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나치의 남극 기지
  • 나치의 남극 기지

    비밀 단체


    히틀러[Hitler]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 역시도 다른 모든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해 형성되어진 인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툴레[Thule]’라고 부르는 비밀 단체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아리안 혈통의 백인종[the Arian white race]이 가장 뛰어나다는 인종적 우월주의에 바탕한 단체였습니다. 여기에는 노르만 문화[the Nordic culture]도 포함되는 것이었고, 또한 이 단체는 그린란드[Greenland]와 북극 및 남극 지역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툴레 소사이어티의 엠블렘은 스와스티카[swastika]와 끝이 아랫쪽을 향하도록 세워진 검, 그리고 떡갈나무 잎으로 만들어진 화환으로 구성되어져 있었습니다?이 모든 상징들은 후에 나치 독일[Nazi Germany]에서 사용되어졌습니다--스와스티카는 토착 인디언 문화에서는 “삶”의 상징한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나치 독일은 다양한 기술 분야에서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독일이 충분한 자연 자원과 인력만 확보되었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의 끝은 의심할 나위도 없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되어지는 바입니다.

    독일은 최초의 제트 전투기, 최초의 미사일 시스템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많은 다른 형태의 최첨단 무기들을 생산하였습니다.


    윈드 캐넌[The wind cannon]


    윈드 캐넌은 전쟁 말미에 독일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압축된 공기로 발포되는 대포였습니다. 또한 선 캐넌[the sun cannon]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 무기는 태양을 반사시켜 목표물을 태워버리는 무기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로켓 팩[rocket packs]이라는 것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은 사람이 그것을 입은 상태에서 제트 추진력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 로켓은 이를 장착한 사람이 50야드나 60야드의 거리를 한 번에 점프할 수 있도록 도와 줬습니다. 그들은 또한 B1과 B2로켓도 생산하였습니다. 독일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 제작의 선두주자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1942년에 만들어졌고, 바로 미국땅을 가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미사일을 쓰지 않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1940년에는 수직 이륙 비행기를 발명하였는데, 서구의 나라들은 요즘에 와서야 겨우 그런 비행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운드 캐넌[sound cannon]”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합시다. 이것이 제작되어 실용화단계에 이르렀던 것은 1943년 무렵이었습니다. 이 무기는 기본적으로 1배럴 부피의 연소실을 가졌고, 메탄과 산소를 연료로 썼습니다. 이것은 커다란 손상을 야기하는 폭발(음)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폭발 지점 100야드 안쪽에 있는 동물들은 즉시 사망하게 되고, 200야드 반경에 있는 부대 병력들은 수 시간동안 마비증상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설계단계에 있던 무기까지 포함하자면, 1945년 4월에 이르기까지, 독일은 150여종에 이르는 미사일과 로켓들을 만들어 냈고, 다양한 형태의 비행기들도 제작했던 것입니다.

    당시 설계도 상에 있던 것 중의 한가지는 나중에 보잉 747 점보 제트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믿기지 않을만큼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그들이 가진 기술 가운데는 날으는 원반 형태의 비행체[The Flying Disc.]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1940년 초반에 이러한 비행체들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비행체들에 대한 사진 자료들은 있지만, 이에 대한 물증은 전쟁 당시 연합군들에게 결코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의 기록에 따르자면, “UFO”프로젝트와 관련하여 5명의 주요 과학자들이 활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직경 65피트(약 19.5m) 정도의 원반 형태의 비행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연구와 관련된 사람들로는 벨론조[Bellonzo], 슈리버[Schriever], 미테[Miethe]가 있었고 여기에는 물론, 빅터 샤우버거[Victor Schauberger]도 있었습니다. 샤우버거가 개발한 원반, 또는 “날으는 모자[Flying Hat]”는 전자기적으로 동력을 얻는 방식[electro-magnetically powered]을 취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샤우버거 원반형 비행체의 사진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것이 미국에서 촬영된 UFO사진들 속의 비행체들과 정확히 똑같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비행체들은 소음이 없는 이륙과 함께, 정말로 놀라운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날으는 바퀴[flying wheels]’라고 불리는 디자인 방식을 채택했었고, 착륙시 쿠션 역할을 하는 에어백을 가진 비행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를 개발하는데, 몇가지 훌륭한 원형들[prototyes]을 가졌었는데, 이것들은 플레이아데스 디자인[Pleiadian design]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새터니언 비행체와 몇몇 레티큘럼 비행체[Saturnians and some Reticulum craft] 기술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최종 모델은 벨론조-슈리버-미테[Bellonzo-Schriever-Miethe] 디스쿠스[Diskus(Disc)]라고 불렸습니다. 이 원반형 비행체는 다양한 크기로 제작되었는데, 가장 큰 것으로는 직경이 135피트(40.5m)에서 225피트(67.5m)에 이르는 것까지 있었습니다. 기록으로 남겨진 실제 비행속도는 시속 2000km가 넘었습니다. 통상적인 로켓트가 내는 속도는 시속 4000km 정도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이처럼 발전된 비행체를 만들어 냈던 독일 과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자발적으로 그들의 기술을 제공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보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많은 독일 과학자들이 연합군에 의해 체포되었지만, 아무도 그들의 소재를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비행체 제작을 위한 시설들은 대개 지하에 있거나 혹는 구릉지 옆 동굴 형태의 참호 속에 있었습니다. 모든 시설들은 완전히 해체되었고, 어떠한 흔적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증거를 살펴봅시다.


