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저널, Phoenix Journals - 제013권, 포클랜드 전쟁의 내막
  • 제013권, 포클랜드 전쟁의 내막


    제 13장, 기록 #1 하톤
    1990년 3월 31일 토요일, 7:30 A.M. 3년 227일

    ......

    몇가지 사실들과 이야기들, 그리고 감춰진 비밀들[dirty laundry]에 대해
    알아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배경이 되는 장소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우선 당신들은 1982년 4월의 기억들로 되돌아가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포클랜드 제도[the Falkland Islands]와 남 조지아 섬[South Georgia Island] 그리고 이 황량하기 그지없고, 바람만이 휘몰아치는 버려진 섬들을 두고 펼쳐졌던 아르헨티나와 영국간의 전쟁이 벌어졌던 시기로 되돌아가 보십시오. 그런데, 그 섬들이 뭐가 문제였냐구요? 오, 친애하는 자들이여, 이제 당신들이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는 ‘엄청난 부분’을 채워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부분들’을 다 다룰만한 여유는 없습니다. 내가 지금 당신들에게 전해 주려는 정보는 몇몇 그룹들에게는 대단히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결코 알려진 적이 없는 내용입니다.--당신들 일반 국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막을 알고 있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이 정보를 접하게 된다면, 그들은 결국 내 서술이 진실임을 당신들에게 확신시켜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모든 사건들은 이 황량한 섬들을 두고 아르헨티나와 영국간에 있었던 영토 분쟁일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 왔다면, 분명코 당신은 그 어떤 것도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같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당신들은 당신들이 믿어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지시 받아 왔으며, 충실하게 그러한 명령에 순응해 왔던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포클랜드 위기는 거대한 군사 작전에 있어서 그저 눈에 드러나 보이는 작은 일부분일 뿐이었습니다. 1982년 4월 한 달 동안 격렬한 해상 전투가 펼쳐졌던 건, 남 대서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남 태평양에서도 발생했습니다.

    분쟁에 개입했던 모든 나라들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미국은 아주 분명히 여기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전시 검열 규정에 따라, 교전 행위와 관련된 실제 이야기를 전하는 자들은 구금되었습니다.

    4월 30일, 영국 해군에 의해 포클랜드 섬을 둘러싼 전면적인 해상 및 영공 봉쇄가 시작되었습니다. 동시에 아르헨티나는 이 동일 영역을 대상으로 봉쇄 파괴를 선언했던 것입니다.

    효과적인 조치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봉쇄가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영국 해군은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남 대서양에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고, 영국 보급선[supply lines]은 지나치게 확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여왕 폐하의 명령을 수행하는 영국 해군이, 아르헨티나와의 교전도 없이 그저 봉쇄를 해제하고, 몇 주 동안 몸을 피해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영국군들은 어떠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대단히 신속하게 군사 작전을 펼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 해군은 아르헨티나와의 교전 이외에는 다른 선택을 가질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란, 영국군은 같은 달 있었던 ‘비밀 전투’에서 이미 상당한 손실을 입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개적으로 영국이 “전투가 발발했다”고 선언했던 때, 영국은 이미 그 전에 있었던 (비밀) 전투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아가 커버-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영국은 전투에 뛰어드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영국은 이미 당한 손실에다 더 큰 손실을 더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여왕 폐하의 해군은 함정에 걸려들었던 것입니다.

    남 대서양에서 펼쳐졌던 사건들은 당신들의 과거에 대한 이상하고도 아이러니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4주 동안 당신들은 무수한 평론가들이 작전에 참여한 영국 해군을 “무적 함대[armada]”라고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영국인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지칭은 아주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원래의 ‘무적 함대’는 약 400년 전 스페인의 해군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이들은 거의 패배를 모르는 전력을 가졌었지만, 그들에게 닥친 재앙을 겪은 후로, 역사의 물줄기조차 완전히 바뀌고 말았던 것입니다.--당시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무찌른 것은 다른 아닌 영국 해군이었던 것입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Queen Elizabeth I]가 통치하던 1588년, 스페인의 오리지널 무적함대는 바다로 나갔습니다. 수천 명의 전투병들을 태운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영국을 침략하기 위해 출격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프란시스 드레이크 경[Sir Francis Drake]이 이끄는 용감한 ‘바다의 개들[sea dogs]’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드레이크 경과 그가 이끄는 작고 빠른 배들은 교전 수칙을 어겨가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상대로 전세를 역전시켰던 것입니다. 영국의 함대들은 사정거리가 확대된 새로운 총포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맞바람을 안고 떠 있었으며, 스페인의 배들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영국의 군함들은 스페인 무적 함대의 거대한 배들을 두들기고, 부수며, 산산조각 냈던 것입니다. 전투가 끝났을 때, 스페인 군함들 가운데 겨우 절반 정도만이 ‘다리를 절며’ 항구로 되돌아 갔던 것입니다.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상대로 한 드레이크 경의 승리는 세상 전체에 충격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은 엘리자베스 1세 치하의 영국이 진정한 세계 제국 건설을 위한 팽창을 시작하게 되는 문을 활짝 열어 주었던 것입니다.

    400년이 지난 후, 역사는 마치 한 번의 주기를 돌고 난 것처럼 보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시작되었던 영국의 전성기와 세계 제국이 해체되는 것을 목격했으며, 이제 영국의 문화와 스페인의 문화는 다시금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소위 말하는 ‘무적 함대’가 침략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이번의 무적 함대는 스페인의 무적 함대가 아닌 영국의 무적 함대였던 것입니다. 400년 전 프란시스 드레이크 경이 당시의 영웅이었다면, 이번에는 ‘프란시스 드레이크의 귀신’이 다시 한 번 출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 대서양 전쟁은 남미의 남쪽 끝을 지나는 드레이크 해협[Drake Passage]의 동쪽 끝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부디 주목해 보기 바랍니다. 400년 전 스페인 무적 함대의 패배는 스페인의 바다에서의 주도권을 끝장내고 말았는데, 오늘날 새로운 영국 무적 함대의 패배는 어쩌면 한 때 영광스러웠던 영국 해군의 시대를 종결시키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남 조지아 섬[South Georgia Island]의 군사 비밀

    4월초 포클랜드 섬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처음에는 그저 찻잔 속 소용돌이 정도로만 보였습니다. 1833년 이래로 이 섬들은 1세기 반이 넘도록 영국에 의해 통제되어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포클랜드 섬에 관한 영국의 주권은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에 의해 끝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아르헨티나 쪽에서는 말비나스[Malvinas]라고 부르는 이 섬을, 아르헨티나가 차지하려는 위협들이 무수히 많이 있어 왔지만, 그러한 위협들은 항상 그다지 대단치 않은 것들이었고, 영국은 이러한 시도들에 큰 관심을 둔 적도 결코 없었습니다.

    섬들은 쿠바가 미국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의 약 4배 정도 아르헨티나로부터 떨어져 있는데, 어떤 측면에서 바라 보더라도, 섬을 소유하는 것이 그렇게 큰 실익을 주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150년이 넘는 점령 기간 동안, 포클랜드 제도에는 채 2,000명도 안 되는 영국 정착민들과 많은 배들, 그리고 몇몇 사랑스러운 펭귄들만이 있었습니다. 요컨대, 멀리 떨어져 있는 포클랜드 제도는 결코 이를 두고 싸워야 될 것처럼 보이는 땅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지금도 또 다른 위기가 도래할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 곳인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지켜보았듯이, 뉴스 매체들을 통해 아주 대서특필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 곳에서는 말 그대로 영국과 아르헨티나간의 총격전이 실제로 발생했던 것입니다.

    대처 정부[the Thatcher government]는 NATO의 문 앞에서 소련의 위협이 고조될 때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 지를 마치 그 동안 잊고 있었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갑자기 영국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전력을 다 투입했습니다. 항공모함[aircraft carriers], 순양함[cruisers], 구축함[destroyers], 잠수함, 강습상륙함[assault ships] 등 활용 가능한 모든 전력을 다 썼던 것입니다. 심지어 호화로운 크루즈 선박들도 투입되어, 하루 아침에 병력 운반선으로 개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도 여러 차례에 걸쳐 계속해서 추가적인 군 병력이, 처음 파견된 함대들의 지원 목적으로 보내졌습니다. 군함과 잠수함들은 일반적인 NATO 임무를 수행할 때에 비해 기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지만, 이 특별 임무에 파견된 함대를 강화시킬 목적으로 계속 보내졌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40여대의 군함이 투입되었지만, 몇 주에 걸쳐 그 수는 계속 늘어나 무적 함대를 이루는 군함은 70척을 넘게 되었습니다. 영국 전 해군 병력의 3분의 2이상이 이미 아르헨티나 근해의 남 대서양에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병력 전개를 지켜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 이 전쟁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에 대해 메이저 언론사들이 제시하는 가장 인기있는 대답은 “석유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제도 사이의(또는 그보다 더 나아간 곳까지의) 대륙붕 아래에는 거대한 유전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이러한 주장은 10여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르헨티나가 그렇게 급작스럽게 군사 공격을 감행한 부분은 설명될 수 없었고, 나아가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제도를 넘어 남 조지아 섬을 뺏으려고 노력한 것은 석유를 이유로 설명되기에는 보다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남 조지아 섬은 포클랜드 제도로부터도 약 800마일 더 동쪽에 떨어져 있었고, 그 근처에는 어떠한 유전도 알려진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 조지아 섬에 비교해 보자면, 포클랜드는 거의 파라다이스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남 조지아 섬은 울퉁불퉁한 산들과 위험한 계곡들, 빙하, 그리고 만년설이 뒤덮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이 섬의 대부분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아르헨티나는 남 조지아 섬에 대해서는 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어떠한 영유권도 주장할 만한 근거가 결코 없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남 조지아 섬은 포클랜드 제도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습니다.

