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1995년 5월 7일 일요일, 8:28 A.M. 8년 264일
권력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Force], Part 6 :
비밀 음모[the Occult Conspiracy]에 관한 역사적 고찰
by “D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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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케힐라[Grand Kehilla] : 13인 위원회
이러한 모든 “불공정들”로 인해, 그랜드 케힐라(유태 공동사회 대표자 단체--역주), 즉 13인 위원회의 리더들은 자신들과 오랜 동맹 관계를 맺어온 메이슨 조직이었던 템플 기사단[the Masonic Order of Knights Templars]과 비밀리에 재결합했다. 탬플 기사단은 당시 영국에서는 1252년,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1307년, 활동이 금지된 단체였다. ‘콜롬비아 바이킹 데스크 백과사전[The Columbia Viking Desk Encyclopedia]’(1968년, 뉴욕, 572페이지)에 따르면, 탬플 기사단은 이 무렵 신속하게 “유럽에서 가장 힘있는 단체가 되어 갔는데, 자신들의 빛나는 무공으로 십자군 원정 동안 엄청난 명성을 쌓아 올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1291년 성지 에이커(이스라엘 북부 해안 도시--역주)의 함락으로 힘을 잃었으며, 사이프러스에서 끝을 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활동 기간 동안 많은 선물과 땅을 받아 부유해졌으며, ‘유럽의 은행가들[the bankers of Europe]’이 되어갔다. 그러나 그들이 발휘하는 재정적인 힘은 프랑스 필립 4세의 시샘을 불러 일으켰고, 필립 4세는 다양한 죄목와 권력 남용을 이유로 기사단을 비난했으며, 1308년에서 1314년 동안 이들을 박해했다.” 기사단은 또한 1312년에는 교황 클레멘트 5세[Pope Clement V]로부터도 배척되었다. 그렇지만, 템플 기사단이 억압받았던 데에는 단순한 질투나 탐욕 이상의 이유가 있었다. : “이 십자군 원정단은 그 가입과정에 있어서, 모든 구성원들에게 입회 의식 중의 하나로,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to spit upon an image of Christ’s face]’를 요구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아가, “템플 기사단원들은 그들 가운데서도 내부 비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중동 바포멧 이교도[the Middle Eastern Baphomet paganism] 의식을 행해야 했으며, 이는 그들이 마니교의 한 종파[a Manichean cult]임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한 “동성애적인 의식”을 행할 뿐만 아니라, “악마적인 바포멧 염소의 기괴한 우상을 숭배”하는 문제로도 함께 비난받았다.
오늘날 13일의 금요일은 불행한 날로 여겨지지만, 이는 사실 템플 기사단에 해당하는 것이었다.(필립 4세는 1307년 10월 13일의 금요일에 템플 기사단에 대한 검거를 시작--역주) 그들은 당시 스페인, 영국, 독일, 덴마크,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 롯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6일 뒤, 재산을 박탈당한 채 수감 중이던 템플 기사단원들은 자신들의 신전에서 사디즘적 성향의 도미니크 수도회 사제, 엥베르[Imbert]로부터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1313년 5월 2일, 교황의 칙령에 따라, 템플 기사단은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그러나 실상, 그들은 지하로 숨어 들어 갔으며, 보다 비밀리에,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그러다 마침내, 이듬해 템플 기사단의 두 명의 최고 지도자들이었던 그랜드 마스터, 자크 드 몰레[Jacques De Molay]와 기 도베르뉴[Guy of Auvergne(Guy d’Aubergne)]가 비밀 소굴로부터 체포되었으며, 간단히 말해, 이후 이들은 왕과 교황의 명령에 따라 화형에 처해졌다.
유태인 흑마술사 엘리파스 레비[Eliphas Levi]가 쓴, 잘 알려지지 않은 오컬트 서적인 ‘초월적 마술[Transcendental Magic]’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그랜드 마스터 드몰레는 파리에 수감되어 있던 5년 반 동안(그와 그의 동료들이 1314년 3월 19일, 산 채로 불태워지기 전), “오컬트 메이슨 조직[Occult Masonry]”을 확립하고, 4군데 대도시에 롯지를 세웠다.--동부 거점 나폴리[Naples], 서부 거점 에딘버러[Edinburgh], 북부 거점 스톡홀름[Stockholm], 남부 거점 파리[Paris]” 레비에 따르면, 드몰레를 승계한 그랜드 마스터는 요하네스 마르쿠스 로르메니우스[Johannes Marcus Lormenius]였으며, 이후 발생했던 프랑스 혁명(1789년)은 대 “요하니트 오리엔트”의 작품[the daughter of the great “Johannite Orient”]이자, 템플 기사단의 유산[the ashes of the Templars]이었다. 레비는 바포멧 염소[the Goat of Baphomet]에 관해서도 설명하는데(그는 이에 대해 잘 알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저자주), ‘바포멧[Baphomet]’이라는 명칭은 사실상 세 단어의 카발라 약자[three Kaballistic abbreviations]를 거꾸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 템.옵.압.[TEM.OHP.AB.], 라틴어로 그 의미는 “템플리 옴니움 호미눔 파시스 아비스[Templi omnium hominum pacis abbis]”가 되는데, 이는 “인간들 사이의 보편적인 평화의 신전의 아버지[the Father of the Temple of Universal Peace among Men]”라는 뜻이다. 단어들을 거꾸로 철자하거나, 만트라(주문)[mantras]를 거꾸로 낭독하거나 하는 일은 도처에 존재하는 사탄주의자들의 공통된 습성이다. 나아가, 많은 작품을 남긴 오컬티스트 멘리 팔머 홀[Manley Palmer Hall](그는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일루미나티의 계획’ 참조--역주)에 심취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저자주)이 쓴 책, ‘원정 기사단들[Orders of The Quest]’(1949년)이라는 책에 보면, “멘데스의 염소[the goat of Mendes]라고도 하며 통상 ‘바포멧’이라 칭하는 우상은 템플 기사단원들에게는 비밀의 신으로 불려졌다.”고 나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회[the Jesuit] 소속의 저자 프란시스 S. 베텐[Francis S. Betten]이 쓴 책으로, 카톨릭 학교의 교과서로 쓰이는 ‘고대와 중세 역사[Ancient and Medieval History]’ 1928년판에 보면, 템플 기사단원들은 “중상 모략을 당했으며”(그의 견해에 따르자면--저자주), “이 기사단에 대한 모든 비난은, 전혀 사실무근임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을 훼손시켰다.”라고 나와 있다.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지만, 이것이 명백히 오늘날 예수회가 템플 기사단에 대해 갖는 입장이다. 이는 어쩌면 예수회 역시, 오랜 계획에 따라, 오늘날 템플 기사단원들에 의해 지배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톤: 실로 그러합니다!]
