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주기와 진동, 영생의 비밀, 독선의 칼날
  • 주기와 진동, 영생의 비밀, 독선의 칼날

    그리스도는 말했습니다.


    나는 ‘부처[Buddha]’나 ‘예수[Jesus]’ 혹은 그 밖의 인물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온 것이 아닙니다--나는 여지껏 ‘그리스도[CHRIST]’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적이라 함[Christness]”은 바로 “존재의 상태[state of being]”, 즉 영혼의 상태[A SOUL STATE]를 가리키는 말인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이전에 왔었던 위대한 “스승들”의 교훈과 가르침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다르마[Dharma](이 글을 받아쓰는 서기--역주)”가 자신이 위대한 스승이라고 주장할 것 같습니까? 그녀는 자기가 그저 한 명의 “교사”라고 이야기하지조차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사람들이 그녀를 주목하겠습니까? “나”는 나 자신이 “위대한 스승”이라고 주장할 것 같습니까? 역시 아닙니다--나는 단지 진실의 교사이자 길을 알고 있는 자일 뿐입니다. 나는 오직 임무를 띠고 있을 따름입니다--그건 바로의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봉사 속에서, 지금 이처럼 글을 써내려 가는 일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왔으니, 너희는 생을 얻게 될지도 모를 것이니라. 너희는 보다 풍요로운 생을 얻을 것이고, 나아가 영생을 얻게 되리라.”



    그리스도는 결코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죽음에 대해서 준비하는 것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가르침도 남긴 적이 없습니다. 그는 오직 에 대해서만 말했을 뿐입니다! 보다 풍요로운 삶! 영예롭고 아릉다운 삶! 그렇습니다! 그는 오직 영원한 삶에 대한 원칙들[the principles of Eternal Life]만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자들이여, 그는 오직 ‘영생[LIFE ETERNAL]’에 이르는 ‘좁지만 곧은 길[straight and narrow way]’을 밝혀 보여줬던 것입니다. 그는 창조주[Creator](그의 아버지이자, 당신들 모두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와 자신간의 관련성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 개개인들이 저마다 펼쳐보일 수 있는 그러한 권능보다 더 큰 어떤 권능을 자신이 가졌노라고 주장한 적도 없었습니다.

    한편, 그는 파괴로 이르게 될 “넓고 탁트인 길[Broad Open Way]”, 너무나 많은 자들이 접어들게 될 이러한 길에 대해서 끝없이 경고했던 것입니다. 항상 이것은 개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입니다. 그는 계시록[Revelation] 상에서, 자신이 극복했던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극복하는 문제에 대해 요한[John]에게 말했습니다. 도대체 그가 무엇을 극복했다는 것입니까? 바로 죽음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듣는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서 그 교훈들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마치 지금 우리가 당신들의 지각과 당신들의 이해 수준에 익숙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당신들에게 길을 보여주려고 노력해 오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그리고 지금 우리는 바로 그러한 노력 때문에, ‘법없는’ 법정, 불공정의 법정 앞에 세워지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악과 동반된 모든 고통과 슬픔들이 극복되어질 시대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바로 그 최후의 극복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죽음을 계획하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바로 “이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죽음을 허락하실 때는, 바로 “인간들 마음의 눈이 멀어 버렸기에,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 버렸기에, 또한 그들이 갖는 불신이 그들을 놀랄만한 사악함으로 이끌어가 버렸기에” 이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오래된 지혜의 서적들 속에는 많은 좋은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다만 당신이 여러가지 오해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중에서 좋은 “것들”만을 골라낼 수 있을만한 지혜와 분별력이 있을 때에만 그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당신들은 “시온[zion]”이라는 단어의 참된 의미를 아십니까? 내 생각에 아마 그렇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시온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마음의 순수성[purity of heart]”입니다. 따라서, “시온으로 이르는 길”이 의미하는 바는, 경험이라는 여정 속에서, ‘마음의 순수성[purity of heart]’과 ‘영혼의 완전성[perfection of soul]’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오늘날 “시오니스트들[Zionists]”이 이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일 것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그들이 말하는 ‘시온’이란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고 지배하는 것으로?이것은 그저 물리적인 표현에 국한될 뿐입니다. 사실상, 지구상에서는 어떠한 시온[ZION]도 존재하지 않습니다?오직 시온으로 가는 ‘길[pathway]’만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따라서 당신들은 바로 많은 “시작들[beginnings]”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실제적인 “시작[beginning]”이나 “끝[ending]”도 없습니다--오직 그에 대한 ‘인식’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당신들은 ‘시작’과 ‘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오직 ‘진보해 나아가는 영혼의 주기적인 진화[the cyclic evolvement of soul in progression]’만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주기[CYCLES]