    친애하는 자들이여, 지금 우리는 너절한 제작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45년에 만들어진 원반형 비행체는 4만 피트 고도까지 올라가는데 채 3분이 걸리지 않았으며, 비행속도는 시속 1300마일에 이르렀습니다. 당신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한가지 더 있다면, 독일인들은 오늘날 당신들이 델타 윙 크래프트[Delta Wing craft](삼각형 모양의 날개를 가진 비행체--역주)라고 부르는 비행체들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진보된 기술로 만들어진 비행체로 비교해 볼만한 게 있다면, 오늘날 당신들의 시선을 끄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스텔스기[the Stealth] 같은 것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스텔스기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핑계거리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할말이 많지만,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원반형 비행체들은 여러군데 지역에서 제작되었고, 모두 철저히 숨겨졌으며, 심지어 그 지역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눈에도 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행체 제작이 완료되고 나면, 즉시 이들을 다시 분해시킨 다음, 부품별로 선적하여 나라 밖 어딘가로 보내버렸던 것입니다--대개 해당 비행체의 조종사까지도 함께 보냈습니다. 비행체 분해의 명령은 항상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자신으로부터 직접 하달된 것이었습니다. 관련된 주요 과학자들은 단순히 사라져버릴 뿐이었습니다.

    전쟁 후 미국으로 건너갔던 독일 과학자들은 모두 UFO제작에 대해서 질문 공세를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주요 기술들의 누설 여부에 관한 소식들이 결코 대중들에게 알려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무렵 당신들은 핵폭탄을 보유하게 되기도 했는데, 사실, 폭탄 자체는 독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독일 상공을 비행했던 많은 파일럿들은 UFO 목격을 보고하곤 했습니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비록 그들이 UFO 앞에서 그저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 UFO로부터 직접 공격 받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독일이 항복한 다음, 똑같은 형태의 비행체들이 이번에는 일본 지역에서 많이 목격되었습니다.


    새로운 금속


    이같은 기술 개발이 왕성했던 시기에 나왔던 것으로 가장 독창적인 게 한가지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새로운 타입의 금속이었을 것입니다. 이 금속은 다이아몬드보다도 단단했습니다. 이 금속은 고온으로 가열되었을 때, 변화하는 무지개 빛을 냈습니다. 이 금속은 1936년, 처음 상업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상한 점이 한가지 있다면, 금속 색인표에 이 금속에 관해서는 어떠한 기록도 남겨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A-폭탄[The A-Bomb]


    1936년 9월 26일, 히틀러는 에자우 박사[Dr. Esau]에게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노르웨이의 점령과 더불어, 독일은 이전에 부족했던 중수(重水)[heavy water]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습니다. 중수로 가득 채워진 물 한 탱크라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시의 독일은 대단히 발전된 나라였던 것입니다. 커다란 의문점이 있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 모든 기술들을 개발해 낼 수 있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에 앞서 우선, 20세기 최고의 미스테리 가운데 한가지를 검토해 보도록 합시다. 아돌프 히틀러는 과연 자살 했던 것일까요, 아닐까요? 가장 대중적인 설명은 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스스로 총을 쏘아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사체는 곧 소각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 가장 중요한 목격자들이자 히틀러의 최측근들, 말하자면, 보어만[Bormann], 슈툼페거[Stumpfegger], 군셰[Gunsche]와 같은 자들 역시 두번 다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히틀러가 자살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다른 목격자들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아무도 이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히틀러의 사체도 결코 발견된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히틀러가 자살할 때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가구에 묻은 핏자국도 히틀러 자신의 혈액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말하자면, 히틀러가 자살했다고 믿을만한 그 어떤 구체적인 증거도 없는 셈입니다.