    183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의 개척자들이 포클랜드 제도를 얼마 동안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833년 영국인들이 이들을 모두 내쫓고, 이 섬들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 말고도 여러 가지 역사적 이유들로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제도가 실제로 영국이 아닌 아르헨티나에 속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식의 주장도 남 조지아 섬에 대해서는 제기될 수 없었습니다. 이 섬은 항상 영국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아르헨티나도 혹은 스페인도 이 섬을 차지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르헨티나가 남 조지아 섬을 차지하는 것은 군사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심지어 비합리적인 일로 보이기조차 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지도자들은 군 출신들이었고, 그렇기에 군사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컸는데, 이러한 사실은 당신들 독자들에게 어쩌면 커다란 힌트를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남 조지아 섬은 설령 손에 넣는다손 치더라도 오랫동안 소유할 수도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잠깐 동안 섬을 차지하더라도, 영국이 섬을 재탈환하게 될 때, 그들은 패배를 피해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남습니다. : 그럼 왜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겉보기에 무가치해 보이는 남 조지아 섬을 손에 넣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단 말인가?

    이 모든 의문들에 대한 대답은 물론, 정치적인 이유도, 경제적인 이유도 아닌, 군사적인 이유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남 조지아 섬에는 엄청난 군사 비밀이 있습니다! 이 섬의 북서쪽 자락에는 산맥들 밑으로 거대한 지하 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포클랜드 위기의 진짜 이유는 이 비밀 시설과 관련되어 있었고, 또한 유사한 다른 비밀 시설 두 군데와도 관련이 있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할 예정입니다.

    비밀 군사 시설들은 여러 해에 걸쳐 존재해 왔습니다. : 이들은 새로운 것들이 아닙니다. 새로운 것이 있다면, 그건 워싱턴 D.C.에 있는 아메리칸 볼셰비키 전쟁 입안자들[American Bolshevik war planners](‘시오니스트, 볼셰비키, 그리고 록펠러 카르텔’ 참조--역주)의 핵 전쟁 계획이 보다 앞당겨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달 앞서 작성되었던 핵 전쟁의 상세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밖으로 새어 나갔으며, 이것은 유출되자마자 사실임이 확인될 수 있었습니다.

    제 1차 핵 전쟁[NUCLEAR WAR ONE]이라 불리는 계획은 1982년 9월에 발발할 예정이었습니다.빠르게 다가오는 핵 전쟁 위협이 소위 말하는 포클랜드 전쟁이 바로 그 무렵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란, 볼셰비키들이 꾸미는 다가오는 핵 전쟁을 위한 대 전략의 일부를 서로 잘 조정된 노력을 통해 망쳐 놓으려는 시도였습니다. 미국 내에서 아메리칸 볼셰비키들과 서로 대적했던 세력은 바로 록펠러 카르텔이었습니다.--그리고 크레믈린에 있는 러시아의 새로운 지도자들도 포클랜드 위기의 배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프로젝트 Z[PROJECT Z]”의 제 3단계[Phase #3] 전략이 노출된 이래로 이를 망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부디 이 사실들을 확인해 보십시오.

    제 3단계는 러시아와 미국 양쪽 모두가 제 1차 핵 전쟁으로 파괴되고 난 다음에,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에 의한 세계 지배 단계를 의미했습니다. 이 계획은 세계의 다양한 장소에 흩어져 있는 비밀 무기고들이 건재하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했고, 이것이 열쇠였습니다!

    미국에 있는 아메리칸 볼셰비키 군사 계획 입안자들은 이와 같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다른 나라 군부 핵심 직위에 있는 여타 볼셰비키 앞잡이들과의 공동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난 후에,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핵 홀로코스트를 피해, 안전하고 편안한 정부내 전쟁 벙커 시설에 머물려고 했습니다! 전쟁을 겪게 될 국가들이 마침내 모든 전력을 소진하고 피어 오르는 연기 속에서 완전히 뻗어 눕게 되었을 때, 볼셰비키들은 자신들이 거점으로 삼아왔으나, 폐허와 잿더미로 변한 국가들을 떠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비밀 무기 시설에 다시 모여 자신들의 비밀 무기들을 끄집어 내는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최신식이자 최강의 무기들을 갖고 이 세계와 대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군사력을 이용하여, 그들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이 세상의 지배자들이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계획했고, 그 해 4월에서부터 불과 몇 달 떨어지지 않은 시점에 제 1차 핵 전쟁을 일으켜--기억하십시오, 앞서 그 시점이 9월이라고 했습니다!-- 세계 지배를 위한 평탄 대로를 깔려고 계획했던 것입니다.

    록펠러 카르텔과 러시아의 새로운 반-볼셰비키 통치자들은 볼셰비키들의 전쟁 계획을 막아 내기위해 최대한 분주히 움직이며, 공동 작업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미국내 볼셰비키들은 이미 록펠러 카르텔이 오래 전에 시작했었던 전쟁 준비의 덕을 보고 있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 소속의 인물들이 볼셰비키들에 의해 미국 정부내 주요 직위에서 축출된 지는 겨우 3년 정도가 지났을 뿐이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미국 정부는 볼셰비키와 록펠러 카르텔이라는 두 라이벌간의 내부적 권력 투쟁으로 분열되고 쪼개져 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미국은 수십 년에 걸쳐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록펠러 4형제에 의해 지배되어 왔었던 것입니다.

    1961년 록펠러 형제들은 세계 지배를 위한 새로운 장기 플랜을 마련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나눠지는 전략이었는데, 하나는 보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이 글에 앞서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이 계획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겉보기에는 서서히 무장해제시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비밀리에는 철저한 완전 무장을 지향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구체적인 설명까지 다시 되풀이하는 대신에 기본적인 개념만을 언급하자면, 이 계획은 실로 장대한 것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단순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이 배후 조종하는 미국을 고의로 약해 보이도록 만든 다음, 러시아와의 핵 전쟁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슈퍼-무기들[super-weapons]을 포함한 비밀 무기들을 끄집어 내어 러시아를 박살내고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록펠러 형제들이 이 그랜드 플랜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에 착수했던 1961년, 그들은 핵 전쟁을 1970년대 말 정도에는 일으킬 계획이었습니다. 그들의 군사문제 분석가들은 아주 일찍부터, 계획된 전쟁은 지구의 북반구와 남반구에 전혀 다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미국, 소련과 같은 슈퍼 파워 국가들은 모두 북반구에 위치해 있었고, 핵무기를 보유한 다른 국가들--영국, 프랑스, 공산 중국, 그리고 인도--도 모두 북반구에 있는 나라들이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반구에서는 핵 전쟁시의 전략적 목표 지점들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또 서로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다가올 핵 전쟁이 본질적으로 북반구만의 핵 전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했던 것입니다.

    전면적인 핵 전쟁 홀로코스트 속에서는, 심각한 방사능 낙진들이 점차적으로 퍼져나가 전쟁 당시 공격을 받지 않는 지점들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쟁으로 생겨난 핵구름들이 얼마나 멀리 퍼져나가느냐에 그 한계가 달려 있었습니다. 아주 옛날부터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대기는 거의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당신들의 행성의 북반구 안에서는, 북극 근처에서 생긴 차가운 공기가 처음에는 적도를 향한 남쪽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적도 부근의 뜨거운 공기 때문에 다시 되밀려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꼭 마찬가지로, 거울 속 이미지와도 같은 반대 현상이 남반구에서도 발생하는 것입니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공기는 적도 부근에서 만나지만, 이 공기들은 서로 거의 자리를 바꾸지 않습니다.

