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신
분명히 하나님과 교신하는 첫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일은, 당신 자신의 ‘육체’를 얼마간 “잊고”, 그 어떠한 것에 대한 생각이라도 멈춰 버리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제로 상태의 고요함[zero stillness]’ 속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당신이 가진 ‘감각의 전원’을 꺼버리고, ‘감각’과 관련된 것인 한, 스스로를 마치 ‘진공상태’처럼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 다음, 정신적으로 ‘빛[the Light]’에 이르게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램을 당신이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하기’를 멈춘 상태에서 그러한 바램이 의미를 갖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말’없이 행하는 일입니다. 이를 한 번 실천에 옮겨 보십시오.
나는 여러분들 모두가, “저메인, 그게 당신한테는 쉬운 일인지 모르겠지만...”이라고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를 보다 쉽게 설명하려면, 아마도 녹음 테이프 같은 것을 만들어서, 이것을 가이드로 삼아, 명상을 시작할 때 사용하도록 하는 편이 더 나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사실 우리는 지금 이 작업을 계속해 나가면서 그러한 방식도 고려해 볼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신하는 두번째 단계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이렇게 이르게 된 상태에서, 그냥 모든 것을 멈춰버리는 것입니다! 이 순간 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나는 당신들이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자기 자신’을 ‘잘라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특히 처음 명상을 시도해 본다면, 생각을 멈춘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생각을 멈추려고 노력을 하면 할수록, 당신은 아마 더 역동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편안한 상태에서, 생각들이 떠나가 버리기를 “허락”해야 하는 것입니다.---생각들에 얽매이지 마십시오.---지금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에 집중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한 번 시간을 내어서, 편안한 마음을 갖고---최대한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이를 한 번 실천에 옮겨 보십시오. 당신이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당신의 ‘마음’이 이에 ‘질서’를 부여해 줄 수 있도록 허락하십시오. 편안해 지기를 바란 다음, 명료함과 이해력을 가지고,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깨어있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이를 참았다가 (약 6초 정도), “나는 고요한 상태 속에 있다.”는 자기 암시를 반복해서 주면서, 숨을 천천히 내 쉬어 보십시오. 이렇게 세 차례 정도 해 본 다음, 당신의 ‘내재적인 마음[inner mind]’이 ‘편안해지고[to remain relaxed]’, ‘수용적이 되도록[to remain receptive]’, 안정을 취하십시오. 그리고는 이어지는 편안한 호흡들 속에서, 당신은 자신을 점점 더 수용적이며, 편안한 상태 속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당신이 죽 따라해 보게 된다면, 당신은 아마, 우리가 다르마[Dharma]와 함께 간단하게 만들었던 명상 테이프라도 한 번 들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어쩌면 이 테이프는, 당신 스스로를 깨끗이 하고, 또 어두운 에너지를 없앨 수 있게 하여, 당신이 아주 편안하게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읽고 쓰는’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당신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벌써 이 테이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악의 경우는, 이 테이프를 듣다가, 당신들이 그저 잠들어 버려서, 편안함을 취하긴 하되,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이 한가지 있다면, 명상을 하는 시간은, 당신이 안고 있는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도 아니며,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세상에 대한 걱정도, 또는 그 밖의 어떤 걱정거리라도,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할애되는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처음 명상을 시작할 때, 당신은 마치 온 세상이 이미 완벽한 상태 속에 있는 것처럼 여길 필요가 있고, 아주 편안한 상태에서 명상이라는 ‘게임’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명상을 통해 처음 당신이 느끼게 되는 것은, 육체적인 안정감과 더불어, 다소간의 ‘내재적 안정감[inner relaxation]’ 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 ‘하나님의 생각[the thought of God]’에 접촉해 보려는 바램을 가진 상태로, 다음 사항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그러기에, 그 분은 ‘영구적인 우주적 기쁨[perpetual universal joy]’입니다.---당신은 바로 그 분과 동일한 패턴의 진동수에 이를 수 있게 되길 바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새로 나온 캘리포니아산 “스낵”이나 음미하면서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입니다. 환경을 파괴시키는 유독성 폐기물들에 대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잠시만이라도 떠나 보내십시오. 핵무기에 대한 염려도, 굶주리는 아이들에 대한 근심도, 잠시만 잊어 보십시오. 당신들은 바로 ‘창조주의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에 접근해 볼 수 없는 한, 이 같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직 그 분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에만, 문제에 대한 참된 해결책이 제시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 같은 안정의 시간을 갖는 동안 일종의 평화와 고요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재적 기쁨의 상태’가, 점점 더 당신 삶에서의 ‘즉각적인 반응 양상’ 속에서도 나타날 것입니다. 