‘링컨 핵심 정보 도서관[Lincoln Library of Essential Information]’이라는 책(1947년판, 2049페이지)에 보면, 1919년 미주리주 캔사스 시티[Kansas City, Missouri]에서는 프랭크 S. 랜드[Frank S. Land]에 의해 ‘드몰레 동맹[the Order of DeMolay]’이라 불리는 조직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템플 기사단원들의 교육을 위한 단체로, 이 “형제 조직체[fraternal organization]”는 15세 이상의 소년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창설 후 첫 20년 동안, “약 10만 명의 소년들이 멤버십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이 동맹 단체는 ‘뉴 에이지[THE NEW AGE]’지 1962년 7월호에 따르면, 33도 프리메이슨, 에드가 후버[Edgar Hoover]에 의해, 프리메이슨의 공식 기관으로 승인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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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기사단의 두 수장은 모두 유태인들이기도 했는데, 이들의 처형 이후, 템플 기사단원들은 궁극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와 프랑스 왕정, 나아가 유럽의 모든 왕정의 파괴를 위한 맹세를 서로서로 새로이 다졌던 것이다.
pp.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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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 저널 제 137권 (미간행 저널), “Interesting Dark Games From the Dark Side”, 제 6장, pp.55-57
제 6장, 1995년 5월 20일 토요일, 6:49 A.M. 8년 277일
......권력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Force], Part 14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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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월드 롯지 & 유태인들의 노예 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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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공산주의의 배후에 있는 사회주의 철학은, 사실상 음모를 꾸미는 자들을 통해 쉽게 추적해 올라가 볼 수 있는데,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 플라톤[Plato]과 피타고라스[Pythagoras]의 사상으로 연결된다. 이는 독일 프레데릭 2세[Frederick II]에게 전수되고, 다시 영국 토마스 모어 경[Sir Thomas More](1478-1535)으로 이어진다. 그 다음으로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Francois Marie Arouet](1694-1778)--볼테르[Voltaire]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의 글들을 살펴 보면, 이러한 사상적 흐름이 이어져 나감을 알 수 있다.--그는 어린 시절 예수회에 의해 교육 받은 인물로 프랑스 급진주의자[French radical]였다. [하톤: 여기서 당신들이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볼테르는 당시 뉴턴의 프린키피아[Newton’s Principea Mathematica](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역주)를 번역한 여자를 정부(情婦)로 두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참 작지 않습니까? 수학의 과학적 원리에 대해, 그리고 과학에 대해 잘 아는 매춘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킹 제임스 성경에 숨어 있는 성경상의 진실에 대해 잘 알았던 하급 서기들도 있었는데, 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후 이러한 혁명적 사상의 흐름은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1712-1778)와 가브리엘 보노 드 마블리[Gabriel Bonnot de Mably](1709-1785)(프랑스 철학자, 작가--역주)로 연결되었다. 그들 가운데서도 특히, 볼테르와 루소가 프리메이슨들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혁명적 반-카톨릭 세력들의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어 나가고 있었지만, 표면적으로는 조용했다. 네스타 웹스터[Nesta Webster]는 “그랜드 롯지의 시대[The Grand Lodge Era]”로 명명한 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프랑스에서는 오컬트주의[occultism]가 하나의 조직으로 변형되었으며, 외부적으로는 메이슨[Masonry]을 표방했으나, 사실상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메이슨을 활용했다. 1754년 마르틴느 드 파스퀴알리(또는 파르칼리)[Martines de Pasqually(or Paschalis)]는 ‘엘뤼 코엔 동맹(선발된 사제들의 동맹)[Order of Elus Cohens(Elected Priests)]’을 창설했으며, 이는 나중에 마르티니스트[Martinistes] 또는 프랑스 일루미나티[French Illuminés]로 알려지게 되었다. 파스퀴알리는 기독교 신념을 앞에 내세웠지만, 사실 유태인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의 문하생들은 실제로 그로부터 엄청난 양의 유태계 문서 필사본들을 물려 받았다.” 그 밖에도, A.E. 웨이트[A.E. Waite]가 1세기 전에 쓴 책, ‘프리메이슨의 비밀 전통[The Secret Tradition in Freemasonry]’(제 2권 175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나와 있다. : “파스퀴알리가 의식상의 절차로 행한 마술은 품위가 떨어지는 유태 카발리즘[kabbalism of Jewry]과 같은 형태였다.” 웨이트 자신이 영국 최고의 오컬티스트였기에, 그는 이런 불가사의한 문제들에 대해 잘 알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파스퀴알리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기 전에, R. 르 포레스티에[R. le Forestier]가 쓴 “바바리아 일루미나티와 독일 프리메이슨[Les Illuminés de Baviére et la Franc-Maconnerie Allemande](1914년)”이라는 책을 한 번 더 참조할 필요가 있는데, 르 포레스티에[le Forestier]에 따르자면, 18세기 엘뤼 코엔 동맹[Order of Elus Coens]은 “포르투갈계 유태인”으로 알려진 파스퀴알리가 만든 정부전복적 성격의 동맹이었으며, 이 조직의 최상층부는 프리메이슨들에 의해 운영되었다고 한다! 코엔[Coen]이라는 명칭은, 파스퀴알리가 자신의 열렬한 추종자들에게 부여했던 칭호로, “헤브루 용어인 코하님[Cohanim]을 변형시킨 것으로, 이는 원래 최고위 성직자 계급을 가리키는 말로, 솔로몬왕 시절, 예루살렘의 신전에서 신성한 의무를 맡아 하던 자들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말하자면, 코엔은 비밀 유태 전통의 상속자이자 공탁자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하톤: 당신들에게 코한[Cohans]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가요? 저런!] 그들은 또한 모두 이런 식으로 유태 카발라를 자신들의 악마적인 가이드북으로 사용했으며, 비밀 입문식에서는 끔찍한 미트라스 의식[terrible Rites of Mithras]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 극단주의적 유태계 컬트는 또한 마르티니스트 일루미니즘[Martinist Illuminism]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파스퀴알리가 주도하던 프랑스 메이슨 롯지[Masonic Lodges of France]에서는 최고위층들에게 있어 각종 의식에 접목되어 퍼져 나갔다. 나중에 그들 가운데 고위급 입회자들은, 향후 다가올 끔찍하고도 피비린내 나는 프랑스 혁명에 있어서, 정열적인 선동가들이 되었다.
pp.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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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장, 1995년 5월 20일 토요일, 1:26 P.M. 8년 277일
권력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Force], Part 15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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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뒤따라, 파리에서는 1772년 엄격 준수의 롯지[the Lodge of Strict Observance]가 만들어졌다. 이 단체는 ‘그랜드 오리엔트[Grand Orient]’로도 알려졌으며, 그 멤버들은 프랑스의 모든 음모가들 가운데서도 어쩌면 가장 살인적인 자들로 변모해 갔다. (12월 23일, 동짓점이 지나는 때에 설립되었다.) 많은 글을 남긴 영국의 애국가 네스타 H. 웹스터[Nesta H. Webster]는, 1921년 출판한 최고의 고전, ‘세계 혁명 : 문명에 대한 음모[World Revolution : The Plot Against Civilization]’에서 이에 대해 대단히 구체적으로 서술했는데, 이 단체의 그랜드 마스터는 부유한 르 샤르트르 공작[Duc le Chartres](나중에 필립 에갈리테[Philippe Egalité]로 불렸다.--저자주)이었으며, ‘그랜드 오리엔트’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정부전복적 성격을 띤 조직으로, 1786년, 기존의 파리 롯지와 연대하여 훨씬 더 위험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한다. 2년 뒤, 프랑스에서는 전왕에 비해 훨씬 관대했던 루이 16세[Louis XVI]가 그의 사랑스러운 젊은 왕비 앙투아네트[Queen, Antoinette]와 함께 권좌에 올랐다. 앙투아네트는 대단히 자비로웠던 부인으로, 왕국 안에서 백성들을 돕는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앞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프리메이슨들과 이에 동조하던 음모가들의 손에 의해, 소름끼치는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pp.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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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럽으로..