    이에 따른 군사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가올 핵 전쟁은 북반구 대부분의 지역을 향후 수 세대에 걸쳐 폐허로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나, 만약 계산이 정확하다면, 남반구는 사실상 전쟁으로부터 거의 영향받지 않고 화를 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록펠러 4형제들에게 있어서는 듣기 좋은 노랫소리와도 같았습니다. 지구를 잠깐만 살펴보면, 이것이 앞뒤가 맞아 들어가는 계산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록펠러 카르텔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쭉 라틴 아메리카를 지배해 왔습니다. 앞선 저널들에서 이미 다루었듯이, 넬슨 록펠러[Nelson Rockefeller]는 제 2차 대전 기간 동안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시켰습니다. 그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 시절, 소위 말하는 “반구 방어 조정자[Coordinator of Hemispheric Defense]”로서 이 일을 성취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는 남미 대륙과 그 자연 자원의 관리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아프리카로 눈을 돌려 봅시다. 이 곳에서도 역시 록펠러의 통제력은 이미 블랙 아프리카의 광범위한 지역, 특히 적도 이남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이 모두는 존 D. 록펠러 3세[John D. Rockefeller]의 노력 덕분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앞서 다른 저널에서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다시 지구 전체로 눈을 돌려 보면, 세계 지배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남아 있는 곳 중에서 가장 중요한 땅 덩어리는 호주와 뉴질랜드입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덕택에, 두 곳 모두 록펠러 카르텔에게는 완전히 개방된 지역이었습니다.

    록펠러 형제들은 다가올 전쟁 ‘이후에’ 사용할 목적으로 남반구에 비밀 군사 기지들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전쟁이 끝난 후, 행성 지구의 온전한 남쪽 절반을 독차지하는 지배자들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 그리고 북반구가 핵전쟁의 홀로코스트로부터 서서히 회복되고 나면, 록펠러 제국은 이 지역을 거저 주워 담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 3세대 록펠러 형제들은 자신들의 가문이 지구를 유산으로 물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전쟁 이후 남반구를 군사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남반구 어디를 대상으로라도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예를 들어, 록펠러의 지배에 저항한 폭동이라도 일어난다고 한다면, 이를 막기 위한 군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달에서 빔 무기를 사용해서 이들을 제압하는 방식이 아닌 한.(이것은 또 다른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미국은 1977년을 기점으로 달의 빔 무기 기지들을 러시아에 빼앗기게 됨, ‘가이아나, 존스타운 사건의 실체’, ‘러시아의 우주 패권’ 참조--역주)

    전쟁 이후 세계를 군사적으로 지배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해군이었습니다! 최소 두 개의 비밀 해군 함대가 필요했습니다.--하나는 남 대서양에 거점을 두고, 다른 하나는 남 태평양에 거점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예비적 목적의 해군 함대에 관한 비밀이, 북반구의 핵 전쟁 이후까지 지켜지기 위해서는, 이 군함들이 현존하는 조선소에서 건조될 수는 없었습니다. 새로운 건조 시설들이 지어져야 했고, 또한 숨겨져야만 했습니다. 조선소 전체를 숨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공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에 더해 배들이 만들어진 후에도 이 군함들은 숨겨진 채로 보존되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필요성들을 충족시키는 최고의 방법은, 조선소와 해군 기지의 역할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대단위 비밀 시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밀 해군 시설은 핵 공격에도 손상되지 않아야만 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만약 이 시설의 존재가 너무 빨리 간파되어 버린다면, 비밀 해군 계획은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비밀스러워야 하고, 공간이 넓으며, 핵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해야 한다는 요구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켜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1959년의 어느 날, 이러한 모든 계획들이 아직 초기 입안 단계에 머물러 있을 무렵, 답이 알아서 나타났던 것입니다.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는 은행가들간의 그룹 여행의 일환으로 스웨덴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투어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스웨덴의 유일한 비밀 군항[hidden naval port]을 견학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항구는 바다와 맞닿아 있는 견고한 화강암 절벽으로부터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었습니다. 절벽 한 쪽 면에 나 있는 거대한 구멍이 항구의 입구였으며, 이 곳은 엄청나게 큰 철문으로 봉쇄될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빈 공간이 있었고, 이 움푹하게 들어간 장소에 배들이 정박되어 있었습니다.

    록펠러 형제들과 그들의 군사 참모들은 보다 크고, 보다 비밀스럽고, 보다 안전한 형태의 스웨덴식 비밀 항구가 바로 그들이 원하는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다음 후보지들에 대한 조사를 착수했습니다. 남반구 전체에 걸친 해안 지역들이 후보지였습니다. 많은 장소들이 적절치 못한 지형으로 인해 신속히 배제되었습니다. 어떤 지역들은 적도로부터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역시 배제되었습니다. 또 어떤 장소들은 인근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살고 있어, 희망하는 수준의 비밀 유지가 불가능할 것 같아서 배제되었습니다. 끝으로 비밀 해군 시설이 들어서야 할 장소는 정치적인 안전이 전적으로 보장되는 것도 필수적이었습니다.

    마침내, 비밀 해군 시설이 들어설 장소들이 선발되었습니다. 남 태평양에서는 뉴질랜드의 최남단이 선택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뉴질랜드는 다가올 전쟁 동안 극도로 중요한 곳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비밀 뉴질랜드 해군 시설은 인접해 있는 두 장소들로 나뉘어져야 했습니다. 한 군데는 뉴질랜드 남쪽 섬[South Island]의 남서 지역 최첨단부로 이 곳에는 남반구의 알프스라고 알려진 산맥이 바닷가 가장자리로 꺾어 떨어지는 곳이었습니다. 다른 한 곳의 시설은 스튜어트 섬[Stewart Island]의 북서쪽 끝 부분으로, 이 곳은 남쪽 섬[South Island]의 끝자락으로부터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스튜어트 우스카브드 시설[the Stewart Uskabd facility]은 앙글렘 산[Mt. Anglem]으로 알려진 봉우리 안 쪽에 있었습니다.

    뉴질랜드의 장소는 모든 요구 조건들을 다 충족시켰습니다. 또한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뉴질랜드 정부는 심지어 영국보다 미국과 보다 가까운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비밀 장소는 적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시설들은 산맥 안쪽에 깊숙이 묻혀 있었으며, 핵 공격으로부터도 보호될 수 있었습니다. 이 곳은 또한 너무 깊어서 입자-빔 무기를 이용한 공격이 닿을 수도 없었습니다. 뉴질랜드의 시설은 남 태평양 전체를 지휘하기에 너무나도 적절한 장소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남 대서양에서는 그보다도 더 완벽한 장소가 발견되었습니다. 친구들이여, 이 곳이 바로 남 조지아 섬[South Georgia Island]이었던 것입니다. 남 조지아 섬은 해군력으로 남 대서양 전체를 지배하기에 완벽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높고 거친 산들은 100마일 길이의 섬의 북서쪽 끝자락에 있는 비밀 시설을 은폐하기에 완벽한 환경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 섬은 영국 지배하에 있었는데, 영국 정부는 뉴질랜드와 마찬가지로 기꺼이 협력할 용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 조지아 섬은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 포경 기지[whaling station]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포경 기지는 당시 지어지고 있던 새로운 비밀 기지와는 약 50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기에, 그 곳의 영국인들 가운데 누구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나아가 1965년에는 이 포경 기지가 폐쇄되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남 조지아 섬은 십 여명 남짓의, 소위 말하는 남극 연구 과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살지 않는 섬이 되었습니다.

    비밀 해군 시설의 건설--뉴질랜드의 두 곳과 남 조지아 섬의 한 곳--은 1960년대 초에 시작되었습니다. 콜로라도주 샤이엔 산[Cheyenne Mountain, Colorado] 안에 있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의 시설과 같은 거대 지하 시설을 건설할 때 사용된 기술들이 적용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잘 보호된 지하 시설들이 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다루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시설들과 여기 적용된 기술들은 육지가 아닌 바다를 통한 건설 작업이었기에,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써야 했습니다. 또 그 과정에 있어서, 주변의 산들은, 건설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또 그 이후에도, 겉보기에 크게 눈에 띄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작은 배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산의 한 쪽 면이 잘렸지만, 잘 위장되었습니다. 또한 스웨덴의 비밀 해군 항구와 마찬가지로, 비밀 시설의 출입구는 잘 봉쇄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출입구를 봉쇄했을 때, 당신이 정확히 그 곳이 어딘지를 알지 않는 이상은, 사실상 그 위치를 간파해 내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와는 달리, 불필요한 주목을 끌지 않기 위해서, 골재나 여러 가지 바위 잔해물 더미와 같은 것들을 주변에 쌓아 둘 수도 없었습니다. 비밀 해군 시설이 들어서는 인공 동굴은 어마어마한 규모였지만, 모든 바위나 잔해물들은 전부 바다에 버려졌습니다.

