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헤롤드 로젠탈의 증언--[B][U]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과 부패[/U][/B]
  • 헤롤드 로젠탈의 증언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과 부패


    우리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비극성과 정부 전체에 걸쳐 만연해 있는 부패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부의 대표자들은 보다 공개적이고 또 솔직한 태도를 갖고서 국민들을 대해야 할 것이라는 제안을 건넸다. 그러자 로젠탈은 대답했다. :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겁니까? 일반 대중이 정부가 하는 일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구요? 국민 대다수는 바보들입니다.---저능한 멍청이들이죠!!”

    방금 당신이 한 말을 우리가 인용해도 되는 겁니까?

    “당신이 뭘 하든지 간에 난 신경쓰지 않습니다.---앞서도 말했다시피, 유태인들 가운데서도 이런 이야기를 입밖에 내놓을만한 용기를 가진 친구들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보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다면, 아마 우리는 서로---유태인들과 젠타일들---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죠. 당신들은 배짱이 없어요. 우리는 당신들의 사고 패턴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우리는 당신들이 유태인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을 두려워 하게 되는, ‘죄책감 콤플렉스’도 당신들 머리 속에 주입시켜 줬죠.”

    이러한 대화들이 조용히 진행되는 가운데, 적어도 그가 이해하고 있는 바들이 초심자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아님은 분명해져 갔다. 이어서 나는 로젠탈에게 어떻게 유태인들이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길고도 철저했다.

    “아주 옛날부터 유태인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 식의 ‘길’을 구축해 나가려는 욕구 아래, 인종적인 문제 위로 쏟아지는 시선들을 어떻게 하면 딴 곳으로 돌릴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찾는데 몰두해 왔습니다. 의혹을 벗어나는 데에 있어서, 종교적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개념들을 빌려와 이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개념들을 아리안인들[Aryans]로부터 빌려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유태인들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벗어나는 수준으로 나아가는 종교적 체제는 결코 보유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식의 이상주의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이것이 의미하는 바라면, 우리에게 있어서, 현재의 삶 너머의 것, 즉 내세관 같은 것은 대단히 낯선 개념입니다. 사실상 탈무드도 개개인들이 차생의 삶을 준비해야 된다는 것과 관련된 원칙들에는 기반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이번 생애에 얼마나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규칙들만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탈무드는 유태 민족을 유지시켜 나가는 지시사항들, 그리고 우리와 고이[goy]간의 관계를 규정짓는 내용들을 모아 둔 책입니다. 우리의 가르침은 도덕관 같은 것과는 무관합니다. 오직 어떻게 ‘얻을 것인가’하는 문제만을 다룹니다.”

    “유태인들의 종교적 가르침 속에 들어 있는 도덕적 가치관 문제와 관련하여, 대단히 심도 깊은 연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이 종교처럼 보이는 것’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아리안족의 시각에서 볼 때는, 아주 기분 나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적 가르침이 진화하여 어떠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지에 대한, 가장 최고의 사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의 초점은 현세의 삶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사고 방식은 진정한 기독교 정신에 비추어 보자면 너무나 이질적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러한 특성은 2000년 전에 기독교라는 이 새로운 사조를 만든 창립자의 시각에서 봐도 이질적인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창립자는 유태인들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피력하는 일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 가운데 한 명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가 하나님의 신전에서 우리를 몰아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늘 그래왔듯, 이를 호기로 삼아, 교역을 하는 데에 있어 종교를 빙자하여,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수완으로 종교를 이용해 먹었습니다.”

