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이 가져다 주는 영광
당신의 역동적인 사고를 깊은 명상 속의 고요함으로 이끌어 가는 과정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이 존재합니다. 만약 당신이 현실적으로 숲 속이나 바닷가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과 회합을 가질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당신의 상상 속에서 그러한 장소에 가보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일상사의 복잡한 문제들이 당신의 생각을 사로잡으려 한다면, 바다가 만들어 내는 상상 속의 소리 속에서 그것들이 떠내려 가게 만들어 보십시오. 만약 당신이 떠올린 바닷가에서, 해안에 와 부딪히는 파도가 만들어 내는, 리듬을 탄 소리를 듣게 될 때, 이는 마치 당신 속에 내재해 있는 ‘우주의 심장 박동[the heartbeat of the universe]’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와도 같이 느껴질 것입니다. 혹은 당신이, 당신의 ‘내재적인 귀[inner ears]’를 통해, 소나무 숲에 와서 부딪히는 미풍의 속삭임을 듣게 된다면, ‘황홀경의 영광[the glory of the ecstasy]’은, 이내 ‘세속적인 생각의 찌꺼기들’이 모두 떠내려가 버리도록 만들어 줄 것입니다.
명상은 물질적인 것들이 만들어 내는 ‘움직임의 감각적 세상’으로부터 당신을 떼어 내어, ‘우주적 상상의 공간’으로 당신을 데려 갈 것입니다.명상은 감각을 마비시키는 떠들썩한 소음을 만들어 내는 세상으로부터 당신을 떼어 내어, 육체 밖에 존재하는 ‘리듬감 있는 침묵의 세상[the world of rhythmic silences]’으로 당신을 데려 갈 것입니다.---이 곳은 영혼의 세상이자, 당신을 통한 탄생을 기다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들의 씨앗[the seed of things unborn]’의 세상인 것입니다. 당신이 갖는 상상의 세상은, 여러가지 감정들과, 그 감정들이 만들어 내는 긴장감, 혹은 날카롭게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로부터 당신을 떼어 내어, ‘당신의 영혼이 머무는 높은 천상의 황홀경[the ecstasy of your Souls’s high heavens]’으로 당신을 데려 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균형을 되찾는 ‘우주적 방법[the cosmic way]’인 것입니다.
지구상의 음악은 멜로디를 가지고, 당신을 지구에 묶어 둡니다. 하지만, 당신의 내재적 귀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영역[spheres]”에 존재하는 “음악”은 깊은 음조[deeply tonal]를 갖지만 멜로디는 갖지 않습니다. ‘자연의 음악[Nature’s music]’이 만들어 내는 ‘리듬과 톤[rhythms and tones]’은 ‘빛의 언어[the language of Light]’ 속에 존재하는 옥타브 상에 구현되는 것으로써, 그 속에는 항상 우주적 심장 박동이 만들어 내는 리듬이 존재합니다. 항상 ‘하나-둘, 하나-둘’과 같은 ‘부성과 모성의 심장 박동[Father-Mother heartbeat]’, 바로 영혼이 머무는 높은 천상에서 부성과 모성의 고동치는 리듬감을 표현해 내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탄생과 재탄생[borning-reborning]’의 심장 박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대가들이라고 불릴만한 음악가들이 만들어 낸 위대한 심포니는, 우선은 당신들이 귀를 통해 이를 듣게 되지만, 당신들의 영혼에 까지 울려 퍼지는 음악으로서, 연주가 끝난 후에도 당신은 상상 속의 울림 속에 이 음악을 여전히 들을 수가 있듯이, 깊은 명상 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지구 상의 모든 소리의 근원이기도 한 ‘침묵의 음악[the music of the silences]’도 늘 유사한 여파를 남깁니다. 처음에는, 당신이 명상 속에서 전해 들을 수 있는, 이 낯설지만 아름다운 배음[harmonics]을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는 당신의 마음 속 상상을 가로막는 ‘저음들[undertones]’을 떠내려가게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당신이 ‘고동치는 심장박동[a pulsing heartbeat]’를 듣게 된다면, 당신은, ‘당신의 상상[your imaginings]’도 이 동일한 놀라운 리듬을 타고 오게 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이 머무는 높은 천상에서, 당신은 결코 ‘하나-둘-셋’과 같은 왈츠 리듬을 듣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같은 당김음[syncopation]은 이내 당신을 다시 지구로 끄집어 내려, 당신의 육체가 갖는 감정[EMOTIONS]과 감각[SENSES]을 인식하도록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둘-셋’과 같은 세박자 리듬은 당신이 육체적으로 춤을 추고 싶도록 만듭니다. 물론 이것도 육체적인 행복감을 더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리듬은 ‘근원적이고 창조적인 사고[original creative thought]’를 심하게 흐트러뜨리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바램’ 자체가 지구상의 감각에 깊게 뿌리내려 있는 사람들에게는, 재즈의 보다 중후한 당김음[the deeper syncopation of jazz]이 그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높은 천상의 침묵 소리는 마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깊은 공허[deep void]’의 소리일 뿐입니다. 재즈 음악은 자연의 리듬을 쪼개어 불균형한 리듬 상태로 가져 갑니다. 따라서 이를 듣는 사람들도 자신의 영혼을 ‘우주적 영혼[the Universal Soul]’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물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고평가될 수도, 저평가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사고를 생성해 내는 영혼의 창조[thought-producing Soul creation]’ 과정과는 잘 부합되지 못합니다. 이는 정확히 당신이 지금 피하려고 하는, 물질적인 어떤 것을 향해 오히려 더 나아가는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당신들이 육체적인 감각을 흥분시켜줄 수 있는 음악을 들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지구상의 리듬과 천상의 리듬 사이의 적절한 배분이 이루어진다면, 그러한 음악들도 물론 좋은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둘-셋’의 박자를 형성하는 왈츠 리듬 같은 것입니다. 당신들은 높은 천상에서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도 영예롭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지구상의 리듬’에만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은, 오직 한 줌의 흙덩어리가 되어 살아가는 것에 다를 바 없고, 지구의 노예가 되어 지구에 감금되고 마는 일로서, 불멸의 빛이 존재하는 높은 천상을 향해서는 결코 높이 날아오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필멸성[Mortality]’은 ‘감옥의 독방[prison cell]’과도 같은 것으로, 당신이 그곳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이는 오직 ‘당신이 가진 불멸성의 날개[the wings of your immortality]’를 다는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논의했던 것은 ‘놀라운 불멸의 자아[wondrous immortal Self]’와 접촉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두 가지 주제를 혼동하지는 마셨으면 합니다.
Violinio Germain, 비올리니오 저메인
피닉스 저널 제 34권, “Phone Home, E.T. : Reach Out And Touch Someone---Like God!”, Pleiades Connection Vol. V. 제 3장, pp. 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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