    모든 것들은 주기 속에서 진보해 나아갑니다. 여기에는 당신들의 문명 뿐만이 아니라, 모든 앞선 문명들도 포함됩니다. 새로운 이해는 인류를 주기적으로 보다 더 높은 이해와 존재 상태로 변모시키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계산에 따르자면 대략 3천년정도가 걸리는 새로운 사이클이 이제 막 탄생 직전의 고통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omniscience]’와 ‘전능[omnipotence]’과 ‘전존[omnipresence]’은 모든 인간들의 의식 속에 중심이 잡혀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들 가운데, 자기자신의 ‘자아-영혼[Self-Soul]’과 ‘우주적 자아-영혼[Universal Self-Soul]’이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자들은 극소수입니다. 인간이 이 사실을 알기 시작하게 되는 데만도 수천년이 걸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갖게 되는 각 사이클들은, 인간이 ‘자기-근원[Self-Source]’ 속의 빛[LIGHT]과의 하나됨을 스스로 인식하게 되는 쪽으로 매번 자신을 가까이 데려다 놓게 됩니다.

    러셀[Russell](월터 러셀[Walter Russell](1871-1963), ‘물질의 구성’참조--역주)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아주 훌륭하게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 “인간들은, 그 원인[CAUSE]에 대해서는 그들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가장 황당하고도 복잡한 결과[EFFECT]의 세계 속을 살아가고 있다.” 겉보기에 거의 무한할 것 같은 난해성과 복잡성 때문에, 인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 속에 들어 있는 아주 단순한 ‘균형의 원칙[priniciple of Balance]’을 간파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진실’이 갖는 여러가지 측면과 단면들이, 서로간의 균형을 잃고, 또 그들이 인간 자신과의 균형마저도 잃게 될 때까지, ‘진실’을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들어 나갈 뿐인 것입니다.

    진실은 간단합니다. 균형도 간단합니다. 자연 현상 속에서 반대되는 표현들로 이루어지는 모든 쌍들, 마찬가지로 인간 관계 속에서도 반대되는 표현들로 이루어지는 모든 쌍들, 바로 이 같은 여러가지 쌍들 간의 ‘리듬감있고 균형잡힌 상호교환[Rhythmic balanced interchange]’,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빛의 우주[God’s universe of Light]’의 최고의 걸작품인 것입니다. 바로 이 근본적인 우주의 법칙 속에[In this one fundamental Universal Law], ‘하나님의 전기적 파동의 우주[God’s electric wave universe]’ 안에 있는 모든 창의적인 표현들의 균형잡힌 연속성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전기적 파동의 우주’란, ‘창조라는 하나님의 하나의 전체적인 생각[God’s one Whole Idea of Creation]’을, ‘겉보기에 셀수없이 많은 것으로 분리된 듯한 부분들[countless seemingly separate parts]’을 통해 그 ‘전체적인 생각[that Whole Idea]’ 자체가 기록으로 남겨지는 작용을 하는, ‘겉보기에 움직임으로 여겨지는 두가지의 상반되게 조건지워진 빛들[two conditioned lights in seeming motion]’이 만들어 내는 우주인 것입니다.”

    여기 이러한 “설명”이 어떤 은밀한 “제단”의 비밀스런 장소에만 보관되어져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분명코 아닙니다. 다만, 이 설명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실이라면, 오직 선택받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영생[LIFE ETERNAL]의 위대한 비밀을 알아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빛이며, 당신들은 그 분이 생각하실 때, 그 분의 생각이 만들어 내는 결과들인 것입니다.