    “그 때 당시, 우리는 우리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던 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결국은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한편, 오늘날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정당 정치에 뛰어든 자들은, 선거에서 이기려면 유태인들의 표심을 구걸해야 하기에, 우리 앞에서 비굴하게 구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국익에 해가 되는 일이라도, 우리와 함께 정치적 흉계를 꾸미는 일에 기꺼이 뛰어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태인들이 특정한 민족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로서, ‘종교적 공동체’를 구성할 따름이라고 사람들을 설득시킵니다. 실제로는 이 ‘종교적 공동체’라는 것이 세속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지만, 적어도 이러한 설득 방식이 먹혀 들어가는 한,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나라, 다른 국가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바로 이것이 우리가 행하는 속임수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특수한 면모들과 우리의 삶의 방식을 숨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바로 다른 나라들 속에서, 마치 기생충 같이, 생존을 유지시켜 나가는 일이 허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역사는 실로 오래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많은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들 속에 섞여 있는 유태인들이, 자기 나라의 지배적인 종교와는 우연히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졌을 뿐이지, 실제로는 진짜 프랑스 사람들, 진짜 영국 사람들, 진짜 이탈리아 사람들 혹은 진짜 독일 사람들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특히 정부에서 일하는 자들 틈에 끼게 되었을 때, 대개 관료들이란 최소한의 역사 감각만을 갖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손쉽게, 우리의 이 악명높은 속임수를 문안하게 펼쳐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유태인들은 ‘고백’하는 바와는 달리 진정으로 해당 국가에 애착을 갖고 있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들만의 특징적인 ‘민족 의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결코 최소한의 의심 조차 받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누군가가, 우리가 통제하고 있는 언론 매체 속에서 이러한 사실을 눈치챈다손 치더라도, 그가 이 사실을 가장 설득 당하기 쉬운 저능한 사람을 상대로 설명하려고 해도, 이를 입증할만한 엄청나게 많은 증거 자료들을 제시할지언정 결코 수월찮은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이 권력을 얻는 방식에 대해서 물었을 때, 로젠탈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우리의 힘은 국가 통화 제도[national monetary system]의 조작을 통해 창조되어 온 것입니다. ‘돈이 곧 힘이다.’라는 경구를 만든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마스터 플랜에도 나와 있듯이, ‘사유의 국립 은행[private national bank]’을 세우는 일은 필수적입니다. 연방 준비 제도[The Federal Reserve system]는 우리의 계획에 멋지게 들어맞는 것으로, 이것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이름만 보면 마치 정부 기관인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에 설립할 때부터, 우리의 목적은 모든 금과 은을 몰수하고, 이를 무가치하고 상환 불가능한 지폐로 바꿔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이미 완료한 것입니다!” [하톤 : 시온의정서[the PROTOCOLS]의 제 1원칙이 바로 부(금)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로젠탈이 말한 바대로, “만약 당신이 누군가의 돈을 통제할 수 있으면, 당신은 그 사람을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상 “그들”은 시온의정서에 제시되어 있는 모든 원칙들 하나, 하나를 전부 다 성취해 왔습니다.]

    ‘상환 불가능한 지폐’라는 표현에 대해서 묻자, 로젠탈은 대답했다. :

    “1968년 이전에, 우둔한 고이들은 은함량 90%에 412와 1/2그레인[grain](형량 단위. 0.0648g---역주)이 나가는, 법정 1달러짜리 동전을 연방 준비은행에서 발행한 1달러짜리 지폐로 바꿔 갔습니다. 1933년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금함량 90%에 25와 4/5그레인이 나가는 동전을 그 똑같은 지폐로 바꿔줬습니다. 그런데, 1968년 이래로, 연방 준비 은행에서 발행한 1달러짜리 지폐는 더 이상 상환이 안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하는 일이란, 고이들에게 상환 불가능한 지폐나 기타 구리로 만든 주화 따위나 건네 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결코 그들에게 금이나 은을 주지 않습니다. 오직 더 많은 ‘종이’만을 안겨다 주는 것입니다.” 그는 경멸에 찬 태도로 말했다. “우리는 바로 이 ‘종이 술책’으로 번영을 일궈 왔습니다. 돈은 거둬 들이고, 종이만 잔뜩 갖다 안기는 것, 이게 바로 우리 방식입니다.”