‘세계 혁명 : 문명에 대한 음모[World Revolution : The Plot Against Civilization]’ 18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 “1781년과 1782년은 빌헬름스바트 회의[the Congress of Wilhelmsbad](1782년 7월 16일 독일 하나우[Hanau] 근처에서 개최된 음모가들의 집회--역주)에서 제기된 또 하나의 운동, 즉 ‘유태인 해방[the emancipation of the Jews] 운동’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인 해였다. 모제스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하스칼라 운동[the Haskalah Movement](18-19세기 유태인들간의 계몽주의 운동--역주)의 주창자--저자주)의 영향 아래, 돔[Dohm]이 쓴 역작으로 1781년 8월 출판된 책, ‘시민 사회에서 유태인들의 상황 호전에 대하여[Upon the Civil Amelioration of the Condition of the Jews]’에 보면, 이 기간 동안 친-유태주의[pro-Semitism]의 물결은 유럽 전역에 걸쳐 퍼져나가게 되었다. 레만 신부[Abbé Lemann]의 글에 따르자면, “이에 따라,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기 8년 전부터 유태주의에 대한 호의적인 분위기가 프러시아로부터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혁명적 운동에 대해서도 놀랄만한 영향을 가졌던 것이다. 이는 마치 ‘유태인들의 명분’을 위한 트럼펫 소리와도 같았으며,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자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유태인 역사학자 그레츠[Graetz]도 돔[Dohm]의 저작이 갖는 영향력을 인정하고, 이 책이야말로 “기독교주의를 ‘잔인한 야만’으로 묘사하고, 유태인들을 ‘빛나는 순교자들’로 보이게끔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 한편, 1781년, 아나카르시스 클루츠[Anacharsis Clootz](프러시아의 남작이자, “순수 일루미나티[pure Illuminatus]”--저자주)(그는 나중에 ‘세계 공화국[La Republique Universelle]’이라는 책을 썼다.--저자주)는 ‘유태인들에 대한 편지[Lettre sur les Juifs]’라는 친-유태인 성향을 팜플렛을 만들기도 했다. ...” 요컨대, 무대는 만들어졌고, 행동으로 옮겨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발생하다..
미국 독립전쟁을 끝낸 파리조약[the Treaty of Paris]이 체결되기 한 해 전이었던 1782년, 독일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일급 비밀 집회, 빌헬름스바트 회의[Congress of Wilhelmsbad]가 개최되었다. 7월 16일 있었던 이 행사에는 모든 프리메이슨 롯지들 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 존재하던 여타의 정부전복적 성격의 기구들에서 저마다 대표단(약 30만명의 회원들을 대표하여--저자주)을 파견했으며, 이들은 프랑스를 지배하려는 그들만의 음모를 공고화하기 위해서 만났던 것이다. 또한 이 행사는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 양 조직이 마침내 동맹을 맺게 된 운명적 회합이기도 했다.--그들은 당대의 모든 정부전복적 성격의 비밀 단체들간의 결사 조약을 맺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여기에는 바바리아 일루미나티들[the Bavarian Illuminati]이 분명히 참여했으며, 모든 프리메이슨 롯지들의 모체인 런던 그랜드 롯지[the Mother Grand Lodge of London]의 최고 책임자들도 참석했다. 또한 헤세의 찰스 왕자[Prince Charles of Hesse](메이어 암셸 로스차일드[Mayer Amschel Rothschild]의 후원자) 그리고 브룬스비크의 페르디난드 공작[Duke Ferdinand of Brunswick], 독일 겔픽 검은 귀족단[the German Guelphic Black Nobility]의 후손들 뿐만 아니라,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 보데[Bode], 그리고 폰 크니거[von Knigge]도 참석했다. 브룬스비크 공작(그 명칭은 A.D. 1235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루시퍼 계열의 독일 펨게리히트[Vehmgericht](중세 독일의 비밀 형사 법정--역주)의 비밀 의장이었던 프레데릭 2세[Frederick II]가 부여--저자주)이 회의의 실질적인 의장이었으며, 그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유태 카발리스트, 휴머니스트, 네크로만티스트(마법사들)[Necromantists], 그리고 변절한 로시크루시안들[renegade Rosicruceans] 전체를 이끄는 지도자 역할을 했다. 몇몇 주의깊은 연구가들의 주장에 따르자면, 그 날 회의에는 로스차일드[Rothschild]가 직접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 진행된 모든 비밀 계획들에 그가 자금을 대었다고 한다.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이 끔찍한 회합에 대리인으로 참석했던 프랑스 비리외 백작[Comte de Virieu]은, 모임 직후 자신의 가까운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 “너무나도 잘 계획되고 너무나도 깊은 음모가 존재한다네. 교회든 그 어떤 정부든 간에 이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 그렇지만 이 음모는 영국 왕정[the British monarch]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고, 기독 프랑스의 귀족 계급[the Aristocracy of Christian France]을 주된 목표로 삼는 것이었다.
웹스터[Webster]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날 회합에서 또 한가지 결의되었던 것은, “일루미나티화한 프리메이슨들[Illuminized Freemasonry]의 본부를 프랑크푸르트로 옮기는 것이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는 유태계 자금의 본거지와도 같은 장소로서,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Mayer Amschel Rothschild]..., 오펜하이머[Oppenheimer], 베르트하이머[Wertheimer], 슈스터[Schuster], 슈파이어[Speyer], 슈테른[Stern], 그 밖에도 많은 유태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의 책, ‘현대 자본주의를 만든 유태인들[The Jews of Mdern Capitalism]’, 187페이지에 따르자면--저자주) 이 프랑크푸르트 본부 롯지[head lodge of Frankfurt]에서 세계 혁명의 거대한 음모가 진두지휘 되었으며, 프랑스 루이 16세[Louis XVI]의 죽음과 스웨덴 구스타프 3세[Gustavus III]의 죽음에 대한 종국적인 명령도 이곳에서 하달되었다.(샤를 데리코[Charles d’Hericault]의 책 ‘혁명[La Revolution]’, 104페이지에 따르자면--저자주)” 브룬스비크 백작의 유태인 사서이자, 이 음모의 주요 대변인 역할을 맡았던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의 초대자 명단에 따르자면, 이 날 모임에는 그 밖에도 많은 유태인들이 참석했었다.