    영예와 찬양은 영원히, 영원히 “아버지[Father]”께 돌려져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제시하는 길은 곧으며, 당신들의 마음이 열려져감에 따라, ‘그 분의 진실과 빛의 길[His way of Truth and Light]’은 점점 더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봉인이 풀리게 될 때, 그리고 당신들의 세상을 거의 파멸직전으로까지 몰고 갔던 멀어버린 당신들의 마음의 눈이 다시 열리게 될 때, 당신들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것들을 이제는 단단히 거머쥘 수 있을 신념과 비전을 갖게 될 것이고, 결국 ‘그 분의 성스러운 약속[His holy promises]’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성스러운 빛[this Holy Light]’이 당신들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게 될 때, 그 분의 완벽하고도 신성한 비전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비전은 당신들의 영혼이 목격하게 될 약속된 성령에 대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 때의 당신들이란 그 완전함 속에서 그 분의 길을 따를만한 힘을 갖게 될 것이기에, 이 모든 일들은 당신들 자신들을 통해서 완수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제시하는 길입니다. 내가 바로 길[the Way]이고, 완전함의 길[the road of perfection]이며, 당신들이 따라야할 길[the path you must follow]인 것입니다?이 말은 바로 ‘그리스도적이었던’ 스승들[the Christed teachers]이 했던 말이기도 했습니다.

    이 초대장, 천상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그 분과 마찬가지의 완전함에 이르는 지혜를 구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제시되는 이 초대장 속에 바로 그 신성한 비전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마치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주어져야 마땅할 학위가 약속되어져 있는 것만큼이나 명확하고도 실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한 그 분은 결코 달성하지도 못할 약속을 통해 자신의 학생들을 웃음거리로 만드시지도 않으십니다. 그 분이 한 모든 약속들은 지켜져야 하며 또 지켜질 것입니다. 다만 언제 인간들이 이를 받아들일만한 신념을 갖게 되느냐에 달린 문제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가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또한 “생각”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갖는 생각들 가운데 어떤 생각들을 선택할 권리를 갖는데, 바로 이 속에 ‘영원성의 모든 창조적인 권능[all the creative powers of eternity]’이 들어 있는 것이며, 이 때의 창조적 권능이란 심지어 신적인 권능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이러한 권능을 잘못 사용하거나, 혹은 이 선택의 자유의 신성한 선물을 오용하게 될 경우, 그는 자신의 자율권[free-agency]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어둠의 힘에 의해 노예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자율권을 잃었을 때인 것입니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가장 큰 주제는 바로 이 신성한 선물, 바로 하나님께서 부여한 이 선물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독재 정부들은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의 자율권을 빼앗아야 합니다. 바로 오늘날과 같이 이러한 일이 정치적인 수준에서[politically] 또 도덕적인 수준에서[morally] 벌어지게 될 때, 인간은 더 이상 자유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인간은 노예[SLAVE]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진동[VIBRATIONS]