    나아가, 히틀러는 겁쟁이가 아니었으며, “굴복”이란 용납하지 않는 자였습니다. 그의 성격상 그는 결코 자살할 인물이 아니었는데, 예를 들어, 라이프치히[Leipzig] 시장과 그의 가족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히틀러는 자살은 비겁한 행위이자, ‘국가 사회주의(나치)[National Socialist]’의 이상에 결코 부합될 수 없는 일이라고 격렬히 비난하였습니다.

    히틀러 전용 비행기 조종사의 말에 따르자면, 1945년 5월 1일, 그는 히틀러와 보어만을 태우고, 노르웨이의 한 비행장으로 갔었다고 합니다. 나는 진실로 이것이 히틀러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또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고, 노르웨이 해안가의 또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이 조종사는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여, 히틀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에는 히틀러의 자살을 증언하는 쪽으로 말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연합군이 그린란드에 도착했을 때, 아주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노르웨이는 독일군에 대해 저항할 때보다가도 더 완강하게 연합군에 대한 저항을 보였습니다. 연합군이 마침내 그린란드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두 가지 정반대되는 상황에 놓여있는 기지들을 발견했습니다. 한 쪽은 완전히 버려지고 해체된 채로 내버려 둔 곳이었고, 다른 한 쪽은 최후의 순간까지 필사적인 저항을 보인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곳을 사수하던 병력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남아 있는 자라고는 없었습니다. 감쪽같이 모두가 다 사라져 버린 상태였습니다.

    ……
    ……


    비밀 나치 원정대


    나치의 기지가 위치한 곳으로 다시 눈을 돌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지역에 관하여, 히틀러는 전쟁이 벌어지기 훨씬 앞서 계획을 세웠었고, 장기적인 복안을 가졌었던 것입니다. 전쟁에 패하여 연합군에 의해 점령될 가능성, 그리고 이어지는 결과로서 독일 본토를 잃어버릴 가능성을 분명히 염두에 둔 채, 히틀러는 식민지로 쓸만한 땅을 미리서부터 탐색하고 다녔었는데, 그 당시, 남극이야말로 유일하게 영유권이 주장되지 않던 땅이었던 것입니다. 신속한 조치를 취하여, 히틀러는 남극 원정대를 구성하였고, 이에 대한 준비는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원정대는 몇 대의 선박들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에 최소 두 대 이상은 비행기들을 가득 실은 배였습니다. 이 배들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형태보다 훨씬 더 큰 규모였고, 물 위에 뜨는 장비를 갖춘 비행기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들은 배의 한 쪽 끝에 있는 회전식 경사로를 통해 로켓을 발사하듯 쏘아 올려지는 이륙방식에 따라 설계된 비행기들이었으며, 물 위에 있는 비행기는 크레인을 이용하여 회수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비밀 나치 원정대는 릿셔 함장[Kapitan Ritshcer]에 의해 지휘되었고, 1937년부터 1938년에 걸쳐 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원정대는 퀸 모드 랜드 지역[the area of Queen Maud Land]에 도착한 후, 전초기지를 세웠습니다. 남극 대륙의 거대한 지역을 탐사하는 데는, 특별하게 고안된 밀고 당기는 방식의 프로펠러[pusher-puller propellers]가 장착된, 도니어-발 타입[Dornier-Wal type]의, 커다란 수상 비행기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지도 작성의 목적에만 11,000장이 넘는 사진들이 촬영되었습니다. 탐사 지역에 대한 독일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하여, 매 20km에 이르는 곳마다 스와스티카 깃발을 꽂았으며, 이는 전체 600,000 평방 킬로미터를 넘는 영역을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독일이 자신의 영유권을 주장하게 된 지역은 독일 본토보다도 더 컸을 뿐만 아니라, 보다 주목할만한 사실이 있다면, 얼음이 없는 오아시스들(따뜻한 수온의 호수들)도 원정대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도 4000미터가 넘는 알프스 산맥 같은 산악지대와 함께 이들 호수들도 모두 촬영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탐사된 지역에는 독일식 이름이 붙여졌는데, 오늘날 당신들이 보게 되는, “릿셔 깁펠[Ritshcer Gipfel]” 또는 “릿셔 봉우리[Ritshcer Peak]”와 같은 이름은 바로 이 원정대 대장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것입니다. 영구적인 얼음들 사이에 존재하는 뜨거운 오아시스들은 “쉴마허 젠 플라테[Schirmacher Seen Platte]”, 즉 “쉴마허 호수 그룹[Schirmacher Lake Group]”으로 불렸습니다. 이 호수들은 또한 때때로 “무지개 호수들[Rainbow Lakes]”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남극 대륙 내륙에 위치한 이 호수들은 제각각 다른 색상을 가진 듯 보였는데, 그 이유는 단물 속에 부유한 채로 서식하고 있는 조류들의 색상이 변화할 때, 호수의 색상도 함께 변화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호수들은 수영복을 입고 바로 들어가 수영할 수도 있을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남극에 있는 비밀 기지들의 존재에 대한 신뢰성을 더해주는 것으로, 전쟁 발발시, 요아힘 폰 리벤트롭[Joachim von Ribbentrop]의 언급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장기간에 걸친 전략에 부합할 수 있도록, 우리는, 필요할 때 안전한 퇴각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슈바비아[New Swabia](새로운 슈바벤란트[New Schwabenland])라 불리는 남극 지역을 이미 우리 수중에 넣고 있다.”