    건설되는 비밀 해군 시설 안에는 배 건조용 시설은 물론 화물 보관을 위한 부두가 등이 모두 갖춰져 있어야 했습니다. 1960년대 미국이 취했던 가짜 군축[the fake disarmament] 조치들이 이 일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61년에서 1968년간 이러한 록펠러의 계획을 공들여 수행해 내는데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였습니다. 1960년대 내내 맥나마라는 가시적인 미국의 군사력 축소 작업을 진두지휘했습니다. 그 중에는 조선소들을 통째로 폐쇄하고 해체하는 작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이 전해 듣지 못한 것이 있다면, 이렇게 해체된 조선소의 장비들이 이후 어디로 갔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이여, 이렇게 해체된 장비들이 바로 당시 구축 중이었던 뉴질랜드와 남 조지아 섬의 새로운 비밀 시설들로 옮겨갔던 것입니다!

    비밀 해군 시설들은 미국에서 생산된 배와 잠수함들을 그대로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 복사판 시설들로 만들어졌습니다. 캐스퍼 와인버거[Caspar Weinberger] 국방장관이 의회에서 언급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 “한 번에 배 두 척을 건조하는 것이 보다 싸게 듭니다.” 만약 두 번째 만든 배가 첫 번째 만든 배의 정확한 복제품일 경우, 이러한 주장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특히 최근에 사용하게 된 컴퓨터 제작 기술을 적용할 경우, 이 진술은 더더욱 사실이 됩니다.

    비밀 해군 시설들에서 건조되는 비밀 해군 함대들은 복제품들로 구성되는 것입니다.--몇몇 특정의 배와 잠수함들은 정확히 똑같은 복제품들입니다. 이들 모두는 핵-발전을 기반으로 하는 핵-잠수함들[nuclear-“subs”], 핵-순양함들[nuclear cruisers], 핵-구축함들[nuclear destroyers], 그리고 핵-항공모함들[nuclear aircraft carriers]인 것입니다. 최소 셋 중에 하나는 그런 사양들인 것입니다. 미 해군 니미츠[Nimitz]호, 아이젠하워[Eisenhower]호, 칼 빈센트[Carl Vincent]호는 모두 비밀 쌍둥이 군함들이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배를 만드는 데는 모두 엄청난 비용 초과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이 국방부로부터 늘 듣는 말이지만, 일급 비밀로 지정된 것에 관한 한 당신들은 어떠한 내용도 전해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총 세 대의 배들이 만들어져 왔고, 여기 제공되는 비행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행기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재원이 조달되었습니다.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의 해군 함대를 구성하는 배들도 모두 다른 핵-발전 군함들의 복제품들입니다. 그렇지만, 비밀 해군 함대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스텔스 프로그램[Stealth Program]”은 어쩌면 비행기에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들은 이를 목격해 왔습니다. 저런, 하지만, 너무나 많은 흥미로운 일들이 당신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발전된 형태의 전자기 비가시 보호막[electromagnetic invisibility shielding] 기술이 있습니다. 이 기술은 주위의 빛 파동을 왜곡시켜 먼 거리에서는 물체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유령 전투기[Phantom warplanes] 편대가 일급 비밀의 보호막 아래에서 신속히 제작되었습니다. 이 비행기들은 이 기술을 사용합니다.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의 비밀 해군 함대들은 모두 이미 유사한 스텔스-장 장치[Stealth-field equipment]를 갖추고 있습니다! 스텔스 기술은 사실 비행기보다 배에 적용하기가 더 쉬운데, 왜냐하면, 역장[the force field]을 만들어 내는 강력한 장치를 실을 공간이 비행기보다 배에서 더 많이 확보되기 때문입니다.

    제 1차 핵 전쟁이 끝나면,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의 비밀 스텔스 해군은 지구 상에 남아 있는 다른 어떤 해군보다 몇 광년[light years]은 더 앞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의도하는 세계 지배에 완벽하게 들어 맞는 것입니다. 록펠러 카르텔은 이 모두가 구동될 수 있는 셋팅을 오래 전에 해 두었습니다.--그러나 1979년경 그들은 미국 군대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지금 미국 군대를 지배하는 것은 아메리칸 볼셰비키들이며, 그들은 너무나도 분명히 전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쯤 남극에 있는 나치의 전쟁 무기들에 대해서 혹시 잊은 것은 아닙니까?(‘나치의 남극 기지’ 참조--역주)--이 역시 당신들이 한 번에 간파해 내기에는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들이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쿠퍼씨[Mr. Cooper], 그리고 서튼 박사[Dr. Sutton].--나는 당신들의 40년대를 장식했던 비밀들이 더 이상 그렇게 흥미롭지 않습니다. 나아가 “우주로부터 온 작은 그레이 외계인들[little gray men aliens from space]”이 지구를 지배하고 당신들을 노예로 삼을 것이라는 이야기에는 최소한의 흥미조차 없습니다. 당신들은 그보다는 차라리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당신들은 지금 둠스데이[DOOMSDAY]를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은 모두 잘 계획되고 완벽하게 조율된 것으로서, 우주로부터 온 작은 그레이 외계인들과는 아무런 상관조차 없는 일입니다!

    쿠퍼씨, 당신은 왜 계속해서 이 글의 서기를 귀찮게 하고 조소를 보내는 것이지요?? 당신은 당신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간의 특별한 관계에 따라, 혹은 당신의 양심에 따라, 세상 사람들을 “계몽[ENLIGHTENING]”시킬 목적의 다른 중요한 자료들을 숨겨 놓고 있기라도 한 것입니까?

    서튼 박사,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누군가가 입증해 보일 지도 모를 진술서에 대해서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는지요? 이는 실로 심각한 상황으로, 당신이 지금 국민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게임’이 멈춰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문자 그대로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두는 심각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톤이 사람들을 겁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하나님과 인류를 위해서라도 당신이 손을 떼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당신들에게 감히 진실을 전해 온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어 왔습니다. 이 글의 서기도 수 차례에 걸쳐 살해 협박을 받아 왔습니다.--당신들은 당신들 사이에 있는 악[evil]을 보호해 주는 일에 지치지도 않습니까? 당신들은 정말로, 거짓말들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가는 일을 즐기는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왜 계속 하나님을 비난하고, 왜 통찰력을 건네 줄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까? 당신들에게 주어지는 것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왜 그러는 것입니까?

    MJ-12(‘스페이스 게이트’ 참조--역주)와 관련된 자료들을 원합니까?--형이상학 커뮤니티[the metaphysical community]나 UFO 연구가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관련된 자료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렇지만, 그게 맞는 내용이라는 걸 보장해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아가, 당신들의 TV에 종종 등장하는 작은 그레이 외계인들의 모습은 단 한 조각의 진실도 제시해 보이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 서 있을 수 있고, 그 때 내 키는 9와 2분의 1 피트(2.89 미터--역주) 정도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설령 내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당신들은 여전히 이를 사기나 속임수쯤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분명코 당신들 모두가 안전하기를 기원합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살아 가는 한, 당신들은 이내 이러한 ‘선의의 바램’이 필요한 때를 맞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르마[Dharma]여, 우리 잠시 쉬도록 합시다. 나 자신 조차 종종 당신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과연 그런 정도의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일인지 의아스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팩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은 마지막 커튼이 드리우기 전에 말씀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완수해야만 하며, 당신들이 이 글들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당신들이 무엇을 하든, 그건 오롯이 당신들에게 달린 문제이며, 영원히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오직 당신들에게만 달린 문제가 될 것입니다. SALU, SALU, SALU. 부디 이 우주의 하나님[THE GOD OF THE UNIVERSE]이 당신들의 눈과 귀를 열게 하시기를 희망합니다. 그럼 그리 될 것입니다.

    빛의 마스터[the Radiant Master]에 대한 봉사를 행하며, 하톤은 대기 상태에 있습니다. 다르마여, 쉬기 바랍니다. 우리의 작업이 실로 너무 길었습니다. 주님[Adonai], 그리고 학생들이여, 감사합니다. 억압이 당신을 내리 누르도록 허락치 마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은 영겁의 유산이지, 물리적인 시간 속에서의 이 짧은 순간의 유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곁에 머무십시오, 그러면 안전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프라즈믹 보호막[plasmic shields]을 펼칠 수 있으며, 이것은 지구상의 인간들이 뚫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그럼, 그러할 것입니다.

    접속을 해제합니다. 주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앞에서 다루었던 문제들에 관한 논의를 다음 번에 재개할 것입니다.


    제 14장, 기록 #2 하톤
    1990년 3월 31일 토요일, 4:00 P.M. 3년 227일

    ......