    어쩌면 이 단어는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어져 온 말처럼 여겨질런지도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바로 이 단어는, 자신들 쪽으로 “일[thing]”을 유리하게 전개시키고자 하는 자들, 또 자신들 쪽으로 “진동을 끌어들이고자[get vibrations]” 하는 자들에 의해 거의 항상 오용되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진동”은 ‘생명의 정수[the very essence of LIFE]’인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에 대해 혼동스러운 상태에 놓여있고, 당신들에게 주어지는 완전히 왜곡된 정보들 때문에 늘 진실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과 감정의 이면에는 그에 동반된 진동이 존재합니다. 현존하는 것들의 살아있는 힘, 그리고 숨을 쉬는 힘은 진동의 실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주 자체는 단순히 전기적 파장의 우주입니다. 우주는 또한 여러 사이클들로 된 “나선형의” 우주입니다?우주는 단순히 전기 속에서, 소리 파장 속에서, 또는 인간의 정교한 감정 인식 속에서 표현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을 통해서 그리고 안에서 하나님의 생각을 표현해 내는 ‘끝없이 공명하는 진동[the constantly resonating vibration]’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성”적 사고를 가지고 유추해 볼 것 같으면, 자신의 생각을 개선시켜, ‘참되고 영원한 영예’와 공명하는 진동을 가져옴을 통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에 의식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모든 자들은, 실상, 존재와 창조의 권능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각각의 인간들은 선택의 자유를 가지지만, 만약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워, 자기 자신을 그저 자신만의 인식이 가져다 주는 환상에 갖다 묶어버리고 마는, 하수구의 거름받이와도 같은 진동의 방향으로 나아가버리게 되고 만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모든 생각은 “선택”을 동반합니다. 빛의 길[the Lighted pathway]로부터 멀어져 어둠의 진동이나 파괴적 에너지쪽으로 나아가려는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이미 사실상, 그렇게 행하는 “의식상의” 선택을 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둠’ 속에서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당신이 “숨기려”하고 있는지,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당신은 지금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등을 스스로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주위 사람들과 동료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만의 부를 추구하거나 권력을 추구하거나, 개인적인 영광만을 추구하려고 분투하는 모든 자들은, 설령 그게 단 한 사람에 불과할지언정, 이들은 바로 이 세상 전체의 타락에 ‘공헌’하고 있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처럼 ‘범죄적 진동[delinquent vibrations]’은 확대되고, 거칠게 팽창되며, 그 증대된 강도는 수천배로 더 커지고 있으며, 당신들이 “시간”이 흐른다고 인식하는 것에 비례하여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독자들이여, 오늘날, 비행 청소년들이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범죄를 저지르는 성인들과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통제되지 못한 생각과 행동에 따른 부정적인 어둠의 진동들은 이 세상을 그야말로 황폐와 파멸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엄청난 반사적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바로 그들보다 나이든 어른들로부터 맹렬히 뿜어져 나오는 이 ‘폭력적 진동’을 견뎌내기에는 너무나도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퇴폐적인 인류의 사고 패턴으로 인해, 지구의 대기상에 방출되어지고 있는, 이 증폭되고 강화된 ‘악의 진동’에, 이 젊은 친구들은 도저히 맞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점을 깨닫기 바랍니다.우리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 같은 생각의 진동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고안되었으며 고의적으로 당신들을 향해 쏘아 보내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진동들(펄스 파장이나 ELF 파장 등과 관련된 글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에 비하자면 거의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도 자주 다루어 왔던 내용인, 지속적인 펄싱[pulsing]과 원거리 마인드 컨트롤 기술, 이 두가지 모두인 것입니다. 생각 그 자체는 “주파수[frequency]”를 가집니다--진동 주파수입니다. 여기 되새겨봄직한 예언이 하나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 최후의 날에 사탄은 모든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맹위를 떨치게 될 것이니라.

    당신들은 폭력과 무질서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시대의 소위 ‘예술’이라는 것은 비록 완전히 노골적이거나 포르노그라피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폭력적이고 선정적입니다. 예술에 있어서 폭력성의 묘사 정도가 점점 더 심해져 감에 따라, 심지어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예술 작품에 있어서 마저도, 그 양상은 끔찍하고 소름끼칠 정도입니다. 이러한 예술품들을 만들어 내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겪었던 고통을 제대로 묘사해 내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사실상 그들은 그러한 예술품들을 통해 자기 자신들의 개별적인 인식을 고스란히 반영시킬 따름이며, 분별력이 없는 청중들에게, 향후 잘못 이해되고, 잘못 받아들여진 채, 그것이 마치 “역사적인” 사실이었던 것마냥 남아질 지도 모를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술가들은 오직 그들 자신의 어둠, 그들 자신의 감정적 소요상태, 그리고 그들 자신의 저항적인 심리적 갈등상태를 표출해 낼 따름이며, 결국 그들 자신의 이 ‘사악한 기분[evil moods]’은 그리스도의 얼굴 위로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지어 십자가에 못박히던 그 순간에 조차도, 그렇게 어둡거나 불경한 감정의 표현들은, 결코 그의 안색 위로 나타났던 적이 없었습니다.