    만약 당신이 남극의 독일 영유 지역을 미국의 영토와 비교해 본다면, 오히려 미국땅보다도 더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남극을 비밀 기지로 삼기에 이상적인 장소로 만들어 주는 또다른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녹이 슬지 않으며, 세균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에, 결과적으로 거의 질병이 나타날 수 없고, 부식현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음식은 거의 영구적으로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남아 있게 되는데, 왜냐하면 남극 지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냉장고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 스코트[Scott](로버트 팔콘 스콧[Robert Falcon Scott](1868-1912) : 영국탐험가, 남극점 정복 후 돌아오던 도중 사망--역주)는 불운하게 끝맺어졌던 자신의 남극 원정을 떠나기 전에 작은 오두막을 하나 만들었었는데, 이것이 최근에 발견되었습니다. 무려 7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오두막 속에 남겨져 있는 음식들은, 마치 막 남극에 도착했을 때 가져온 음식처럼, 여전히 신선하고 또 바로 먹을 수 있는 채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나무로된 상자들, 양철 캔들, 컵들, 초와 종이들(사실상 거의 모든 것들)도, 마치 시간이 멈춰진 것처럼, 마찬가지로 잘 보존되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남극에는 파리도 없고, 벌레들도 없으며, 어떠한 세균들도 대륙표면의 차가운 온도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것입니다.


    20세기의 비밀?


    이 모든 일들이 과연 눈에 띄지 않은 채 20세기에 벌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럼 진실을 밝혀내는 데는 어떠한 노력들이 있었을까요? 오늘날 그 존재가 분명해졌고, 더 이상은 단지 의심의 수준을 넘어서버린, 이 나치의 비밀 기지들에 대해서 과연 어떤 조치들이 취해져 왔던 것일까요? 이 도저히 믿기지도 않는 일들에 대해서 왜 세상 사람들은 전혀 들은 바가 없는 것일까요? 정말로 의문을 가져볼만한 문제들이긴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면밀히 살펴봤었어야 할 때를, 당신들은 이미 넘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명백히 히틀러의 도주는 그 즉시 발각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스탈린[Stalin]이나 아이젠하워[Eisenhower]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했던 말들은 제정신이 아닌 채 한 언급들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the Nurnberg War Crimes Trials]이 열렸을 때에도, 나치 전범들은, 난공불락의 그들의 은거지로부터 “마지막 대대[The Last Battalion]”가 나타나 그들에게 ‘총통의 손길[The Fuhrer’s hand]’을 뻗어 구해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전형적인 볼셰비키 스타일의 재판[the typically-Bolshevik show trials]이 진행되었던 수개월 동안에, 사실은 엄청난 규모의 정예부대들이 뉘른베르크를 둘러싼 전 지역을 철저히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 가운데도, 재판이 진행되던 동안 독일 전역을 둘러싼 채, “철저한 안보” 유지 차원의 병력이 대거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나 신문기사를 본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몇몇 독일 비밀 경찰들은 나치 수뇌부들이 탈출하는 것을 도와주려 했다는 명목으로 체포되고, 재판받고, 유죄선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고문 속의 울부짖음과 이어지는 교수형이 끝날 때까지도, 총통[Fuhrer]은 더 이상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상공을 선회하는 몇몇 UFO들과 그 활동들이 보고되기는 했지만, 어떠한 실제적인 물리력의 충돌이나 이와 관련된 사건들이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워싱턴, 모스크바, 그리고 런던에서는 “행동에 착수”할 결심을 했습니다. 주요 8개국들은 “과학” 조사 연구의 목적으로, 남극 전역을 탐색하기로 한 것입니다!! 풍부한 자금 지원을 등에 업은 대규모의 원정대가 신속하게 구성되었습니다. 이 원정대는 미해군 병력 가운데 특별히 선정된 4,000명으로 이루어졌고, 8개월치의 식량이 준비되었습니다. 이 순수하게(?) “과학적인” 탐사활동을 위한 원정대는, 바이어드 제독[Admiral Byrd]의 통제 아래 있는 13척의 군함들로 구성되었고, 그 속엔 거의 대부분 군사용 무기들이 들어 있었으며, 단지 극소수 과학자들이 동승해 있을 뿐이었습니다.

