄을 당신도 ‘알고 있으면서’, 이에 대해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고, 그냥 허락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적들에게 당신의 등을 돌려 대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현존’과 더불어 악을 대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악은 겁을 집어먹고,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단순히 당신의 다른 쪽 뺨을 돌려 댄다면, 당신은 악이 당신을 위협하도록 방관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되는 일을 허용하는 이상,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타인이 ‘하나님의 법칙들’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권고해 줄 수는 있고, 또 당신이 그들의 선택이나 행동에 반대 의사를 표하는지를 설명해 줄 수는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해가 되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 한은, 그들의 행동을 멈추게 만드는 데에 있어서 무력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낙태와 같은 것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살인입니다.)

    자비[CHARITY] : 내가 ‘자비’라는 표현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같은 형제로서의 사랑[brotherly LOVE]’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선의[Good Will]’를 당신의 형제들에게 건네주고, 또 그들과 이를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베풀어진 아량[generosity]은, 결국 그 자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를 누구에게 또 어떻게 다시 내어 주실지를 생각토록 만들게 되고, 결국은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만들 것입니다. 타인이 당신에게 행해주었으면 하는 방식대로, 그렇게 당신이 먼저 타인을 대하도록 하십시오. 아픈 이들과 가난한 자들과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존귀함[dignity]과 관대함[generosity]과 인내[patience]와 연민[compassion]을 가지고서 대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스스로 가치로움을 느끼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그들이 자신들의 고통과 부족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앎’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램을 갖게 되는 데에 있어, 당신이 그 실례를 제공해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 ‘빛[The Light]’을 늘 지니고 있음을 명심하고, 항상 관대함을 베푸십시오. 내 소중한 자들이여, 당신들도 알게 되겠지만, 관대함은 대개 돈이나 물질적인 어떤 “것들”과는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타인들에게 음식이나 그들이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을 건네주고 이를 함께 공유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한 일들이지만, 이러한 행위가, 어떠한 강요도, 사회적인 이목에 대한 의식도, 기대심리도 없이, 진정한 ‘사랑’으로 행해졌을 때, 실로 가장 훌륭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당신 안에 계신 아버지[Our Father]께 여쭈어 보십시오. :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옳은 최선의 답은 무엇입니까?” 또는 “부디 이 상황에 맞는, 바르고 균형잡힌 대응을 제가 취할 수 있도록 저를 깨우쳐 주십시오. 제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러한 방식 속에서, 당신들은, 약 8000년 전 이집트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 가까운 정도로, 당신들의 영적 수준[spiritual character]을 높일 수가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당신들의 최근 문명들 가운데 ‘가장 높은 도덕성[the Highest Moral Character]’을 지닌 채 살았습니다. 저마다 이웃하여 살아가던 이집트 시대의 남자들과 여자들 모두는, 그들이 행하는 모든 상호관계에 있어서,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려는 바램을 가졌던 것입니다. 나의 친애하는 형제, 월터 러셀[Walter Russell]은 이러한 삶의 방식에 대한 저술을 남겼으며, 그 내용은 저메인[Germain]이 플레이아데스 커넥션 시리즈 책자들 속에 기술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를 ‘리듬감있고 균형잡힌 상호교환[RYTHMIC BALANCED INTERCHANGE]’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행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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