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당신은 누구인가?--주관적인 “마음”
  • 당신은 누구인가?

    주관적인 “마음”


    인간의 ‘주관적인 마음[subjective mind]’은, ‘자신의 의식[his consciousness]’이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권능을 갖고 있으며, 모든 곳에 존재하는 자신의 영적 저장고[his spiritual storehouse of all-knowing, all-power, and all-presence]’인 것입니다. 바로 이같은 ‘의식’이 ‘자신의 자아[his SELF]’이자, 또한 ‘자신의 영구적인 자아[his ETERNAL SELF]’인 셈으로, 이를 통해 자신의 전지(全知)와 전재(全在)와 전능(全能)이 표현되게 되는데, 다만, 바로 이러한 것들이 자신 속에 현존해 있음을 알아가게 될 때에 한하여, 그리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적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전기적으로 진동하는 신경들(전선들)[the electrically oscillating nerves(wires)]’은, 거의 전적으로, 자동적인 반응 양식과 본능적인 통제 수완을 따라 움직이며, 아주 좁은 수준에 있어서만, ‘정신적인 결정[mental decisions]’에 따라 작동하는 것입니다. 육체상의 모든 세포들과 기관들은 저마다의 존재 목적에 대한 ‘전기적 자각상태[electrical awareness]’ 속에 있으며, 그 육체를 점유하고 있는 ‘지능체[the Intelligence]’로부터 오는 ‘정신적인 작용[mental action]’이 없이도, 자신들의 목적을 원활히 수행해 냅니다. 예를 들어, 심장은 순수하게 자동적으로 뛰는 것입니다. 적혈구들은 신체의 각 부위로 산소를 운반하고, 백혈구들은 신체 내 손상된 부위를 복구하려고 달려들며, 대식세포들[macrophages]은 외부로부터 온 침입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모여드는 것입니다.---이 모든 것들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며, 스위치를 켰을 때만큼이나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기적 기록을 남기는 두뇌[electric recording brain]’를 가진, 단순한 “육체[body]”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체’ 안에서, 그리고 ‘전기적 기록 기능을 갖는 두뇌’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 “사고하고”, “살아가며”, “경험하고”,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깨어 있는 동안 의식적이며, 자신이 잠자고 있는 동안 무의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인간은 설령 “수면”이라 불리는 상태 속에서 감각이 정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자연 상태 속에서, ‘무의식[unconsciousness]’과 같은 그런 상태에 빠지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만약 손가락을 마취시킨다면 손가락이 ‘무의식 상태’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려 하십니까? 그럼 치아는 어떻습니까? 치과의사가 얼마동안 신경을 죽이게 되면, 치아가 “무의식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까? 여기 흥미로운 모순점이 한가지 있다면, 인간은, 치아가 ‘의식적’일 수는 없으며, “육체”도 육체 자체가 ‘의식적’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인간은 “의식”이란 결코 잠들지도 않으며, 변화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인간 안에 내재해 있는 의식이란, 인간의 불멸성[his immortality]’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불멸성’은 인간의 ‘앎’을 표현해 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바로 이 ‘의식’이, 인간이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한 채 늘 찾고만 있는[unknowingly seeking] 그 ‘빛’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두뇌로 전해지는 감각을 통해서만이 자신이 ‘사고’하고 있는 줄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틀렸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인간은 이제서야 겨우 칠흑 같은 어둠의 황무지로부터 빠져 나오려 하고 있기에,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들이 다 새로워 보일 것입니다. 지난 주기들에 걸친 세월을 보내는 동안, 인간은 자신의 성장과정 상에 있어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증거로서, 그리고 앎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것들에 대한 증거로서, 감각[sensation]에만 의존해 왔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성장 시퀀스에 있어서, 다 해 봐야 불과 몇 해 안 되는 주기들에 걸쳐서만, 자신들 속에 내재한 ‘영혼[the spirit]’의 존재를 알았던 것입니다. 인간은 이같은 새로운 앎에 대해 너무나 생소하고, 그 최초의 “입문” 단계에 있기 때문에, 자신 속에 내재한, ‘마음’이 무엇인지, ‘의식’은 무엇인지, 그리고 또 ‘감각’은 무엇인지 등을 이해함에 있어서, 모든 것들이 그저 혼동스러울 따름인 것입니다.