    1946년 12월 2일, 미국의 남극 전투 부대는 버지니아주 노어포크[Norfolk, Va.]를 출항했습니다.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눠진 이 전투부대에는, 바이어드 제독의 지휘통제선이었던 “마운트 올림푸스[The Mount Olympus]”호, 얼음 파쇄선 “노스윈드[Northwind]”호, 투석선[the catapult ship] “파인 아일랜드[Pine Island]”호, 파괴선 “브라운센[Brownsen]”호, 비행기 운반선 “필리핀 씨[Philippines Sea]”호, 잠수함 “센네트[Sennet]” 그리고 두 대의 보조 선박, “양키[Yankee]”호와 “메릭[Merrick]”호가 있었으며, 이에 더해, 두 대의 물자 운반선 “캐니스티드[Canisted]”호와 “캐퍼캔[Capacan]”호, 그리고 추가적인 수상 비행기 운반선 “커리터크[Currituck]”호와 파괴선 “핸더슨[Henderson]”호가 있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영국과 노르웨이는 두 나라간 연합 부대의 파병을 알리고, ‘바이아 마르그리트[Bahia Marguerite]’를 둘러싼 남극 바다에서의 지원 업무를 맡기로 했습니다. 소련 역시도 이 “연구 활동(?)”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남극의 미국 호위함들


    소련의 참가는 흥미로운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늘 “철의 장막[Iron Curtain]” 문제를 거론해 왔었으며, 또한 그는 유럽에서 “십자군들(연합군들)이 그만 엉뚱한 돼지를 죽였다[They killed the wrong pig]”고 느껴왔던 터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히 처칠은 제 2차 대전 중에 정작 쳐부수어야 했을 대상은 독일이 아닌 볼셰비키의 러시아였다는 점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대중들(당신들)에게는 “연구” 임무[“RESEARCH” mission]의 목적이 현지에 있는 우라늄 광산 탐사과 날씨 연구에 있다고만 알려졌습니다. 바이어드 제독은, 보다 작은 규모이고 단기간에 이루어졌던 것이지만, 이미 북극에서 유사한 임무를 맡았던 적이 있었기에 이 중무장한 남극관찰 캠프 설치 임무에 추천되었던 것입니다. 한 때, 그는 1947년 7월 7일 칠레 산티아고[Santiago, Chile]의 엘 메르쿠리오[El Mercurio]지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왜냐하면 우리와 우리의 적들 사이에 남극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라는 대답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중심축이 될만한 적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고, 이미 그들의 “무조건적인 항복”이 있었던[“unconditionally surrendered”] 만큼, 도대체 어떤 적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뒤따랐지만, 그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남극 원정의 임무가 단지 과학연구 활동 뿐만이 아니라, “남극에 주둔해 있는 어떤 외부적인 무장 세력의 활동을 관찰하는 임무”도 포함되어 있었음이 곧 알려졌습니다. 원정대의 이러한 활동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적으로 이어지자, 바이어드 제독은 결국엔, “만약 우리가 퀸 모드 랜드 지역[the Queen Maud Land region] 내, ‘새로운 슈바벤란트[New Schwabenland]’ 안에 있는, 아돌프 히틀러의 ‘노이베르히테스가덴[Neuberchtesgaden]’에서 그를 정말로 발견해 낼 수만 있게 된다면, 그의 최후의 필사적인 저항을 물리치기 위함이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대답입니까!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바이어드 제독의 원정대에는 최신 기계장치들도 구비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한가지는 바로, 열-자기 탐색기[thermo-magnetic detectors]였습니다.

    미국의 원정대는 힘겨운 여정 끝에, 남극에 도착하였습니다. 원정대는 물론 최신 군사 무기와 장비 및 정예 부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최신식 군용 수송기, 헬리콥터, 그리고 수상 비행기들이 있었습니다. 탐색용 비행기들이 남극 전역에 걸쳐 보내졌고, 수천장의 사진들이 촬영되었으며, 지도제작 업무도 뒤따랐습니다.

