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들의 사고패턴 속에 물질주의, 탐욕, 욕심, 그리고 개인주의에 바탕한 소유욕과 사적 권력욕이 점차적으로 생겨나고, 이것이 사회 질서 속에 편입되어져 감에 따라, 인성과 정의의 근간이 되었던 윤리적 규범들로부터 인간들은 서서히 멀어져가게 되었다는 점이 반드시 이해되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공자가 태어나기 오래전에, 바빌론은 이런 점차적인 물질주의에 빠져들어, 사적 권력욕의 횡행이 가장 극심한 상태에 이르렀던 상업주의 국가이자 정치적 국가로 변모했었습니다. 자연히, 이집트 문화와 이집트적 윤리 기준이 북쪽 지방의 이 유프라테스 지역 국가로 전승되었던 건국 초기, 바빌론이 가졌었던 그 고결했던 이상들은, 육체적인 욕망과 탐욕 속에 서서히 잠식되어져 가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중동 지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당신들도 보게 되겠지만, 현재 진행중인 문화적 퇴폐화 속도가 그대로 방치되어졌을 때, 인류 문명의 종말 또한 바로 이 지역으로부터 오게 될 예정입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이야기해 보자면, 권력을 향한 소규모의 투쟁들은 점점 더 규모가 커져서 더 큰 전쟁의 연속들로 이어졌었고, 훌륭한 현자들의 이름이 영예롭게 칭송되어지는 대신, 전쟁 영웅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서 대중의 기호에 부합했던 것입니다.
유사한 패턴이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바빌론에서의 예와 마찬가지로 헤브루 종족들 간에도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다 북쪽 지방인 지중해 근방의 국가들에 있어서도, 이미 퇴폐해 버린 이집트, 바빌론, 헤브루, 페르시아의 문명이 침투해 들어 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 있다면, 공자, 노자, 붓다, 크리슈나, “예수” 그리고 마호멧과 같은 분들이, 건강한 발전 단계에 있던 문명 지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었다는 점입니다. 이 분들이 태어났던 곳의 문명들은 한결같이 이미 그 오래전서부터 퇴폐화되어 온 상태였고, 이들이 가졌던 인간들에 대한 메신저로서의 역할은, 발전해 나가는 인류에 대한 새로운 교사로서의 역할이었다기 보다가는, 타락한 인류에 대한 구세주적인 성격을 띠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신들의 고대 문명은 구약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야만성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는 “고대”였기에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았겠느냐고 당신들은 핑계를 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곳곳에서, 산 인간이나 짐승을 제물로 바치고 이렇게 유혈이 낭자한 비인간적인 행사들을 모두가 모인 광장에서 거행하곤 했던 것은, 타락한 인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내 생각에 당신들은 “비인간적”이란 표현이 적절치 못하고, 이는 단지 “인간 행동” 양식의 일부라고 주장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처럼 악한 행동 양식은 “오직 인간들에게서만” 나타났던 것임을 당신들은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들도 한 때는 고귀하고도 완전무결한 품성을 가졌었고, 이들에게 있어서 범죄란 알려지지도 않았었고, 이해조차되지 않았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도 그러한 행동을 범함으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박탈되고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아예 축출되어지는, 그런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길 원치는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들이 잘 이해되어진다면, 말 그대로 너무나도 음탕한 인간들 사이에 살았으면서도, 죽는 그 날까지, 자신이 가르쳐 온 그러한 도덕률들을 엄격히 지켰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음의 고결함과 더불어 육체적 깨끗함까지 유지하며 살았었던 공자와 같은 인물의 높은 인품은 더욱 잘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가르쳤던 도덕률들은 ‘지혜’와 ‘청렴’과 ‘예절’과 ‘성실’과 또한 ‘친절’이었습니다. 인간 품성의 기초이자 옳은 행동의 기준으로서 그가 제시했던 이러한 도덕률들은 진실로 언급되어질만한 가치를 지닌 고귀한 것들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공자에 대한 간단하면서도 “객관적인” 면들을 훑어 보고자 한다면, 나는 칼 야스퍼스가 쓴 “소크라테스, 붓다, 공자, 예수”라는 짧은 역사물의 소책자를 권하는 바입니다. 적은 분량이지만 공자에 대한 객관적인 내용의 대강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는 한가지 측면에 있어서, 노자와 예수와는 아주 상당히 달랐습니다. 노자와 예수는 공자가 이상주의와 이타주의라고 간주한 것들을 가르쳤는데, 사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에 꼭 맞지는 않는 것이었습니다. “악행에 대해서도 선함을 베풀고”, “한 쪽 뺨을 맞았을 때에도 다른 쪽 뺨을 내미는 것”은 실상 자연이 작용하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공자는, 한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무엇을 내놓든지 간에, ‘자연은 그에게 마찬가지의 것을 엄격히 되돌려 준다’고 가르쳤는데,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자연의 법칙에 부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초기 이집트인들이 바로 이러한 것을 가르쳤었습니다. 그들의 교육에 따르자면, 어떤 인간일지라도, 자신들의 고결한 문명수준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요구되는 인성과 정의의 기준에 달하지 못하는 자는, 결국 전체 사회의 성숙을 지체하도록 만드는 처진 닻과 같은 존재이자, 이에 더해,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가 속한 가정에 있어서는 그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지극히 부적절하고도 불명예스러운 존재였기에, 바로 그 같은 자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 지평선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냥 걸어가 떠나버리도록 명령받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자의 아버지는 냉엄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습니다 : “그는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인데, 인간인 내가 인간이 아닌 존재를 낳을 리가 없기 때문이오.”
공자는, 한 사회가 악한 행위에 대해 관용을 보이게 되면 그러한 행위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또 그러한 행위의 행위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만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가 폐해를 끼친 사회로부터 자신이 제거되어지는 일도 감당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