    육체란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자아[centering self]’를 표현해 내는 자기-창조적 메커니즘[self-created mechanisms]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자아[self]’란 그 자아와 더불어 ‘하나’인 ‘하나님’[God as One with it]을 현현해 낸다는 사실을, 인간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 나아가, 인간은, 육체란 살지도 죽지도 않는 것이며, 오직 ‘마음이 갖는 모든 생각들[all idea of mind]’이 되풀이 되듯, 지속적이고 영구적으로 되풀이될 뿐이라는 사실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바퀴를 예로 들기를 좋아합니다. 바퀴는 가장자리가 있고, 살이 있으며, 중심을 잡아주는 축이 있습니다. 바퀴가 굴러갈 때, 그 어떤 순간에라도, 바퀴의 가장자리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이 땅에 닿으며, 땅을 ‘느끼고’, 땅을 ‘떠납니다.’ 땅에 닿는 바로 그 순간의 감각이, ‘바퀴의 가장자리’와 ‘바퀴의 살’과 ‘땅’을 서로 연결해 주지만, 그 접촉은 곧 사라집니다. 그러나, 비록 그렇게 사라질지언정, 그 똑같은 국면들은 회전의 주기가 계속되는 한, 반복적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인간에게 적용되었을 때, 우리는 “한 인간이 태어났고, 살았으며, 그러다가 죽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똑같은 일이 과일에 적용되었을 때, 불꽃에 적용되었을 때, 또는 어떤 한 식물에 적용되었을 때에도, 역시 당신은, “과일이 누군가에게 먹혀서 사라졌고, 불꽃이 꺼졌으며, 식물은 죽어 부식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예를 굳이 드는 이유는, 당신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나무가 죽는다거나, “불꽃이 죽는다(꺼진다)”고 할 때의 그 “죽음”의 개념은, 인간의 죽음에서 말하는 “죽음”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지가 궁금하십니까? 지금 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의 감각 범위 안에서 생겨나는 어떠한 것이라도, ‘하나의 생각[idea]’이 구성하는 전체 주기 상에서 볼 때에는,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바퀴의 땅에 닿는 부분보다 훨씬 더 큰 부분들이 땅에 닿지 않은 채로 있듯이, 그 어떠한 순간에 있어서라도, 주기상의 훨씬 더 큰 부분들은 당신의 감각 범위 저 너머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바퀴가 둥근 원 모양으로 계속 반복되는 주기를 그리는 것처럼, 모든 생각들[ALL IDEA]”이 갖는 주기들의 보이지 않는 부분들도 바퀴만큼이나 연속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당신들은 아직 깨닫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어떠한 종류의 과일이든 간에, 그 과일이 갖는 주기의 양성적 절반[positive half]은, 즉 당신 손 안에 쥐어진 상태로 만져볼 수 있는 상태의 과일은, ‘태양과 지구로부터 와 닿는 빛[light reaching from the sun and earth]’의 상태로 존재합니다. 반면, 그 과일이 갖는 주기의 음성적 절반[negative half]은, 즉 과일이라는 ‘영구적인 생각[eternal idea]’을 다시금 구현해 내게 될 반복적 재생을 위한 준비 상태 속에 있는 과일은, ‘태양과 지구로 되돌아 가는 빛[light returning to sun and earth]’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는 불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 식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그 밖의 어떠한 것이라도, 전체로서 하나인 창조의 생각[ONE WHOLE IDEA OF CREATION]’이 펼쳐내는 창조물들에게는 다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불꽃은 당신의 감각 앞에서는 “사라져 버리지만”, 여전히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식물도, 나무도, 숲도, 산도, 행성도, 저 먼 천체의 성운도,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지만, 분명코 다시 나타납니다. 꼭 마찬가지 방식으로, 인간도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 다시 사라지고, 또 다시 나타나고 하길 무한한 주기들 속에서 반복하는 것이며, 인간이 갖는 주기 가운데, ‘육체를 통해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시기에 해당하는 구간’의 영원한 반복 속에서, 그 ‘영혼이 갖는 영구적인 삶[eternal life of the spirit]’이 표현되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영원[eternity]’이 연속적이듯, ‘인간’도 연속적입니다. 인간은 죽음을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볼 수 있는’ 혹은 ‘알 수 있는’ 그러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면, 실은 인간의 육체는 “살지도[live]” 않고, 또 “결코 살았던 적도 없기에[having never lived]”, 분명코 ‘죽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인간의 영혼[the spirit]만이 사는 것입니다. 육체는 단지 그 영혼을 구현해 낼 뿐입니다. 당신이, 인간이 영혼을 가진 채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영혼이 자신의 의지를 통해 육체로 하여금 움직이도록 만드는 과정을 통해 펼쳐지는 것입니다. 육체가 만들어 내는 ‘행위들’은, 그 육체의 ‘중심을 잡고 있는 영혼[centering SOUL]’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들로서, 육체 자체가 동기적인 권능을 가진다거나, 지능을 가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며, 육체는 오직 ‘전지, 전재, 전능한 지성체[omniscient, omnipresent and omnipotent intelligence]’가 육체로 확장됨을 통해 동기화되는 기계일 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서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아직 그 이해에 있어 ‘유아기’에 있기 때문이며, 이제야 비로소 ‘빛[LIGHT]’‘근원[SOURCE]’에 대해서 막 알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로 ‘그 근원[THAT Source]’으로부터 온 메신저들이자, 또 당신들보다 앞서 살았던 형제들로서, 우리는 지금 이러한 진실을 당신들과 함께 공유해야 하는 과업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사가 처음 게재된 포럼의 주제글: 당신은 누구인가? started by phoenix View original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