    앞서 질문한 것에 대한 예를 제시해 보일 수 있겠습니까?

    “예는 넘쳐 납니다. 그 중에서도 몇가지 현저한 예가 있다면, 주식과 채권 시장, 모든 형태의 보험, 그리고 연방 준비 은행이 시행하는 부분 지불준비금 제도[the fractional reserve system]가 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당신들이 ‘돈’이라고 부르는, 그 종이 화폐에 대한 교환의 대가로, 수십억 달러 상당의 금이나 은을 얻게 된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선전물들을 이용한 세계 정복이라는 우리의 마스터 플랜을 달성해 내는 데에 있어서, 금권[Money power]은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얻게 된 권력을 어떻게 써 온 것이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우선, 은행 제도를 통제함을 통해서 우리는 기업의 자본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화 산업과, 라디오 네트워크, 그리고 새롭게 발전하는 텔레비전 방송 매체들에 대한 완전한 독점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출판업, 신문, 주간지, 학술 잡지도 모두다 우리 손아귀 안에 떨어졌습니다. 조금 늦게 성취된 것이지만 가장 훌륭한 성과가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가 모든 국정 교과서 출판을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매개로 하여, 우리는 국민들의 견해 자체를 일정한 틀 안에 집어 넣을 수 있었고, 이를 우리의 목적에 맞게끔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오직 꿀꿀거리는 멍청한 돼지들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건네 주는 것이라면, 그게 참이든 거짓이든 가릴 것 없이, 그저 주워 섬겨, 멋도 모르고 따라오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침묵하는 다수’로부터 위협을 느끼지는 않는지를 묻자, 그는 이러한 생각 자체를 비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침묵하는 다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의 울분과 항의까지도 다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게 있다면, 그건 ‘생각이 없는 다수’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 가혹한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탈출구’라는 것이, 그저 우리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제공하는 아편’에 머물러 있는 한, 그들은 계속 ‘생각이 없는 채’로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통제를 통해, 우리는 주인이 되었고, 인간들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격무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거의 폭발 직전에까지 이르렀을 때, 우리는 ‘순간적인 쾌락이라는 안전 벨브’를 열어 주는 것입니다. 텔레비전과 영화 산업은 그들에게 필요한 일시적인 유흥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관능적인 욕망을 자극할 수 있도록 주의깊게 고안되며, 결코 논리적인 사고력을 자극해 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만, 사람들이 이성이 아닌, 우리가 휘두르는 독재력에 따라 반응하도록 프로그램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결코 침묵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생각이 없는 채로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고이들에 대한 유태인들의 통제와 관련된 자신의 견해를 계속해서 피력하면서, 로젠탈은 말했다. : “우리는 공포와 위협이라는 감정을 이용하여 이 사회를 거세시켰습니다. 이 사회가 갖는 ‘남성성’은 여성적인 외양과 결합된 채로만 표현됩니다. 이처럼 중성화된 상태 속에 있기에, 인간들은 아주 유순하고 쉽게 통제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마치 거세된 듯한 특성을 띠면서, 사람들의 사고 방식 속에, 미래나 그들의 후세대에 대한 염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에겐 오직 오늘의 노동과 내일의 식량만이 관심사항이 될 뿐입니다.”