어쩌면 당신은, ‘그렇지만 그렇게 많은 유태인들이 이 모든 정부전복적 음모에 정말로 다 관여했던 것인가?’라고 의문을 가져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데, 1861년 출판된 ‘진실-이스라엘인들[Verite-Israelite]’이라는 책에 보면, “메이슨 사상은 그 가장 근본적인 믿음에 있어서 유태주의 사상과 동일하다”고 나온다. 프랑스-유태계 출판물에 보면, 메이슨에 가입하는 것은 (유태주의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몇 년 후인 1930년, 독일 프리메이슨의 지도자, 프레헤어 폰 슈톨칭어[Freherr von Stolzinger]는 다음과 같이 썼다. “거의 틀림없이 확언할 수 있는 사항은 오늘날 다수의 롯지들은 유태계 영향 아래 종속되어 있으며, 그들은 유태주의의 ‘정신적 돌격부대[the spiritual storm-troops]’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다 앞서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그랬듯이, 히틀러가 독일에서 모든 프리메이슨들을 내쫓은 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하톤: 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히틀러가 메이슨들을 따랐다고 보십니까? 으으으으으음!]
웹스터[Webster]에 따르자면, 아주 단순화시켰을 때, 바이스하우프트가 만든 일루미나티의 비밀 목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 군주제와 모든 질서 잡힌 정부의 폐지, 사유 재산제와 상속 제도의 폐지, 애국심 타파, 가족 제도(결혼 제도, 모든 형태의 도덕성, 아이들에 대한 공교육 제도) 폐지, 그리고 모든 종교의 폐지. 그녀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바이스하우프트의 독트린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정통 유태주의[orthodox Judaism]의 원칙들에 모순되지 않는다.” 나아가 바이스하우프트의 작업에 영감을 불어 넣은 인물들 가운데 하나로 모제스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이 거론되곤 하는데, 그는 베를린 출신의 유태계 철학자였다. 사실, 멘델스존은 또한 당대에 주목받았던 프리메이슨이자 일루미나티였던 미라보 백작[Comte de Mirabeau]의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 미라보는 프랑스 혁명의 가장 광적인 지도자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역겨운 소책자인 ‘고문 정원[Torture Garden]’의 저자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멘델스존은 은행가가 된 두 아들 조셉[Joseph]과 아브라함[Abraham]의 아버지였으며, 당시 유태 혁명[the Jewish revolutionaries] 교육을 위한 특수 학교를 만들기도 했으며, 한 세대 후에는 칼 마르크스[Karl Marx]로부터 엄청난 찬양을 받게 된 인물이기도 했다. 이 모든 혼란에 유태인들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확인시켜줄 만한 자료로는, 조지 바토[George Batault]가 수 년 전에 쓴 책, ‘유태인 문제[Le Probleme Juif(The Jewish Problem)]’가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 “유태인들은 로마 제국이 붕괴된 이래로, 역사상 있어온 모든 혁명 운동들로부터 그들만을 위한 이익을 이끌어 냈다. 프랑스에서의 ‘유태인 해방’은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으며, 당시 이를 주창한 주요 인물은 미라보[Mirabeau]였고, 그는 모제스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과 돔[Dohm]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사람이었다. : 1830년 혁명과 1848년 혁명 또한 유태인들이 처한 여건을 개선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제 트란실바니아[Transylvania]로
기독 문명에 대한 음모를 도모했던 이러한 최상층부의 급진 유태인들 가운데는 트란실바니아, 라코지 왕가 출신의 그랜드 마스터 라코지[Grand Master Rakoczy]도 있었는데, 그의 조부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장시키기 위해 1703년, 헝가리에서 발생한 폭동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했다.(그러나 5년 뒤 오스트리아인들에 의해 이 세력은 진압되었으며, 그는 국외로 추방되었다.--저자주) 엄청나게 부유했으며, 잘 교육받은 인물이기도 했던 라코지는 자신이 내리는 모든 명령의 본부를 카르페시안 산맥[the Carpathian Mountains] 안에 두고 있었다. 그는 또한 블랙 오컬트[the Black Occult]에 숙련된 인물로도 알려져 있었다. 나아가 라코지는 “악명높은 거짓말쟁이이자, 범죄자, 사기꾼”이기도 했으며, 결코 “성스럽지” 않았던 세인트 저메인(생 제르맹) 백작의 망토와 이름 아래, 전 유럽에 걸쳐 자신의 신분을 속이기도 했다. [하톤: 우리 모두는 우리가 행하지 않은 “과거”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정작 초점이 되는 것은, 악으로부터 뒤돌아 서서 빛이 존재하는 곳을 향해 더 높게 날아 올라, 봉사와 앎의 상태[state of service and KONWING]에 이르는 것입니다. 분명코 당신들 진실의 학생들[students of TRUTH]은, 저메인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순수했으며, 아주 간단하게 성스러운 상승 마스터가 되었을 것이라고는 아마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날개’를 얻기 까지 ‘구식 방식’을 거쳤던 것입니다. : 우리는 대개 처음에는 온 생애 전체를 엉망으로 보내기도 해 가며, ‘날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위험했던 인물로 가브리엘 미라보 명예 백작[Comte Honoré Gabriel Mirabeau]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그 역시 유태계 음모가로 그는 “1786년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일루미나티 조직의 회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정도면 이미 충분한 증거가 되고도 남지만, 1920년대에 ‘프랑스 (혁명) 전야[La Veille France]’라는 책을 썼던 인물은, 바이스하우프트의 최측근에 있으면서 프랑스 혁명을 배후 조종했던 자들로, 당대의 유명하고 부유했던 유태인들인, “모제스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 웨슬리[Wessely], 그리고 은행가들인 이치히[Itzig], 프리드란더[Friedlander], 마이어스[Meyers]” 같은 이름들을 거명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요점만을 서술한 1905년판 ‘유태 백과사전[Jewish Encyclopedia]’에서 프리메이슨에 관한 글을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유태인들은 프리메이슨들과 가장 눈에 띄는 유대 관계를 맺어 왔다.”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
프랑스 혁명은 온갖 소동이 다 벌어졌던 일로, 준비하는 데만도 많은 해가 걸렸지만, 공식적으로는 1789년 7월 14일 시작되었다. 이 끔찍한 사태를 둘러싼 모든 사건들을 완전히 다 기술하려면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일을 꾸미고 실행에 옮긴 자들 그리고 그들이 속한 단체들만을 주로 살펴볼 것이다. 그 나머지 부분들은 많은 역사학자들이 모든 복잡한 사안들에 이르기까지 나보다 훨씬 더 긴 장문의 글들을 통해 연대 순으로 주의깊게 정리해 왔다. 프랑스 혁명에는 냉담하고 탐욕스러운 왕, 조지 3세[King George III]의 지시 아래, 수많은 영국 정보기관의 하수인들이 직접적으로 개입했으며, 또한 런던 그랜드 롯지도 연관되어 있었다. 이들 하수인들 가운데는 비열한 혁명 지도자들에 대한 급여 지급원들도 있었으며, 또한 그들이 고용한 탐욕스러운 거리의 폭도들도 있었다. 드 퐁셍[de Poncins]은 ‘혁명 배후의 비밀의 힘[The Secret Power Behind Revolution]’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공공연한 동요를 보이고 있었으며, 이는 프리메이슨들에게 있어서 좋은 토양이 되었다. 또한 백과사전학파들[the Encyclopaedists]과 바바리아 일루미나티들[the Illuminati in Bavaria]의 공동 영향 아래, 이러한 기운은 신속히 1789년 대혁명 운동으로 연결될 수 있을만한 결정적인 요인들로 커져 갔다.”