이 같은 명상의 기회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당신이 평소에 보이게 되는 성품도 점점 더 이 ‘내재적 평화’를 닮아갈 것입니다. 당신이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상태는, 공포나 화, 낙담, 열등감, 부러움, 또는 질투와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킴이 없이, 부정적인 영향들을 수용해 낼 수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단순히 객관적인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들을 바라다 보십시오.---왜냐하면 당신은 이성과 통제력을 갖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공포나 기타의 감정들에 기반하여 반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완전히 ‘순수한 열정과 에너지[total passion and energy]’의 존재입니다.---그 분은 공포나 화, 낙담 등과 같은 감정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저 이런 방식 속에서 잠깐의 휴식을 갖는다손 치더라도, 당신이 갖는 고통과 고뇌는 당신으로부터 떠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러한 고통과 고뇌에 당신의 관심의 “초점”을 두길 멈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문제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당신이 이 문제들을 당장 바꿀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이 현존하는 문제들이 떠나가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며, 동시에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모든 사람들’도 어쩌면 저마다의 고뇌를 안고 있을 것이라는 여유로운 생각 속에, 이 문제들을 다뤄야 하는 것입니다.---이러한 생각은, 당신만이 고통을 다 떠안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보다가는, 당신이 그저 다수 중에 한 명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 줍니다.---사실상, 다른 사람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든, 당신이 그 당사자의 고통을 깨달아 느끼지는 못합니다.---물론 당신은 당신만의 고통을 갖고 있긴 하겠지만, 실상은 그러한 것입니다. 당신이 ‘내재해 계신 하나님[God within]’께 초점을 맞추기 시작함에 따라---육체적인 불편함이나, 혹은 당신이 당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불공정과 같은 것들에 대한 초점은 흐려지고, 이 같은 왜곡된 현실들이 그저 다소간의 핸디캡 정도로만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걸을 수 없다고 해 봅시다.---하지만 그 때에도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손과 두뇌를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변명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하나님과의 균형 속으로 보다 깊이 나아감에 따라, 정말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정신적인 측면들이 될 것입니다.---육체적인 욕구와 관련된 다른 사안들은, 그 영향력이 점점 더 약화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실로 발견하길 원하는 한, 얼마든지 발견하게 되겠지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은 오직 ‘자신의 마음과 근원과의 연결[THE MIND CONNECTION TO SOURCE]’이라는 문제 밖에 없습니다. 육체와 같은 것들은 그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여러 개의 “만약”이라는 단서를 다는 일 없이, 정확히 있는 그대로. 왜냐하면 당신은 현존하는 당신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같은 평화를 허락해 줄 수 있는, ‘안정의 상태’인 것입니다. 모든 정신적, 육체적 긴장으로부터의 궁극적인 안정은, 단순히 당신 마음 속의 ‘광기’를 멈춰버리는 것에서 오게 됩니다. 이 ‘광기’를 바로 한가지에 대한 바램---즉, 내적 기쁨---으로 대체시키는 것에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정은, 즉각적으로, 정신적 스트레스에 따른 어떠한 육체적 고통이라도 치료해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러한 과정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난 후에는, 그 과정 속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도 더해 주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어떤 문제에 대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바램을 마음 속에 가져 보십시오. 이는 달리 말하자면, 당신의 바램에 ‘형태’를 부여해 주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도입니다. 나아가 만약 당신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바라고, 자기 자신은 이 ‘요구의 목록’의 맨 마지막에 두게 될 때, 오직 예외가 있다면, 당신이 타인을 위한 보다 나은 봉사를 하기 위해서일 경우에만 자신을 앞세우게 될 때,---그 때 당신은 이에 대한 ‘즉각적인 대답’이 주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또한 자아중심적인 에고에 기반한 “자신”[ego self-centered “me”]으로부터 초연해진 상태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이 글을 읽고 넘기는 것은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당신은 이를 실천에 옮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당신이 가진 시간을 죄다 할애해서 그렇게 하라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는 ‘문제들’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아주 실체적이고, 물리적이며, 또한 의식적이기도 한 방법에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그건 바로 문제를 ‘직면’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문제’를 갖고 있다면, 당신은 ‘답’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해야 될 일이란, 오직 문제를 제자리에 ‘정위치시키는’ 것이며, 객관적으로 이를 바라보고, 이에 대한 당신의 “근심”을 멈춰줄 수 있는 모든 측면들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해결책들” 속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걱정하는 것’은 해결을 ‘막는 일’이 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