    산업 문제에 관한 언급을 할 때, 로젠탈의 흥분도는 너무나도 분명히 고조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노조와 경영진간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냄을 통해서, 이 사회를 내부적으로 분리시켜 그 구성원들 서로 간의 적대감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일은 어쩌면 우리가 해낸 가장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노사관계란 삼각구도입니다. 그렇지만 겉보기에는 오직 ‘노사’라는 양대 축만이 드러나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현대 산업 사회에는 ‘자본’이라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또 하나의 축을 형성하는 것으로서, 그 파워는 우리가 쥐고 있습니다. 그 극점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경영진도 노조도 모두 이 삼각 구도라는 큰 틀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분열과 반목 속에 끝없는 대결양상을 펼쳐 냅니다. 하지만, 그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이 직면한 문제의 핵심으로 눈을 돌리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경영진은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는 압력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본 비용을 끝없이 증대시키기 때문이죠. 노조는 임금을 증대시키려 하고, 경영진은 가격 상승의 압력을 받고, 그 속에서 악순환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의 진짜 원인은 우리 때문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역할에 대한 책임을 추궁받은 적이 아직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경영진과 노조 간의 갈등이 워낙에 극심하기에, 그들은 우리의 활동을 주의 깊게 살펴 볼 짬을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플레이션 사이클이 생기는 진짜 원인은 우리가 자본 비용을 증대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노동하지도, 경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윤은 우리가 거둬 들이는 것이지요. 우리는 통화 조작을 통해서 이렇게 하는 것인데, 우리가 산업체에 제공해 주는 자본은 우리에게 어떠한 출혈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국립은행인 연방 준비 은행을 통해, 우리는 장부 상의 대변 계좌를 늘려 나가지만, 이는 우리가 무[nothing]로부터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 소속된 모든 지방 은행들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들도 산업체를 이용하여 그들의 대변 계좌를 계속 늘려 나갑니다. 요컨대, 우리는 하나님보다도 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부는 말 그대로 무로부터 창조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충격을 받은 것 같군요! 그러지 마십시오! 우리가 실제로 하나님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바로 이렇게 형성된 자본을 우리는 산업체에 대출해 주고, 노동자, 경영진 양자 모두는 우리의 빚쟁이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빚은 오직 계속 늘어만 갈 뿐이며, 결코 청산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계속되는 빚의 증대 속에, 우리는 경영진과 노조가 서로 대립할 수 밖에 없는 함정 속에 그들 모두를 밀어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그들은 결코 뭉치지 못할 것입니다. 빚없는 유토피아적 산업 구조로 나아가기 위한 관문은 바로 우리를 공격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들은 결코 그러지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로부터 유를 창조하니 이 사회의 필요한 인자들이 아니겠습니까! 경영진은 자기 자본을 형성할 수 있고, 이로부터 ‘크림’---이윤---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사업은 번영할 것이며, 이윤은 증대될 것입니다.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번영할 수 있습니다. 상품 가격이 안정적이기만 하다면, 산업, 노동, 경영이 만들어 내는 풍요는 계속적으로 증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멍청한 고이들은, 생산자들은 점점 더 계속적으로 적은 대가의 보상을 받는 반면, 생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잉여 가치를 정작 소모하는 기생충과 같은 역할을 바로 우리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속에 우리 유태인들이 누리는 영광이 있는 것이죠.”

    밀도있으면서도, 내밀한 인터뷰가 계속 진행되어 가면서, 로젠탈은 자신이 종교에 대해 가진 견해들도 밝혔다.