2세기 전 프랑스에서 실제로 발생한 일들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에 대해, 가장 간결하면서도 적절히 진술한 것은, 멀린스[Mullins]의 책, ‘유태인들의 새로운 역사[New History of the Jews]’ 102페이지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여기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 “군중들로 하여금 젠타일 지도자들을 살해하도록 선동한 후에, 유태인들은 수 천명의 수녀들과 신부들을 교회 밖으로 끌고 나와 도끼와 손도끼로 찍어 잘게 썰었다. 또는 예수의 제단 앞에서 이들을 죽여, 성당들이 지옥으로 변한 유태인들의 시나고그처럼 되었다. 젠타일들의 피로 악취가 풍겼고, 죽어가는 여자들과 어린이들의 비명이 메아리가 되어 온 교회를 울렸다. 수백 명의 기독교인 남녀들은 벌거벗겨진 상태로, 한 쌍 씩 짝을 이뤄 묶여진 채, 강에 내 던져져 익사되었다. 그러는 동안 유태인들은 강둑에 서서 이 “혁명 결혼식[Revolutionary weddings]”의 희생자들을 쳐다 보며 조롱을 퍼부었다. 프랑스 혁명은 유태계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로 환호와 지지를 받아 왔다.”
‘비밀 단체들과 정부전복적 운동들[Secret Societies and Subversive Movements]’이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나와 있는데, 혁명 당시 낭트[Nantes]에서만 500명의 아이들이 당시로서는 가장 끔찍한 방식을 통해 악의적으로 학살되었다. 나중에, 말 그대로 ‘공포[The Terror]’가 정점에 달했을 때, 프랑스 전역에서 30만 명이 넘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이들이 잔인하게 학살되었다. 1792년 9월 자코벵당[the Jacobin Society]은 혁명으로 인해 파리에 수감되어 있던 8,000명의 사람들을 끔찍한 방식으로 죽였으며, 같은 달, 프랑스 전체에서는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처형되었다. 월터 스콧 경[Sir Walter Scott]이 쓴 책, ‘나폴레옹의 삶[Life of Napoleon]’(제 2권, 30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 “파리 공동체[the Communaute de Paris], 사실상 자코벵 산헤드린[the Sanhedrin of the Jacobins]의 요청은 물론 ‘피를 보는 것’이었다.” [하톤: 당신들 가운데 몇이나 이러한 역사를 교실에서 배우고 있습니까?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이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떻게 ‘역사 수정주의’가 될 수 있는 겁니까? 누군가가 당신들, 순진하고 졸리는 얼굴을 하고 있는 자들을 잘 이끌어 오고 있으며, 당신들이 엉뚱한 것에만 매달리도록 유도해 온 것 같지 않습니까!]
‘이름없는 전쟁[The Nameless War]’을 쓴 A.H.M. 람세이 장군[Capt. A.H.M Ramsay]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1789년에서 1794년간 혁명 광신자들은 왕, 종교, 귀족, 성직자, 헌법, 국기, 달력, 장소명, 화폐,,, 기타 등등에 이르기까지 한 국가의 삶과 (기독 프랑스의) 전통을 모조리 다 쓸어버렸다... 혁명은 프랑스인들이 프랑스를 개선시키기 위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일에 너무나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1789년까지 프랑스에서는 국제 혁명의 직접적인 도구였던 ‘그랜드 오리엔트[the Grand Orient]’(프랑스내 음모 실현의 본부) 소속의 롯지가 2000개를 넘었다. 그리고 그 회원수는 십 만 명을 넘어섰다.” 람세이는, 이는 멘델스존이 이끄는 ‘유태계 일루미니즘[Jewish Illuminism]’과 바이스하우프트가 이끄는 ‘메이슨계 일루미니즘[Masonic Illuminism]’ 양쪽 모두의 노력의 결과였다고 한다. “이러한 일루미니즘은 프리메이슨의 배후에 있던 비밀 혁명 단체[secret revolutionary society]로..., 모든 그랜드 오리엔트 프리메이슨에 스며들어 있었으며, ‘카발리즘 유태인들[cabalistic Jews]’에 의해 후원되고 조직된 것이었다...” 이어서 람세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 “프랑스에서는 눈부시고 유서깊은 명칭들, 카운티와 도의 이름들, 명망있는 가문들이 모조리 다 해체되었으며, 단순히 ‘시민들’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으로 간주될 뿐이었던 ‘번호 매긴 구획들[numbered squres]’만 남겨지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똑 같은 음모에 따라 전 세계가 위성 사진과 컴퓨터에 의해 구획되고, 번호 매겨진 그리드-블록들[numbered grid-blocks]로 분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달력에 나오는 월의 명칭조차 변경되었다. 백합으로 장식된 프랑스 국기도, 그리고 그것이 갖는 영예로움도 모두 금지되었다...”
‘반-유태주의[L’Anti-Semitisme]’라는 책을 쓴 유태계 작가, 베르나르 라자르[Bernard Lazare]는, 한 국가의 국민과 그 문화에 대해 오로지 죽음과 파괴만을 추구했던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되는 데 있어서 자금을 제공했던, 그림자 속 인물들에 대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이 음모에 가담했던 자들로, 런던에 있던 유태인들 가운데는 벤자민 골드스미드[Benjamin Goldsmid]와 그의 형제 아브라함 골드스미드[Abraham Goldsmid], 그들의 동업자 모제스 모카타[Moses Mocatta](‘유태인들의 영국 지배사’ 참조--역주), 그리고 그의 조카였던 모제스 몬티피오레 경[Sir Moses Montifiore]를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베를린에 있던 유태인들로는 다니엘 이치히[Daniel Itsig]와 그의 사위 다비드 프리드란더[David Friedlander], 그리고 알자스의 헤르츠 체르프베어[Herz Cerfbeer]를 들었다.(24페이지) 영국 유태인들은 모두 런던 연합 시나고그[the United Synagogue](씬 오브 고그?(곡의 죄악?)[Sin of Gog?]--저자)의 회원들이었다. 꼬박 1세기가 지난 후에 나온, “시온 장로 의정서[Prot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 제 7 프로토콜에 보면 다음과 같은 놀랄만한 문장이 들어 있다. : “프랑스 혁명을 기억하라. 프랑스 혁명, 그리고 그 준비와 관련된 비밀들은 모두 우리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들인데, 왜냐하면 그건 전적으로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톤: 독자들이여, 나는 이 말이 너무나도 분명히 이해가 됩니다.]
