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인간은 자기 스스로 이해하게 된 바에 대해 확신을 못 가지는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항상, 자신의 여행에서 자기가 이해한 것에, 확신을 더해 줄 수 있는 스승들이나 기록들을 찾곤 합니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사항들을 자기가 ‘기억[remembering]’해 내는 데에 있어서, 예언이 자기를 일깨워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희망에 부풀어, 그러한 예언이 감춰진 빛을 드러내어 자신 앞에 그 빛이 펼쳐지도록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그런데 실은 그 반대입니다.
잠깐 태양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태양은 ‘그 정수 속에서[in its very essence]’ 빛을 형성하고, 또 빛을 쏟아 내는 거대한 에테르적 진공체[a great etheric vacuum]로서, 눈으로 관찰이 가능한 대상입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진동 수준’이 충분히 높은 상태에 있다면, 그는 문자 그대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태양 속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놀랍겠지만, 이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이, 왠지 당신에게 지금 이 순간, 그러한 것을 경험할 정도의 수준으로부터, 다시 말해, 산의 최정상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그런 깨달음의 수준으로부터, 당신 자신이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당신이 그러한 영광의 경험을 성취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여지껏 당신에게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왔던 것입니다. 실상 이것은 무슨 신비한 마술 같은 것이 아니라, ‘우주 법칙의 물리학[physics of Universal LAW]’일 뿐인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태양과 같은 에테르적 진공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바로 거기서 당신은 모든 사람들의 모든 행동들이 그 근원으로부터, 역으로 반영된 것들임을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어떤 행동들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미래란 그 성취가 보류된 현재인 것입니다.---다른 것일 수가 없습니다.
태양은 해당 태양계 안의 모든 행성들 위에 발생하는 우주적 사건들에 있어서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와 같은 태양은 ‘방사[radiating]’뿐만 아니라, 방사되었던 것들을 역으로 재수집[collecting backwards]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방사란 역방향의 움직임도 갖는 것으로서, ‘빛’이란 ‘되튀어 나오는 생각[thought rebounding]’에 의해, ‘에테르-파장[ether-wave]’ 위로 가 부딪히는 또다른 ‘에테르-파장[ether-wave]’의 충격으로부터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든 것들이 다 ‘투사[projection]’되기만 하다면, 어떠한 ‘투사’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경우, ‘투사되는 것들’은 비교가 가능한 표준적인 꼴을 갖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생각[thought]’은 ‘투사되는 것’을 파악해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원인과 결과[cause and effect]’에 있어서든, ‘주기와 재주기[cycle and recycle]’에 있어서든, ‘튀어 나오는 것[bounding]’이 없다면, ‘되튀어 나오는 것[rebounding]’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 당신의 시각 상에 “빛”처럼 보이는 것이 느껴질 때, 당신은 무엇을 인식하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오직 ‘주파수가 에테르적 교란 상태[ether disturbance in frequency]’에 있는 파동 위로 또 다른 파동들이 부딪쳐 나타나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이는 태양이라는 진공체 ‘안으로 들어가고’, 또 ‘거기서 나오는’ “생각[Thought]”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진공체 속에 감금되고, 또 거기서 충돌하는[impounding and impacting]’ “생각”으로 생성되는 것입니다. 이는, 에테르가 적절히 응고[proper coagulation of ether]되는 가운데, 적절한 페이스[proper pace]에 맞춰, 이러한 과정이 펼쳐질 때 생겨나는 ‘백열(白熱)[incandescence]’과 더불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이는 것[seeing]”으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앎[KNOWING]’ 전체가 한꺼번에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초조해하지 마십시오.---‘앎’도 결국은 당신이 “보는” 만큼, 당신이 인식하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몇 가지 설명들을 통해 당신은 예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언은 에테르적 거울을 통해 반사되어 되돌아 온 ‘역사’를 거꾸로 기록하는 일일 뿐입니다. 모든 것들은 현재 다 존재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다 인식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를 서서히 인식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일정 수준 옮겨 간 다음, 이를 ‘변화’라고 부릅니다.---그렇지만, 이는 전혀 ‘변화’가 아닙니다. 변화는 인간의 감각을 무시합니다. 변화는 인간이 꽤나 우둔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변화는 항상 그리고 영구적으로 동시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라고 여겨지는 것은 오직 ‘인식상’에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예언”과 같은 것을 활용할 수 있다면, 그는 훨씬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미리 준비되어 있는 상태라면, 적절한 통로를 찾기가 분명히 더 쉬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렇지만 실상 인간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단지, 각각의 행동을 통해, 그리고 그 행동들 속에서, ‘영광’이 성취되길 “기대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빛이고, ‘하나님 자신의 빛의 생각[His Lighted Thought]’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창조의 한가지 표현인, ‘당신’ 역시 빛인 것입니다.---당신이라고 해서, 그리 되어 마땅할 어떤 것을 창조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만약 당신이 못한다면? 그럼 누가 한단 말입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무엇입니까? 왜 당신은 존재합니까? 당신의 한계는 무엇입니까? 진실은 무엇입니까? 빛은 무엇입니까? 우주와 당신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인류과 당신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이 모두가 영원한 질문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직 당신이 깨어나기만 한다면, 그 답을 알 수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 글을 마치면서, 나는 당신들이 가장 자주 잊고 있는 진실 한가지를 상기시켜 주고자 합니다. :
기도를 할 때, 오직 당신 자신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런데, 그렇게 당신 자신만을 빼고 모두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오직 그렇게 할 때에만, 당신이 그토록 바라고 추구하는 것들이, 바로 당신에게 주어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인들인 간직하고 있던 이 비밀을 이제 당신이 알게 되었다면, 당신은 바로 삶의 비밀을 터득한 셈이기도 한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다시 얻게 되길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74권, “Mysteries Of Radiance Unfolded”, Relative Connections Vol. II., 제 2장, pp. 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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