    “종교 역시 가르쳐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우리는 여지껏 열심히 노력해 왔습니다. 국정 교과서 출판과 뉴스 매체 통제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종교가 갖는 권위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랍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학 세미나’와 같은 수업에 있어서 교수 자격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것을 심지어 그들 자신들이 직접 전파하기도 하는 기독교인들의 어리석음에 대경실색했습니다. 유대주의[Judaism]는 이제 단지 시나고그[synagogue]에서의 가르침에 국한되는 정도를 넘어, 미국내 모든 ‘기독교 교회’의 교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선전활동을 통해, 교회들은 우리의 가장 열렬한 찬양매체들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심지어 이 사회에서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지위를 부여해 주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선택된 민족[CHOSEN PEOPLE]’이고, 그들이 젠타일들[GENTILES]이라는 이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야기되는 이러한 교리들에 현혹된 아이들은, 그들의 문화가 파멸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도, 계속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이것은 너무나 분명한 진실입니다. 역사를 고찰해 보면, 모든 전쟁들이란, 우리가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백인들과 백인들 간에 붙인 싸움들이었다는 사실을, 얼간이라고 해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독립 전쟁 동안 영국을 통제했고, 남북 전쟁 동안 북군을 통제했으며, 제 1, 2차 세계 대전 동안에는 영국과 미국을 통제했습니다. 종교에 미치는 우리의 영향력을 통해, 우리는 무지한 백인 기독교인들이 서로간의 전쟁에 뛰어들도록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전쟁의 결과는 항상 양쪽 모두를 궁핍하게 만드는 것이었고, 그 속에서 재정적, 정치적 수확을 거둬 들이는 것은 늘 우리들이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들의 실체를 드러내 보이게 될 진실이 공개된다면, 우리는 그간 단지 세력들---무지한 기독교인들---을 규합하여 이리저리 짜맞추어 왔을 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어리석은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가족들이 상대편 구성원으로 있는 ‘십자군들’이라고 할지라도 결연히 공격을 감행하는 것입니다.”[하톤 : 워싱턴의 정치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거대 기업체에 몸담고 있는 자들 가운데서 얼마나 많은 자들이, 자신들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포로 수용소나 실종자 수용소[POW/MIA camps]에 잃어버려 온 건지 아십니까? 그리고 이렇게 감금될 위기에 처했다가 무사히 살아나온 사람들, 기타 등등의 케이스들은 어떤 줄 아십니까? 당신들은 정치인들 간에 펼쳐지는 전쟁터에서 누가 희생되는 것인지를 그냥 지켜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클린턴은 지금껏 용케 잘도 살아남아 왔습니다!]

    “종교를 통해서 우리는 사회, 정부, 그리고 경제 분야 전반에 걸쳐 완벽한 통제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교단에서 가르쳐 온 ‘장점들’을 포함하지 않은 법률안들은 결코 통과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중 한가지 예라면 인종간 평등주의 사상입니다. 이는 혼혈을 낳았고, 궁극적으로 전인종간 교잡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목사들은 교단에 서서, 한 입으로는 우리가 특별하다고, 우리가 선택된 민족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다른 한 입으로는, 또 모든 인종들은 다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더 웃긴 건, 이러한 모순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유태인들은 이 사회에서 우리가 갖는 이 특별한 지위를 즐깁니다. 그와 동시에 모든 다른 인종들은 ‘공통된 평등성’에 기초한 낮은 지위로 격하되는 것입니다. 평등’이라는 속임수를 우리가 만들고 전파해 온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모든 인간들은 다 ‘동등하게 낮은 계층’으로 밀어 내리는 거죠.”

    “우리가 현재의 경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자원봉사자들, 말하자면 기독교인들 덕을 본 셈입니다. 설교단에 선 이 앵무새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장점들을 찬양해 마지 않습니다. 바로 자신들의 교회를 짓는 데 쓸 돈을 대출받기 위함이죠. 그런데, 그들 자신들의 성경 안에는, 모든 형태의 이자나 고리대금업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그들은 우리가 제시하는 그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를 갚느라고 허둥댑니다. 그들은 바로 그러한 관행들 속에서, 이 사회가 우리의 통제 아래 놓이도록 이끌어 온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그들은 민주주의의 장점들에 대한 찬양을 늘어 놓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가 그들의 나라에 대한 통제력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성경에서는, 자비로운 전제 군주정이 성경에서 제시하는 법칙과 조화를 이룬다고 가르칩니다. 반면 민주주의는 일군의 무리가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리’를, 우리가 그들의 교회를 통해, 우리의 뉴스 매체들을 통해, 그리고 경제 시스템을 통해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종교란, 그저 우리가 가진 선전[propaganda]의 힘을 발휘하는 또 다른 매개체가 될 뿐입니다. 이들 종교인들이라는 꼭두각시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어리석음’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게 딱 한 가지 더 있다면, 그건 바로 ‘겁’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쉽게 통제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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