왕정을 전복시킨 후, 바이스하우프트와 그의 유태계 후원자들은, 오랫동안 계획해 온 대규모의 ‘무자비한 파괴’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프랑스의 삼색기는 사회주의 혁명의 붉은 깃발[Red flag]로 대체되었다. 메이슨들의 모토였던 “자유, 평등, 박애(형제애--역주)[Liberty, Equality, Fraternity]”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자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단지 대중을 속일 목적으로 사용된 일루미나티의 슬로건일 뿐이었다. “자유, 평등, 박애”는 유럽의 노동자 계급이 모든 질서잡힌 정부를 상대로 총 궐기할 것을 요청하는 문구로서, ‘세계 혁명[World Revolution]’을 부르는 첫번째 ‘트럼펫 소리’였다. 이 시기 바이스하우프트가 만든 두 개의 또 다른 전위 조직으로는 ‘아이리쉬맨 연합[United Irishmen]’(1791년)과 ‘일루마인 공동체[the Society of Illumines]’(1793년)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 계급의 운동이 아니었고, 모두 탑다운 방식으로 운영되었으며, 부유한 유산 계급이 만든 것이었다. [하톤: 이런! 독자들이여, 오늘날 당신들 주변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알겠습니까? 이 똑 같은 단체는, 당신들의 나라, 미국이 탄생한 이래로 있어 온, 모든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당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알아보는 데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더 오래 걸려야 하는 겁니까? 하나님이 이 난장판에 대해 뭔가를 해 주기를 기대하는 일은 그만 두십시오.--당신들은 이 정보를 지금 이미 수 세기째 갖고 있는 중입니다.] 주요 공격 중의 하나는 로마 카톨릭을 향한 것으로, 1792년 9월, 프랑스 전역에 걸쳐 사제와 신부들에 대한 대학살이 감행되었다. 그 무렵 매춘부들은 모든 교회에서 ‘혁명의 여신들[revolutionary goddesses]’로 간주되어 수녀들을 대신하여 권좌에 올려진 반면, 수녀들은 모조리 강간당하고 살해되었다. 이 일은 그저 다가올 일들의 맛보기에 불과했다.
빨갱이 테러리스트들[the Red terrorists]은 쥐떼처럼 온 거리를 덮쳤으며, 프랑스 제조업의 중심지들을 황폐화시켰다. 그들은 도서관을 불태우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다 기요틴[guillotine]에 올려 처형시켰다. 자신들의 계획에 저항하는 모든 지식인들과 유능한 인물들은 박해받고 고문을 당했다. 이들 일루미나티에 의해 훈련된 테러리스트들은 또한,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뛰어난 예술 작품과 문학 작품들을 파괴했으며, 이 아름다운 나라, 프랑스에서 ‘백인 기독 문명[White Christian culture]’을 송두리째 제거해 버리기 위해 열을 내어 날뛰었다. ‘공포[The Terror]’의 주요 도구는, 일루미니스트 자코벵당[Jacobin Club]의 의해 주의깊게 조정되었던 ‘공공 안전 위원회[Comite de Salut Public(Committee of Public Safety)]’였으며, 이 기구를 이끌었던 인물은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였다. ‘공포 정치[Reign of Terror]’의 결과로서 프랑스 전역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실업에 허덕이게 되었지만, 이에 대응해 공공 안전 위원회는 오히려 더 끔찍한 계획을 세웠다.--국가 전체에 걸친 체계적인 인구 감소[the systematic depopulation of that country]! 혁명 지도자들은 당시 프랑스 인구 2천 5백만명을 8백만명으로 감소시키기로 결정했다! 다행히도 이 야만적인 계획은 불발에 그쳤지만, 당시 이러한 계획의 주요 입안자는 일루미나티였던 뒤부아 크랭스[Dubois Crance]였다. 오늘날, 이들 음모가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후계자들은 또 다시 A.D. 2000년까지 세계 인구의 3/4을 학살하려는 소름끼치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 (하톤은 적들의 세계 지배 계획[Plan 2000]은 1995년을 기점으로 2000년에서 2002년으로 연기되었다고 밝히는 한편(제 140권 제7장), 이어지는 저널에서 2002년이 되어도 계획은 실현되지 않으며, 이후에는 ‘추’가 ‘우리 쪽’으로 넘어 오게 될 차례라고 언급(제 148권 제 2장)--역주) 이 현대판 인구감소 계획은, 1968년 창설된 단체로, 주의깊게 선발된 75명의 막시스트들로 구성된 ‘로마 클럽[the Club of Rome]’의 고안으로, 당시 로마 클럽의 수장은 아우렐리오 페세이 박사[Dr. Aurelio Peccei]였다. 2년 후, 이 일루미나티 전진기구는 ‘세계 컴퓨터 시스템[global computer system]’ 설치를 위해 폭스바겐 재단[Volkswagon Foundation]에 거금 25만 달러를 후원했는데, ‘세계 컴퓨터 시스템’은 MIT의 데니스 메도우스[Dennis Meadows]가 이끄는 프로젝트로, 단일 세계 정부의 전조로서 세계를 10개 지역으로 분할, 운영하는 시스템이었다. [하톤 : 물론 그 때 미국은 10개 구역으로 분리되게 됩니다.(피닉스 저널 제 15권 20장 참조--역주)]
이 모든 약탈과 신성모독에 있어서 정확히 누가 그리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추가적인 증거들로서, 우리는 알버트 파이크 장군[Gen. Albert Pike](‘일루미나티의 계획’ 참조--역주)이 쓴 ‘도덕률과 도그마[Morals and Dogma]’(1871년, 823페이지)라 명명된 두꺼운 블랙 오컬트[Black Occult]에 관한 책을 참조하기만 하면 되는데, 여기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 “제네바의 광신자, 루소[Rousseau]의 비호아래 결성된 롯지는 프랑스 혁명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왕족 혈통의 한 왕자[a Prince of the blood-royal]’는 자크 드 몰레[Jacques de Molai]의 무덤 앞에서 필립 르 벨[Philippe le Bel](공정왕 필립, 필립 4세--역주)의 후손들의 파멸을 맹세하기도 했다. 템플 기사단의 기록에 따르자면, 섭정을 지낸 오를레앙 공작[Duc d’Orleans](1674-1723, 루이 15세의 유년기에 섭정(1701-1723) 역할--역주)은 엄청난 비밀 단체의 그랜드 마스터였으며, 그 후계자들로는 부르봉-콩데 왕자인 멘느 공작[Duc de Maine, the Prince of Bourbon-Conde]과 코스-브리삭 공작[Duc de Cosse-Brissac]이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음모는 항상 탑다운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늘 엄청난 부자들이 꾸며낸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악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엘리트들의 노예로서, 가난한 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을 단순히 이용했을 뿐이었다.