    엔터테인먼트는 폭력적입니다. 문학도 폭력적입니다. 상스럽고 포르노그라피적입니다. 바로 그만큼의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이라 불리우는 현대적 소음도 그리고 춤도, 더 이상 평화롭지도 우아하지도 않습니다. 이 모두가 이를 표현해 내는 자들의 내적 폭력성의 시각적, 육체적 표출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영화는 온통 폭력과 부패로 얼룩져 있습니다?이것은 바로 통제된 미디어를 통해 취약한 청중들이 덫에 걸려들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일입니다. 당신들은 인간들의 세상을 괴물들의 세상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바로 순진한 희생자들, 심지어 아주 어린 아이들마저도 오직 그들이 보고 느끼게 되는 한가지 ‘인식’, 즉 폭력에만 길들여져 가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심지어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을 ‘살해’하는 일도 대수롭잖게 여기고 있습니다. 나는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오늘날 만약 임신한 여성을 살해했을 때, 그 살인 행위는 두 사람을 죽인 것에 해당하는 죄로 간주됩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아기가 바로 그 똑같은 “나이”에 낙태되었을 경우에, 이 행위는 “권리”또는 “선택의 자유”로 치부된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거의 다 자란 아기, 사실상 출산 직전의 아기 마저도 살해한 다음에는 그 “태아의 신체 조직들”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곤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젊은이들은 균형잡혀져 있지 못하고, 고통 속에 괴로워하며, 분노를 느끼고, 또 파괴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된 원인이 바로 “어른들의 비행”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치유는 오늘날 시행 중에 있는 법적 제제들을 보다 더 엄격하게 만드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치유 방법은 재활기관을 통해서, 감옥을 통해서, 혹은 사형제도를 통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폭력의 원인은 어른들 자신 속에 들어 있기에, 치유 방법 역시 이들을 통해서 찾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앞으로 가능할 것인가라고 내게 묻는 것입니까?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왜냐하면, 이시대의 사회적 “기준”에 따른 육체적 표현들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보들, 타락한 문화적 양상들에 대한 시각적 노출이 이미 세 세대[three generations]도 넘는 시기에 걸쳐 진행되어 와 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이전에 존재했던 옳은 개념과 가치관들을 이미 완전히 파괴시켜 버렸습니다. 역사는 단순히 권력과 통제력을 가진 자들의 입맛에 맞도록 다시 씌여졌습니다. 마치 플레이아데스 커넥션 시리즈[PLEIADES CONNECTION SERIES]가 곧 불타 없어져 버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당시(1994년) 진행 중이던 재판의 결과로 플레이아데스 커넥션 시리즈 총 8권(피닉스 저널 제 30권 ~ 37권)은 미국내 금서로 지정됨--역주), 진실은 깊숙한 서고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진실나중에 오게 될 자들에 의해서만 다시 드러날 것이고, 그 자들이 갖게 될 인식에 따라 변화는 만들어질 것이며, 이어서 뒤따르는 조치들이 취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주목해야 될 사항이 한가지 더 있다면, 바로 이 변화를 만들어 낼 자들은, 부와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서 과거 분별력없는 청중들을 기만하고 악영향들을 끼쳐왔던 자들과 함께 팀을 이뤄 이러한 변화를 일구어 낼 것이라는 점입니다.

    당신들의 아이들을 한 번 바라다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삐딱한 태도를 한 번 살펴 보십시오. 성적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고, 어른들에게 볼복하고, 투덜거리며 반항하고, 잔인하게 행동하며, 온갖 무절제한 행동들로 대변되는 갖가지 부정적인 표현들을 그들이 보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한 번 살펴 보십시오. 아이들이 이렇게 되어버린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그들이 사랑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으며, 과도하게 벌받거나 학대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당신들 어른들은 달리 행동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들은 바로 ‘투표[VOTING-IN]’를 통해 당신들의 문화를 천박하게 만드는 일을 합리화시켜 왔습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를 들자면, 원치않는 아이를 낙태시켜버리는 행위, 그것이 마치 산아 제한을 위해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 정도 만큼이나 간단한 일인양 함부로 행해지는 것과 같은 이러한 일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모든 일들이 발생하고 또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는 것이 한 문명 안에서 수용되어질 수 있는 것일까요??바로 생각을 통해서 입니다!