    남반구에서의 비밀 해전[Secret Naval War]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며 설명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 우리는, 내가 앞 장에서 언급했던 “프로젝트 Z[PROJECT Z]”에 관해 논의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제 1차 핵전쟁을 위한 볼셰비키들의 새로운 3단계 전략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스케줄대로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우리가 남극 지역에 관한 언급에만 매달린다고 해서, 이야기를 엉뚱한 곳으로 몰고 가지는 않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당신들에게 진실을 전달함에 있어서 가장 뼈대가 되는 것은 남반구 “아래”와 “안”에서 발생한 모든 일들이었고, 무엇보다 이 저널의 제목(피닉스 저널 제 13권, ‘벽장 속의 해골들[Skeletons in the Closet]’--역주)과도 같은 일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측면들이 서로 얽혀 있기에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만 설명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상당히 힘든 일이긴 합니다.

    1982년의 계획은 아메리칸 볼셰비키 엘리트 그룹의 군사 입안자들이 기획했던 것으로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선제 핵 공격을 감행하고, 이에 따른 러시아와의 전면적인 열전의 전개였습니다.

    대학살이 발발하고 나면, 미국과 기타 몇몇 다른 나라들에 있는 볼셰비키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고, 사치품들도 잘 비축되어 있는, 편안한 전쟁 벙커로 안전하게 도피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제 1차 핵전쟁이 진퇴양난 속에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면, 그들은 잿더미가 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뒤로 하고, 떠날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대 전략 중 3단계 전략을 구동시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신들의 비밀 무기들, 특히 비밀 해군 병력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당신들도 짐작하다시피 그 때의 미국은 완전히 파멸되고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겠지만, 볼셰비키들의 눈에는 이러한 결과가 오히려 ‘많은 이유들’에 따라 ‘성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1982년 4월까지만 해도 핵 전쟁을 위한 타임테이블은 여전히 구동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 해 9월에 핵 전쟁을 시작할 작정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계획은 지속되어 1982년 9월 17일로 날짜까지 잡혀 있었습니다.

    볼셰비키들은 전쟁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을 살린 것이 있다면, 그건 볼셰비키들만이 이 레이스의 유일한 참가자는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구대천의 적들이 둘이나 있었는데, 양쪽 모두 볼셰비키들을 쓰러뜨리려고 작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미국 내에 있는 볼셰비키들의 적으로 록펠러 카르텔이었습니다. 다른 하나의 적은 러시아의 새로운 반-볼셰비키 지도층[the new anti-Bolsheviks ruling class]이었습니다. 볼셰비키들의 이 두 적들은 모두 갖가지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새로운 반-볼셰비키 연합은 훨씬 확고히 자리를 잡았지만, 1982년까지만 하더라도 록펠러 카르텔과 러시아간의 연합은 꽤나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1982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 미 헤이그[Haig] 국무장관과 소련 그로미코[Gromyko] 외무장관간의 회담이 이러한 연합 관계 결성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 해 4월과 5월,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포클랜드 위기”는 이들에게 있어서 현실이자, 당면 과제였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면, 록펠러 카르텔과 러시아간의 이 새로운 관계는, 최소한 그 당시에는, 진정한 의미의 동맹 관계로 보기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간에 해결해야만 할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양쪽 모두에게 있어서 보다 끔찍한 적이라고 할만한 ‘아메리칸 볼셰비키(미국내 볼셰비키)[the Bolsheviks in America]’ 문제부터 우선 처리하기 위해 잠시 휴전을 한 셈이었습니다.

    러시아인들과 록펠러 카르텔에게 있어서 최우선 순위는 볼셰비키들의 임박한 핵 전쟁 준비를 늦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 일을 해낼 수만 있다면, 몇 가지 정치적인 움직임들이 수반될 때, 시간은 록펠러 카르텔 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핵 전쟁의 시간표를 늦추는 것은 또한 추가적인 반-볼셰비키적 조치들이 수행될 수 있는 보다 많은 여유를 줄 수 있었습니다.

    록펠러-러시아 공동 계획 입안자들은 1982년 2월 중순까지 볼셰비키들에 대항하여 대단히 신속한 군사 행동을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 했습니다. 군사 행동 이외의 다른 어떤 조치도 여름이 가기 전에 핵 전쟁을 막아낼 수 있을 만큼 빠른 효과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프로젝트 Z” 전쟁 계획의 정확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록펠러 카르텔도 러시아도 몰랐습니다. 다만, 잘 준비되고 제대로 설정된 대강의 아웃라인만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볼셰비키들의 전쟁 계획 제 3단계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볼셰비키들이 통제하고 있는 남반구의 비밀 해군 시설과 군함들을 공격하고 망가뜨려 놓을 수 있을 만한 군사 행동이 고안되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록펠러 카르텔과 러시아는 서로간의 공동 작업에 바탕한 공격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는데, 이 계획은 결코 홀로는 수행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최초에 이 기지들을 만들고 통제했던 록펠러 카르텔은, 이 곳을 공격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들을 제공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엄청난 군사 장비들을 제공하여 실제로 이 공격이 실행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남대서양과 남태평양에 있는 비밀 군함들, 양쪽 모두를 공격하는 것이 이 계획 구상의 본질이었습니다. 둘 중 하나라도 고스란히 살아 남게 되면, 볼셰비키들의 전쟁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게 진행될 터였습니다.

    군사 전문가들은 뉴질랜드 시설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신속히 내렸습니다. 외부 세계로부터 비밀리에 공격을 수행해 낼 수 있을만한, 기습 부대나 잠수 부대, 또는 여타의 특수 부대들 간의 조합은 생각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뉴질랜드 기지에 대한 어떠한 공격도 록펠러 카르텔과 러시아가 피하려고 했던, 바로 그 전쟁을 즉시 촉발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남대서양에서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남 조지아 섬은 엄청난 자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킬레스 건’이기도 했습니다. 외부 세계로부터의 극단적인 격리 상태는 남 조지아 기지의 비밀성을 지켜줄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비밀 군사 공격도 가능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습니다. 열쇠는 아르헨티나와 또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에 놓여 있었습니다.

    포클랜드 전쟁

    지난 수 십 년간에 걸쳐 록펠러 카르텔은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지배해 왔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의 요원들이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와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포클랜드 섬 영유권을 둘러싼 역사적인 논쟁은 남 조지아 기지에 대한 공격을 용이하게 만들어 줄 음모이자, 군사적 커버 스토리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장군들은 상황에 대한 모든 설명들 전부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협력을 위한 유인의 일환으로 아르헨티나의 지도자들에게는 상당한 보상이 약속되었습니다. 그들은 전투가 끝나면, 포클랜드 제도가 아르헨티나의 손에 남게 될 것이라는 점을 보장받았습니다. 또한 영국 해군과 맞서는데 필요한 비밀 군사 원조도 제공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곤경에 처한 아르헨티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록펠러 카르텔은 거대한 해안 유전 개발도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군사적 조력뿐만 아니라 경제적 보상까지 겸비되자,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계획에 동의했습니다.

    그리하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아르헨티나는 3월 19일, 공동 공격 계획 제 1단계를 수행했습니다. 우선적으로, 일군의 아르헨티나 고철 판매상들이 남 조지아 섬내 버려져 있던 오래된 포경 기지로 들어 갔습니다. 그 곳에서 그들은 오래된 건물들을 해체하고 잔해들을 내다 팔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편, 그들은 작업장에다 아르헨티나 국기를 세워 두고 있었습니다. 남 조지아 섬에 대해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던 영국인들은 즉각적으로 정확히 예상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영국 남극 연구선 “인듀어런스[Endurance]” 호는 22명의 해병대원들을 싣고 해변에 나타나 이러한 상황을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그들은 고철상들을 몰아 내고, 아르헨티나 국기를 즉각 찢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정확히 기대한 바대로,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가, 지난 150년간이나 계속 되어 온 포클랜드 영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부상할 수 있을 만한, 입장을 밝히는 일로 발전되었습니다. 과거에 때때로 아르헨티나는 남 조지아 섬도 포클랜드 제도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왜냐하면 이 섬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영국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대단히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었지만, 실상 가장 편리한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지도자들로부터 그러한 주장을 듣는 것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일이었기에, 이러한 논란 자체는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어떠한 힌트도 제공해 주지 못했습니다.