이제 보다 잘 알려진 혁명 선동가들, 프랑스에서의 이 피비린내 나는 대혼란을 이끈 지도자들을 한 번 면밀히 살펴 보기로 하자. 아래 나오는 내용 중에 어떤 것들은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등학교 수업이나 대학 수업에서 결코 당신들이 본 적이 없는 내용일 것이다. :
** 알렉산드로 드 카글리오스트로 백작[Comte Alessandro de Cagliostro]. 카글리오스트로 백작은 시실리 사람으로 “팔레르모[Palermo] 출신의 유태인”이었으며, 살인 사건에 관여된 것으로 지목되어 이탈리아 경찰의 수배를 받던 쥬세페 발사모[Giuseppe Balsamo]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사악한 외양을 갖춘 흑마술사[Black Magician]로 묘사되기도 했다. 시실리 섬을 빠져 나온 후 그는 로드 아일랜드로 갔으며, 그 곳에서 몰타 기사단[Kinghts of Malta]의 그랜드 마스터였던 엠마누엘 핀토[Emmanuel Pinto]를 만난 적이 있었다. 이후 다시 독일로 갔고, 독일에서는 프리메이슨의 이집트식 의식을 집도하는 그랜트 콥트[Grand Cophte]로 알려졌다.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에 따르자면, 그는 1774년, “프랑크푸르트-암-마인[Frankfurt-on-the Main] 근처의 지하 동굴에서 일루미나티에 가입하는 의식을 치렀다.” 그는 또한 템플기사단 단원이기도 했으며, 1777년 4월 12일에는 영국 프리메이슨에 초대되어 런던에 있는 유태계 에스페란스(경험) 289호 롯지[Esperance(Experience) Lodge #289]에서 정식으로 가입절차를 밟았다. 이 롯지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던 엄격 준수 동맹[Order of Strict Observance]의 전위 조직과 밀접히 연계된 롯지였다. 그는 또한 메이슨 신지학 소사이어티[Theosophical Masonic Society]와도 관련되었으며, 이 단체는 당시 런던의 미들 템플[Middle Temple] 교회에서 집회를 갖기도 했다. 나아가, 네스타 웹스터가 비밀 단체들에 관해 쓴 자신의 책에서 밝힌 바에 따르자면, 카글리오스트로는 카발라계 유태인[cabalistic Jew]인 하임 사무엘 제이콥 포크[Hayyim Samuel Jacob Falk](1708-1782)라는 “런던 발솀[Ba’al Shem](카발라 의식을 행사는 사제--역주)”의 제자로도 알려졌다. 웹스터에 따르자면, 포크는 악명높은 마법사이자 흑마술사로 런던 시나고그 연합[the United Synagogue of London]에 소속된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유태인 랍비[first Rabbi of the Jews]이자 저명한 포크 셱[the celebrated Falk Scheck]”으로 알려진 인물이었으며, 또한 프랑스 혁명의 배후에 “숨겨진 최상층부 인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마르골리오트[Margoliouth]가 쓴 책, ‘유태인들의 역사[History of the Jew]’(제 2권, 144페이지)에 따르면, 포크의 “주요 친구들 가운데는 런던의 은행가들이었던 아론 골드스미드[Aaron Goldsmid]와 그의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왕립 메이슨 백과사전[Royal Masonic Encyclopedia]에 보면, 포크에 대해 길고 구체적인 설명이 나와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들과 다른 증거들을 통해 볼 때, 포크는 카발라 가르침들을 소위 말하는 영국 프리메이슨 고위 계급들[Higher Degrees of British Freemasonry]에게 최초로 소개한 인물이자, “일급 미스터리들”의 전수자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유태 백과사전에 보면 포크는 “오를레앙 공작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 반지로 된 영묘한 효력의 물건(탈리스만[talisman])을 건네 준 것”으로 나와 있다. 나아가, 포크는 프랑스 추기경 리슐리외[Cardinal Richelieu]의 조카 아들이자, “철학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일반적인 금속을 금이나 은으로 변화시키는, 연금술에 쓰이는 전설의 물건--역주)을 찾는 자들 가운데 최고의 인물”이었던 마레샬 뒤 리슐리외[Marechal du Richelieu]의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
** 루이 필립 조셉[Louis Philippe Joseph], 오를레앙 공작[the Duc d’Orleans]. 오를레앙 공작은 초기에는 샤르트르 공작[the Duc d’Chartres]으로 알려졌던 인물로 파렴치한 동성연애자였으며, 혁명 당시에는 ‘필립 에갈리테[Philippe-Egalité]’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공허하면서도 야심찬 자유사상가[libertine]”로 묘사되기도 했으며, 프랑스 그랜드 오리엔트[the Grand Orient of France](엄격 준수의 롯지[the Lodge of Strict Observance])의 그랜드 마스터 자리에도 올랐던 대단히 능숙한 음모가였다. 그는 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암스텔담, 런던, 프랑크푸르트 등지에서 거액의 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프랑스를 휩쓴 대기근을 만들어 낸 인물이 바로 오를레앙 공작이었는데, 그는 전 프랑스에서 빵과 식품들을 모조리 사들인 다음 빵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게 만들었고, 결국 이에 대한 비난이 왕에게 돌아가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중에 자신들의 심복들에 의해 파멸되고 말았는데, 1793년 혁명 법정[Revolutionary Tribunal]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기요틴에서 참수되었다. 그러나 몇 년 뒤, 자신의 아들 루이 필립[Louis Philippe]은 프랑스계 로스차일드 가문[the French Rothschilds]에 의해 선택되어 그들의 꼭두각시 프랑스 왕(1830-48)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하톤: 당시 수많은 기요틴들이 미국으로 배송되었으며, 추후 “강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분배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당신들 가운데 몇이나 됩니까? 이는 실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독자들이여.]
** 생 제르맹(저메인) 백작[Comte de Saint-Germaine]. [하톤: 아닙니다. 진정하십시오. 저메인[Germain]이라는 이름에는 스펠링 “e”가 붙지 않습니다. 이게 사소한 차이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지적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는 배움을 통해 삶의 여정을 경험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생 제르맹의 진짜 이름은 라코지[Rakoczy]였고, 그는 초기에는 루이 15세[King Louis XV]에 의해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외교관으로 고용되어 일한 적이 있으며, 독일 슐레스비히-홀스타인[Schleswig-Holstein]에서 은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곳에서 그는 “헤세의 랑그레이브 찰스[Langrave Charles of Hesse]”와 함께 오컬트 학문[occult sciences]을 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홀[Hall]의 ‘메이슨 조합 동맹[Masonic Order of Fraternity]’에 따르면, 제르맹(라코지)은 최고위급 유태 프리메이슨[top Jewish Freemason]이면서, 그랜드 오리엔트 롯지[the Grand Orient Lodge]에 소속된 템플 기사단원[an agent of the Kinghts Templars]이었으며, 1778년에는 독일에서 열렸던 비밀 회합들에 참석했다고 한다. 이 비밀 회합은 카발라 의식의 회합들로, “그리스와 이집트 신비주의에 바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당시 악의 이집트 아문 사제단[the evil Amun Priesthood of Egypt]이 행했던 66가지 의식들이 있었다고 한다.--저자주) 라코지는 흑마술의 권위자[accomplished Black Magician]로, “비밀 무덤들이나, 에컨포르더[Eckernforde]에 있는 헤세 카셀의 칼 왕자[Prince Karl of Hesse Cassel]의 성채 안에 있는 숨겨진 방에서 이집트 상징들을 사용한 메이슨 의식들을 수행했다.”
**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 로베스피에르는 “청렴가[the Incorruptible]”로 알려져 있지만, 냉혹하고 복수심에 불탔던 인물로 일루미나티 자코벵당[the Illuminist Jacobin]을 이끌었으며, 또한 악랄한 좌파 산악당[Leftist Montagnards(The Mountain)]의 유명한 리더가 되기도 했다. 그는 제 2차 공공 안전 위원회[the second Committee of Public Saftety] 위원으로도 선출되어(1793년 7월)[하톤: 자넷 리노[Janet Reno](클린턴 행정부 시절, 1993-2001년간 미 법무장관 역임--역주)와 그녀의 ATF/FEMA(미 주류, 담배, 화기 및 폭발물 단속국 / 미 연방재난관리청)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양민의 학살을 감독했으며, 공포 정치 시대[the Reign of Terror]를 사실상 책임졌다. 월터 스콧 경[Sir Walter Scott]이 쓴 책, ‘나폴레옹의 삶[Life of Napoleon]’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 “파리에서 자코벵당의 권력은 불가항력적이었으며,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당통[Danton], 마라[Marat]가 이 시나고그[synagogue]의 최고위직을 나눠 가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로베스피에르는 양심이라고는 없었던 자로, 심지어 자신의 가까운 친구들이었던 데물렝[Desmoulins]과 당통[Danton]도 기요틴으로 보냈다. 그러나 나중에 자신도 결국 쿠데타에 의해 권력을 잃게 되었으며, 1794년 7월 27일, 혁명 법정의 선고에 따라 체포되고 총살된 후, 참수되었다.--이로서 공포 정치 시대도 종결되었다.