    비행기들 가운데는 특히 눈에 띄는 비행기가 한 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바이어드 제독 자신이 직접 탑승한 비행기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계기판들이 완전히 미친듯이 움직였고, 비행 상태 측정기[the performance gauges]와 고도계[altimeters]도 제멋대로 돌게 되어, 바이어드 제독의 비행기는 거의 추락 직전까지 몰렸지만, 시계(視界)만에 의존한 조종[“visual” control]을 통해 겨우 본부로 되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열린 공간으로 되돌아 나오자 마자, 계기판들은 정상을 회복했습니다.

    바이어드 제독은 나치의 비밀 기지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고, 그것이 간파되었다는 보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이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그들은 기지들 가운데 단 하나를 발견했을 뿐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비행 이상 사고가 발생했던 그 곳으로부터 인접한 지역이었는데, 바이어드 제독은 그 부근에다 성조기를 떨어뜨리는 대신에, 폭탄을 한두어개를 떨어뜨렸습니다. 물론 이것은 바로 히틀러에게 그가 자신의 비밀 기지[Shangri-la] 안에서도 결코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시위였습니다.


    보복


    저런,, 그들이 어떤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요? 복수는 신속했고, 총통은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48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바이어드 제독은 곧 네 대의 비행기를 잃었는데, 그 중 어떤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다른 비행기들의 경우에도 생존자란 없었습니다. 바이어드 제독은 급히 모든 임무를 포기한 채, 부랴부랴 남극에서 철수했고, 전력을 다해 고국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복귀에 따른 기자 회견


    지휘선 “올림푸스”호 선상에서 가진 인터뷰 내용은, 1947년 3월 5일 칠레, 산티아고, 엘 메르쿠리오지에 스페인어로 번역되어 보도되었습니다. “공해 상의 올림푸스 호 선상에서”라는 헤드라인으로 신문의 첫면을 장식했던 기사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바이어드 제독은 오늘 적대적인 지역에 맞서 미국이 즉각적인 방어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지적했다. 제독은 나아가, 자신은 아무도 갑작스레 놀라게 만들고 싶진 않지만, 만약 새로운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는 처참한 현실로 이어질 것인데, 왜냐하면 바로 지구의 한 극에서 다른 한 극까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속도로 날아다니는 비행 물체들에 의해 미본토가 공격당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보다 앞서 그는 북극 지방에서의 방어 기지 건설을 권고한 바 있었다.) 국제 통신사들과의 기자회견을 갖기 전에 가진 이 인터뷰에서, 바이어드 제독은 북극과 남극 지방에서 자신이 습득하게 된 개인적인 경험들을 근거로, 위와 같은 관점을 누차에 걸쳐 피력했다.”

    이 기자회견 동안, 제독은 또한, 급속히 협소해져만 가는 세계에서, 미국은 더 이상 그 고립적인 위치로부터, 또는 극지방과 대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리적 거리로부터 어떠한 안전도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독은 “남극대륙 전체를 방어시설이 완비된 벽으로 둘러싸야 할 것이고, 이는 항상 면밀히 감시해야 할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이 미국의 방어를 위한 마지노선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자신의 확신에 찬 믿음에 따라 주장했습니다. (그 이후로 이 같은 방어 조치는 취해졌습니다.) 바이어드 제독은 나아가 현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서 아무도 자신보다 더 정확한 설명을 제공해 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왜냐하면 바로 제독 자신이 최첨단 과학기술로 된 장비들을 직접 실전에 투입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스스로 목격하게 되었던 비밀무기들과 자신의 보유 장비들간의 직접적인 비교를 해 볼 수 있었으며, 현재 그가 알게 된 바들은 바로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결과라고 했습니다.

    바이어드 제독이 미국으로 되돌아 왔을 때, 그는 자신이 알게된 것들의 심각성을 기자 회견을 통해 밝혔지만, 그는 이내 미스터리하게도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가 발설한 어떠한 정보들도 결코 알려지지 못했고, 그가 남미 언론을 통해서 밝힌 내용들 그리고 올림푸스 호 선상에서 말한 내용들 역시도 워싱턴의 권력층에 의해 묵살되어졌습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려진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지금껏 내가 당신들에게 이 글을 통해서 설명한, 그의 원정에서 있었던 실제적인 몇가지 사건들일 뿐인 것입니다.