    자아에 관한 생각들


    많은 성직자들은 성경을 두드리고, 고함을 지르며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교단의 교리에 따라, 특정 문구를 인용하여 무언가를 주장하기도 하고, 또 그 똑같은 문구를 두고 정확히 반대의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해석’에 따른 견해들 속에는, 최초의 메세지가 전하려고 의도한 것이 들어 있기도 한 반면, 때로는 그 취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럼,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옳은” 것들을 구별해 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옳은 것”, “선한 것”을 완전히 분별해 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높은 성취 수준에 이른 연후에, 거기서 한 발 떨어진 채로, 뒤 쪽에 있는 “악한 것들”, 언젠가는 영원히 뒤쳐지게 되고 말 이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바로 이처럼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취약하고 죽어 없어질 육체를 가진 ‘자아’의 “단점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는 이유는, 이를 통해서 ‘극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에 각 개인은, ‘빛’으로의 여행을 완수해 내기 위해서, 그리고 가장 높은 진동 수준에 머무르기 위해서, 즉 바로 천상[HEAVEN]에 거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극복해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자아라는 대상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초라한 자(최소한의 것에 머무는 자)[the least]가 될 수 있는 자에게만이 가장 위대한 자[the greatest]가 될 수 있는 권능이 주어질 것입니다. 최소한의 것에 머물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같은 완전한 ‘내어드림’이란, 그 개인에게 있어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만 이루어지도록 허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때, 그분의 사랑은, 영광의 날개를 달고 날아 올라, 바로 이 별처럼 빛나는 자들을 감싸안을 것입니다. 이 자는 더 이상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걱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이 살거나 죽거나, 시련을 당하거나 인생의 부침을 겪거나, 혹은 한적한 초원에 묻혀 지내거나,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은 삶은 잃을지 모르지만, 보다 더 위대한 삶, 즉 봉사의 삶을 찾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반짝이는 그의 눈은, ‘완전함’의 신성한 비전[the divine vision of perfection]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항상 자신 앞에 높은 비전을 두고 계시듯, 그 역시도 오직 완전함만을 갖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수많은 “선택들” 속에서 항상 ‘하나님’만을 선택하게 될 것이며--자신이 이를 선택하고 있음을 깨닫지도 못한 채--, 그는 단지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만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항상 다른 대안들도 있어 온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전개되어져 나가는 것은, 오직 ‘비전’을 통해서인 것입니다. 비전의 힘, 혹은 상상의 힘이야말로 창조의 힘입니다. 바로 순수하고도 고결한 비전을 통해서, 모든 악이 극복되어질 수 있고, 또는 이것이 전혀 새로운 축복으로 변모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당신이 그러한 변모를 기쁜 마음으로 인식하게 되든 그렇지 않든 그리 되는 것입니다.

    오직 깊은 사랑과 숭고한 헌신을 통해서만이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삶을 바로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완벽하게 섞을 수 있게 되어, 그는 결국 “가장 위대한 것”을 표현해 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 개인이 ‘비-인간적[non-human]’으로 된다는 것을 의미하리라고 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자의 상위 자아가, 매 순간순간 겪게 되는 경험들 속에서의 기본적인 삶의 표현 너머에 있는 어떤 것에 동조되어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태는, 육체적인 쾌락만을 갈망하거나 이에 매몰되어 있는 자들, 그리고 그저 죽어없어질 초라한 “자아”만을 사랑하는 자들, 옹졸하고 이기적인 특성을 띠었으며, 자존심으로 가득차 있고 개인적인 욕망과 탐욕에만 물들어 있는 자들, 말하자면 ‘에고’의 충족만을 지향하는 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리거나 혹은 심지어 바래지지도 않는 일처럼 들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비전을 저 높은 곳에 두고 있는 자들, 바로 그 곳에서 자신의 시각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본분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이것이야 말로 모든 것들을 이뤄내는 가장 높은 성취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숭고한 성취이자 존엄한 달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권능의 핵심[POINT OF POWER]입니다.

    죄(여러가지 잘못들 및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이 초라하고 죽어없어질 “자아”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작고 에고로 채워진 “자아”는 영광의 길과 완전한 성취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장애물이 됩니다. 모든 형태의 부조화를 만들어 내고, 위대한 치유와 회복과 완전함을 이루어내는 우주적 조화 상태 속에 자신을 공명시키는 일을 막으며, 또 하나님의 영혼과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넘쳐나는 영예가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 바로 이 작고 죽어없어질 “자아”인 것입니다.