** 루이 앙투안느 레옹 드 생-쥐스트[Louis Antoine Léon de Saint-Just]. 생-쥐스트는 “죽음의 천사[the Angel of Death]”로 알려졌던 인물로, 고집센 혁명 미치광이로 로베스피에르와는 “밀접한 친교” 관계를 맺었으며, 공공 안전 위원회의 또 다른 위원으로서 공포 정치 시대를 이끌었다. 그는 혁명가들중에서도 가장 악랄하고 위험했던 인물로서, 어쩌면 이 때문에, 나중에 자신의 친구인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체포되어 기요틴으로 보내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모든 반역자들과 마찬가지의 운명을 맞아야 했던 것이다.
** 조지 자크 당통[George Jacques Danton]. 급진주의 변호사이자 혁명가였던 당통은 1791년 성소(聖所) 방문차 영국으로 갔다가(어쩌면 추가적인 지시를 받기 위해서 방문했다가), 이내 프랑스로 되돌아와 튈러리 폭동[Tuileries riots](1792년 8월 튈러리 궁을 점거하고 국왕을 이 성에 유폐시킨 사건--역주)을 일으켰다. 혁명 지도부 안에서 냉혹한 법무장관직을 수행하다가, 이후 자코벵당의 수반으로 선출(1793년 3월)되었으며, 공공 안전 위원회에도 소속되어 또 한 명의 도살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 역시 1년 뒤에 참수되었다.
** 도나시앙 알폰즈 프랑수아즈 드 사드 백작[Comte Donatien Alphonse Francoise de Sade]. 사드 백작은 마르키즈 드 사드[Marquise de Sade]로 보다 잘 알려진 인물이다. “사디즘[sadism]”이라는 표현은 그의 악명높은 병적 변태성욕에서 유래되었다. 이 미치광이 사드 백작은 자신이 저지른 수치스런 행동들로 인해 루이 15세에 의해 여러 해 동안 바스티유 감옥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에, 그는 미스터리하게도 파리의 이 오래된 감옥으로부터 빠져 나왔으며, 이후 혁명 지도자의 역할을 맡았다. 그는 ‘쥐스틴느[Justine]’와 같은 변태적이고 외설적인 내용의 소설들을 여러 권 썼고, 나중에는 샤렝통[Charenton]의 정신 병원에 다시 감금되었으며, 혁명의 혼란 속에서도 잘 살아 남았다.
** 장 폴 마라[Jean Paul Marat]. 마라는 스위스 태생의 혁명가로 1789년 ‘국민의 친구[L’Ami du Peuple(The Friend of the People)]’라는 논문을 출판했다. 이 글은 널리 배포되었고, 프랑스 국민들이 폭력 혁명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내용이었다. 자코벵당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이었던 그는 정확히 4년 후, 목욕중에 샤를로트 코르데[Charlotte Corday]에 의해 암살되었다.
**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다비드는 잘 알려진 프랑스 화가이자 로베스피에르의 유태인 협력자이기도 했는데, 그 역시 수많은 희생자들을 “심판했던” 공공 안전 위원회의 또 한 명의 피에 굶주린 멤버로 활동했다. “그의 목소리는 항상 사형을 선고할 때면 높아지곤 했다.”
** 가브리엘 빅토르 미라보 명예 백작[Comte Honoré Gabriel Victor Mirabeau]. 미라보는 뛰어난 프랑스 웅변가로 1784년에는 영국에 체류하며 공부한 적이 있고, 이어지는 몇 년에 걸쳐서는 독일을 세 차례 방문했다. 혁명 발발 첫 2년간 가장 중요했던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는 끔찍한 사디스트였으며, “너무나도 역겨운 자유주의자였기에 자신이 속한 상층 계급에서도 배척받았다... 그는 또한 유태계 일루미나티[the Jewish Illuminati]의 수장이었던 모제스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으로부터 자금을 제공받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이름없는 전쟁[The Nameless War]) 자코벵당의 수장이었던, 이 역겹고 뒤틀린 취향의 미치광이는 힘없는 희생자들이 고문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즐겼다.
[인용의 끝]
하톤: 여기 정도가 이 글을 마치기에 적절한 자리로 보입니다. 나는 당신들 가운데 상당수가 저메인[Germain, Germaine, Gerrmain etc.]에 대한 언급들에 대해 충격을 받은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여러 사람들이 존스[Jones]나 스미스[Smith], 또는 브라운[Brown]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까? 그만하십시오. 당신들은 천사들[angels]이나 신성한 자들[Godly men]이 단순히 바다 속 물고기 배에서 산란되는 새끼들처럼 손쉽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한 것입니까? 나는 종종 형편없는 사기꾼이라고 할지라도, 당신들 모두가 소위 “신성한” 인물이라고 거론하는 자들보다 더 놀랍게 변모하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당신들의 이해를 분명히 도울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부분적인 정보만을 알고 있는 자들이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펼치며 대립각을 세울 때, 우리가 이에 대한 완강한 부인을 하게 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저메인(당신들이 피닉스 저널을 통해 알고 있는 그 저메인을 생각해 볼 때)이 사실상 화학적인 현상들과 빛에 대한 자신의 지식들을 당신들에게 아낌없이 다시 내어 놓는 이유는(피닉스 저널 제 30-37권, 플레이아데스 커넥션 시리즈 참조--역주)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닌 것입니다.--특히 관련된 이야기의 전모를 다 알지는 못하는 텍사스 출신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과거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저메인은 엘리트 왕족 출신들 뿐만 아니라 유명한 영국 엘리트들 가운데서도 가장 촉망받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선택되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오, 우리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모든 것들이 밝혀지자 마자 바로 확인해 볼 수 있겠지만, 그가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전환했다는 사실은 이내 알려질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저메인의 가치를 하락시키지는 않습니다.--그에 대한 주변의 ‘인식 변화’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과거 엘리트들간의 소사이어티에서 그가 누렸던 영예, 그 이상의 ‘진정한 영예’가 그에게 돌려지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당신 자신은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기 전에 무얼 하고 있었습니까? 아멘! 누가 누구인 것입니까? 왜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나아가지 못하겠습니까?
pp.61-68
Gyeorgos Ceres Hatonn, 게오르고스 세레스 하톤
피닉스 저널 제 139권 (미간행 저널), “Choices”, 제 6, 8장, pp.52-53, 56-68에서 발췌
http://www.fourwinds10.net/unpublished_phoenix_journals/
http://blog.daum.net/truthinlight