    3월말 무렵, 아르헨티나 군부대는 포클랜드 공격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군 사령부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고 봤는데, 왜냐하면 과거에도 아르헨티나가 위협 작전을 펼친 적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단지 그러한 위협을 한 번 더 하려는 것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4월 2일 아르헨티나 부대는 예상치 못했던 일을 했습니다. 과거의 가짜 경고와는 달리, 이번에 그들은 실제로 포클랜드 제도를 공격하고 차지했던 것입니다. 아르헨티나가 내놓는 모든 공식 입장들은 포클랜드 제도가 자신들의 것이라는 오래된 역사적 주장만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추가적으로, 바로 다음 날에는 아르헨티나의 소규모 군부대가 멀리 떨어져 있던 남 조지아 섬까지 차지했던 것입니다. 부대 규모가 워낙 작아 처음 언뜻 보기에는 아르헨티나가 펼치는 부차적인 구경거리 정도로만 여겨졌습니다. 그렇지만, 22명의 영국 해병대가 전권을 위임받고 파견되었으며, 이들은 과학자들이라고 주장되는 13명으로 구성된 또 다른 그룹과 함께 힘을 모아 이들을 쫓아 냈습니다. 바로 이 시점이 록펠러 카르텔과 러시아 간의 공동 공격 계획에 따라, 아르헨티나가 ‘대가를 지불’ 받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굴착 장비 설치[Spudding in]”

    아르헨티나 군부대에 의한 고의적인 주의 분산 덕택에, 특수 기습 부대 팀이 전혀 간파되지 않은 채로 남 조지아 섬에 상륙할 수 있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이 제공한 기지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이 기습 부대는 거대한 빈 공간을 가진 비밀 기지 바로 위에 해당하는 산으로 이동했습니다. 록펠러 소속 부대원들은 특수 고속 드릴 장비를 설치했고, 러시아 소속 부대원들은 방어망 구축에 집중했습니다. 같은 날인 4월 3일 저녁 무렵, 런던의 고위 군 사령부는 마침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 차렸습니다. 남 조지아 비밀 기지는 사실상 이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공격받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록펠러-러시아 공동 부대는 산을 관통하여 내부의 오목한 빈 공간까지 닿을 수 있는 통로를 뚫고 있었습니다. 드릴이 거대한 비밀 해군 기지의 천장까지 뚫고 내려가는 것은 오직 시간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한 번 구멍이 뚫리고 나면 그 다음 단계는 명백했습니다. 록펠러-러시아 팀은 일련의 무기들을 그 안으로 집어 넣어 버리면 그만이었습니다. 최고의 추측 가운데 한 가지로 그 안에 독 가스를 집어 넣을 수도 있겠지요.--“추측[guess]”에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4월 3일 저녁, 영국 정부의 최고위층까지 전달된 충격파는 결코 설명되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대처 정부[the Thatcher government]는 소위 말하는 레이건 행정부[Reagan Administration]와 마찬가지로 볼셰비키 통제 아래에 있었습니다. 자, 러시아인들은 당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할 것인데, 그것은 총 한 방 쏘지 않는 방식이 될 것이다! 라고.

    그러한 이유로,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는 레이건 행정부가 러시아를 상대로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 항상 “나 역시[Me, too]”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태도는 그다지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 보십시오. 스팅거 미사일[Stinger missile]이 플로리다를 ‘들쑤셔’ 놓았던 사건(1990년 1월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소속의 4명이 미 플로리다에서 스팅거 미사일을 밀수하려다 FBI에 발각되어 체포된 사건--역주)에서도, 지난 12월 파나마 침공(미국은 1989년 12월 파나마 민주주의 보호, 마약거래 차단 등을 이유로 노리에가[Noriega]가 통치하던 파나마를 침공--역주)에 대해서도, 대처는 항상 “나는 미국의 입장에 동의하고 미국을 지지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던가요? 양국 정부는 자국 국민들에 대한 완전한 배신 속에 비밀 핵 전쟁 계획에 깊숙이 가담해 있었고, 4월 3일 저녁 갑자기 그들의 전쟁 계획이 ‘심각한 곤경에 빠져 있음[in deep, deep yogurt]’--나는 당신들이 상황을 이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즉시 대처 정부는 남 대서양으로 향할 영국의 무적 함대를 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두르는 것’이 지상과제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남 조지아 섬에서의 굴착 작업은 24시간 내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해군 기지 천장까지 관통하는 굴착 작업이 완료되는 데에는 약 3주 또는 4월 24일경이 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그렇지만, 최고의 배들을 사용하더라도 영국에서 남극 대륙까지 가는 것은 아주 오랜 시일이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만약 그 때까지 남 조지아 섬을 지원하지 못한다면, 비밀 시설은 비극적 운명을 맞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비밀 시설들 안에 주둔해 있는 부대들은 정황상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강력한 군함들은 독 안에 든 쥐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감히 독을 깨고 나와 싸울 수는 없었는데, 러시아 소속 기습 부대는 이들을 훨씬 능가하는 기술의 무기들과 핵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은 나치[Nazi]의 가장 가까운 비밀 조력자들이 누구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지금 유태인들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자들, 더군다나 시오니스트와 연계된 유태인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개의치 않는 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떠한 공격도 차단해 줄 수 있는 출입구를 열고 나오는 일은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4월 5일, 남 조지아 섬이 점령된 지 불과 이틀 후에, 약 40대의 군함들이 영국 항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날, 캐링턴 경[Lord Carrington]은 외무 장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공격 준비를 경시함으로써 록펠러의 공격 계획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사임이 강요되었습니다. 심지어 악[evil]의 무리들 조차도 자신들의 방식을 알아 볼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같은 날, 4월 5일, 다른 비밀 해군 기지를 보유하고 있던 뉴질랜드는 아르헨티나와 외교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두 군데의 비밀 시설들에 대해서는 “적색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농담이 아닙니다). 예방적 조치로, 두 기지 안에 있던 잠수함들은 바다로 나가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몇몇 군함들도 “해상 시운전”을 명목으로 이미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7대의 주요 군함들은 여전히 비밀 해군 기지 안에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핵 항공모함들도 있었습니다.

    이 분주했던 4월 5일, 아르헨티나 외무 장관, 코스타 멘데스[Costa Mendez]는 뉴욕 UN 본부에 있었습니다. 정신을 좀 차리십시오, 독자들이여. 가서 이와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한 번 찾아 보십시오.--그저 뒤로 물러 서서 나를 정신이상자라고 비난만 하지 마십시오.--가서 스스로의 힘으로 한 번 찾아 보십시오.

    멘데스는 영국 해군이 대규모로 움직이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코스타 멘데스는 몇몇 미국 관리들로부터 재보증을 받기 위해 서둘러 워싱턴으로 달려갔습니다. 물론 그는 모든 약속들을 새로 보장받았습니다!

    이어지는 2주 이상의 기간 동안, 협상이 진행중인 가운데 천천히 이동 중일 것으로 여겨지는 영국 함대에 관한 이야기들이 뉴스를 도배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식들은 위장용 뉴스들에 불과했습니다. 영국 해군은 실제로 잘 규합된 채,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남 조지아 섬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비밀 기지를 구하기 위한 기동 부대가 만약 제 시간에 도착했다면, 주요 전투는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영국 무적 함대의 “느린 이동”과 관련한 ‘공식적인 뉴스’들은 전투에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 의도된 뉴스들이었습니다. 필요하다면, 영국 함대는 남 조지아 섬을 탈환하는 데에 몇 일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고, 그런 다음에 포클랜드 섬으로 가도 공식적으로 알려진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그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남 조지아 섬 문제는 은폐될 수 있었고, 엄청난 비밀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진보된 무기 체계를 갖춘 영국 함대가 남 조지아 섬 근처에 2주 안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되었습니다. 이들은 곧 록펠러-러시아 연합 기습 부대를 공격하고, 굴착 작업이 완수되기 전에 이를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러시아 코스모스페어들[Russian Cosmospheres](‘미 우주왕복선과 러시안 코스모스페어’ 참조--역주)과 잠수함들이 계획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핵심 군함[key ship]의 파괴

    남 조지아 섬 공격을 위한 진보한 무기 체계를 갖춘 핵심 군함이 4월 14일 이른 아침, 어센션 섬[Ascension Island](남 대서양 적도 근처에 위치한 화산섬으로 영국령--역주)을 떠났습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날보다 이틀 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군함은 출항하자마자 곤경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남 조지아 섬에서의 반격을 위한 결정적인 카드가 될 수 있었던 이 군함 주위로 러시아 코스모스페어들과 공격용 잠수함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코스모스페어들은 이 군함의 함교[bridge]와 전투 정보 센터를 향해 중성자 방사[neutron radiation]를 쏟아 부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선박내의 어떠한 명령 시스템도 구동되지 않았고, 통신과 레이더 망도 멎어 버렸습니다. 그 때, 러시아의 잠수함들이 접근하여, 영국의 이 핵심 군함을 어뢰로 신속하게 공격했습니다. 군함은 파괴되었으며, 2차적인 폭발과 함께 빠르게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생존자는 없었습니다.