    고대와 현대의 수많은 종교에 걸쳐서, 이 “자아”야 말로 항상 “가장 큰 장애물”로 이해되어져 온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들이 고안되고 사용되어져 왔습니다. 부처님은 금식과 빈궁함 속에 자신을 두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인도의 요기들은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요기들의 경우엔, 자신들이 선택한 방법으로 인해 완전한 실패를 맛봐야 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무수한 세속적 욕망과 소유욕들 떨쳐내고 이로부터 격리되긴 했으나, 바로 그들이 이뤄냈다고 생각하는 성취감 속의 ‘자만’에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인”으로 추앙받게 된 듯한 느낌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장애물이었으며, 자신들을 뒤따르는 추종자들보다 더 높은 곳에 자신들이 놓여 있는 듯한 인상이 주는 자부심과 자기만족감에 사로잡히게 될 때, 그들은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되는 아집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겪는 곤궁한 생활이야말로 자만심의 근원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며, 비록 그들이 옳음을 행하기 위해 이렇게 되는 쪽을 선택한 것처럼 여길지라도, 이것은 오직 텅비고 헛된 영광의 외부적인 쇼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맙니다. 더 이상의 옳음과 선함은 남아 있지 않고, 오직 독선과 아집의 추한 그림자만이 남을 뿐인 것입니다.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위대한 외침을 표현해 냈지만, 그런 다음엔 이내 그렇게 표현된 바들을 파괴시켜 버리고 마는 자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자들은 말그대로 ‘동참’했다가, 다시 등을 돌려 버린 자들로서, 그들이 남긴 이 추한 행적에 따른 고통의 “짐”은 그들을 뒤따르는 다른 이들에게 지워지고 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장하는 자들은 애초부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됩니다?바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의 진실, 그리고 죽어없어질 “자아”가 반드시 져야할 책임을 직시하는 일에 실패하거나 또는 이를 거부함을 통해서, 사실상 처음부터 죄를 범한 꼴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심지어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뒤따르기를 주장하는 동안 만큼은 완전히 하나님을 향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는, 정작 봉사하려고 하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봉사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는 각 개개인들이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제시되는 어떤 설명들은 각 개인들의 옳은 판단을 교묘히 비껴 나갑니다?이 범죄를 행하는 자들이 여러가지 감언이설들을 늘어놓게 될 때, 그들을 따르는 자들은 완전히 눈먼 사람들처럼 그들을 추종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처음에 순수하게 주장했던 모든 것들을 완전히 잃어버릴 때까지, 이 맹목적 환상들을 계속 이끌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대개 파렴치한 말장난꾼이 되어버리거나 혹은 처음부터 아주 탐욕스러운 의도를 가진 행동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당신들에게 많은 예를 제시해 줄 수 있지만, 당신들은 이것말고라도 다른 많은 관심거리들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선[SELF-RIGHTEOUSNESS]


