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IDEA]’을 착안해 내는 것은 ‘생각의 씨앗[SEED OF IDEA]’으로서 기록됩니다.
당신이 한가지 생각을 착안해 내는 것은, ‘떡갈나무의 씨앗’이라는 ‘생각’이 완전히 크게 자란 떡갈나무가 되는 것이나 꼭 마찬가지의 관계를 갖습니다. 당신이 상상하는 것은 ‘당신 자신만의 영혼 속에[in your very Soul]’ 기록됩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혼의 고요함[the stillness of your Soul]’으로부터, 그 ‘생각’은 형태를 가진 모습으로 확장됩니다. 마치 떡갈나무라는 형태가, 그 본연의 ‘형태없는 씨앗의 고요함’으로부터 확장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의 ‘생각’에 대한 착안과, 이에 그 ‘형태와 목적’을 부여하는 상상이 가져다 주는 내적 기쁨은, 이를 통한 “창조적” 확장[“created” extensions]이 그러한 것만큼이나, ‘고무적인 일[uplifting]’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그것이 당신 자신에게만 국한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목적의식적인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세상을 위한 목적의식을 갖고서 이러한 일을 행하게 된다면, ‘형태화된 대상’ 속에 불어 넣게 될 당신의 ‘영감에 찬 상상’은 온 인류의 감각에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당신이 ‘물질화된 육체(대상)’를 이와 같은 ‘작용-반작용의 과정’을 거쳐서 창조해 내게 될 때, 이것은 하나의 ‘걸작’이 되는 것입니다. 매 순간 순간 하나님과의 교신을 통해, 당신의 영혼을 그 창조 대상으로 확장시키는 것은 바로, ‘사랑’을 당신의 ‘창조(물)’에 불어넣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영혼으로부터 솟아나는 ‘사랑’을 당신의 창조물로 확장시키지 못하면, 당신은 그것에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없습니다.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없거나, 혹은 거기 사랑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며, 그렇게 될 때, 당신의 창조물은,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켜 줄 수 있는 생명력이나 사랑을 재전달해 주지는[regive] 못하는 것입니다. 그 경우, 그 창조물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게 되고, 이내 죽은 것들만 담기는 쓰레기 통 속에 묻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걸작’이라 불리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창조주의 영혼’이 갖는 생명력과 사랑이 ‘당신의 영혼’을 통해 확장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걸작은 ‘당신이 가진 불멸성[your immortality]’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켜 줄 수 있는 ‘재확장[re-extension]’의 기능을 갖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가도, 매 순간 순간, 당신의 육체는 ‘당신의 확장[extension of YOU]’임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육체에게 사랑을 주게 될 때, 육체는 그 사랑을 다시 전해 주게 됩니다. 말하자면, 만약 당신이, 당신의 육체를, 쌀쌀한 태도나 비통한 심정과 같은 불균형적인 상태 속에 두게 될 때, 당신의 육체는 당신으로부터 ‘건네 받은’ 것을 고스란히 다른 이들에게도 ‘건네 주게’ 되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잠시 멈춰서, 이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육체를 통과해 지나가도록 만드는 생각이 갖는 의미를 면밀하고도 주의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당신의 육체를 당신 자신이 아프게 만든다거나, 혹은 ‘당신의 거부적인 생각들과 거부적인 육체’가 다른 사람들을 당신으로부터 떠나가도록 만들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종종 이 문제를 다시금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