    대서양 한 복판에서 발생한 이 예기치 못한 충격은 두 가지 결과를 야기했습니다. 두 가지 모두 매우 중요했습니다. : 첫째, 이 사건은 영국 무적 함대의 남 대서양으로의 출격 속도를 늦추게 되었습니다. 기동 부대는 ‘항해 중 방어력’을 보강해 줄 수 있도록 재편성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대가로 귀중한 시간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런던으로부터의 공식 발표도 함대의 진출 속도가 늦어지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포클랜드 근처 전투 현장까지의 도착 시간도 점점 더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두는 남 조지아 섬에 있는 록펠러-러시아 연합 기습 부대 팀에게 여분의 시간을 벌어다 줬습니다. 그리고 굴착 작업은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핵심 전함의 침몰이 가져다 준 또 다른 결과도 중요했습니다. 남 태평양의 스텔스 해군[Stealth navy]에게도 출격 준비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대서양에서 러시아 해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이 명백했고, 이는 영국 해군이 커다란 곤란에 처하게 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 4월 15일 이른 새벽, 칠흑같이 어두운 밤, 남부 뉴질랜드의 비밀 기지 두 곳으로부터 7대의 스텔스 군함들이 출항했습니다. 그들은 비밀 작전 기지가 위치해 있는, 뉴질랜드로부터 남동쪽으로 450마일 떨어져 있는 안티포즈 섬[Antipodes Islands]으로 향했습니다. 이 군함들은 외부 공격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한 전자기 장[electromagnetic shields]을 구동중이었습니다. 이 전자기장은 외부 세계와의 교신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이 장이 구동중일 때는 심지어 바깥을 내다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안티포즈 섬에 도착했을 때, 이 스텔스 군함들은 섬 본부와 이어주는 기능을 하는, 방어막이 장착된 통신 케이블들이 매달린 부표(부이)들[buoys]에 연결되었습니다. 섬 본부는 또한, 남 아메리카 대륙 끝자락을 지나 태평양과 대서양을 이어주는 케이블을 통해, 남 조지아 섬의 기지와 지속적인 연락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남 태평양의 스텔스 함대들이 전개되는 것은 록펠러 카르텔과 러시아간의 공동 계획 입안자들이 정확히 기대했던 일이었습니다. 이 군함들은 뉴질랜드에 있는 사실상 무적의 은거지로부터 튀어 나왔던 것입니다!

    4월 14일에 발생한 영국 군함의 침몰 사건 이후 또 다른 사건들이 이어졌습니다. 4월 15일, 아르헨티나 해군은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날,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당시 미 국무장관. 레이건 정부 초대 국무장관으로 1981년 1월 22일부터 1982년 7월 5일까지 역임--역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다시 도착했습니다. 그는 외교관으로서 그 곳을 방문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장군들을 통솔하는 장군’으로서 갔던 것이었습니다. 헤이그는 정부 최고위층에서 활동하는 록펠러 카르텔 소속의 스파이였습니다. 헤이그는 아르헨티나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얼어 붙거나 뒤로 물러서는 일이 없도록, 그들을 확신시켜 주고 있었습니다. 4일 후인 4월 19일, 헤이그는 워싱턴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가 비행기에 탔을 때, 헤이그는 우울한 보고를 받았는데, “시간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친구들이여, 그렇습니다. 그건 남 조지아 섬의 비밀 기지를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음 번에 글을 쓸 때, 헤이그 장군[General Haig]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입니다.

    메마른 구멍(마른 우물, 허탕의 의미--역주)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4월 20일, 굴착 작업은 마침내 해군 기지의 커다란 공동의 천장을 뚫었습니다. 런던에 있는 볼셰비키 군사 전문가들은, 당초 최소한 다음 주 주말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 봤었기에 이렇게 빠른 시점은 예상치 못했던 것입니다. 영국 함대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연합 기습 부대 팀이 긴 구멍 안으로 집어 넣은 무기는 작고 컴팩트한 디자인의 러시아산 중성자 폭탄[Russian Neutron Bomb]이었습니다. 거대한 인공 동굴과도 같았던 기지 안에서 폭탄이 폭발했을 때, 그 여파는 물론 완전한 재앙 수준이었습니다. 강력한 방사 에너지가 즉각적으로 기지 안의 모든 사람들을 다 죽였습니다. 또한 폭탄의 열과 폭발력은 기지 안에 있는 모든 군함들 전부를 파괴시키고 망가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러시아 코스모스페어들과 잠수함들은 안티포즈 섬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스텔스 군함들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 이 군함들은 눈으로 볼 수도 없었고, 또한 빔-무기 공격으로부터도 보호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러시아의 전술에 말려든 ‘앉아 있는 오리 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최후의 일격

    코스모스페어들은 7대의 군함들 머리 위에 떠 있었으며, PRF라고 알려진 사이코에너지 범위-검색 장비[Psychoenergetic Range-Finding equipment](레이더와 같은 재래식 검색 방식이 아닌 목표물의 원자 신호를 탐지하는 방식, ‘미 우주왕복선과 러시안 코스모스페어’ 참조--역주)를 이용하여 이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PRF 검색 방식을 회피할 수 있는 어떠한 수단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코스모스페어들은 공격용 잠수함들에게 군함들의 정확한 위치 정보를 전송해 주었습니다. 잠수함들은 자동 유도 방식도 아니고, 핵무기 탑재 방식도 아닌, 폭발 충격만을 배가시켜 주는 형태로 설계된 특수한 어뢰들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자동 유도 방식과 같은 어뢰들은 경로를 벗어날 수도 있었고, 각각의 군함들이 보유한 보호 막에 의해 선박에 닿기도 전에 폭발할 수도 있었지만, 이 심플한 형태의 어뢰들은 비가시막을 뚫고 똑바로 날아가 선박을 공격하고 폭발시킬 수 있었습니다. 공격이 시작된 후 15분 안에, 모두 7대의 볼셰비키 스텔스 군함들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이 배들과 함께 볼셰비키 사령관들과 또한 전 세계 곳곳에서 불러다 모은 용병들로 구성된 승무원들도 같이 가라앉았습니다.

    남 태평양 작전은 현지 시간으로 일몰 직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워싱턴 시간으로는 4월 23일 오후 2시경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헤이그 국무 장관이 새롭게 임명된 영국 프랜시스 핌[Francis Pym] 외무 장관을 만나는 모습이 짧게 공개되었습니다. 핌은 전형적인 인위적 거짓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이는 외교관들이 공개 석상에서 연출하도록 늘 교육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헤이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헤이그는 입이 귀에 걸릴 만큼 밝게 웃고 있었는데, 그 이유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과 러시아간 공동 군사 작전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볼셰비키들의 남 대서양 비밀 함대는 사실상 제거되었으며, 남 조지아 섬은 폐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남 태평양 함대는 완전히 제거되지는 못했지만, 심각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협동 작업을 통하여, 록펠러 카르텔과 러시아는 남반구 비밀 해전을 승리로 장식했던 것입니다.

    다르마여, 당신은 오늘 작업을 계속하기에는 너무 피곤해 보입니다. 여기까지만 하도록 합시다. 다시 재개할 때 우리는 록펠러 카르텔의 반핵 캠페인에 대해서 논의할 것입니다. 당신의 봉사에 감사를 표하며, 친애하는 독자들에게도 축복을 보냅니다.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시작하도록 합시다. 좋은 저녁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하톤은 접속을 해제합니다. 주님과 나는 나의 명령 체계 상에 있는 당신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제 15장, 기록 #2 하톤
    1990년 4월 1일 일요일, 7:30 A.M. 3년 228일

    ......

    록펠러 카르텔에 의한 반-핵전쟁 캠페인

    1982년 6월, 남반구에서는 대규모의 전쟁이 곧 발발할 것만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남반구에서의 진짜 전쟁은 이미 끝난 상태였습니다. 당신들이 목격했던 것은 유혈이 낭자한 후폭풍[bloody aftermath]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그 후폭풍이 바로 포클랜드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르헨티나에게 비밀 전쟁에서 수행했던 아르헨티나의 역할에 대한 보상으로 섬의 반환을 약속했던 것입니다.