    그는 바로 미확인 비행 물체들와 그러한 물체들이 보유한 놀라운 역량을 목격하면서 갖게된 자신의 정직한 믿음으로 인하여, 긴 명단으로 이어지는 희생자들, 모종의 내부 세력으로부터 제거[“removed from circurlation”]된 수많은 유명인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당신들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주요 결론들 속에서 놀라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1. 제 2차 세계대전의 최종적인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장군이자 전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의 언급 속에도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제 2차 세계대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바이어드 제독의 경고성 언급이었던, “새로운 전쟁이 발발할 경우”라는 말을 통해서도 이 사실은 보강되어질 수 있습니다. ‘히틀러의 마지막 대대[Hitler’s Last Battalion]’는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어떤 대재난 속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는[the tip of the scale]” 황금 찬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바로 이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2. 히틀러는 연합군과의 전쟁 중, 유럽의 여러군데에 위치한 자신의 본부들을 방어해 냈듯이, 바이어드 제독에 대항해, 자신의 비밀 은신처도 성공적으로 방어해 냈습니다. 바이어드는 퇴각할 수 밖에 없었고, UFO와 그들의 비밀 무기들의 우수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3. 1945년 이래로, 한국전과 베트남전을 비롯 모두 50여개가 넘는 국지전들이 있었지만, 사실상 이는 ‘마지막 대대[the Last Battalion]’의 때이른 출현[a premature “showing of hands”]을 위한 도발적 성격도 가졌던 것입니다.

    4. “새로운 제 3 제국[The “New Third Reich”]”은 제 2차 세계 대전의 적대국들에 대항한, 중요한 시간적, 기술적 우위를 점해 온 것입니다?그러한 우위는 분명 점점 더 증가되어져 왔습니다.

    5. 이상주의(정신)는 물질주의(돈)에 대해 이미 승리를 거두었는데, 왜냐하면 독일 본토는 파괴되었을지언정, 국가 사회주의(나치)의 이상[the ideology of National Socialism]은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UFO의 진정한 실체에 대해서, 또는 이에 대한 많은 사건들 가운데 상당 부분들에 대해서, 지능적인 은폐, 그리고 그보다 더 자주, 완력적인 은폐가 행해져 왔던 것입니다. UFO의 출처는 알려졌으나, 바로 1939년에서 45년 사이 있었던 이 ‘성스럽지 못한 동맹[the Unholy Alliance]’의 지도자들에 의해 고의로 감춰져 온 것입니다.

    7. 제정신이 아닌 듯한 UFO 은폐, 그렇지만 이제는 그 실체가 점차 드러나고 있는 UFO 은폐의 진짜 이유이자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건 대부분의 UFO들이 바로 독일인들이 만든 UFO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동서에 걸친 동맹국들[The Allies in East and West]은 자국민들에게 나치의 야만적이고 가학적인 행위들에 대해 너무나 많은 거짓말들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점차 알려져 가면서, 그들은 이제, 국민들로 온통 둘러싸인 채, 만연한 패닉 상태 속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가도, 나치가 아직까지 존재한다면, 언젠가 그들이 복수를 하는 것이 논리적이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UFO의 힘을 빌어 그렇게 할까요? 이제쯤 스와스티카가 상징하는 것의 실제 의미를 되새겨봄이 어떨까요? 삶은 계속되고 끝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제 3제국’을 찬양하고 미화하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스와스티카가 바로 삶을 의미한다는 것일 뿐입니다. 친구들이여, 아직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다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왜 UFO를 은폐하는 것일까요?


    지난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세상의 상상력이 풍부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UFO문제가 나오기만 하면 그들의 정부가 취하는 “이상한” 행동들에 대해 무척이나 의아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만약 UFO가 외계로부터 날아온 것들이고, 지구상의 인간들은 이에 대한 어떠한 방어력도 보유하지 못한 상태라면, 도대체 왜 이들을 향해 “격추 명령”같은 것을 함부로 내려서 이들을 보다 더 자극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미소 두나라가 계속적으로 완벽한 공조체제를 보인다는 것도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1970년대에 소련 공군은 몽골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비밀 UFO기지를 발견한 적이 있었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가 이루어진 바가 있었습니다. 소련인들은 그들의 야만적인 스타일에 따라, 지상의 모든 곳들을 폭격하고 불태워 버렸습니다. 이 사실은 비엔나에서 간행된 한 신문 지면에, 외교관인 A. 슈나이더[Dipl. Ing, A. Schneider]가 남긴 글로서 기록되어졌습니다. 1974년 9월 14일 토요일자, K. 디 악투엘레 제리어 P.a.[K. Die aktuelle Serie, P.a.]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져 있었습니다 :