    인간으로 하여금, 초라하고 죽어없어질 “자아”에게 자만심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독선이며, 이것은 자기만이 옳다는 공허하고 메마른 주장인 것입니다. 한 인간이 처음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가난한 자들에게 내어줄 수도 있고, 또 자신의 몸을 희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그리스도적[Christ-like]’이고 이타적인 사랑이 없다면, 그러한 행위는 오직 공허하고 무가치한 것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 있어서, 초라하고 죽어없어질 개인적인 “자아”에 대한 만족감만을 가져다 줄 뿐인 ‘자만심’은 허락될 수 없습니다. “자아”가 극복되어지지 않는 한, 바로 이 초라한 “자아”는 인간의 길을 항상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위치, 또는 자신의 업적, 혹는 교회 권력층의 최상부에 위치한 자신의 고상한 지위로부터, 환호작약하는 기쁨을 느끼는 자라면, 그는 진정으로 겸손한 자는 아닙니다. 그가 이룬 업적이 무엇이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짐을 통해 “자아” 속에서 또 그 업적 속에서 자만심을 느끼는 한, 그는 ‘독선[self-righteousness]’이라는 초라하고 일그러진 옷을 자랑해 보이는 셈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는 오직, 자신이 입고 있는 긴 가운을 사랑하고, 대중들 앞에 나서서 인사하길 좋아하며, 식사 때마다 상석에 앉길 좋아하는 바리새[Pharisee]인의 자리를 하나 채우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자기 안에 독선[self-righteousness]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모든 진정한 옳음[all righteousness]’은 잃어 버리게 됩니다. 참된 옳음이란 모든 행동과 모든 생각에 있어, 하나님과 그분의 법칙을 최우선 순위에 둘 수 있는 역량입니다. 독선이란 초라하고 죽어없어질 “자아”만을 기쁘게 만들려는 끝없는 노력으로, “자아”가 갖는 허상에 찬 ‘중요성들’만을 부각시키려 하고, 그 평범한 업적과 성취들을 남들 앞에 자랑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독선은 하나님을 기쁘게 만들고 그 분을 영광되게 만드는 것보다, 초라하고 개인적인 “자아”를 기쁘게 만드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빼어난 인물이라고 여기고, 이같은 착각이 결국 자신이 이루어 온 바들을 모두 파괴시켜 버리고 마는 자들에게서 대개 독선이 발견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선이 이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독선은 보다 높은 곳을 향하는 길을 걸어 나아가는 모든 인간들에게 있어서도, 거의 매 순간순간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겸손하지 못하다면, 바로 자신들이 선택받은 자들이라는 헛된 느낌을 갖게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진정으로 “선택”받게 된다면, 그건 바로, 그가 가진 겸허함과 사랑때문인 것입니다. 독선과 겸손은 양립될 수 없습니다. ‘독선[self-righteousness]’과 ‘참된 옳음[righteousness]’은 서로서로에게 이방인들이자 적들로서 어떠한 공통점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들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만에 가득찬 자들은 모두 자기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지만 오직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 독선 속에서 자신이 부지불식간에 오직 어둠의 힘에 대한 봉사 속에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속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과 순수한 겸양과 하나님에 대한 영예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은 채로 행하는 모든 봉사는, 바로 하나님이 아닌 “자아”에 대한 봉사일 뿐입니다. 그 어느 누구라도 이 자만심에 찬 ‘자기 봉사’만을 하는 자는, 자신이 그럴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과는 상반되게, 더 이상 위쪽으로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아래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독선은 그 완전한 파괴력 때문에 대단히 위험한 것이지만, 사실상 모든 이들이 최소한 조금씩은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조금” 보유한 독선이, 진정한 겸손과 순수하고 사랑으로 가득찬 헌신으로 대체되지 못한다면, 이는 저 높은 곳에 마침내 이르려 하는 자라고 할지라도 다시 완전히 추락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 전체에 걸쳐서 이러한 예들은 무수히도 많은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주제로서 여기서 끝내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이 글을 받아 기록하는 서기에게는 너무 긴 하루였을 것입니다. 이 글을 끝맺기 전에 나는 아주 중요한 사항 한가지만을 더 추가하고자 합니다 : 그 어느 누구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부여한 소중한 권능을 자만과 거만을 떠는 데 사용하게 될 경우, 그는 이내 자기가 자신의 손을 면도 칼날 위에 올려 두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의 면도 칼날은 아버지[the Father]의 전지 가위와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 가위는 모든 죽고 썩은 가지들을 잘라 낼 것이며, 모든 불필요한 부분들을 제거해 나갈 것입니다. 농부의 손에 전지 가위가 들려 있는 한, 이 가지치기의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대단히 굴욕적일 것입니다. 그 당사자가, 진정으로 깨닫고 겸허한 이해를 갖게 되어, 젠체하고 거드름을 피워 왔지만 실상은 초라하고 죽어없어질 따름인 자아로 향해 있던 자신을 돌려 세워 하나님께 대한 복종으로 향하게 되기 전까지, 이 가지치기는 그가 겪어야할 가장 굴욕적인 경험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아플지언정, 한 개인이 자신의 손을 그렇게 면도 칼날 위에 올려둠을 마다하지 않게 될 때, 이는 실로 영광스런 작업이자 놀라운 성취로 이어질 것입니다. AHO!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87권, “In God’s Name Awaken!”, 제 8장, pp. 117-128.

    http://www.fourwinds10.com/journals/
    이 기사가 처음 게재된 포럼의 주제글: 주기와 진동, 영생의 비밀, 독선의 칼날 started by phoenix View original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