    남극 지역에서 사건들이 전개되어 갈 때, 워싱턴 D.C.에 있던 볼셰비키들은 언론을 통해 미국은 영국 편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발표가 있자 마자, 포클랜드 제도를 둘러싼 군사적 충돌의 분위기는 보다 고조되었습니다. 영국은 전쟁에 뛰어드는 것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영국 쪽에는 이미 많은 사상자들이 있었는데, 공개적인 전투가 발생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영국에 있는 볼셰비키들은, 전쟁을 통해 영국 해군이 굴욕적이고 비극적인 패배를 당할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목장에서 쉬고 있던” 미국의 록펠러 카르텔 전략가들은 반-핵전쟁 캠페인을 신속히 펼치는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온 사방으로부터 “핵 동결 운동[nuclear freeze movement]”이 펼쳐지는 것을 지켜 봤습니다. 당신들이 핵 전쟁이라는 것에 공포감을 느낄 수 있도록 온갖 종류의 기록물, 기사, 출판물들이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심지어 핵 전쟁 예방과 관련된 주민 투표들도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함께 연대해서 핵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에 대해 대중에게 알리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당신들은 이런 모든 일들이 그저 자발적으로 펼쳐졌다고만 들어 왔습니다. 그 무렵 당신들은 이미 핵 시대를 맞이한 지 이미 37년이나 지나 있었지만, 과거 그 어느 때도 그렇게 대단한 반핵 캠페인이 펼쳐졌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저 수 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똑 같은 시기에 똑 같은 아이디어를 갖게 되었을 것으로만 간주했던 것입니다. 만약 당신들이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면, 나의 친구들이여, 나는 당신들을 포기했습니다! 그러한 운동은 결코, 결코, 리더십과 조직과 돈이 없이는 펼쳐지지 않습니다.--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이제쯤 당신들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당신들이 이제라도 동력을 확보한다면, 세상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진실과 지식은 너무나도 분명히 당신들에게 남겨져 있는 자유를 보존시켜 줄 것이며, 당신들의 안전과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계속 해 나갈 때, 이 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 무렵 당신들이 지켜 봤던 것은 바로, 록펠러의 공공 관계 기구들[Rockefeller public relations machine]이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은 핵 전쟁이 발발하도록 놔 둘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만약 핵 전쟁이 정말로 발생한다면, 그건 그들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걸 의미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이를 통제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록펠러 카르텔의 불구대천의 적이었던 미국내 볼셰비키들에게 있어서 핵 전쟁의 발발은 곧 볼셰비키들의 승리를 의미했습니다. 그 때문에 록펠러 파벌은 그들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핵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시 록펠러 카르텔이 만들어 낸 반-핵전쟁 캠페인은, 그들과 러시아 사이에서 일시적인 공동의 이익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러시아의 새로운 통치자들은 이것이 록펠러 그룹의 어떤 대단한 도덕적 관점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실질적인 필요성 때문에 야기된 캠페인이었던 것입니다.

    러시아인들은 미국을 한 집안이 둘로 쪼개진 상태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분리 상태를, 록펠러 카르텔과의 주의 깊은 협업을 통해 잘 이용했습니다. 러시아인들에게 있어서 최우선 순위는 이 세상으로부터 이 끔찍한 볼셰비키들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전면적인 핵 전쟁이나 심지어 자살적인 핵 전쟁과 같은 방법을 쓰더라도 이뤄내야만 할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설령 이 일이 완수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언젠가 록펠러 카르텔도 제거해야 된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들이여, 당신들은 바로 오늘, 유럽에서 이러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록펠러 그룹은 그들의 새로운 반-핵전쟁 캠페인과 함께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표는 바로 쇄신된 권력이었습니다.--그들은 ‘세계 정부[World Government]’라는 자신들의 오래된 꿈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그러한 권력(힘)을 추구했습니다. 미국내 볼셰비키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그만 록펠러 카르텔의 강력하고 새로운 반-핵전쟁 캠페인에 비옥한 토양을 공급해 주고 말았습니다. 볼셰비키 통제 아래, 소위 말하자면, 레이건 행정부 아래, 미국은 대외 강경책[hawkish]을 펼쳤는데, 이것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록펠러 카르텔의 반-핵전쟁 캠페인은 그러한 잠재된 두려움을 록펠러 카르텔이 거머쥐려는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포클랜드 위기는 이러한 분위기를 보다 고조시켰습니다. 록펠러의 대외 선전 기구들은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 전쟁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이 구체화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UN을 초월하는 새로운 국제 기구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빨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 새로운 기구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갖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실무 명칭은 “세계 비확산 위원회[World Nonproliferation Council]”였습니다. 계획상으로는 이 기구를 핵확산금지 조약(NPT 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ies]의 자연스러운 결과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짜 목적은 공포--전쟁의 공포--를 이용해 당신들 모두를 통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약

    포클랜드 위기는 볼세비키가 통제하는 남반구의 비밀 해군 기지들 때문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시설들은 핵 전쟁의 타임 테이블을 늦추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록펠러 카르텔과 러시아간의 공동 작전으로 인해 공격받았습니다. 공격은 성공적이었지만, 그 결과는 여전히 매듭 지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사건들이 기대대로 전개되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헤이그 장군[General Haig]이 해고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계획된 핵 전쟁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그 이유는 단순히 진실이 대중에게 알려졌기 때문인 데다, 범죄자들이 당신들 국민들이 일으킬지도 모를 대규모 폭동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개적인 지식, 진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이 가해지는 일에 대한 거부는 엘리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됩니다. 왜냐하면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텃밭에 있는 “당신들 국민들”을 상대로 스스로를 보호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준비되어 있지 않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당신들의 방어용 무기들--예를 들어 총기류--을 전부 몰수하게 되었을 때, 그 때, 그들은 자신들 뜻대로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대해 당신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벽에 쓰여진 낙서들을 다시 보십시오. 그럼 그리 될 것입니다.

    영국 해군은 이 “작은” 전쟁에서 엄청난 폭격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에 대한 어떠한 보고서도 나온 바 없습니다. 영국 해군의 귀향 길은 지연되었는데, 왜냐하면 비밀 기지를 다시 충분히 손보고 수리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개의 주요 파벌이 당신들의 미국을 통제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이들이 바로 록펠러 카르텔과 볼셰비키들입니다. 그들의 스타일은 각각 다르지만, 양쪽 모두 공포를 이용해 당신들을 통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그들의 속임수 위로 날아 오르고 싶다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유일한 희망인, 주 예수 그리스도[Lord Jesus Christ]의 힘을 통해야만 할 것입니다. 공인된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주님은 당신들에게, “...공포의 정신(영혼)[spirit]을 주지 않으셨으며,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마음의 정신(영혼)”을 주셨습니다. 당신들은 평화를 만드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당신들의 주님은 아주 오래 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자들은 복받은 자들이라,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게 될 것이니라.” 평화는 오직 말씀을 통한 진실[TRUTH THROUGH THE WORD]과 지식 속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징표는 즉시 주어졌습니다.--“내가 말씀이라[I AM THE WORD]”! 나아가 계시록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 “그 때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의와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었노라. 그의 이마에는 이름이 쓰여 있는데, 오직 자신만이 그 의미를 알았노라. 그는 피에 젖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자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WORD OF GOD]’이더라. 하늘의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하톤: 그리고 은빛 구름[SILVER CLOUDS]을 타고)!!!!!!!! 그를 따르더라”(요한계시록 19장 11-14절 참조--역주)

    다르마여, 우리 이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도록 합시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탐구하고 발견해야 할 호기심의 사이클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계획[THE PLAN]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먼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나는 이 저널에 대한 후기를 추가하려고 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기타 인명 손실[OTHER LOSSES]” (‘1조 달러짜리 거짓말, 홀로코스트’ 참조--역주)이나 그 보다 앞선 “UFO, 나치의 비밀 무기?[UFO’s, NAZI SECRET WEAPON?]”(‘나치의 남극 기지’ 참조, 피닉스 저널 13권 9, 11장에서 인용--역주)와 같은 책 소개를 통해, 사람들이 미국에 의한 전쟁 범죄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진실에 대한 실제 목격자들로서, 숨겨진 곳에서 쏟아져 나와, 이를 확인시켜 준 사람들이 엄청난 홍수를 이뤘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축복을 보내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에게 있어 귀한 존재들로, 진실을 위해 그리고 후대의 인류를 위해 감히 일어섰기 때문입니다!

    후기에는 스포트라이트[THE SOPTLIGHT]지로부터 보내진 것으로 당신들의 주목을 끌만한 구체 사항들도 다뤄질 것입니다. 이 자료에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용감히 일어서는 자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여기 그 내용을 다시 실을 것입니다. 이 “잡지”는 “기타 인명 손실[OTHER LOSEES]”과 같은 책에 대한 비평을 감히 실었으며, 지금은 다른 이야기들에 대한 비평도 실으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급하려는 글의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절약 소동’에 얽힌 CIA와 폭도들”. 엄청난 스캔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도 코멘트 할 것이고, 이러한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 전달자들에게, 즉시 그리고 영원히, 경의를 표할 것이며, 또 이들을 지지할 것입니다! 그럼 그리 될 것입니다! 셀라[Selah]!

    이 저널을 여기서 끝낼까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앞선 이야기가 매듭 지워지는 자리까지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 권, 또 한 권, 계속해서 여기서 다루어 온 커넥션들에 대해 서술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역사’로부터 지지받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주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거짓의 국민[PEOPLE OF THE LIE]’이 아닌 ‘진실의 국민[PEOPLE OF THE TRUTH]’이 될 때, 하나님은 늘 당신들 곁에 계실 것입니다! 아멘.

    SALU, SALU, SALU

    하톤은 이 이야기를 여기서 끝냅니다.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13권, “Skeletons in The Closet”, 제 13-15장, pp.155-181.


    http://www.phoenixarchives.com

    http://blog.daum.net/truthinlight


    이 기사가 처음 게재된 포럼의 주제글: 제013권, 포클랜드 전쟁의 내막 started by phoenix View original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