    "…이어지는 놀랄만한 보고는 오늘 소련으로부터 전해진 내용이다 : 1970년 4월 24일 모스크바[Moscow]에서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로 향하던, 비밀 임무를 띤 초음속 제트폭격기 한 대가 시베리아 상공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지상 통제소와 파일럿 간의 교신은 갑자기 끊기고 말았다. 마지막 교신이 있었던 곳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에 걸친 면밀한 탐색을 위해, 200여대가 넘는 비행기 편대가 이내 구성되었다. 그런데 거의 동시적으로 많은 수의 파일럿들은, “여기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위로 대략 25대 혹은 그 이상의 비행물체들이 있다. 그들은 대단히 크고, 또 너무 높이 날고 있어서, 우리는 그들 가까이에 접근할 수 없다”라고 지상 통제소에 보고해 왔다. 같은 날 오후, 크라스노야르스크[Krasnojarsk]에는 적색 경보가 발령되었고, 부대 병력이 출동하여 도시 내에 전개되었는데, 왜냐하면 완전한 전열을 갖춘 이 은색의 조용한 방문자들이 이 곳 성지의 하늘 위에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소련-중국-몽골의 접경지대의 하늘 위를 빽빽히 채우고 있는 이 수백대에 이르는 날으는 원반들을 향해서 결국엔 대규모의 지대공 미사일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 이상한 침략자들은, 모든 비행체들이 드나드는 것으로 추정되는 울란 바토르[Ulan Bator]의 마을 쪽을 향해, 일련의 조화로운 행동 양상을 보였다. 바로 그 “UFO 침략”이 벌어졌을 당시, 마침 그 곳을 방문했던 한 무리의 독일 학생들로 구성된 여행 그룹의 대변인은 몽골에서 돌아온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소련은 수마일에 이르는 지하 터널로 된 UFO 기지와 몽골 북쪽에 위치한 수십개의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물들 거의 대부분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사진 자료도, 어떠한 기록물도 남겨져 있지 않다. 소련인들은 항상 아주 비밀스럽게만 행동하는 것이다."

    남극으로부터 서둘러 퇴각한 후, 바이어드 제독은 양쪽 극지방을 고리모양으로 둘러싸는 주둔 부대를 설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계획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 남극 대륙을 원자 폭탄 실험 구역으로 지정해서, “실험용” 원자 폭탄과 수소 폭탄들을 모두 그곳에 떨어뜨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부정확한 정보원으로부터 나온 말입니다?그러한 제안을 한 것은 바이어드 제독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그러한 계획을 비난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러한 계획이 제안되자마자,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에는 공식 방문객들이 찾아 왔습니다. 의회 의사당 건물과 백악관 근처를 둘러싸며, 완벽한 포메이션을 구성했던, 거대한 UFO “떼[swarm]”가 들이닥친 장면을 찍은 역사적 사진을 본 적이 없는 UFO 탐구가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남극을 핵실험 지역으로 삼자는 아이디어는, 이 사건 이후로 결코 두번 다시는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세계 전체에 걸쳐 수백건의 UFO 목격 사례가 보고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과 한국에서는 UFO가 비물질화되어 사라지는 예들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 이 UFO들은 항상 모습을 간간히 드러내기만 하고, 도대체 착륙은 하지 않는 것일까?” 기타등등. 글쎄요, 사람들이 보일 공포 반응 그리고 당분간은 거짓이 계속 유지되어져야할 필요성등을 고려해 본다면?함부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정말로 그다지 안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이것은 실제로 외계에서 온 방문객들 뿐만 아니라, 실제 외계의 비행체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UFO 은폐는 이 ‘신성하지 못한 동맹’의 다른 행위들, 가령, 카틴에서의 킬홀 작전[Operation Keelhaul at Katyn](1940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카틴 숲에서 벌어진 25,700명에 이르는 폴란드인 학살 사건--역주) 또는 드레스덴[Dresden]이나 히로시마[Hiroshima]에서 벌어졌던 그러한 대량 살륙 사건들에 비견될만한 일일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정부기관들”이 내놓는 UFO에 관한 설명들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고 대들 것 같으면, 그런 사람들은 이내 추적당하고, 중상모략당하고, 그리고 거의 매일같이 박해에 시달리게 된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단지 이 글을 받아쓰는 우리의 서기들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바로 이러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자들도 그런 것입니다.

    ……
    ……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13권, “Sekletons In The Closet”, 제 9장, pp.112-116 & 제 11장, pp. 127-135.


    http://www.fourwinds10.com/journals/
    이 기사가 처음 게재된 포럼의 주제글: 나치의 남극 기지 started by phoenix View original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